주일 특강 (2025. 2.9) 말씀/ 시편 42:6-11 깊은 밤에 찬송하고 기도하라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요즘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밤입니다. 내란 탄핵 정치 상황과 나라가 돌아가는 일을 보면서 저도 화가 나고 많이 걱정이되고 불안했습니다. 유튜브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고 서울에 후배 김태구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상황에 대해서 물어보곤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오늘 시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내가 하나님의 하실 일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람들을 바라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항상 어둡고 힘든 날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비가 오고 바람도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먹구름이 드리운 날도 있고, 추운 날도 있은가 하면, 밝고 화창하게 빛나는 따스한 날이 있습니다. 고뇌 속에 잠을 잘 수가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새워야만 하는 깜깜한 날도 있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행복한 환한 날도 있습니다. 늘상 밝은 날과 해빛만 이으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둠을 지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갖는가 하는 것입니다. 단지 낙망하고 불안 해 하는 가,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며 찬송하며 기도할 것인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 밤의 과정을 어떻게 지내느냐에 따라서 그 밤은 우리에게 가치 있고 소중한 희망의 밤이 되기도 하고 , 절망과 슬픔의 의미없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밤과 같은 과정이 다가올 때에 사람들은 "왜 나에게 이러한 고통이 닥쳐왔을까? 하나님은 나를 잊어 버리셨을까? 하나님은 왜 나의 이런 고통을 보시면서 침묵하고 계시는 것일까?" 회의하고 염려하며 원망합니다. 시편저자도 밤의 과정의 고통 중에서 탄식하였습니다. 6절에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10절 “내 뼈를 찌르는 것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 11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이 시인 역시 삶의 깊은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깊은 밤에 시인은 밤의 탄식을 뛰어넘어 찬송을 하며 기도합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8) 우리도 종종 이 시인과 같이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어둡고 깊은 밤의 과정을 경험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운 문제이든지, 또는 꿈과 이상의 좌절 속에 찾아오는 어둠이든지, 아니면 건강이 나빠지든지... 그러나 이러한 어두움의 과정을 잘 지나고 나면 반드시 밝은 아침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니체는 수많은 별들을 잉태하려면 먼저 내 안에 카오스를 지녀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찬란한 별들은 밤 하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처럼 불확실성은 오히려 가능성을 낳는 것이며 어둠의 끝자락 혼돈의 가장 자리에서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혼돈의 무조건 통제할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고 놀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어두운 밤의 과정들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첫째로, 깊은 밤은 낮을 준비할 때입니다. 성경은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합니다. 어떻게 보면 밤 또한 낮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도 밤의 과정을 겪으면서 "내 영혼아 내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하고 탄식했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아침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내 속에서 내 영혼이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한다고 하였습니다. 새벽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고, 가장 어두운 밤에 별은 가장 찬란하게 빛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가장 어두울 때는 오히려 새벽을 감지하며 밝아오는 아침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고난과 고통의 깊은 밤이 다가올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의 역사가 가까워 옴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주를 기억하고 만날 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밤이 깊을수록 내일의 밝은 아침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어린아이들은 밤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성숙한 어른들은 밤을 낮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봅니다. 밤중에 휴식을 취하고, 시를 쓰고, 독서도하고, 명상에 잠기고, 밝아오는 새날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감기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는 사람은 암에 걸리는 확률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감기의 고열은 병에 대한 저항의 발로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고열이 없다는 것은 아주 저항이 강하거나 저항이 없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감기에 자주 걸려 고열에 시달리는 것은 병원체의 침입에 대한 저항이 있다는 것이므로 암의 발병 확률이 낮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밤의 과정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밤은 조용한 시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때입니다(삼하7:4,대하1:7). 밤은 하늘의 신령한 지식을 얻는 때입니다(시19:2). 다윗은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한다"(시19:2)고 했습니다. 또한 밤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진실함을 찾게 해주는 때이고(사26:9). 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치 있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도록 준비시켜 주는 때입니다(왕하19:35). 밤의 시간 준비가 없다면 우리는 낮이 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호주에 가보면 겨울철 우기가 다가올 때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을 보게 되는데 초원 중간 중간에는 흉하게 보이는 모래웅덩이들이 있어 초원의 아름다움을 망가뜨립니다. 그러나 깊은 밤 비바람이 몰아치고 난 후에 그 웅덩이는 물이 가득 찬 아름다운 호수로 변합니다. 많은 가축들이 이 물을 마시게 됩니다. 이것을 빌라봉(billabong)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보기 흉한 웅덩이와 같은 모습인데 오히려 비바람이 몰아치는 깊은 밤의 과정을 거치면 그 흉한 웅덩이는 밝은 날 많은 가축을 먹이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축복의 호수가 되는 것입니다. 밤이 있기에 축복된 낮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삶속에서도 밤이 깊어갈수록 믿음과 희망의 지혜를 가지고 낮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깊은 밤은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입니다. 시편기자는 어둡고 깊은 밤의 과정을 탄식하며 낭비하며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깨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찾는데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낮의 과정을 바라보면서 희망 속에 깊은 밤을 소중하고 귀하게 보냈습니다. 시편 기자는 밤의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면서, 그 속에서 주어지는 의미와 가치를 찾고자 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그는 깊은 밤이 오히려 자신을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임을 알았습니다. 그는 밤의 시간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갔습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시련에 선 문명」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만 배우게 되며, 역경은 이를 극복하려는 결심이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불행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둠의 삶의 과정은 우리에게 깊은 지혜를 간직하게 하고, 하나님의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 되도록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밤의 과정은 절망과 무너지는 시간이 아니라 성숙되고 축적되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과정을 지나지 않은 사람은 따듯한 봄이 왜 좋은 지를 모릅니다.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배부름의 의미를 모릅니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해 본 사람만이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깊은 밤과 같은 삶의 고통스러운 과정은 피하고 싶기도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희망 가운데 살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선한 뜻을 알려주기도하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우리는 12.3 비사계엄 내란 사태로 온국민이 떨고 두려워 잠 못이루는 밤을 보내야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 사이 경제는 파탄나고 국민들은 힘든 때를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울 김용욱 선생은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건이 없었으면 사람들은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라꼴이 어떻게 되는지 무관심하고 무신경했을 텐데 이런 사건을 통해서 오히려 온 국민이 깨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계엄도 막아주셨으니 대한민국 국민들 지혜롭게 이 밤을 극복해갈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나라를 위해 기도를 못했습니다. 이제 밤을 맞은 지금이 이 나라 백성으로서 나라를 위해서 제대로 깨어 기도해야할 때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두운 밤의 시대 속에서 깨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롬13:11) 우리도 깊은 밤의 시간 오히려 더욱 하나님을 찾고 깨어서 자녀들을 위해, 이시대 교히를 위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깊은 밤은 찬송과 기도를 할 때입니다. 8을 보시기 바랍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인은 밤에 무엇을 한다고 합니까? 밤에는 내게 찬송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합니다. 11절도 보면 “나는 내 얼굴은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고 고백합니다. 깊은 밤은 찬송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행복한 교제를 누릴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렇게 밤에 기도와 함께 찬송을 부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은 소망의 사람입니다. 찬송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과 풍성한 사랑을 높이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그런 하나님을 체험하며 살고 있음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찬양하라는 말은 성경에 550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33:1 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라고 하였고, 시134:1에서는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하셨습니다. 바울과 살라는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성을 요란케 하며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하는 자들''이라고 하여 고발을 당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워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밤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홀연히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착고가 풀려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행16:16-26). 결과 간수들이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찬송은 깊은 밤의 옥문을 열어놓는 능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여러분, 인생의 밤이 올 때 지례 두려워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며 불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기도하고 찬송하십시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걱정한다고 되는 일이 있스니까? 원망한다고 되는 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찬송하면 됩니다. 옥문이 열리고 막힌 문제들이 풀립니다. 기도하고 찬양하면 미운 사람이 변화됩니다. 기도하고 찬송하면 원수가 찾아와서 화해를 청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오늘 잠 못 이루는 깊은 밤과 같은 과정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도하고 찬송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볼 것이며 어둠과 혼돈의 가장 자리에서 아침의 찬란한 태양 빛이 비추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도 인생의 가장 어둡고 혼돈한 때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격한 감정에 양들을 떠내보내고 소수가 남았을 때 이곳 무안은 실패의 장소, 가시방석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여기를 떠나야하지 않을까? 대학 운동장 벤치에 처량하게 앉아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푸념섞인 기도를 했습니다. 설상가상 자녀들도 떠나고 사모도 떠난 자리가 너무나 컸습니다. 그런데 그 혼돈의 가장 자라에서 저는 주님이 하신다는 빛을 보게 되었고, 가식과 틀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사랑이라는 신앙의 가장 중요한 본질 하나를 잡았습니다. 주님이하신다는 새로운 차원에서 한 영혼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실천할 것을 결심했습니다. 책을 읽고 색소폰을 불고 글을 쓰면서 먼저 자신이 자유한 영혼이 되었습니다. 당연 무안은 꽃자리가 되었고, 박중용 목사님 말대로 무안은 세계에서 가장 오고싶어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지난 주 수요일 함께 식사하면서 최광휴 선교사님 한마디 했습니다. 자주 듣는 이야기 이지만 목사님이 가장 행복하신 것같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어둔밤은 단지 절망의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하며 찬송으로 보내는 사람은 반드시 브니엘의 태양 행복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몇일 전에 사이토 다케시 작가가 학창시절 감명있게 읽었다는 로망 롤랭의 장크리스토프라는 책 두권을 샀습니다. 페이지가 1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입니다. 그 책을 보니 이런 말이 쓰여있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속에서도 기가 꺽이지 않고 인간 완성을 목표로 하여 악천 고투하는 영혼의 역사를 그린 교양 소설, 그리도 맨처음 표지에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국적을 불문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다가 마침내 승리할 모든 자유로운 영혼에게 바친다. 재 해석을 하면 깊은 밤을 기도로 이겨내고 마침내 승리할 자들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창세기의 야곱도 그런 어둠의 시간을 보낸 사람입니다. 형에서를 피해 삼촌 라반 밑에서 처가살이 20년을 하고 마침내 귀향하게 될 때 그에게 깊은 시름의 밤이 다가왔습니다. 과거 20년 전 형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4명의 아내와 12명의 자식들 많은 재산들 금의환향하는 길이었지만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형에게 줄 뇌물을 준비하고, 행렬을 정비하여 한 떼를 취면 다른 한 떼는 도망하리라 작전을 짰지만 근본 근심걱정 두려움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그가 택한 것은 얍복강에 가서 밤새 기도하는 것 이었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는지 울면서 기도했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밤새 천사와 씨를 하고 환도뼈가 골절되기까지 된 상태에서 나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보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천사는 그의 이름을 사기꾼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었습니다. 깊은 밤 밤새 기도하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존재가 변화된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을 맞이하였는데 그 때 브니엘의 태양이 떠올랐다고 하였습니다. 모든 문제가 풀어지고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형 에서를 만났는데 서로 끌어안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창33:10) 어둠의 시간은 기도할 때 이런 브니엘의 태양 승리가 여러분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도 보십시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얼마나 깊은 밤을 보내셨습니까? 예수님은 고민되어 주겠는 심정을 가지고 겟세마네동산에서 피땀흘리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일어나 죽음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죽으시는 그 순간 제 육시부터 제구시까지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땅을 덮은 깊은 어둠 속에서도 의연히 하나님께 기도하셨고, 기도를 마친 후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에 묻히신 후 3일 후에 다시 부활의 몸으로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셨고,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결론 인생을 사는 날 동안 우리의 삶 속에도 낮과 밤의 과정은 끊임없이 교차됩니다. 이런 밤의 과정을 부정하지 말고 긍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긍정의 마음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며 밤을 모낸다면 그 밤이 지나면 야곱이 브니엘의 태양을 맞이한 것처럼 찬란한 안생의 새벽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와 찬송으로 찬란한 새벽과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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