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자’라는 상相을 내어 의료봉사를 실천 하다
‘나는 불자다’라고 말하는 것은 내 안의 불성을 믿는 것이자 불자로서 정도正道의 길을 걸어가겠다는 하나의 서원이다. 부처님께서는 상相을 내지 말라 하셨지만 ‘불자’라는 상相은 깨달음의 길을 걸어가는 데 뗏목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강을 건넌 후에는 내려놓아야 할 테지만. 진정한 불자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천직인 의사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불자를 만났다. 길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참다운 불자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 불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먼저, 불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왜 불자가 되었습니까? 다양한 종교의 가르침 가운데,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게 되었나요? 이 질문 안에 불자로서의 삶의 태도와 방향을 보여주는 답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절에 가서 처음으로 참선을 했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던 괴로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미묘한 경험이었어요.”
국립정신건강센터 양동선(수암, 56) 치과과장이 불자가 된 이유다. 공대 2학년 무렵 치기공사이자 치과재료상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치대 시험을 권유했고, 공대를 졸업해 평범한 샐러리맨이 되고 싶었던 양동선 과장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의 괴로움을 직면하게 됐다고 한다. 어렸을 적, 누나들과 함께 교회를 다녔고 성경암송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던 양 과장은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를 해보았지만 괴로움이 사라지진 않았다. 그러다 집 근처 사찰에 우연히 들렀다가 한 스님이 참선하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날 이후 양동선 과장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무진장 스님에게 수계를 받았다. 참선 덕분에 치대 시험에도 무난히 합격할 수 있었고, 치대에 들어가서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에 가입해 교리부장까지 맡았다.
“대불련 활동을 하면서 ‘신자’와 ‘불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절에 다니는 것이 신자의 행위라면, 불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진정한 불자입니다. 거창한 실천이 아니라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미소 짓는 것, 따뜻하게 말을 건네는 것도 불자의 모습이겠죠.”
| 불자로서 재능을 나누는 삶
양동선 과정은 불자로서 자리이타自利利他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다. 20년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입사하면서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입사하기 전에는 개업의로서 10년간 치과를 운영하며 수입도 좋았지만 봉사할 시간을 쉽게 낼 수가 없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양 과장은 오직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여유를 갖기 위해 ‘월급쟁이 의사’의 길을 택하게 된다.
“개업의를 할 때보다 수입은 줄었지만 시간적 여유가 많아지면서 2가지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하나는 자녀들과 전국의 국보 및 보물 등 모든 문화재를 다 둘러보는 것, 또 하나는 바로 의료봉사였어요. 우연한 기회에 강남 봉은사에 있는 ‘선재마을의료회’ 창립에 참가하면서 의료봉사를 하다가 병원불자연합회 진료단장을 맡아 전국으로 봉사를 다녔죠. 10년 전부터는 마하의료회를 창립해 불자 의료인으로서 부처님 법을 의술로써 전하고 있습니다.”
마하의료회는 창립 이래 연 6회의 국내 봉사와 연 1~2회의 해외봉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이주노동자와 장애인들을 우선적으로 찾아가며 해외는 인연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간다. 작년에는 인도 히말라야 해발 4천 미터에 위치한 라다크Ladakh로 의료봉사를 다녀왔는데, 고산병이 심해 총 인원 8명 가운데 2명의 회원이 실신할 정도로 힘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무사히 봉사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이 늘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양 과장은 말한다.
“종단의 도움 없이 회원 스스로 회비를 내고 시간을 내어 여법하게 의료봉사를 해온 것이 마하의료회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리 회원들의 삶에서 제일 우선순위는 단연 의료봉사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의료봉사를 하면서 양 과장이 현장에서 느끼는 아쉬움은 타 종교에 비해 불자의료인들이 봉사할 수 있는 단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인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다만, 불자 의료인으로서 저의 재능을 기부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저와 같은 불자 의료인들이 많이 동참할 수 있도록 종단 차원에서 의료 포교사업을 조직하고 지부별 봉사단체를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불자들은 타 종교에 비해 드러내지 않는 성향이 있잖아요. 불자라는 상相을 내어서 다함께 보살행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불자로서 상相을 내며 살면 바르게 살게 됩니다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양동선 과장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려고 한다. 의료봉사를 할 때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양 과장은 늘 염불을 한다. 염불을 하다보면 흐트러진 마음을 다시 모을 수 있고, 부처님이 항상 함께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염불은 양 과장에게 부처님과의 강력한 연결고리다.
괴로움 때문에 불법을 만났고 괴로움이 사라지는 경험으로 인해 불자가 되었던 양 과장에게 괴로움을 최소화하며 사는 것은 삶의 화두다.
“살다보면 당연히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날 때가 있지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괴롭진 않습니다. 괴로움은 날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바람이 불어오면 괴로움이 날아갈 수는 있지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언제든 다시 돌아옵니다. 바람에 맡겨선 안 되죠. 스스로 흘려보내야 합니다. 강물에 흘려보낸 괴로움은 다시 잡을 수 없으니까요.”
개업의를 그만두고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입사한 지 5년 정도 되었을 때 양 과장은 편도암 판정을 받았다. 투병생활을 끝내고 다행히 완치되어 건강하게 의료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라고 양 과장은 말한다.
“제가 불자로서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함부로 막 사는데 가피를 주시진 않겠죠.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고 불자로서 당당히 살아가려 합니다.”
부처님은 어떠한 상相도 내지 말라 하셨지만 양 과장은 앞으로 당분간은 불자로서 상相을 내며 살아가려 한다.
“저는 불자임을 드러내기 위해 진료할 때도 손목에 염주를 하고, 어디를 가나 불자임을 당당히 말합니다. 그건 불자로서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함부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것입니다. 제복을 입는 것과 같은 것이죠. 불자로서 상相을 내며 살면 욕먹지 않기 위해 바르게 살게 됩니다. 스스로를 늘 돌아볼 수 있어요. 나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 하나로 인해 불교 전체가 비난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양동선 과장은 ‘불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에 부끄럼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자기 안의 불성을 찾아가며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과 나누는 삶,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불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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