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3: 불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읽고 있습니다.
책 벌써 네 권 째입니다.
이오덕 선생님 글을 읽으며 글쓰기의 힘을 알아갑니다.
‘글쓰기엔 힘이 있구나, 글쓰기로 세상이 바뀌는구나, 글쓰기로 나 자신이 단단해지는구나, 글이 곧 역사가 되는구나.’
세상을 바꾸는 일은 무언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인줄 알았습니다.
어떤 권력이나 직책이 있어야만..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
그게 바로 글쓰기임을 깨닫습니다.
기록하기를 멈추지 말아야겠습니다.
김세진 선생님이 그토록 사회사업가 글쓰기 운동을 하시는 이유도 더 깨닫게 됩니다.
‘불 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책 읽으며 부제가 더 와닿습니다. 교직에서 쫓겨나고 나이가 많이 들어도, 꺾이지 않는 열정으로 더 치열하게 교육 운동과 우리말살리기 운동, 아동문학 운동을 해오신 이오덕 선생님의 삶이 존경스럽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의 거침 없는 목소리에 책을 읽는 우리는 젊은이로서 반성하곤 합니다.
이번 모임에서 나눈 의미 있는 이야기 복기해봅니다.
1. 글쓰기
셋이서 얘기를 하는데, 내가 오늘 어머니들과 얘기한 것을 대강 말했더니 민 교수는 좀 수긍이 안 된다면서 아이들이 일기를 쓰기 싫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글쓰기란 누구나 싫어하는 것 아닌가, 했다. 나는 이런 말을 했다.
“글쓰기가 본디부터 모든 사람이 싫어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제시대 때도 매주 작문 시간이 있어 일기뿐 아니라 작문을 쓰는 것을 거의 모든 아이들이 싫어했지요. 그런데 그때는 일본 말, 일본 글로 글을 썼지요. 농촌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아이가 일본 글로 어떻게 자기 집 농사일한 것을 쓰겠어요. 그러니 작문이 어렵고 쓰기 싫고 쓸 것이 없을 수밖에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 말로 쓴다고 하지만 실제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쓸 수는 없는 교육이 되어 있으니, 쓸거리를 못 찾고 글쓰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절대로 정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마음을 남에게 보여 주고 싶어 하여 정직하게 쓰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우리 말의 문제를 두고 자꾸 생각하다 보니, 말이란 것이 우리의 역사와 깊은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말과 글, 그리고 의식, 삶 이것들의 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삶이다. 그 다음이 의식이고, 다음이 말이고 글이다. 즉, 삶→의식→말→글 이렇게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것이 거꾸로 역행하는 수가 있다. 삶←의식←말←글 이렇게 말이다. 분명히 우리의 역사에서 이 역행 현상을 볼 수 있다. 이런 역행은 잘못된 사회, 병든 역사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런 문화의 역행 속에서 사회와 역사를 바로잡으려면 역시 이 역행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즉 글과 말을 바로잡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바로잡고 삶을 바로잡는 것이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역행 현상은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만큼 말글을 바로잡는다고 해서 삶이 단박에 바로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말과 글을 바로잡는 것이 민주 사회 실현에 지극히 큰 노릇을 하리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발견을 했다.
유치원의 박문희 선생이 무슨 얘기를 하다가 “이 교장 선생은 글을 써 놓은 것은 아주 좋은데 말을 잘 못하셔요” 했다. 그 말이 맞다. 나는 오면서 내가 왜 말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는가 생각해 보았다. 여러 가지가 생각났다.
1. 농촌에서 자라나고, 학교 공부도 못해 스스로 자기를 부끄러워하고 열등감을 가지고 자라난 것.
2. 교회에서 배운 성경의 말이나 설교 말이 내 말이 될 수 없었다.
3. 일본 말이 내 말이 될 수 없었다.
4. 독서로 얻은 생각과 말이 내 것으로 될 수 없었다. 그것은 서울 중심의 말, 표준말이었고, 내 열등감을 더욱 심화시켜 주는 말이었다.
5. 내가 쓰는 글이 내 말이 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책에서 읽은 글이었다. 한자 말과 일본 말투가 잡탕으로 섞인 말의 체계였다.
6. 내가 새로 깨달은 우리 말은 지금부터 배우는 판이다.
7. 결론-나는 모국어의 미아(迷兒)로 살아온 사람이었다!
‘자기를 표현할 언어가 없는 사람이 바로 약자다.’ 전 선생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오덕 선생님은 늘 아이들 교육에서 정직한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는데,
농촌 아이들이 도시의 삶을 부러워하고 자기 고향과 방언에 열등감을 느끼는 모습들을 보시며, 또 그렇게 느끼도록 하는 학교 교육의 문제를 비판하시며 순수한 자기 말로 자기 삶을 써내는 글쓰기가 아이의 삶을 되찾고 아이를 살리는 방법이라 여기셨을 겁니다.
제가 주로 만나는 아이들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 감정과 삶을 표현할 언어가, 아이들에게 없습니다.
제가 아이들 앞에 교육이란 이름으로 무언가를 해야한다면,
아이들이 글을 쓰도록 돕고 싶습니다.
최대한 사회사업답게 이루어 가는 모습을 궁리합니다.
정한별 선생님의 누구나 그림책 사업도 생각이 나고,
전채훈 선생님의 조각보 문집 사업도 생각이 나네요.
2. 이웃, 인사
그런데 권정생 선생이 아무래도 일직으로 다시 가야 되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 한참 권 선생 얘기를 했다. 우리가 이제사 깨달은 것은 권 선생이 지금까지 혼자 살아온 것이 아니라 일직 조탑동 그 마을 사람들과 한 식구가 되어 살았던 것이다. 거기를 떠날 때 마을 노인들이 모두 와서 울었다고 한다. 거기를 떠나면 못 산다는 것을 권 선생도 이제사 깨달은 모양이었다. 할 수 없다. 다시 그곳으로 가시도록 하는 수밖에.
우리 모두 이 구절에 여운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빗대어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만약 살던 마을을 떠난다고 하면..’ 나를 위해 울어주는 것은 고사하더라도, 그 사실조차 모르는 것은 아닐까? 인사는 할까? 눈물 흘릴 정까지는 나누지 못하더라도, 그간 감사했다고 인사라도 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선생님은 같은 빌라 사는 이웃들에게 인사를 해도 잘 안 받아주신다는 이야기를 나눠주셨습니다. 그래서 점점 인사 조차 하기 멋쩍어진다고..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작은 인사가 하나의 사회 운동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웃들에게 인사를 잘 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한 사람의 일기를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들여다 본 적이 있었나."
박 선생님이 말씀하십니다.
책모임 사람들은 모두 ‘이오덕 일기’ 시리즈를 읽으며 비슷한 고충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훈적이고 의미있는 말로 짜임새 있게 잘 구성된 책을 읽는 일에 익숙해서
한 사람의 날 것 그대로의 일기를 읽는 일은 인내심을 요합니다.
우리는 띄엄 띄엄 읽거나 대충 훑어 읽기도 하면서 이 책 읽는 의미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치만 그 지루함을 이겨내고 읽다보면 어느샌가 위로를 받고 반성도 하고 용기도 얻는다고, 책모임 선생님들은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책모임을 할 때면 늘, 이 책을 읽기 잘한 것 같다고 이야기 나눕니다.
하나의 구절에서 각자의 생각이 더해져 책이 더 풍성하게 읽힙니다.
책모임이 아니었으면 꾸준히 읽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목한 이오덕 책모임, 멋진 선생님들과 함께해서 좋아요.
기록은 매번 하기는 참 힘든데, 한 번 하면 또 길어지네요.
앞으로는 와닿은 구절만이라도 발췌해서 공유해보겠습니다.
첫댓글 안연빈 선생님이 주선해주신 덕분에 좋은 어른 한 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좋은 선생님들과 풍성한 나눔 올해 복 받았어요 :) 주선해주신 연빈선생님, 그리고 함께하는 선생님들 모두 고맙습니다!
와 김민선 선생님이 민선이었구나.
반가워요.
@최선웅 네 선생님 ^^! 정보원 덕분에 이런저런 기회로 배우는 삶, 고맙습니다 !
우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와닿는 부분이 많아요.
화목한 이오덕 책모임의 멋진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