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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아왔다.
세계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고속 경제발전의 주역을 맡으면서 우리는 <빨리 빨리>의 砲煙속에서 청춘을 불살랐다.
항상 격무에 시달렸고 산더미 같이 쌓인 일거리에 치어 야근하는 것도 모자라
서류를 보자기에 싸들고 사무실과 집을 오갔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의 시동을 건 것은 1965년의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었다.
그 때가 우리의 사회출발 초년병 시절이었다.
우리의 청춘과 중장년은 경제발전과 궤를 같이 한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을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속도전 속에서 일생을 보냈다.
"시간은 돈이었다."
수출납기를 지켜야 하고 기일내에 건설공사를 끝내야 했다.
"빨리 빨리"는 단순한 신용차원을 넘어 원가절감의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농경사회로 부터 산업화과정을 거치면서 다양한 형태의 분쟁, 특히 경제관련 분쟁을 해결해야 했고
밀물처럼 몰려오는 경제발전정책, 수출정책, 중화학공업화정책을 세우고 경제발전변화에 따른 온갖 새 제도를 수립하여야 했으며
급격히 늘어나는 수출과 설비투자의 소요자금 공급을 위해 국내자금을 최대한 끌어 모으고 뱅크론, 신디케이션론 등 해외자금차입에 심혈을 기울려야 했다.
이러한 물결을 타고 "빨리 빨리"는 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고 업무의 질은 그 다음이었다.
농경사회에서는 "빨리 빨리"는 얼러뚱당으로 하대받았다.
농사를 짓는데 아무리 빨리 빨리 애쓴다 해도 곡식이나 과일이 빨리 익는 것이 아니였던 것이다.
원래 우리 민족은 성질이 급한 민족이 아니였다.
우리 민족의 특성을 말할 때 "은근과 끈기"를 꼽는다.
아마 우리 민족이 수렵민족이었고 전쟁을 좋아하는 민족이었다면 기민하고 순발력 좋은 소위 속전속결이 덕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1천여번의 크고 작은 외침을 당하고도 세종대왕 집권시 대마도 원정과 압록강 넘어 여진족을 물리친 것 외에는 밖으로 나가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왜구가 하도 노략질을 하고 여진족이 약탈을 했기 때문이었다.
월남파병이나 이락, 아프카니스탄은 그 의미가 좀 다르다.
"은근과 끈기"
그저 恨을 품고 참으며 기다리고 기다린 것이 우리 민족이었다.
눌르고 눌르면 이것이 어느 순간 터지듯이
반만년을 참아온 민족혼이 1960년대를 맞이하여 대폭발을 한것이다.
이제는 느리게 살아야 한다.
이제는 사회전체 뿐만 아니라 세대전체가 "빨리 빨리"의 속도전 개념을 버리고
느리게 사는 지혜를 터득하여
내적충실과 질의 향상을 덕목으로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우리야 이제 사회의 주역에서 한발짝 뒤로 물러서 있으니
서둘 일도 없지만 옛 어른들의 지혜를 젊은 사람에게 전수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3.0 까지는 시간이 돈이었다.
많이 일하는 사람은 많이 벌고 몸을 바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그 대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본주의4.0에 들어선 21세기는 지식의 정보화로 개인의 능력은 무한하고 다양해져서
빨리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한사람이 능력에 따라 수백명의 일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것이다.
자본주의4.0에서는 창의력이 가장 중요하다.
창의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서는 않된다.
천천히 천천히, 느르게 느리게 아이디어를 창출해 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개인의 취향을 즐기고 휴가와 휴식이 필요하다.
밤을 새서 일을 한다 하여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4.0을 따라 갈라면 버젼을 바꾸어야한다.
젊은 시절 시간은 돈이었으나 그것은 젊은 시절의 이야기였다.
불유거의 나이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흔히 자조적으로 "남아 도는 것이 시간이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시간이 많아 주체할 수 없고 밖에 나가 딱히 할 일도 없어
집에 죽치고 앉아 TV라도 보고 있노라면 '삼식이'라고 마누라 눈치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번쯤은 생각 해 보아야지 않을까?
워런 버핏의 아들 피터 버핏은 아버지 답지않게 "돈이 전부가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게 중요하다."라고 하였다.
얼마전 방영된 TV드에서 6개월 시한부 암판정을 받은 어느 여인이 살아 있는 동안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해보며 지워나가는 드라마가 있었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매사에 대응하는 것이 느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쌍소는 그의 저서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느림은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이라고 하고 있다.
느림은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내 팔자 또는 운명에 맞추어
조용히 나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쌍소는 느린 사람은 매사에 동작이 굼뜬데 다가 좀 둔하고 서툴러서 평판이 좋지 못하다고 한다.
현대인은 머리회전이나 동작이 느린 사람 보다는
민첩하고 빠릇빠릇한 사람을 더 좋아 한다.
그러나 쌍소는 굽이 굽이 돌아가며 천천히 흐르는 강의 한가로움에 말할수 없는 애정을 느낀다고 한다.
마치 강원도 동강이나 하회마을을 끼고 도는 낙동강 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얼굴이 고귀하고
선한 삶의 흔적을 조금씩 그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감동에 젖는다고 말하고 있다.
수백년이 넘는 아름드리 나무들, 그들은 수세기를 이어 내려 오면서 천천히 자신들의 운명을 완성해 간다.
그것은 영원에 가까운 느림이다.
느림은 개인의 성격문제가 아니고 삶의 선택에 관한 문제이다.
즉 어느 한 기간을 정해 놓고서 그안에 모든것을 처리하려고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시간에 쫒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스로우 시티>라는 것이 있다.
스로우 시티는 맥도날드와 같은 fast food가 자신들의 도시에 들어오는 것을 막고
삶의 방식을 모두 "느리게"로 바꾸어
지역의 전통적이고 다양한 식생활문화인 slow food를 지키려는 운동에서 시작했다.
처음 스로우 시티가 생긴 것은 1999년에 이탈리아 한 작은 도시 Greve in Chiantti 시장인 Paolo Saturmini가 자기 지역이 큰 도시와 거대자본에 예속되는 것을 막고
지역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면서 명소가 된 것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백화점, 대형할인점, 자동차가 없다.
그 대신 평화와 고요 그리고 진정한 휴식이 찾아 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자연이 가진 찬란함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느리게 먹고 느리게 살기 운동으로 시작된 스로우 시티는
지역사회의 공동체정신을 이어가는 느림의 철학인 것이다.
최근 의학보고서에 의하면 천천히 음식을 꼭꼭 싶어 먹으면
체중증가를 막을 수 있고 음식에서 얻는 에너지를 완전히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동안 "느림"은 악덕으로 치부되어 왔다.
스로우 시티는 공해 없는 자연 속에서 그 지역에서 나는 음식을 먹고
그 지역의 문화를 공유하며 자유로운 옛날의 농경시대로 돌아가는 느림의 삶을 추구하는 국제운동으로
전세계 17여개국에 120여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2007, 12, 1에 아시아 최초로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담양군 삼지대 마을, 장흥군 반월마을이 '스로우 시티'로 지정되었고 그후 하동 평사리, 충남 예산군이 추가 지정되었다.
지난 봄에 스로우 시티 청산도를 다녀왔다.
청산도는 인구 3천명에 해안선 길이가 42km로 전라남도 완도에서 뱃길로 30분을 더 가야 하는 조그만 섬이다.
이 섬은 "느림의 미학"을 보여 주는 곳으로 유명하며
퍽 시골스런 풍광에 깨끗한 공기와 한적한 분위기가
그 옛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켜 준다.
이 섬에는 우리나라 영화사상 불후의 명작인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서
유봉일이 의붓딸 송화(오정해 분)와 춤을 추면서 판소리를 5분 20초에 걸쳐 부르는 장면을 찍은 황톳길이 있다.
노아란 유채꽃 물결 사이로 이어지는 누런 황톳길,
아스라이 들려오는 흥겨운 노랫가락...
이 곳은 다른 시골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게 지고 가는 농부,
초가삼간 오막살이, 초분, 식량증산을 위해 만든 구들장 논, 다랭이 논 등
향토색 짙은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구들장 논은 구들을 깔듯 논바닥에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쌓아 만든 논으로 해산물은 풍부했으나
논이 없어 쌀이 귀했던 시절에 흙이 부족한 섬마을 사람들이 한 줌의 흙마져 아껴 농사를 짓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들에게는 가난과 배고품을 이기려는 삶의 지혜였지만
이제는 스쳐가는 여행객에게는 그져 아름답고 전설어린 풍경이 되었다.
청산도에는 해수욕장이 많다.
일몰이 아름다운 지리해수욕장,
소나무 숲과 갯돌이 어울린 진산해수욕장,
깨끗하고 부드러운 모래사장과 쪽빛 바다가 2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신흥해수욕장 등이 있는데
그 중 진산해수욕장은 해 뜨는 마을로써 부산 태종대처럼 모래 없이 공룡알 같은 갯돌 만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해변으로 발바닥에 닿는 둥굴 둥굴한 갯돌의 느낌이 모래사장과는 다른 묘한 전율을 느낄 수 있고 이 돌들이 파도에 쏠릴 때의 움직이는 소리는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해 준다.
석양을 보며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 보자.
서서히 그리고 찬란히 사라져 가는 석양의 의미를 음미하자.
일출은 용솟움 치며 순식간에 중천에 떠오른다.
그러나 석양은 잔잔히 흐르는 파도에 황금빛 물결을 안겨주며
아주 천천히 사라져 간다.
스러져 가되 뒷 모습이 아름다우며
쥘듯 말듯 여운을 남기며 어둠은 서서히 드리운다.
여행을 가더라도 일정을 빡빡하게 잡지 말고
한곳에 1~2주 머물면서 여기 저기 둘러보며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식당에도 가보고
노천카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밤이면 피아노바에 가서 현지 맥주 한잔 마시며 현지인이나 여행객과 잡담을 나누어 보면 어떨까?
영어를 잘 못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들은 어차피 한 수 접어 줄 것이며 그런 곳에서는 고등학교 수준의 영어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단 배짱이 문제이고 술에 취하면 영어가 술 술 나온다.
이제 새벽갈이 일어나 여장을 꾸려야 하고 루부르박물관을 1시간내에 섭렵해야 하는
그야말로 인증여행은 졸업을 하는 것이 어떨까?
왠만한 도시에는 관광가이드를 하는 교포나 유학생이 있어 언어가 잘 안 통해도 문제가 없다.
관광회사 여행을 가더라도 하루 정도 자유여행이 있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을 추천한다.
영어가 좀 되면 인터넷에 들어가 숙소를 예약하고 맞집을 찾아보고 관광명소를 공부하고 가서
여유있고 한가롭게 그 도시를 즐길 것을 추천한다.
유로 패스를 사서 유럽 여러 나라를 둘러보면 잊지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되는 분은 크루즈여행을 추천한다.
단, 크루즈여행은 부부끼리만 가면 재미가 없고 다다익선이지만
최소한도 두 부부 이상은 같이 가야 한다.
모든것을 다 해 보려고 애쓰지 말자.
넘쳐나는 정보로 괴로워 하고 있다면 구독하고 있는 신문도 끊어 보고
베스트셀러 서적이라고 광고해 대는 책에도 대범하라.
행복하고 평화롭고 느긋하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자연스럽게 인생이 흘러가는 것을 음미하자.
한번쯤은 짬을 내서 고요한 곳에 홀로 있으면서
적게 먹고 몸과 말과 뜻을 억제하며
진정 가치있는 인생과 진리에 대하여 명상에 잠겨 보면 어떻까?
정신없이 달려가지 말고
잠시 멈추어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 보자.
등산을 가더라도 천천히 자연의 풍경을 즐기고
새 소리를 들으며 뭉게구름이 만들어 내는 환상적인 그림을 즐겨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속도를 늦추어 살아가며 자신을 더 알아가고
진정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생각해 보아야한다.
모임에 참석했을 때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들과 잡담을 나눌 필요는 없다.
모임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 의무감에서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다.
과감히 약속이있다는 핑계를 대고 그자리를 벗어나라.
누군가 우리를 식사에 초대했다고 해서 꼭 의무감에서 답례를 할 필요는 없다.
만약 상대방을 초대하고 싶지 않으면 초대하지 말라.
괜히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초대를 받았을 때 그 초대를 수락하고 그곳에 간 것으로 이미 우리는 의무를 다 한 것이다.
책은 이제 속독할 필요가 없다.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천천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음미하면서 정독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제일 관심이 많은 돈과 건강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돈과 건강은 같은 것이다.
돈은 살아 가는 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돈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은 아니다.
엄청난 돈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런 저런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왜 영국 왕실이 그렇게 많은 문제에 시달릴까?
더 많은 돈을 버는 것 보다
제한된 수입 안에서 현명하게 지출하고 아끼며 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자식에게 물러줄 재산에 대하여 고민하고 갈등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죽기 전에 장례비용만 남겨 놓고,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쓰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나름대로의 처지에 맞게 인생을 즐기라는 뜻이다.
해외여행을 싫건 가던 명품을 마누라나 딸 그리고 며느리에게 사주든지 손주를 위해 학자금보험에 들어 주던지
살아 있을 때 생색을 내라는 얘기다.
우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 자녀들에게 남겨 줄 유산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맬 필요는 없다.
자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교육을 시켜 주었으면 자신이 알아서 생활을 꾸려 나가야 한다.
마치 예금주 처럼 필요할 때 우리를 찾아와 경제적 지원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다 쓰고 죽어라>의 저자 스테판 폴란은 "나는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 있는 동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썼다"라고 유언장에 남겼다고 한다.
주위사람보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불평하지 말라.
시기와 질투는 우리를 분노하게 만들고 수명도 단축시킨다.
불평하는 대신 가지고 있는 얼마간의 돈이라도 즐길 준비를 하여라.
약간의 돈으로도 즐길 수 있는 길이 얼마나 많은가.
한 예로 친구들과 공짜 지하철을 타고 춘천 닭갈비에 막걸리 한잔이면 하루가 간다.
삶이 가르쳐 주는 바를 깨닫고
마침내 죽음을 앞에 두고 내가 헛된 삶은 살지 않았구나 돌이켜 보며 미소 띤 얼굴로 갈 수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 아닐까?
첫댓글 시성님, 좋은 글 잘 읽었읍니다. 주변을 여유로운 눈으로 둘러보며 음미하는 삶으로 남은 생을 보내기가 그리 쉽지는 않겠지요?
시성님, 멋진글이고 생각입니다.가끔 우리가 쓰잘데 없는 생각과 지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날수만 있다면 , 스스로 처늫은 울타리를
부수고 뛰쳐나올수 있다면 너무나 넓고 자유로운 세계를 만날수 있지않나 생각해봅니다. 마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