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명 |
내용 |
비고 |
도산서원 |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낙향 후 1561년(명종 16)에 몸소 설계하여 지은 건물로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 때문에 구석구석 남아있는 퇴계의 흔적을 눈여겨 봐둘 필요가 있다.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도산서당과 함께 지은 건물이다. 도산서당 뒤쪽에 있는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陶山書院’의 편액은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것으로 선조로부터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어른-1500원/어린이600원 *주차요금-소형2000원, 대형4000원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문의/안내 (054)856-1073 여름 09:00~18:00 겨울 09:00~17:00 연중무휴로 개방. http://www.dosanseowon.com/ |
시사단 (試士壇) |
조선시대 영남지방의 과거시험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물이다. 정조(재위 1776∼1800)는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도산별과를 새로 만들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거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1796년(정조 20)에 영의정 채제공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을 세웠다. 그 뒤 1824년(순조 24)에 고쳐 세우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겨지었다.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사이 벽 가운데를 가로질러 댄 나무인 중방 아래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벽을 둘렀고, 추녀 4곳에 얇은 기둥을 받쳐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
054-851-6392 시도유형문화재 33호 |
퇴계종택 |
조선 중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의 종가이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퇴계의 13대손 하정 공이 옛 가옥의 규모를 따라 새로 지었다. 앞면 6칸·옆면 5칸 규모의 ㅁ자형 집으로 총 34칸으로 이루어졌다. 높은 석축 위에 둥근 기둥과 네모난 기둥을 사용하여 지었으며, 전면에 솟을대문을 갖추었다. 오른쪽 ‘추월한수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정자로 마루에는 ‘도학연원방’ 현판이 걸려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인데 퇴계 선생의 불천위 신위를 비롯하여 4대의 신위를 봉안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86-2 054-851-6392 시도기념물 42호 |
퇴계이황묘소 |
건지산 묘소로 오르는 길에는 돌계단이 마련되어 쉽게 오를 수 있다. 묘전비 전면에는 관작을 쓰지 않고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 간결하게 적혀 있는데, 이는 선생의 유명(遺命)을 따른 것이다. 선생께서 손수 지은 자명(自銘)과 제자인 고봉 기대승이 지은 묘갈명이 새겨져 있다. 묘소에는 아담한 봉분과 동자석 2, 망주 2, 문인석 2, 묘비 1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매우 간결하고 조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빗돌의 글씨는 당대의 명필로 '선성삼필(宣城三筆)' 중 한 분인 금보(琴輔)가 썼다. 현재의 비는 1905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
쌍봉 윷판대 |
시 <광야>의 시상을 얻은 곳이다. 토계리에서 원천리로 넘어가는 당재고개에서 오른쪽 산등성이를 타고 1km쯤 가면 있다. '쌍봉 윷판대'는 “끊임 없는 광음(光陰)을/부지런한 계절(季節)이 피여선 지고/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는 <광야(曠野)>의 시상을 얻은 곳이니만큼, 발아래 물돌이동을 이루며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원천리 일대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며, 육사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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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선대 |
시 <절정>의 시상을 얻은 곳이다. 강 건너 왕모산 5부 능선을 비껴서 있는 칼선대는 낙동강에서 직립으로 우뚝 솟은 벼랑이다. 이곳에 서면 "서릿발 칼날진 그 우에 서다"라는 시구의 긴장감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시인의 서정은 성장기에 얻은 정서가 바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왕모산은 고려 공민왕이 모후를 모시고 몽진(夢塵)한 곳인데, 옛 성터인 왕모산성과 성황당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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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문학관 |
민족시인 이육사를 기리기 위해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설립한 문학관으로 2004년 7월 31일 개관했다. 부지면적은 2,324평, 연건축면적은 196평이다. 주요 시설은 문학관 2층(176평), 생가모형(20평), 3개 마당(70평), 육사 동상, 시비, 잔디광장, 오솔길(산책로), 청포도밭, 청포도 샘터 등이다. 문학관 1층은 문학의 세계 코너와 독립운동사 코너로 이루어져 있다. 육사의 흉상 및 상징 조형물, 육필 원고, 안경, 베이징 감옥생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독립운동 관련 사진 등 유품과 각종 자료를 볼 수 있다. 또 헤드폰을 쓰고 버튼을 누르면 〈청포도〉, 〈광야〉등의 시를 눈과 귀로 동시에 접할 수 있는 생생한 ‘시’체험 시설도 갖추어져있다. 2층에는 영상실 겸 세미나실, 육사의 시를 직접 등사기로 인쇄해 가져갈 수 있는 판본체험 코너, 육사가 어린 시절 뛰놀던 들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상 전망대 등이 있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900 (054)852-7337 http://www.264.or.kr/ 개관: 09 시~18시(3월-10월), 09시~17시(11월-2월) 휴관: 월요일,설날,추석 관람료: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 무료 |
육우당 |
육사는 수필에서 집을 회상하며 "은촉대도 있고 훌륭한 현액도 있기는 하나 너무도 고가라 빈대가 많기로 유명"하다고 표현했다. 육우당은 육사 육형제가 살던 집인데, 1975년에 안동댐 수몰로 집은 이건하고 남은 터는 돋우어 놓았다. 1993년 <청포도> 시비와 육사 육형제를 기리는 <육우당유허지비>를 세워놓았다. |
이육사문학관 경내에 있다. |
청량산조망대 |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과 더불어 청량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퇴계 녀던길’이 시작된다. 목재 데크로 마련한 전망대 옆에는 시비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 퇴계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감탄했던 바로 그 풍경 앞에서 ‘녀던 길’ 시조 한 수가 절로 되뇌어진다.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 못뵈/고인을 못 봐도 녀던 길 앞에 있네/녀던 길 앞에 있거던 아니 녀고 어쩔고” |
경북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
농암종택 |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 1467~1555)의 종택이다. 이현보는 1504년(연산군 10)에 사간원정언으로 있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안동으로 유배된 인물이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원래 종택이 있던 분천마을이 수몰되었다. 안동의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이건(移建)되어 있던 종택과 사당, 긍구당(肯構堂)을 영천이씨 문중의 종손 이성원이 한곳으로 옮겨 놓았다. 2007년에 분강서원(汾江書院)이 재이건되었다. 지금은 분강촌(汾江村)이라고도 불리며,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옮겨진 곳이 원래 자리 못지않은 풍광을 자랑하고 있어 처음 찾는 이들은 당연히 진짜 농암 유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
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612 (054)843-1202 http://www.nongam.com/ 분강서원과 농암종택에서 숙박체험을 할 수 있다. 서재 작은방 3만원부터 종택 전체 69만원까지 다양하며, 7월 15일부터 8월 16일까지는 성수기 추가요금이 적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