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부터 해 질 무렵까지 하루 종일 걸었다.
하루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편한 옷차림으로 동네를 걷고 있는 나를 보고 주민으로 생각했는지 “안녕하세요!”라고 신나게 인사해주었다.
나도 환하게 웃으며 “안녕, 얘들아!”라고 인사했다.
아이들의 밝은 한마디 인사가 긴장으로 가득한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었다.
길을 걷다 박스 안에 “한라봉 팝니다. 돈은 옆 박스에 넣어주세요”라고 적힌 메모와 천 원짜리, 오천 원짜리 지폐가 몇 장이나 들어있는 상자를 발견했다.
와, 이 동네는 정말 서로 신뢰하나 봐.
신기한 마음에 주머니 속 몇 장 남아 있는 천 원짜리를 깨끗하게 펴서 한라봉 한 봉지를 샀다.
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걷는데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이렇게 작은 것으로 기뻐할 수 있는데 난 왜 그토록 슬퍼하기만 했나.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제주도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 이유 없이 매일 걷고 또 걸었다.
같은 길을 걸어서 어둑해지면 늘 같은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멍하니 밖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큰엉해안경승지를 찾았다.
오늘만큼은 절벽에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고 한없이 있다 와야지, 하면서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파란 하늘,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바다. 운동화를 벗고 돌 위에 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차고 올랐다.
몇 년 전 이곳에 왔을 때 나는 참 꿈이 많았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신나는 일들도 많았다.
그때에 비하면 내 삶은 짙은 회색과 같다고 말하던 때였다.
‘소망’이라는 단어 자체가 떠오르지 않는 무기력증에 허우적대고 있는 현재의 나와 비교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파도는 나를 향해 멈추지 않고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나에게 ‘초롱아, 숨을 쉬어봐’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그때부터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는 파도와 바람이 마치 하나님의 사랑처럼 느껴졌다.
내가 발랄하고 행복했던 때도, 무척이나 어두워 기록 하나 남길 것 없이 처참하게 지나는 시절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마치 내 사랑은 이 파도와 같아서 네 상황과 상관없이 늘 동일하게 너에게 있단다,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았다.
엉엉 울면서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하나님, 사실 저 무척 힘들어요.”
이 말 한마디를 꺼내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하나님 앞에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다.
사실은 하나님께 가장 먼저 하고 싶었는데 나는 결국 실패한 그리스도인 같아서, 하나님께서 날 버린 것 같아서 하지 못했던 그 말…
“잠시 멈춰도 돼. 숨을 쉬어도 된다. 숨을 쉬자, 숨을 쉬자,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아니야. 괜찮아.”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주었다.
어제보다 오늘 내가 덜 미워졌다.
– 잠시 멈추고 숨을 쉬어도 돼, 김초롱, 규장
첫댓글 많이 힘들었구나...
네 탓이 아니야.
큰소리로 울어도 돼...
토닥 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