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음부터가 모호한데, [초한지]와 각종 전설은 그가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또는 공신들이 토사구팽을 당하는 현실을 보고 질린 나머지 세상을 버리고 은둔했다고 한다. 적송자라는 신선을 따라 산림에 은거하다 스스로도 신선이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기]에 따르면 그는 후계자 문제를 놓고 여후에게 조언을 해 주는 등 계속 중앙 정치에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혜제가 죽고 본격적으로 여씨 천하가 될 때, 장량의 아들인 장벽강이 대신들에게 꾀를 줌으로써 한바탕 피바람을 막았다는 대목도 있다.
장량은 과연 어떻게 말년을 보낸 것일까. 아마도 공신 제후의 한 사람으로 편안히 마친 쪽이 현실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신선 같은 이미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한고조가 유력한 공신들을 다 없애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공적이 뛰어난” 장량은 무사했다는 것도 이상해 보인다. 그러므로 세상을 버리고 은둔했다는 전설이 만들어졌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대업을 이루고 나면 남양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리라”고 했던 제갈량처럼, 현실 참여와 개혁을 꿈꾸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에 초탈한 존재이고자 하는 선비의 집단적 자의식을 반영하는 모습이다.
내 뼈를 돌려다오 - 범증(范增, BC 277~204)

[초한지]에서 ‘항우 대 유방’의 구도는 한 단계 내려온 책사의 수준에서는 ‘장량 대 범증’이 된다. 그만큼 당대의 라이벌로 서로 묘수를 교환하며 불꽃을 튀겼을 것 같지만, 장량이 비교적 젊은 나이(50대 초반?)에 유방의 수하가 된 반면, 범증은 아직 항우가 항량의 부하일 때 이미 70이 되어 있었다.
[항우와 유방] 등에서는 범증을 자연에 묻혀 새와 짐승을 벗삼아 살던 은사로 묘사한다. 그러나 진나라의 폭정에 분노한 나머지 세상을 편안히 할 영웅을 찾아 힘을 보태려 했고, 그래서 항씨를 돕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이(그 자신을 위해서나, 천하를 위해서나) 소설의 구도다. 아무튼 [사기]의 범증은 항량이 항우를 데리고 거병했을 때 제 발로 찾아와 전략을 제시했다고 한다. “진승이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명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진나라의 폭정을 싫어했지만 근본도 없는 자를 왕으로 받들고 싶어하지도 않았던 것이죠. 당신은 초나라의 귀족이니, 일단 명분이 섭니다. 그러나 더 힘을 키우고, 오래 가려면 명분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멸망한 초나라 왕실의 후손인 미심을 찾아 그를 왕으로 받들고(초회왕), 나중에는 의제(義帝)로까지 높임으로써 “진나라에 멸망한 옛 6국을 복원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도록 했다. 이는 확실히 적절한 전략이었으며, 항우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사실상 천하의 주재자까지 올라간 것은 그의 독보적인 무력 외에도 범증의 전략을 잘 활용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항우의 움직임에서 전략적 탁월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천하의 영토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6국 복원의 원칙과 논공행상의 원칙을 어정쩡하게 섞어 씀으로써, 결국 양쪽 모두에게서 반발을 샀다. 그리고 “천하의 목덜미를 움켜쥔 요충지”로 평가받던 관중을 뒤로 하고 고향인 서초로 물러갔으며, 자신의 손으로 세운 의제를 살해함으로써 그의 반대 세력들에게 더할나위없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범증은 뭘 하고 있었을까? [사기]는 유방의 진면목을 꿰뚫어보고 그를 홍문에서 암살하려다 실패한 것 말고는(그는 보기 드물게 성을 내며, “더벅머리 아이놈과 일을 못 하겠구나! 우리는 모두 유방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범증이 이런 저런 결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범증이 제갈량처럼 항우의 모두 중요한 결정을 입안했다고 보는 쪽에서는 “결국 항우보다 범증이 문제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 않았을까. [초한지]에서 항우는 범증의 계책을 대부분 오만하게 무시해 버리는데, 그것은 과장이라 해도 천성적 무인인 그가 나이 많은 책사의 “귀찮은 잔소리”를 얼마나 귀담아들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자신의 군대는 범증의 조언 따위 무시해도 거의 항상 이기기 때문에, 범증을 “아부”라고 존중하는 척 해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실제로 중시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더구나 그는 누구보다 자기 피붙이를 믿는 사람이었다. 항우의 또 다른 숙부인 항백도 군사의 직위에 있었고, 그는 홍문에서 범증에 반대해 유방을 구원한 것을 비롯해서 범증의 주장에 대립 의견을 세우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항우는 점점 더 항백의 말만 들었다!
이렇게 보면 항우가 진평의 계책에 걸려 범증이 모반했다고 의심, 그를 저버렸다는 이야기도 그 맥락이 더 쉽게 이해된다. 사실 그때까지 항우가 범증을 유비가 제갈량 믿듯 신뢰하고 중시했다고 여긴다면, 한 차례 이간질로 그렇게 “뼈아픈 실책”을 저지르는 항우야말로 정말 철없는 인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이 이미 한참 동안 범증을 뒷방 늙은이 대접을 하던 끝의 일이라면? 항우로서는 범증이 평소에 불만이 많았을 거라고, 모반을 꾸밀 만도 하다고 여길 만 했고, 이간질을 완전히 믿지는 않아도 범증에게 더욱 더 차갑게 대했을 것이다. 어차피 별로 아까운 인재도 아니니 말이다!
앞뒤 관계가 어찌 되었든, 그런 대접을 받게 된 범증으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뿐이었다.
“천하의 일은 이제 정해졌습니다. 뒷일은 대왕께서 알아서 하십시오. 바라건대, 이 늙은이의 뼈를 돌려주셔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자신의 몸과 마음은 이미 주군에게 바쳤으니, 영원히 주군의 것이다. 그러나 뼈만은 돌려주기를, 그래서 몸과 마음은 두고 갈지언정 뼈만 고향으로 돌아가게 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이었다. 자신은 결코 배반자가 아니라는 항변인 동시에, 믿었던 사람에게 철저히 버림받은 사람의 슬픔, 남의 승부에 의탁했던 평생의 꿈이 깨져 버린 장기말의 분노가 절절이 배어든 말이었다.
그리하여 항우의 진영을 나선 범증은 고향으로 가는 길에 올랐으나, 도착하기 전에 울화가 솟구치고 등창이 나서 객사했다고 한다. 그 뒤에 항우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초한지]에서 묘사된 것보다 실제로는 범증을 잃은 것이 항우에게 큰 손실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이로써 자신이 선비를 중시하지 않는다, 인재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표시를 만천하에 드러내었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그리고 역사 속에서 그가 계속해서 유방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근거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