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의 의식주(주)
의식주에서 세 번째 단어인 ‘주’는 살아가는 곳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는 생존이라는 문제로 보면 의, 식보다 후순위로 보이지만,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주거 형태에 따라 문화의 방향이 달라지고, 의,식까지 지배하게 된다.
1. 건축 재료
고온건조한 기후인 이스라엘은 건축에 주로 돌을 사용했다. 애굽, 바벨론, 이스라엘의 일부 해안 지역은 진흙이 풍부해 볏짚과 진흙을 혼합해서 만든 벽돌로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이스라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석회암으로 건물을 세웠다.
나무는 문이나 서까래 등 아주 적은 부분에만 사용되었다. 석회암은 물에 녹는 성질이 있어서 채석과 가공이 쉽다.
초기 이스라엘 건축물들은 채석한 석회암을 단순히 쌓기만 했지만, 왕국시대에 들어가면서는 일정한 모양으로 다듬은 돌을 사용했다(암 5:11).
건물을 완성한 뒤 물과 모래, 석회석을 섞어서 만든 회반죽을 벽이나 지붕에 바르면 방수의 효과를 냈다(신 27:2, 겔 13:10-15, 마 23:27, 행 23:3).
신약 시대에는 석회석 사이에 회반죽을 섞어 더 견고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었다.
갈릴리에는 검은색 현무암이 많아 검은색 건축물이 많지만, 예루살렘 인근의 돌은 대부분 옅은 베이지색 석회암이었다.
때문에 석회암으로 건축되고 회반죽을 바른 예루살렘 성은 강렬한 태양을 받으면 온통 금빛처럼 빛났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서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멸망한다고 말씀하셨는데(마 24:2, 막 13:2, 눅 19:44, 21:6), 훗날 로마군은 멀리서 금빛으로 번쩍이는 예루살렘을 보고 돌 사이에 숨긴 황금을 찾겠다며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예루살렘을 허물고 약탈했다.
2. 건축의 시작
이스라엘은 평소 거의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 많지만, 우기가 되면 강한 호우가 몇 차례 내려 모래들을 씻어 내린다.
또 팔레스타인 전역은 지진 발생 지역으로, 성경에도 지진이 발생한 사실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암 1:1, 슥 14:5).
따라서 튼튼한 바위 위에 건축을 시작해야 집이 무너지지 않는다(마 7:24-27).
부지를 잡은 다음에는 땅을 파고 회반죽으로 평평하게 한 뒤, 그 위에 큰 사각형의 기초돌을 놓는다.
이 돌을 기준으로 갈대로 길이를 잰 후(계 11:1, 21:15-16), 다음 기초돌까지 측량줄을 대고 반듯하게 벽을 세운다(사 28:17, 렘 31:39, 겔 40:3, 47:3, 슥 2:1).
그리고 벽과 벽을 연결할 때 두 벽을 견고하게 잡아주기 위해 ㄱ자 모양의 모퉁이 돌을 사이에 올린다. 모퉁이 돌은 양쪽 벽의 하중을 견디며 전체 집을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성경은 메시아에 대한 표현으로 ‘기초돌’(사 28:16), ‘모퉁이 돌’(엡 2:20, 벧전 2:6)로 표현했다. 이것은 집을 건축하는 기준이 되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성도들이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나로 붙잡고 계신 분도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3. 구조
고대 이스라엘의 가장 전형적인 주거 형태는 ‘4방구조’이다.
4방구조란 집 안에 기둥을 세우고 직사각형의 안뜰을 둔 뒤, 좌우 공간과 기둥 뒤편의 공간까지 총 4개의 구역으로 나누는 형태를 가리킨다.
기둥으로 구분된 좌우편은 가축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뒷편 넓은 방은 창고로 사용되었다.
기둥 사이의 안뜰은 불을 피우는 공간으로 지붕까지 고가 높아 창으로 연기를 배출하기 용이했다.
사다리나 계단이 설치된 2층은 식사나 잠자리, 손님을 모시는 공간으로써 사람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었다.
발굴되는 식기구들의 양을 볼 때, 성경 고고학자들은 한 집에 5-7명 정도가 살았던 것으로 추측한다.
‘4방구조’ 건축은 남 유다의 멸망까지 가장 폭넓게 사용되었으며, 개인의 집뿐 아니라 대형 건축물을 만들 때에도 사용되었다. 군사적 요지인 므깃도나 라기스에서는 6방성문이 발견되는데, 이 6방성문도 기본적으로 4방구조의 형식을 따른다.
가운데의 문 안통이 문을 가로지르는 통로, 양 옆에 설치된 3쌍의 문지기 방, 그리고 문 안통과 안쪽 성문 사이 넓은 현관의 4개 구역으로 나뉜다. 이러한 구조는 후에 에스겔의 성전 환상을 이해하는 중요한 역사문화적인 배경이 된다.
4. 지붕
이스라엘은 목재가 귀하고 석회암이 흔하다. 그래서 건축할 때에는 우선 돌로 사면의 벽을 먼저 완성한 뒤에, 진흙으로 지붕을 덮는 방식을 사용했다.
사면의 벽이 완성되면 먼저 수평으로 돌무화과나무(뽕나무)를 잘라 대들보를 올리고, 수직으로 종려나무 잎을 엮었다.
여기 예수님께서는 ‘대들보’와 ‘종려나무 잎’을 통해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종려나무 잎)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대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물으셨다. 그리고 그 위에 자갈과 진흙을 발라 무거운 굴림돌을 굴려 굳힌 후, 몇 차례 종려나무 잎과 진흙 바르기, 굴림돌로 누르기를 반복하면 튼튼하고 물이 새지 않는 지붕이 완성된다.
우기가 되어 많은 비가 오면 진흙이 씻겨나가 지붕이 무너질 수 있었다. 그래서 반드시 1년에 몇 차례 지붕에 올라가 굴림돌을 굴려 진흙을 다져주어야 했다.
이 진흙 사이에는 바람에 실려온 씨앗들이 날아와 들풀이 자라기도 하는데, 이러한 풀들은 건기 때 타버리거나 굴림돌에 밀려 뭉개졌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지붕의 풀’이라는 표현은 곧 사라지게 될 허망한 것을 나타낸다(왕하 19:26, 시 129:6, 사 37:27). 부자들은 1년에 한 번씩 굴림돌로 밀어야 하는 수고 대신, 기와로 지붕을 꾸몄다.
성경의 지붕은 거주 공간의 연장이었다. 당시 이스라엘 2층 가옥의 1층은 가축들의 차지였다.
1층 가옥은 집 한켠에 벽으로 가로막고 가축들을 키웠다.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가축냄새나 소음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비가 오지 않는 건기가 되면 지붕에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생활하고(삼상 9:25-27), 지붕과 지붕 사이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마 10:27).
또한 지붕에 작은 방을 만들어 기도실로 사용하거나(행 10:9), 귀빈을 모시기도 했다(왕상 17:19, 왕하 4:10). 사도 바울은 이 다락방에서 말씀을 증거했다(행 20:8-9).
빨래나 식품을 건조하는 공간으로 쓰는 것은 당연하다(수 2:6). 심지어 지붕과 지붕 사이가 가까워서 유사시에는 지붕을 넘어 다니며 길로 사용하기도 했다(마 24:17, 막 13:15, 눅 17:31).
이때 만약 누군가가 어떤 집 지붕에서 추락해서 다치게 되면 그것은 집주인의 죄로 여겨졌다.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야만 했다(신 22:8).
5. 창문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이스라엘에는 유리가 없었다. 따라서 실내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오늘날의 창문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대개 1층에는 창문이 없었고, 2층 높은 곳에 창문을 설치해서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게 했다.
창문의 크기는 한 사람이 몸을 비집고 들어갈 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이는 실내가 여름에 심하게 더워지거나 겨울에 한기가 심하게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호세아 13:3에서는 악인의 멸망을 가리켜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에 비유했다. 그러나 여기 ‘굴뚝’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루바’는 ‘창문’이라는 뜻이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굴뚝의 흔적도 발견된 적이 없다. 별도의 굴뚝을 두지 않고 건물 상층부에 위치한 창문을 통해서 연기를 배출했던 것이다.
창문에는 격자무늬의 나무를 덧대서 외부의 침입을 막았다. 이러한 형태의 창을 에스겔 40:16, 41:16, 26에서는 ‘닫힌 창’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닫힌 창은 실내에 있는 사람은 격자무늬 사이로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지만(삿 5:28, 잠 7:6, 아 2:9), 외부에서는 실내를 볼 수 없다.
반면 다니엘 6:10에서는 ‘열린 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왕궁이나 상류층의 집에 설치된 잘 장식된 창문을 가리키는 표현이다(참고-왕하 9:30).
닫힌 창은 더 이상 외부와 소통이 없는 구별의 의미를 가지는 반면, 열린 창은 외부와 이어지는 소통의 의미를 가진다.
계시의 점진이 강하게 나타나는 다니엘서에서는 ‘열린 창’이, 종말적인 에스겔 성전의 계시에서는 ‘닫힌 창’이 나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성경에서 주거 문화와 관련된 표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표현이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망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세계를 인간의 실생활에 나타나는 요소들을 빗대어 세밀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또한 실제 역사 현장에서 생활 가운데 벌어졌던 사건들을 보다 생생하게 이해하고 확신을 갖게 한다.
단순히 머리로만 성경이 기록된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생활의 세밀한 영역까지 우리를 관찰하시고 섭리해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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