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58 개띠!우리 사회의 개띠 중에는 "58년 개띠"라는 독특한 계층이 있다. 46년 개띠나 70년 개띠도 있는데 유독 "58년 개띠"라는 말만 회자되는 것일까?거기에는 1958년생을 둘러싼 특이한 시대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59년에 태어났지만 생일이 빨라 58년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 사람들 포함)
오늘날 사회의 중심축으로 성장한 1958년생은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의 이른바 '베이비붐'의 절정기 세대로 성장기부터 치열한 생존경쟁을 겪으며 높은 질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전 세대에 대해서 일종의 우월감을 지니고 있고, 이 후의 다소 감상적인 386세대와는 달리 현실적이다.
우리나라 인구센서스에서 출생아 수가 조사된 것은 70년생 이후부터이다. 할 수 없이 1925년부터 대략 5년 단위로 실시해 온 인구센서스 자료에서 58년생에 해당하는 인구를 추적해 봤다. 60년 인구센서스에서는 55∼57년생이 70만 명대, 59∼60년생이 80만 명대인 데 비해 58년생은 100만 명을 넘어서 그 숫자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통설이 확인되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같은 개띠해인 70년 인구센서스를 찾아보니 58년생이 87만여 명으로 줄어들고 60년생이 100만여 명으로 역전돼 있었다. 2000년 인구센서스를 찾아보니 58년생은 81만여 명으로 70만 명대인 55∼57년생보다 많지만 59년생과 60년생에 비해서는 적다. 이러한 경향은 1960년을 제외한 인구센서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사주학적으로 보면 무술(戊戌)생이라 큰 산속의 개처럼 야성이 강하며 현실적, 직선적, 개인적, 이성적, 효율적, 생산적, 헌신적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현대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유난스러울 정도로 큰 사건들의 직격탄을 맞으며 살아왔다.
태어난 1958년 새해 벽두에 이승만 정권의 강력한 라이벌로 부상한 조봉암을 처형하려 조작된 '진보당 사건'이 일어났다. 세상에 눈을 뜨고 말을 배우는 3살 때엔 거대한 민중봉기인 4.19가 발발한다. 민주화 태동 흐름 속에서 개띠의 천성적 기질인 직선적이고 헌신적인 기운이 상승하게 되는데, 그 기운이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5.16 군사 쿠데타가 발발하여 투견과 같은 투쟁적이며 공격적인 성향이 베어들게 된다.
또한 1958년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1965년에 베트남 참전이 이뤄지면서 야성의 기운이 증대, 힘의 논리에 입각한 전투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이 자라나게 된다. 그로 인해 군사적 문화에 대한 반감과 야릇한 동경이 혼재된 청년기를 보낸다. 그러다가 중학교, 고등학교에 입학 할 진학시기에 인생의 가장 큰 전환점이 마련된다.
1958년생이 중학교 가기 2년 전 느닷없이 중학 무시험입학제가 실시되고, 다시 중3때 고등학교도 본고사가 사라지고 연합고사제로 바뀌면서 "58년 개띠"는 이른바 '뺑뺑이 세대'로 변한다. 당시 수재들은 원하던 명문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허탈감에 빠지게 된다. 더구나 쌓아온 실력을 보상받지 못하게 된 원인이 "같은 또래의 대통령 아들을 좋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조작"이라는 항간의 소문을 접하며 제도권에 대해 배신과 불신의 벽을 쌓게 된다.
또한 운 좋게 명문고에 진학한 사람들도 사회에 나와 동문 선배들로부터 "너희는 뺑뺑이 세대"라는 식의 차별을 받았다. 선배들에게 차별받고 무시당하다 보니 스스로가 그 벽을 개척해야 했다. 그래서 58년 개띠는 평등의식이 유난히 강하고 고등학교부터 견고한 학연으로 연결된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을 품게 되면서 지금 새로이 일고 있는 특목고 등 평준화 해제 여론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1989년에 전교조가 탄생 할 때도 58년생들이 핵심인물이었다. 그래서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경쟁을 하며 여태까지 살아왔다. 재미있는 것은 58년생들이 나이를 먹으면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사항들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선 중학교 가기 2년 전에 56년생부터 중학교 뺑뺑이(시험을 보지 않고 추첨으로 학교배정)가 되었고, 또 고등학교 본고사를 막 준비하던 중3초에 고등학교도 연합고사제로 바뀌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박대통령이 자신의 아들인 '58년생 박지만을 고등학교에 넣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소문도 파다했음). 또한 당시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역대 가장 높은 경쟁률로 치르고 대학에 들어갔으며('77학번),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할 무렵에는 신혼부부들의 주거지를 위해 분당, 일산 신도시가 세워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 변화를 겪으면서 58 개띠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된다.
첫째, 평등의식이 유난히 강하다. 이것은 소위 일류 중`고교(당시 경기, 서울, 경복, 용산고 등)를 다니지 않은 까닭에 엘리트 의식, 나아가서 권위 의식이 약하다는 점이다. (물론 지극히 일부인 서울대 출신만 제외하면). 소위 상명하복이 가장 엄하다는 사법부 항명파동의 소장파 주동세력이 이들이다.
둘째, 상대적으로 많은 경쟁률을 뚫고 진학하다보니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대단하다. 그 결과 똑똑하고 의식 있던 많은 젊은이들이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에서 전사하고 남은 사람끼리 경쟁했던 윗 세대를 조금 우습게 보고 있기도 하다. 또 아래로는 '80년대 들어 대학 정원이 확장되어 대학을 그들보다 조금 쉽게(?) 들어와 다녔던 소위 졸업정원 세대보다도 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대개 77학번으로 대학에 진학한 1958년생은 역대 최고의 대입 경쟁률을 뚫어야 했고, 대부분 빈농의 자녀였으며 대학에 들어가서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부조리를 깨닫고는 괴로워했다. 그러다가 대학생 막바지에 처절한 운명적 사건을 또 만난다. 1979년 12.12사태에 이은 1980년의 광주 민주화운동이다. 그때 대학생의 신분과 갓 입대한 군인의 신분으로 서로가 적이 되어 총을 겨눴다. 드라마 '모래시계'는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적 무대에 섰던 우리들의 얘기를 다룬 것이다.
그런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58년 개띠는 개띠의 특성답게 스스로를 희생하면서 가난을 딛고 부와 성공을 이루었다. 그런 운명 속에서 동병상련을 격으며 또래에 집착해 "58년 개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58년 개띠는 위로부터 새로운 시대의 긍정적 주인공으로서 위치를 부여 받을 것이다. 이제는 50대로서 그동안 쌓아온 잡초와 같은 생명력은 바로 어렵고 힘든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수 있는 강한 추진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세대가 우리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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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팔 친구들이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개띠의 잡초 근성으로 홧팅 하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