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망입니까? 소원입니까?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우리는 지금 무엇을 좇고 있습니까? 개인의 야망입니까? 즉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며 높은 지위에 오르며 많은 부를 축적해서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만을 꿈꾸고 있습니까? 이런 것을 소위 ‘야망’(野望)이라고 하는데, 이는 다 다른 세대(Different Generation)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습니까? 세상에 대하여는 부요할지언정, 하나님께 대하여는 전혀 부요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한 어리석은 부자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 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눅12:16-21)
반면 다음세대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야망 대신에 무엇을 좇습니까? 소원(所願)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그렇다면 야망과 소원은 어떻게 다릅니까? 출처(出處)부터가 다릅니다. 즉 야망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소원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야망은 자기 생각에서 나온 것인 반면에 소원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두신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과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5:38,39)
또 어떻게 다릅니까? 그것을 이루는 주체(主體)입니다. 야망이 ‘하나님이 빠진’ 나만의 계획이라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길르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소원은 ‘하나님이 함께 이루어가는’ 공동계획입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 계획 세우고’ 하나님과 ‘함께 이루어간다’는 점에서 야망과 구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이나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4:15)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다른 세대는 세상의 야망, 곧 자기 욕망을 좇아가지만, 다음 세대는 하나님의 소원을 좇아간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고자 하는 소원(열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소원을 좇아가려다보면 이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원인지 아니면 나만의 계획인지 잘 구분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어떤 특징들로 구분해낼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3 하)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 우리에게 두신 것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는 하나님이 주신 소원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금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 자신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만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중단하고 돌아서기를 바랍니다.
둘째,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는 것이라야 것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하) 소원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 가는데, 만일 우리에게 이 같은 두려움이나 떨림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이는 더 이상 소원이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적당한 떨림이 있습니까? 우리 개인의 욕망이나 게으름, 안일함 때문에 하나님의 소원을 그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까? 적당한 떨림이나 긴장감을 즐기되, 과도한 두려움은 삼가기를 바랍니다.
원망이나 시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4)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절대로 누군가에게 원망이나 시빗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망이나 시비가 생긴다면 이는 다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소원을 잘못 이해했던지, 아니면 잘못된 방법으로 무리하게 이루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소원에는 원망이나 시비가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원망이나 시비가 없이 그 소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