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잎이 연출하는 황금벌판
가을이 되어 볏논이 황금빛으로 보이는 것은 벼알이 익어가는 것보다 먼저,
[장잎]의 단풍화(탈색화) 현상입니다.
장잎이란 벼의 맨 나중에 나오는 잎인데,
이 잎으로 받아들이는 햇볕에너지로 벼이삭을 키우고
벼꽃들이 피어나고 수정할 양분을 공급하고
또 벼알이 여물도록 하기 위해 한쪽 팔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이 잎의 끝은 매우 뾰족하여, 벼알을 훔쳐가려는 새들을 방어하는 역할도 합니다.
....선 : 이 논에다 모를 심어 장잎 나서 영화로다.(벼농사는 장잎이 날때까지 잘 키웠다는 뜻,
장잎이 나면 웬만한 태풍과 병해에도 견딜 수 있기에)
....답 : 어린 동생 곱게 키워 갓을 쒸어 영화로세.(동생도 성인이 되도록 병없이 자랐고)
....선 : 이 논에다 용신님네 천석 만석 부라주소.(벼를 천, 혹은 만섬 불려 생산하도록 기원함)
....답 : 천석 만석 제쳐놓고 억만석을 부라주소.(억만섬이면 더 좋겠죠)
....선 : 서마지기 논빼미에 반달만치 심었구나.(모심기가 반쯤 진행되어 가니 곧 참때가 되겠죠)
....답 : 제가 무슨 반달인고 초생달이 반달이지.(모심다가 최상의 행복은 참음식 먹으면서 잠시 쉬는 것...)
--- 무논에 엎드려 손으로 모를 심던 시절에는 그 힘든 노동을 [모심기노래]로 달래곤 했지요.
--- 그것이 불과 20~30년전이었는데, 지금은 거의(95%이상) 기계(이앙기)로 모를 심고,
기계(컴바인)로 수확하는 시대가 되었답니다. 수확현장에서 바로 포장된 벼는 건조기계로 옮겨지고
정미기계로 찌은 쌀을 전기밥솥에 밥을 하는... 참 좋아진 세상입니다.
볏짚 묶어내는 기계(베일러)는 따로 있어서 축산농가로 바로 보내고...
....선 : 물고는 철철 헐어 놓고 주인양반 어데갔노
....답 : 문어 존복 에위 들고 첩의 방에 놀러갔네
....선 : 무슨 첩이 대단해서 밤에가고 낮에가노
....답 : 낮으로는 놀려가고 밤으로는 자로가네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그저 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하물며 우리 같은 사람이야 어찌 그냥그냥 산다 할 수 있겠습니까?
10년, 20년 지나가는 세월이 참으로 빠른 듯도 하여이다.
모두모두 사랑하면서 살자구요.
미워하지 말고, 나만 옳다 하지도 말고...
-------[리플 일부]----------
홍성은---장잎이란 말을 처음 들어 봅니다.
그런 역할까지 한다구요. 배움은 한도 끝이 없군요.
풍성한 가을들녘 좋습니다. 2004-10-16 11:15:26
임채휴---그런 역활을 장잎이 한다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 앞에 저 벼처럼 고개가 숙여 집니다.
사진도 너무 좋고 설명 또한 훌륭하십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명강의 잘 듣고 갑니다. ^O^~ 2004-10-16 11:25:55
정완석(singrun)---홍성은 님, 임채휴 님,
농촌에 사는 사람이 농사 이야기 하는 게 제겐 자연스러운데,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분야에는 모두 신기해 보이겠죠?
손으로 모를 심는 광경을 처음 본 사람이 그 기술(?)에 감탄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바닥이 보이지 않는 흙탕물 속에 손을 넣어 벼(모) 한 포기를 심는 시간이 0.5초(1초에 2포기)...
[손이 안 보일만큼] 빠른 속도로 일정한 포기수를 골라 정확한 간격으로 심어나가는 그 기술...
많은 시간(세월)동안 연습하고 실습해 온 경력인 셈이죠... 2004-10-16 11:37:41
이용남---좋은 사진과 유익한 설명 잘 보고, 읽고 갑니다. 2004-10-16 14:14:12
손채린---저는 어린 날들을 서울에서만 줄곧 살아와서
벼구경을 못하고 살았답니다.
오늘도 많은것 배우고 익어 고개 숙인 벼들을 보고
저 또한 고개 숙이고 갑니다. 2004-10-16 15:07:50
최기옥---참 아름다워요~ ^^ 2004-10-16 20:05:55
류신우---정완석님,말도 마이소.
저는 학교다닐때까지 시골농촌에서 집농사를 거들어서 잘 압니다.
모심기,김메기,벼베기,탈곡까지 그중에서도 여름박학때 삼복더위에 겨드랑이가 피멍이 들도록
메든 일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도 한참동안 김을 메고 나면 머리가 멍해집디다.
그다음 가을에 추수해서 볏집을 논뚜렁이나 논에다 말리다 날씨가 비가 올듯하면 밤새도록 볏집을 걷어서
볏단으로 묶어서 들판에서 집으로 나도 한짐지고 소도 한짐을 지고 옮겼답니다.
그무렵 우리집에는 라디오도 없어 일기예보는 모르고 지내던 시절이 였습니다.
아침이 되면 구름은 걷히고 햇빛이 쨍하게 납니다.
그러면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벼집단을 풀어서 집근처에다가 펴서 말립니다.
그런데 요즘은 콤바인더로 바로 논에서 탈곡까지 하더군요.
직장을 다닐적에 있었던 일로써 농촌 일손 돕기로 모심기, 벼베기를 나가서 동료직원들에게
시범을 보였더니 깜짝 놀랩디다. 이만 그치겠습니다. 2004-10-16 20:45:22
임태균---풀 한 포기 그저 피는것이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 깊이 세기고 갑니다. 2004-10-17 13:25:36
정완석---이용남 님, 류신우 님, 최기옥 님, 손채린 님, 임태균 님...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분들이 많이도 오셨군요.
류신우 님의 [삼복더위에 겨드랑이에 피멍이 들도록 메던 일]은
이른 바 [세벌논메기]를 의미합니다.
모를 심어 사림[着根]을 하면 [애벌메기]와 [두벌메기]를 하는데,
이때는 기계(바퀴 둘달린 작은 배+긴 자루를 밀고 가기만 하면 되는 기계)로 일하고,
[세벌논메기]할 때는 위의 황금빛 [장잎] 한창 싱싱할 때(벼가 알베기 전)이므로
그냥 논에 들어서서 걷기도 힘들 정도로 장잎이 날이 서 있는데,
농부는 양쪽 팔목을 새-끼-줄로 얽어 매고(팔목 보호대)
보릿짚모자(얼굴의 장잎 공격을 막는 보호장구)를 쓰고 턱에 붙들어 매고
폭이 20센치 정도 되는 볏논 고랑에 무릎을 꿇어
흡사 100미터 달리기 출발자세로 무릎을 앞 뒤로 꿇어서
양 팔을 옆의 두 고랑까지 휘젖게 되면
흙탕물이 푸거름에 썩는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르고
벼멸구 등의 온갖 벌레들이 얼굴에 달라 붙지만 흙 묻은 손을 쓸 수 없고
땀에 젖은 등에 등애(똥파리) 달라붙어 따가우면 진흙덩이 한 줌 던져 주고...
다섯 이랑마다 한 사람식 논 메고 지나간 자리가 줄 그어 놓은 것 같은데,
두 시간 연속 작업 끝에 참 음식 오면
도랑이나 웅덩이에 옷 입은 채로 풍덩 빠지는 그 시원함이란...
그 [세벌논메기]를 논둑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볏논 바닥에 엎드려 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르답니다.
7월 중순부터 하순까지, 초복-중복-발복(삼복)에 남들은 해수욕도 가고
우물에 수박도 담거 먹고, 지주는 모시적삼에 부채질하지만
소작농사 짓는 농부들은 노예처럼 일해왔던
눈물겨운 시절 이야기들을 누가 얼마나 알고 있을런지...
그나마 품팔이하는 계층(일당 노동자)
머슴 사는 계층(연봉 입주계약노동자)
품앗이하는 사람들(서로 교환 노동하는 것)
소작농, 자작농, 지주, 관리(면서기), 순사...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도 나이가 들어가나 봅니다.
첫댓글 네 법사님 저도 손으로 심는 모내기 많이 했습니다. 한달에서 한달보름정도 품앗이 끝내고 나머지는 내 용돈?용으로 남의것 많이 심으로 갔습니다. 논메기는 새참만 심부름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