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한국투자신탁 홍콩사무소장으로 부임하면서 골프를 처음 배웠습니다. 각종 기관장 모임의 主 화제가 온통 골프라서 배우지 않고 배겨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훨씬 더 일찍 골프를 배울 기회는 있었습니다. 1987년 미국 유학 시절입니다. 18홀인 학교 골프코스의 이용비용이 단돈 3달러였습니다. MBA 1년 차에는 저 혼자였던 한국 학생이, 2년 차에 Accelerated Program을 거친 한국 학생 1명이 합류하면서 두 명이 되었습니다. 외국계 금융회사 퇴직 후 자비 유학을 올 정도로 경제력이 충분했던 이 학생은 이미 80대 초반 핸디캡 플레이어였습니다. 이 후배를 따라 연습장과 필드에 몇 번 따라나갔습니다. 그러나 딱히 끌리지도 않았을 뿐 더러, 주말에 골프를 즐기면서 그 많은 크고 작은 과제 Report를 소화해 낼 자신이 없어서 증도 포기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 홍콩에서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한 것입니다. 홍콩은 보통 30분 단위로 세미 프로가 집중 지도합니다. 영국 프로가 홍콩 프로보다는 강습료가 조금 더 비쌉니다.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데, 대략 30분당 3~4만원 안팎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某 증권회사의 대표이사인 low single player 후배가 제 머리를 얹어주었습니다. 순조롭게 100타를 깬 후, 누구나 찾아온다는 극심한 난조현상이 엄습했습니다. 다시 찾은 연습장에서 세미 프로는 어떻게 이렇게 폼이 엉망이 되어서 왔느냐고 마구 신경질을 냈습니다. 가뜩이나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던 저에게 그 프로는 찬물을 확 끼얹었습니다. ^^
獨先生을 영국 프로로 바꿨습니다. 몇 번 쳐보라고 하더니 왼발을 반걸음만 앞으로 내보라고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공이 제대로 날아갔습니다. 소위 맞춤형 지도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가장 큰 문제점은 템포입니다. 멀쩡하던 스윙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면, 그 다음의 결과는 보나 마나 입니다.
언젠가 저희 회사의 대표께서 의아해 하시며 코멘트를 하셨습니다. “이감사는 평소에는 차분한 사람이 스윙은 왜 그리 급한가?” 저의 원래 성격입니다. ^^;; 홍콩근무 후 귀국 직후 첫 골프 초대를 받았습니다. 실력자들인 동반자들에게 “百돌이”임을 밝히고 사전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냥 살살 맞추기만 한다는 마음이었는데, 전반 9홀에 42타를 쳤습니다. 사기 골프라는 지탄이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공이 조금 맞는 기미를 보이자 영락없이 힘이 들어가고 스윙이 빨라지면서 후반에 핸디가 고스란히 다 나왔습니다.
Life best가 88타에 지나지 않고, 정확하게 카운트한다면 아직도 확실하게 百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이지만, 골프 매너만큼은 single이라고 자부합니다. ^^ 초보시절부터 워낙 골프 매너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았던 데다가, 골프경력이 40년이 넘는 저희 회사 대표이사의 노련한 조언으로 더욱 다듬어졌습니다.
실력이 시원치 않은 플레이어인 제가 필드에서는 환영 받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유쾌한 라운딩 진행을 부탁하며 캐디에게 Costco에서 미리 사둔 스위스 허브 캔디인 Ricola를 선물하면 초반부터 분위기가 환해집니다. 제가 회원인 골프장에서 저는 “캔디 회원”으로 통합니다. 잘못 친 공을 찾느라고 비탈에 힘들게 내려가는 캐디를 말리면 나중에 캐디는 더 많은 공을 찾아서 보답합니다. 그린에서 깃대를 잡아 주면 행동반경이 넓어진 캐디가 다른 동반자들에게 신경을 더 쓸 수 있습니다, 클럽을 바꿀 때에도 마중 나가 듯 Cart에 가까이 가서 받으면 캐디의 수고가 덜어지는 것은 물론 경기 진행도 원활해 집니다. 동반자들이 공을 잘 칠 때마다 굿 샷을 크게 외치면 라운딩 분위기가 살아납니다. 설사 미스 샷이 나와도 격려를 아끼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제가 좌장인 경우가 꽤 많은데, 버디를 기록한 동반자가 받은 버디 값 중 만원씩 기부 받아 추가 캐디 팁으로 주게 합니다. 버디한 사람도, 추가 팁을 받은 캐디도 모두 즐겁습니다. 버디가 나오지 않으면 책임을 통감하고 좌장인 제가 추가 팁을 내놓습니다. 미스 샷이 나오면 캐디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캐디의 조언을 따르면 거짓말같이 굿 샷이 나옵니다. 캐디가 저보다 더 좋아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캐디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대표이사와 동반 라운딩 자리에서 대표이사께서 한 말씀 하셨습니다. “이감사가 캐디 마스터보다 나을 것 같아.”
스코어로는 영원한 “百돌이”이지만 라운딩이 끝나면 일행 모두가 다음 일정을 잡기를 재촉합니다. 즐겁게 라운딩했다는 징표입니다.
그렇다고 골프 실력 향상에 뒷짐을 지고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매일 새벽 헬스장 부속 연습장에서 50여 개씩 연습공을 칩니다. 실제 라운딩에서도 이처럼 맞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