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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70만 년경 |
구석기시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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뗀석기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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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8천 년경 |
신석기시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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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석기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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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민무늬토기, 덧무늬 토기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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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토기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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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무늬 토기, 번개무늬 토기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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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공동체의 사회] 5대 중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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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 |
주요 사건 |
선정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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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신석기 혁명 |
신석기 혁명은 농경 생활과 목축 생활로 시작 되었다. 농경의 시작으로 생산 활동의 변화가 있었고 그로 인해 정착생활을 하게 되었다. 또 인구도 증가하고 사유재산이 형성되었다. 농경의 시작으로 구석기와 생활면에서 많은 다른 점을 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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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불의 사용 |
구석기의 유적지에서 숯이나 재의 흔적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불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불의 사용으로 음식을 익혀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불을 피움으로써 사나운 동물들에게 자신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불을 통하여 금속을 가공하는 기술이 발전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불의 발견과 사용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른 발전된 특성을 가지며 점차 진화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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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빗살무늬토기(토기의 사용 ) |
토기의 발명으로 인간은 음식을 물과 함께 끓여 먹을 수도 있게 되었고, 곡식이나 음식 재료들을 보관하고 저장 또한 용이해졌다.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의 표면에는 기하학적 무늬를 새겼는데 그 이유는 토기를 불에 구울 때 도중에 갈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빗금이 있는 토기는 점차 예술적으로 표현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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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신앙의 등장 |
인간의 역사와 종교(신앙)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러한 종교(신앙)는 신석기시대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신석기 혁명으로 농경 생활이 이루어지게 되고 농경 생활은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자연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이 등장하였으며 샤먼이라는 주술사를 통해 신의 세계와 연락할 수 있다고 믿는 종교인 샤머니즘이 성행했다. 샤머니즘은 오늘날 무속신앙이라 볼 수 있다. 토테미즘은 식물과 동물을 숭배하는 종교이다. 숭배를 받는 동물과 식물은 자기 부족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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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씨족사회 |
혈연관계로 이루어진 여러 가족이 한 촌락을 이루며 살았던 것을 말한다. 이 사회는 자연물을 믿는 토테미즘을 가지고 있는 토템 씨족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씨족사회에는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 씨족 회의가 있었고 이것은 후에 신라의 화백이 영향을 받았다. | |
발표 주제: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변화는?
발표자 윤연승
주제 소개: 신석기 혁명 이전과 이후의 사회 변화를 비교하고 어떻게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변화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구조를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이다.
1. 구석기시대 삶의 모습
한반도의 구석기시대는 기원전 70만 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구석기인들은 돌을 깨서 만든 뗀석기(타제석기)와 뼈 도구를 사용하였다. 그들은 용도에 맞추어 다양한 뗀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은 사냥도구로 사용되었으며 긁개, 밀개는 요리도구로 사용되었다. 또한, 공구로는 새기개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러한 석기를 이용하여 사냥과 채집을 하여 생활했는데 사냥을 위해서는 집단적인 협동이 필요했기 때문에 구석기인들은 무리 지어서 이동하는 공동체적 평등사회를 형성하였다. 그들은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는데 동굴로는 상원의 검은 모루 동굴과 청원의 두루봉동굴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동굴에는 동물 벽화가 남아있는데 이는 성공적인 사냥을 기원하는 구석기인들의 주술적인 소망이 담겨있다. 막집의 흔적으로는 석장리의 집터가 있다. 석장리의 집터에 남아있는 화덕자리를 통해 구석기시대에 불을 사용하여 요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2. 신석기시대 삶의 모습
신석기 시대는 기원적 8천 년경부터 시작되었다. 구석기인들과 구별되는 눈에 띄는 변화는 간석기(마제 석기)의 사용이다. 단순히 돌을 깨는 것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 갈아서 석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돌괭이 돌보습 등을 만들었고 이는 농사의 시작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신석기 혁명이다. 이를 통하여 단순한 채집 경제에서 생산경제로 생산체제가 바뀌며 경제·생활면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다. 농사가 시작되면서 토기가 발전하기 시작한다. 토기를 이용하여 곡물을 쪄 먹거나 식량을 저장하였다. 신석기시대 전기에는 원시 민무늬토기, 덧무늬 토기를 사용하였으며 중기에는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잘 알려진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마지막으로 후기에는 물결무늬 토기, 번개무늬 토기 등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자연을 숭배하는 애니미즘이 발달하고, 동식물을 숭배하는 토테미즘과 무속신앙 샤머니즘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생활방식이 변화하며 거주지의 모습 역시 변화하였다. 신석기인들은 땅을 파고 비바람을 막기 위한 이엉을 덮어 움집을 만들어 생활하였다. 처음에는 움 한가운데에 화덕이 있는 형태였으나 점차 생활이 다양화되면서 화덕자리가 한쪽으로 치우친 형태로 변화하였다. 이는 움집이 단순한 주거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한 작업 장소로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혈연관계를 중심으로 한 촌락을 이루어 살았는데 이를 씨족사회라고 한다. 또한 뼈바늘, 가락 바퀴 등의 유물을 통해 신석기인들이 의복을 지어 입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3.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사회구조의 변화
채집과 수렵을 하며 이동생활이 이루어졌을 때는 특별한 혼인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 이끌리는 대로 성관계를 가지거나 남성이 여성을 겁탈하는 식으로 난혼(亂婚)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를 아는 것이 어려웠으며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이를 낳은 어머니의 존재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착생활 이전에는 모계 중심의 사회구조가 형성되었다. 신석기 혁명을 통해 정착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는 큰 변화를 가져온다. 정착생활을 통해 사유재산의 개념이 등장하고, 농사일에 노동의 힘이 필요하게 되면서 자식이 노동력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내 자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하여 부권은 강화되게 되고 여성의 정조는 강조된다. 또한 정복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전쟁을 담당하는 남성들의 지위는 더욱 향상되었다. 이를 통해 모계 중심 사회에서 부계 중심 사회로 사회구조가 변화하게 된다.
4. 공동 삶의 원리
과거에는 남성은 사냥, 전쟁 등의 바깥일을, 여성은 출산, 육아 등의 집안일을 담당하는 것으로 남녀의 성역할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그 틀이 무너지고 있다. 남성 주부가 생기거나 여성들의 사회생활이 점차 증가하면서 과거와 달리 남성만의 역할이 축소되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석기 혁명을 통해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사회구조가 변화되었듯이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무너지면서 사회구조가 새롭게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첫댓글 * 윤연승 : 발표 내용은 바탕화면에도 게시하기 바랍니다.
수정했습니다.^ ^
* 윤연승 : 발표 자료의 내용을 다시 읽고 띄어쓰기 등 우리글 맞춤법에 맞는지 다시 확인하세요.
수정했습니다.^^
* 윤연승 : 1) 사회구조가 다시 끔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
수정했습니다.^^
재수정했습니다.^^
연승학우 발표 기대됩니다.^^ 항상 웃는 모습으로 발표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원시공동체 사회는 우리들의 삶의 원형이자 본질입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듯이 우리 역사에도 시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시작에 해당되는 원시공동체 사회는 그다지 아름답지 못 했습니다. 풍족하지 못했고, 사나운 짐승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무리 지어 생활했으며, 배우자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난교가 성행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부정적인 이런 모습들에 의해서 인류는 다시 한번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늘 풍족하지 못한 탓에 수렵이나 채집이 아닌 다른 생존 수단, 곧 농경을 시작하게 되고 사나운 짐승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무리 지어 다니던 관습은 그 무리가 정착을 하여 같이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게 되었습니다. 노동력이 중시되자 난교보다는 ‘나 자신’의 것이라는 관념이 싹트며 배우자와 자식을 소중히 여기게 됩니다. 저는 이런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공동 삶의 원리를 파악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부정적으로 여겨지던 것이 언젠가는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는 매우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 처음 발표라 떨렸을 연승 학우에게도 이번 발표가 언젠가는 크게 발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ㅅ.ㅅ
일단 윤연승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첫 발표인데, 떨지 않고 잘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에 대해 배웠습니다. 구석기에서 신석기로 넘어가는 사건을 신석기 혁명이라 합니다. 신석기 혁명을 통해 인류의 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모계 사회에서 부계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윤연승 학우가 준비한 발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변화된 계기가 참 신기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삶은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삶입니다. 공동체 생활과 정착 생활 그리고 불과 도구의 사용까지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삶을 신석기 시대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 김시목 : 1)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삶이 신석기 시대 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 전혀 성의가 느껴지지 않는 댓글입니다. 교재를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기 바랍니다.
그런면에서 신석기 시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수정하였습니다.
신석기 혁명 즉, 농사 생활의 시작이라는 삶의 한 부분의 변화로 신앙의 등장, 사유재산 개념의 출현 후 권력의 차이 발생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점을 참고하면 사회와 문화, 경제 등 많은 부분들이 상호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연승 학우가 정한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신석기 혁명이 발생하기 전과 후의 삶의 방식이나 도구의 사용 등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여러 측면에서의 변화를 언급해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조금 남았습니다.
그러나 원시공동체 시대 때의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변화를 현대사회에 적용하여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틀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과 연결시킨 것은 흥미로웠습니다. 원시시대에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의 이동의 원인이 생활방식의 발전에 있었다는 것을 빌어 현대사회의 성역할이 뒤바뀌고 있는 원인 또한 우리들과 밀접해있는 생활의 변화에 있다고 생각하며 좀 더 탐구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오늘 연승학우의 원시공동체 사회 발표를 통해 인간의 많은 긍정적인 면을 보았습니다. 첫 째로 인간 욕구의 긍정적면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살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움집을 만들어서 그들의 생존률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살고자 하는 욕구가 그들을 뭉치게 만들었고 그것이 생존률을 더욱 높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뭉쳤기에 그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지능이 발전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 인간의 성욕구의 긍정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인간의 성욕구가 많은 노동력을 요하는 원시공동체 사회
에서 노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사회원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욕구는 현대 사회에서 억제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긍정적인 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윤리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식욕에 대해 긍정적 면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먹고자하는 욕망이 그들을 농사로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더 많은 수확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더 나은 도구의 발전으로 이어지고 그들은 더욱 진화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인간의 긍정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인 면들이 모여 신석기혁명을 만들어 내지 않았
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석기혁명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죠 인간의 욕구가 점차 발전하고 시간이 지나서 그것이 신석기 혁명을 이끌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신석기 혁명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발표라고 생각이 됩니다. 좋은 발표를 해준 연승학우에게 감사합니다. 윤연승 정말 좋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서 배운 구석기, 신석기 시대이지만, 이번에 배운 원시시대는 색다르게 느껴졌다. 구석기 시대에서 보면 같은 돌이라 할지라도 찌르개, 찍개, 주먹도끼 이렇게 쓰임새에 따라 다른 모양을 만들었던 원시시대의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었다면 하나의 돌 가지고 모든 상황에 적용시키려고 낑낑댔을 것이다. 문명의 발전이 없었던 시대라도 조금의 편의를 위해서 이모저모로 바꿔보려고 했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호기심이라는 욕구를 배워야겠다. 구석기를 지나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면서 농사를 시작하게 되고 거기에 맞춰 곡식을 넣을 토기들도 다양하게 나오게 되었다.
여기서 구석기 시대와 같이 시대의 변화에 맞춰 여러 자기를 만들어 내는 조상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깜짝 놀랐던 것은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화한 것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쭉 거슬러 올라도 계속 부계사회였을 줄 알았다. 근데 결혼이라는 의미가 모호하고 사유재산의 이미도 적었던 이동시기 땐 모계사회였다는 말을 듣고 '아.. 역시 농사가 시작되면서 사유재산의 개념이 등장하고 일손이 필요하면서 가족이 형성되고 부계사회가 형성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결과가 있기까지는 항상 그에 맞는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을 또 깨닫게 되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 변화에 대해 사진까지 넣어서 한눈에 알 수 있게 해준 연승 학우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네요^^
먼저 우리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원시공동체의 사회에 대한 발표를 마친 연승 학우께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구석기부터 청동기까지의 생활을 적절한 사진자료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3번째 탐구 주제였던 신석기 혁명을 통해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변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동생활을 할 때에는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만을 알뿐, 아버지를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농경생활로 접어들고 나서는 움집을 짓고 정착해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여성은 집안일, 육아, 가축 기르기 등의 일을 했고, 남성은 농사일, 전쟁에 종사하며 철저한 남녀 분업의 형태가 나타났습니다.
농사와 전쟁으로 인해 노동력이 중요해지자 남성이 자신의 자손을 귀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신석기 혁명을 거쳐서 나타난 사회의 형태는 본질적인 점에서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원시공동체의 사회는 가장 본질적이고 단순화된 삶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시공동체의 시대를 탐구하는 것이 오늘날의 사회를 탐구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고등 학생 시절에 신석기 혁명은 시험에 자주 나오니까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전혀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이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간을 통해 신석기 혁명, 즉 농사의 시작으로 인해 사유 재산, 신앙, 권력 발생 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모두 험난한 환경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노력점들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사람에게 있어서 생이라는 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윤리적 관점에서 봤을 때 자살, 살인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서될 수 없다는 점을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첫 수업발표에도 떨지 않고 잘 발표해 주신 윤연승 학우님께 큰 박수를 쳐드리고 싶습니다.♥
* 이혜원 : 혜원이는 자신이 쓴 글을 퇴고하는 습관을 가지기 바랍니다. 댓글을 전체적으로 다듬으세요. 비문이 많고 띄어쓰기와 우리글 맞춤법에 어긋난 부분이 많이 눈에 띕니다.
* 이혜원 : 1) 중고등 학생 시절에선 신석기 혁명은 시험에 자주나오니까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전혀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없이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간을 통해 신석기혁명 즉 농사의 시작으로 인해 사유재산, 신앙, 권력 발생 등 우리 삶 전반에 걸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모두 험난한 환경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노력한 결실들이라는 점을 생각했을때 사람에게 있어서 생이라는 것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이세상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 * 보완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이혜원 : 댓글이 중간에 끊기지 않도록 윗글에 이어달도록 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농경 생활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전체적인 변화가 혁명의 시작이 아닌 작은 부분의 변화도 혁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연승 학우의 발표에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이동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난혼이라는 것이 모계사회를 만들었고 노동력이 중요했던 신석기시대에는 부계사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끝으로 고정관념을 깨면 사회구조도 변화할 수 있다는 공동 삶의 원리처럼 지금 현대에도 틀에 박힌 사고 대신 창의적으로 본다면 긍정적으로 사회구조가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선정 : 1) 모든 부분에서의 큰 변화가 혁명의 시작이 아닌 작은 부분의 변화가 혁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 * 비문입니다. 2) 그리고 저도 연승 학우 발표에서의 공동 삶의 원리처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고정관념을 깨면 우리 사회가 변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 * 문맥이 닿도록 문장을 보완하세요.
수정하였습니다.
인간 사회는 혁명의 시기에 급격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채집, 수렵을 하던 원시공동체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생활을 했지만 신석기 혁명을 통해 도구를 사용하게 되고 농경 생활이 시작되면서 한 곳에 정착하여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한반도에 정착하여 생활하여 고대국가를 이루는 뿌리가 되었고 우리 삶의 원형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연승 학우는 이런 신석기 시대의 중요성을 부각하여 우리의 뿌리를 잘 설명했다고 생각합니다. 발표 수고하셨습니다.
* 권혁솔 : 신석기 혁명을 다른 주제와 관련하여 혁솔이가 생각하는 삶의 원리를 제시하도록 하세요.
원시 공동체사회는 우리들의 근본이 되는 사회입니다 또한, 원시 공동체 사회에는 신석기 혁명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뿌리와 깨달음입니다. 이 원시 공동체 사회속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을 삶의 원리에 접목하여 생각해보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뿌리가 있습니다. 그 뿌리를 깊게 내려 태풍이 와도 버틸 수 있도록 하라는 메세지이고, 생각을 조금만 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메세지도 있습니다. 돌을 바로 주워서 쓰다가 갈아서 쓴다는 미묘한 생각이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듯이 지금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색다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깨닮음을 얻으라는 메세지도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 윤연승 : 1) [발표자료]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변화는? ->> [발표자료]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변화는? <제1장 원시공동체의 사회 >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