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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항 가두리에서 훈련 중인 제돌이, 삼팔이, 춘삼이. 이들은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야생 환경에 적응했다. (사진 제공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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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제주 앞바다가 집이었던 수컷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불법 포획 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갔다. 친구 춘삼이, 삼팔이(D-38)와 함께였다. 야생 적응 훈련을 위해 성산항 해상 가두리에 있던 제돌이와 친구들은 6월 27일 원래 서식지였던 김녕리 가두리로 옮겨졌고, 7월 중순경 자연 방류될 예정이다. 이 중 삼팔이는 22일 성산항 가두리를 홀로 탈출했고 무사히 야생 무리와 만나 적응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최초 남방큰돌고래 방류의 상징 제돌이가 살던 바다로 돌아가기까지의 사연은 파란만장했다. 국내에 11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 돌고래인 제돌이는 2009년 불법 포획돼 1500만 원에 제주 퍼시픽랜드에 팔려갔다. 그러나 제돌이는 몇 개월 후 다시 바다사자와 맞교환돼 서울대공원으로 가게 됐다.
돌고래 불법 포획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주해양경찰청이 퍼시픽랜드 대표를 기소, 2012년 4월 5마리의 돌고래를 몰수하라는 판결이 났다. 애초 퍼시픽랜드에는 불법 포획된 남방큰돌고래 12마리와 이후 태어난 새끼 1마리가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 중 1년여 재판 과정에서 7마리가 폐사했고, 1마리는 공소시효가 만료돼, 불법 포획된 나머지 5마리만이 몰수 대상이 됐다. 복순, 춘삼, 태산, 삼팔, 그리고 서울대공원 제돌이 등 다섯 마리 가운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복순이와 태산이를 제외한 세 마리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돌고래쇼를 보지 마세요” 좁은 수조에 갇혀 쇼에 동원되는 돌고래들의 삶
남방큰돌고래 방류 결정에 큰 역할을 한 이가 있다. 쇼돌고래 해방운동과 함께 모든 고래류 포획 · 전시 · 공연 금지 법안 통과를 위한 캠페인을 벌여온 단체 ‘핫핑크돌핀스’의 활동가 황현진 씨다.
“삼팔이가 가두리를 빠져나갔잖아요. 대부분 걱정하시지만 저는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갔으니까요. 사실 그들은 이미 모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 직전 삼팔이의 탈출 소식을 들은지라 괜찮은 일인지 조심스럽게 물어본 기자에게 황현진 씨는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말했다. 제돌이를 비롯한 세 마리 남방큰돌고래가 성산항 가두리에 올 때, 서울대공원에서 제돌이를 담당했던 조련사의 눈물이 슬퍼 보였다고 하자, 이번에는 심기 불편한 얼굴로 답했다.
“물론 인간적으로 정도 들었을 것이고 가족같이 여기는 그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돌고래 입장에서는 자신을 납치하고 힘든 쇼를 시켰던 인간들을 벗어나 진짜 가족을 만나는 거잖아요. 사회성이 강한 돌고래로서는 그 무리와 헤어진 것이 진짜 생이별이었죠. 돌고래가 떠난다고 슬퍼한다는 건 여전히 돌고래를 생각하지 않은 인간의 입장이고, 마지막까지 인간을 위한 쇼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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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핑크돌핀스 활동가 황현진 씨. 그는 “돌고래들이 집에 돌아가는 것을 함께 기뻐해 달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 핫핑크돌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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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곳에서 살던 대로. 삶에서 내몰린 이들의 공통된 외침이다. 이것은 비단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돈벌이를 위해서 삶터와 가족을 빼앗긴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제돌이와 삼팔이 춘삼이의 귀환은 인간에 대한 착취를 넘어, 인간의 생태계 착취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황현진 씨는 돌고래들이 이번에 집으로 돌아간 일을 통해 인간이 자연의 이치에 침범하고 있다는 것과 동물들에게 가한 정신적 · 신체적 고통에 대해 반성할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이번 방류로 우리나라의 생태적 인식이 높아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불법 포획, 멸종위기도 상관없었던 사람들 “우리 아이들이 돌고래를 좋아해요. 돌고래쇼가 왜 나빠요?”
핫핑크돌핀스 활동을 하기 전, 황현진 씨는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신참 활동가였다. 2011년 여름, 멸종위기종 돌고래들이 쇼에 이용되어왔다는 내용의 뉴스를 들은 후, 제주 퍼시픽랜드에 갔다가 목욕탕 같은 곳에 갇혀 있는 돌고래들을 발견했다.
그나마 넓은 편인 공연장의 뒤편, 좁고 열악한 곳에서 10여 마리의 돌고래가 갇혀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저들을 어떻게든 빨리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피켓을 만들어 1인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돌고래쇼를 보지 말아주세요. 이 돌고래들은 불법 포획된 멸종위기종입니다.” 100일 넘게 1인 시위를 이어갔지만, 성과는 없어보였다. 잠시 피켓 내용을 들여다보던 이들은 이내 쇼를 보러 갔다.
“공항, 시내, 공연장 앞…….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자리를 옮겨보기도 했지만, 멸종위기든, 불법 포획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많이 실망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족이 탄 승용차가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것 같더니, 다시 나와서 제 앞에 서는 거예요. 잠깐 겁이 났어요. (웃음) 그런데 차에서 어린 여학생이 나오더니 저에게 ‘언니 덕분에 저희 가족은 돌고래쇼를 보지 않기로 결정했어요’라고 말했어요. 그날 처음으로 희망을 봤어요.”
바다위원회 일을 그만두고 돌고래 방류를 위한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던 그때, 남방큰돌고래 불법 포획에 대한 수사가 시작됐고, 제주 퍼시픽랜드가 수산업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 2012년 2월이었다. 제주도에 연고가 없던 탓에 아는 분의 도움으로 가까운 강정마을에서 지내게 됐다. 그곳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시간을 빼고는 강정 지킴이 활동을 했고, 지금 함께 핫핑크돌핀스 활동가로 일하는 조약골도 만났다.
그 후 2년간 활동하면서 제돌이 방류 시민위원회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돌고래 불법 포획과 돌고래쇼의 문제를 알렸다. 그 과정에서 제돌이가 서울대공원으로 오게 됐다는 사실을 알았고, 2012년 3월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불법 포획 돌고래 방류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제돌이 방류 최종 결정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몫이었지만, 핫핑크돌핀스의 2년여 활동은 그렇게 결실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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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핑크돌핀스 활동가인 조약골(왼쪽)과 황현진 씨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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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방류, 약한 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폭력 성찰하는 계기 “타자의 고통에 보다 민감해야 합니다”
황현진 씨는 현재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돌고래들이 가두리를 떠나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다행히 3마리의 돌고래는 가족을 만나게 됐지만, 여전히 거제씨월드 같은 거대 아쿠아리움이 만들어지고, 돌고래들을 수입하고 있다. 때문에 황현진 씨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다고 말했다.
“돌고래쇼 반대 운동을 하면서 만난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우리 아이들이 돌고래를 좋아하는데, 다 돌려보내면 어디서 보여줘야 하느냐?’고 물어요. 아이들은 당연히 생소한 생물을 보면 신기해하죠. 하지만 돌고래쇼는 교육적이지도 생태적이지도 않아요. 한 유치원에서 경험했듯, 돌고래들이 왜 거기서 쇼를 하고 있는지 알려주면 아이들은 거부합니다. 미안해하면서 돌고래에게 편지를 써요. 자연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면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돌고래쇼가 아니라 그들이 어떤 존재이고 인간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 진짜 교육 아닐까요?”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원의 다른 동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황현진 씨는 “현실적으로 다른 동물들을 모두 풀어줄 수는 없다. 그러나 돌고래 포획은 엄연한 불법이고, 멸종위기종이라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동물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잡아들이지 말 것, 가능한 한 원래 살던 환경에서 지내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며 “남방큰돌고래 방류는 돌고래만의 일이 아니라, 야생의 동물을 더 이상 돈벌이에 이용하지 않고, 동물의 입장을 헤아리는 계기가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모든 과정은 총체적으로 약한 존재에 대해 폭력을 가해왔다는 우리의 성찰을 요청합니다. 또 타자의 고통에 민감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에요. 누군가는 ‘사람도 살기 어려운데 돌고래라니……’ 하고 반응하기도 해요. 하지만 인간이 잘 살아야 그들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잘 살 수 있어야 인간도 잘 살 수 있다는 가치관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인식의 전환이 이 활동의 본질이자 가장 힘든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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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핫핑크돌핀스의 호소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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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살아있는 게 아니라 숨 쉬며 버틸 뿐 이제부터 시작…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해
남방큰돌고래의 수명은 야생에서 대략 40년. 그러나 잡혀온 돌고래들은 보통 10살, 20살 미만에 폐사하는 경우가 많다. 제주 퍼시픽랜드에서 1년간 돌고래 6마리가 죽어간 것을 보면, 단순 노환만이 이유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황현진 씨는 “아쿠아리움과 같은 곳에 있는 돌고래들은 죽지 않는다고 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니다. 죽지 못해 사는 것이고, 삶이 아닌 생존, 버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돌고래는 사회성이 높은 동물이고 감정은 사람보다 풍부하다고 알려져 있다. 야생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수입과 구매 비용 절감을 위해서 번식을 시도해도 실패하게 된다. 따라서 돌고래쇼가 이어지는 한, 끊임없이 야생의 돌고래를 포획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들의 ‘관리’나 ‘조련’이 돌고래들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돌고래 조련사였던 릭 오배리. 그는 1970년 은퇴 후, 자신이 돌보던 돌고래를 찾았다. 그러나 그 돌고래는 그의 품에서 수영을 하다가 스스로 숨을 멈추고 가라앉았다. 돌고래는 호흡을 조절할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살한 것이 틀림없다고 믿은 릭 오배리는 그 후, 돌고래 포획과 쇼를 반대하는 운동가가 됐다.
황현진 씨는 영국은 1990년대 초반에 사회적 합의에 의해 30개가 넘는 돌고래 공연장을 없앴다면서 부러워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아직 그 정도로 성숙한 사회는 아니다. 여전히 몰수되지 않은 돌고래들이 있고, 거제씨월드처럼 새로운 아쿠아리움을 짓고 있다”며 “이번 방류에 대한 첫 판례가 생긴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만, 시민들이 계속 분위기를 조성하고 외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돌고래 방류도 정치권이나 법조계의 역할 이전에 시민들이 나섰기에 가능했다면서, “앞으로도 난관이 많을 것이다. 모쪼록 시민들이 이 일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지지해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황현진 씨는 인터뷰를 마친 후, 김녕 가두리로 옮기는 제돌이와 친구들을 만나러 떠났다. “태풍 전에 바다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제주 바다를 잘 알 것이니 걱정하지 않는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돌고래들을 축하해 달라”고 했다. 제돌이의 추정 나이는 12살. 사람 나이로 치면 청년이다. 이번 귀향이 제돌이의 성인식이라 믿고 싶다. 청년 제돌이의 세 번째 삶에 축복을 전한다.
(핫핑크돌핀스 활동 참여 · 후원 / 다음 카페 cafe.daum.net/hotpinkdolphins)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