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라면 선교양종 매진해야
‘증전기추야숙영대사견기’ 시문
‘금강경오가해’ 인용, 대련 처럼
순서·취지 곡해돼 아쉬움 남아
수행으로 염착하는 마음 없애야
밀양 표충사 만일루. / [현] 표충사 유물관.
月照諸品靜 心持萬緣輕
월조제품정 심지만연경
獨坐一爐香 金文誦兩行
독좌일로향 금문송량행
知機心自閑
지기심자한
(달빛 비추니 온 세상 조용하고/ 마음 굳게 지니니 모든 인연 가볍도다./ 홀로 앉아 향로에 하나의 향 사르고/ 경전 말씀 외우노라./ 세상 돌아가는 것 알기에 마음은 스스로 한가하다.)
표충사 만일루는 조선 철종 11년인 1860년 월암(月庵) 스님이 세웠다. 1926년 화재로 소실됐으나 1929년 중건됐다. 2010년 보수할 때 주련을 유물관으로 옮겼다. 그러나 주련은 게송을 온전하게 인용한 것이 아니다. 앞의 두 구절은 당나라 시인 낭사원(郞士元 727~780?)의 ‘증전기추야숙영대사견기(贈錢起秋夜宿靈臺寺見寄)’라는 칠언절구의 시문을 오언절구로 뜯어고쳤다. 내용은 가을밤 영대사(靈臺寺)에 유숙하며 전기(錢起 410?~780?)가 보낸 시에 답하는 것이다. 이어지는 두 구절은 ‘금강경오가해’의 내용을 인용하여 마치 대련처럼 된 시문에 한 구절을 더했다. 이를 바로 잡아 소개하고자 한다.
첫 구절은 월재상방제품정(月在上方諸品靜)이다. ‘달은 주지스님 계신 곳에 떠 있고 모든 만물은 고요하다’고 풀이된다. 주지스님은 호계삼소로 유명한 동진(東晉) 때 여산혜원(廬山慧遠 334~416) 스님이다. 무명을 말없이 깨트림을 달에 비유했고 제품은 만물을 뜻한다. 혜원 스님의 법풍 또한 그러하다는 표현이다.
두 번째 구절의 본문은 승지반게만연공(僧持半偈萬緣空)이다. ‘스님은 반 게송을 지니며 온갖 인연을 풀어낼 것’이라는 표현이다. 반게는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내용으로 부처님이 전세에 설산동자일 때 반 구절의 게송을 듣기 위해 굶주린 나찰에게 몸을 던져 이어지는 반 구절을 듣고 깨쳤음을 비유한다. 그러나 주련에는 승지가 아니라 심지로 돼 있다. 심지는 마음, 기분, 생각이라는 뜻으로 시문의 취지가 곡해돼 아쉽다.
세, 네 번째 두 구절은 ‘금강경오가해’에서 “이처럼 내가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실 때 큰 비구 1250인과 함께 하셨다”는 문장에 대해 야보도천(冶父道川) 스님의 견해를 인용했다. 홀로 앉는다는 것은 적정을 뜻한다. 향로(香爐)에 일(一)을 덧붙인 것은 진리의 주체가 하나임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금문은 금과 같이 귀중한 글이라는 뜻이므로 부처님의 말씀을 수록한 경전을 말한다. 금은 금강(金剛), 견고하고 변치 않는 진리를 말한다. 앞 구절은 선좌(禪坐)를 나타내고 다음 두 구절은 경좌(經坐)를 나타내어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선교양종(禪敎兩宗)에 매진해야 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수행을 일상처럼 해 온종일 걱정이 없어 염착(染着)하는 마음이 일지 않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은 중국에서 대련으로 널리 쓰이는 문구다. 분수를 지키면 욕됨이 없고 기미를 알면 몸은 저절로 한가할 것이라는 ‘수분신무욕 지기심자한(守分身無辱 知機心自閑)’의 일부다. 송나라 때 소옹(邵雍 1012~1077) ‘안분음’을 인용한 것으로 유가의 내용이다.
참고로 당나라 때 남대수안(南臺守安) 스님의 ‘정좌시(静坐詩)’에 보면 다음의 구절이 있다.
南臺靜坐一爐香 終日凝然萬慮忘
남대정좌일로향 종일응연만려망
不是息心除妄想 都緣無事可思量
불시식심제망상 도연무사가사량
“남대사(南臺寺)에서 향 피우고 고요히 앉아서/ 온종일 선정에 들어 온갖 생각일랑 사라지네./ 마음을 멈추고 망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생각하고 헤아릴 일이 없기 때문이라네.”
법상 스님 김해 정암사 주지 bbs465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