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초록색 원피스
2차 대전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였습니다.
포탄이 비 오듯이 떨어지는 최전방에서 톰은 죽음의 공포를 잊으려고,
어떤 여성이 쓴 소설을 읽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메리였습니다.
그 글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전쟁터에서, 톰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메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두 사람은 매일같이 일기를 써서 그걸 편지에 넣어 주고받았습니다.
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보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던 사진은 오지를 않고, 싸늘한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그토록 제 얼굴이 보고 싶으세요?
당신의 사랑이 제 얼굴과 무슨 관계이죠?
제 얼굴이 당신의 기대에 못 미친다면 그래도 저를 사랑할 수 있어요?
당신의 청을 정중히 거절합니다.
톰은 더 이상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톰은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가기 전에 메리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만나기로 했습니다.
런던 전철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해요. 저는 가슴에 빨간 장미꽃을 꽂고 나갈 테니, 당신은 그 책을 들고 계세요.
사랑하는 상대로 적당치 않다고 생각하시면,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가면 됩니다.
톰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 가는 전철역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얼마지 않아 금발의 미녀가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가슴에 장미꽃을 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인은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장미꽃을 단 여인이 톰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얼굴에는 붕대로 칭칭 감고, 거기에다 목발까지 집고 있었습니다.
이런 흉측한 여인이 고대하던 메리라니! 모른 척하고 지나쳐도 된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인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메리는 어떻게 받아드릴까?
그래서 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여인에게 책을 보여주었습니다.
당신! 메리 맞죠? 나는 톰입니다. 얼마 만인가요? 이렇게 만나게 되니 꿈만 갔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아니에요, 사람 잘못 봤어요!
조금 전에 어떤 분이 제 원피스에 장미꽃을 달아주면서, 이 앞으로 지나가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리고 말을 거는 분이 있으면 역 구내식당으로 오시라고 했어요!
식당에 들어서자 녹색 원피스를 입은 금발의 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영화 시사회에서
톰과 메리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습니다.
개봉을 앞두고 시사회가 열린 자리에서, 영화감독은 제작비 전액을 지원한 분을 소개했습니다.
한 할머니가 하녀의 부축을 받으며 단상으로 올라왔습니다.
할머니는 붕대로 얼굴을 반쯤 가린 체, 손님들을 향해 활짝 웃었습니다.
저는 웨일즈 백작의 하나밖에 없는 손녀입니다.
어떤 사고로 불구가 되었습니다.
죽어야겠다는 암울한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끝이 안 보이는 영지(領地)나 커다란 성, 그 많은 유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불구여성을 연인이라고 믿고, 반겨주던 청년에게서 삶의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사에게 그분을 주의 깊게 관찰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들은 톰과 메리이고, 어떤 시골에서 단란하게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옆집으로 이사했습니다.
팔지 않겠다는 주인에게 10배를 지불했습니다.
하나는 집값이고 나머지 아홉은, 행복한 이웃과 같이 살 수 있는 가치라고 설득해서, 어렵지 않게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사는 것을 보고, 대리만족을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망각하고 있었던 웃음도. 오래전에 사라진 행복도 찾았습니다.
그 후로 저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저는 두 사람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런데 질투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보니, 모두가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다음에 태어나도 같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기꺼이 불구가 되겠습니다.
할머니의 초록색 원피스 빨간 장미꽃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어느 분이 쓴 글
허주
===========================
https://youtu.be/jWHNrWx_Ny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