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현장활동 보고회를 무사히 마치고 뒷풀이에 참석했습니다.
복학생 멤버와 함께 물론 김환준 교수님도 오시고, 진영형과 상진형도 참석했습니다.
직장인이라는 신분으로 일찍 자리를 떠나야 하는 상진형이 아쉬워 버스타는 곳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고즈넉한 경북대 교정을 상진형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빈민현장활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지역(청계천 포함)을 중심으로 참가자들이 빈민(노숙인, 쪽방민, 철거민, 장애인, 노점상 등)과 함께 직접 활동을 하고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회에 참가하여 투쟁 구호를 외치며 몸싸움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주민들의 울분을 들으면서 행정폭력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투쟁이라는 것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현실에 대한 환멸과 착잡함, 자본과 권력이라는 거대 물결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서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정보원활동을 통해 세상의 긍정성을 들여다보는 눈을 배웠다면, 이번 빈민현장활동은 세상을 순진하게만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제게 가르쳤습니다.
상진형은 이런 제 경험을 잘 다독여주셨습니다.
무엇을 해야할지, 세상을 어떻게 봐야할지 혼란한 마음이 착작합 고민으로 가득 메워졌지만 형이
제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지요.
상진형을 바래다 주고 경북대 교정을 혼자 걸으면서
담배꽁초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찾는 중이었습니다.
어두워진데다가 앞이 흐릿하여 사물을 잘 분간할 수 없었는데,
마침 쓰레기통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가서 버리려던 찰나에 저는 멈칫 했습니다.
쓰레기통이 아니라 꽃화분이었습니다.
머릿 속이 환해지면서 맑은 기운이 일어났습니다.
단순 외형을 보고 쓰레기통이라고 판단했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꽃화분이라는 진실을 쓰레기통이라고 간주한 섣부른 제 판단이 참모습을 왜곡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겪은 일들이 그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판단할 때도, 판단할 나이도 아니라고.
진실이라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충분히 그것을 느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가까이 가서야 비로소 진짜 모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제게 필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을 마련하기보다는
두루 넓게 세상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며 배우고 닦아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물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데 어찌 사람과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겠습니까?
그 반성이 저를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첫댓글 그래 그래...
무릎.. 너도 무릎을 꿇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이 되었느냐... 너도 무릎을 꿇어야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데에 평생이 걸렸느냐... 차디찬 바닥에 스스로 무릎을 꿇었을 때가 일어설 때이다...
낙타도 먼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릎을 꿇고 사막을 바라본다... 낙타도 사막의 길을 가다가 밤이 깊으면 먼저 무릎을 꿇고 찬란한 별들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