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 마약 밀매, 미성년자 성착취물 게재 등 불법 행위를 방조한 혐의를 받고 있는 메신저 플랫폼 '텔레그램'의 창립자인 파벨 두로프가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서 체포된 뒤 그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은 주요 언론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는 체포된지 나흘만인 8월 28일 500만 유로의 보석금을 내고 일단 '자유의 몸'이 됐다.
파리 구치소에서 석방된 두로프가 변호사(왼쪽), 경호원과 함께 차량으로 향하는 모습(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이)/캡처
주목을 끈 것은 석방된 두로프가 내놓은 텔레그램의 일부 기능 조정이다.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두로프는 6일 자신의 텔레그램 계정을 통해 "범죄와의 전쟁을 벌인다"며 "텔레그램에서 0.1% 미만의 사용에 그치는 '주변 사람 찾기' (People Nearby)'기능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주변에 텔레그램을 쓰는 다른 이용자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이 기능을 통해 마약 판매 등 금지된 콘텐츠에 대한 접근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은 또 익명의 블로그 서비스인 '텔레그라프 (블로그 서비스)'가 익명의 소수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며 이를 비활성화하기로 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 사용자의 99.999%는 범죄와 관련이 없지만, 불법 활동에 연루된 0.001%가 플랫폼에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 거의 10억 명에 이르는 사용자의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며 "일부 기능의 조정(삭제)를 통해 (텔레그램에 대한) 비판을 칭찬으로 바꾸려 한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은 대신 '주변 기업 찾기'(Business Nearby) 기능을 출시할 예정이다. 이 기능을 이용하면 주변에서 검증된 기업을 찾아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로프는 "사용자 증가에 따라 텔레그램 악용자도 늘어났다"며 “이같은 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개인적인 목표를 세웠고, 이제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텔레그램 창업자 두로프/사진출처:텔레그램
미국 IT 전문매체 '테크크런치'(TechCrunch)와 '더 버지'(The Verge)는 텔레그램의 '자주 묻는 질문'(FAQ) 란에서 '개인 채팅의 내용은 보호되며, 이를 대상으로 한 조정 요청에는 응하지 않는다'는 대목이 삭제됐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텔레그램이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비공개 채팅(대화)의 불법 콘텐츠를 통제(삭제)하기 시작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개인 채팅에 대한 통제 정책을 변경하지 않았다"며 이를 부인했다. 텔레그램은 소셜 네트워크 엑스(X, 전 트위트)를 통해 "비공개 채팅은 여전히 비공개"이라며 이에 대한 보충 설명을 추가하기 위해 FAQ 섹션이 일시 변경됐다고 밝혔다.
◇ 텔레그램의 비공개 채팅은?
러시아의 SNS·메신저 전문 사용자 협회 블라디미르 주코프 이사는 "텔레그램이 밝힌 '비공개 채팅'은 '비밀 채팅'이 아닌, '비공개 그룹의 채팅'을 의미하는 것 같다"며 "비밀 채팅은 암호화된 상태로 텔레그램 서버가 아닌, 사용자 장치에 저장돼 텔레그램 측도 접근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정(통제)은 사용자의 불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 "텔레그라프(블로그 서비스)가 포르노 콘텐츠로부터 철저히 보호되는 것을 보면, 불법 게시물을 자동으로 검색하는 자체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인터넷 연구소의 카렌 카자리안 소장의 의견은 달랐다. 카자리안 소장은 "iMessage나 WhatsApp과 같은 메신저에는 미성년자 성 착취물 등을 탐지하는 자체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나 거기(iMessage나 WhatsApp)에는 텔레그램의 채널이나 대규모 그룹 채팅과 같은 도구가 없으므로, 텔레그램을 메신저가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SNS)와 비교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력 SNS에는 사용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불법 콘텐츠를 찾아내는 시스템이 구비돼 있는데, 텔레그램에는 그런 장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텔레그램을 더 이상 '비밀 대화'가 가능한 메신저로 볼 게 아니라, 페이스북과 같은 SNS로 보고, 자체 통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 프랑스 경찰의 체포에 대한 두로프의 반발
두로프는 5일 자신의 체포에 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그는 나흘동안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프랑스 당국이 텔레그램으로부터 (불법 컨텐츠 삭제에 관한) 답변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최고책임자(CEO)가 텔레그램의 불법 사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텔레그램 (본사)에는 유럽연합(EU)의 요청을 받고 응답하는 EU 공식 담당자가 있으며, 그의 이메일 주소도 공개돼 있다. 프랑스 당국이 나에게 연락할 수 있는 방법도 많았다. 프랑스 시민으로서 두바이 주재 프랑스 영사관을 자주 방문했으며, 얼마 전에도 프랑스의 요청을 받고, 테러 위협에 맞서기 위해 텔레그램으로 핫라인을 만드는 것을 도왔다. 그래서 프랑스 경찰의 체포와 심문, 혐의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특정 국가가 인터넷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해당 서비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스마트폰 시대 이전의 법 잣대로, 제 3자가 플랫폼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한 책임을 플랫폼 CEO에게 묻고, 기소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새로운 IT 도구의 사용자 남용에 대한 책임을 CEO 개인에게 묻는다면, 어떤 혁신가도 새로운 도구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 국가의 법 집행기관과의 대화를 결코 거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규제 당국과의 협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텔레그램은 권위주의적 국가에서 사용자를 보호하려는 취지에서 개발됐고, 그 책임에 충실하지만,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때로는 규제기관의 요구에 동의할 수 없었고, 그들과 공통 분모를 찾지 못하면, 텔레그램은 그 국가를 떠난다. 러시아와 이란에서 그런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 텔레그램은 (당국이 요구하는) 보안과 개인의 정보 보호 원칙 사이의 접점에 대해서는 어떤 국가와도 타협하지 않는다."
두로프는 "게시물 자동 통제 시스템도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매일 수백만 개의 유해한 게시물과 채널을 제거하고, 매일 투명성 보고서를 게시한다. 긴급한 조정 요청을 보다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비정부기구(NGO)와 직통 핫라인도 운영하고 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 사용자는 9억 5천만 명으로 급증해 범죄자들이 우리 플랫폼을 더 쉽게 악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를 차단하기 위한 목표를 세웠고, 하나씩 실천에 옮길 것이며 그 세부 내용을 공유하겠다."
텔레그램/사진출처:픽사베이.com
프랑스 현지 법률 전문가들은 두로프의 텔레그램 개선 의지와 일부 개선 방안에도 불구하고, 기소는 피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실질적인 텔레그램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전문가는 “프랑스 법률에 따르면 인터넷 사이트소유자(운영자)가 범죄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며 "텔레그램도 뭔가 확실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로프 체포의 막전 막후(幕前幕後)발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두로프는 파리 공항에서 경찰에 체포되자, "마크롱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왔다"며 "밖에 차가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 대통령실은 두로프의 파리 도착을 몰랐다고 이를 부인했다.
두로프는 러시아와 아랍에미리트(UAE)의 외교적 지원 제안을 거절했으나,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억만 장자 중 한 명이자 일간지 르 몽드의 공동 소유주 인 하비에르 네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엘리트층을 구성하는 은행가, 투자자 및 기업가 중에는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두로프를 체포하기 위한 프랑스의 작전도 폭로됐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프랑스의 한 요원은 가명으로 텔레그램의 성범죄 채널 운영자에게 '아동 포르노'를 보내주도록 요청하고, 심지어는 '어린 소녀를 강간했다'고 시인하도록 유도한 뒤, 텔레그램 측에 운영자의 개인 정보를 요구했다. 텔레그램은 당연히 이 요구를 거부했다. 프랑스 경찰은 두로프를 아동 성범죄와 엮는 이같은 비밀 작전을 펴, 그를 체포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작전을 눈치채지 못한 두로프는 경찰에 순순히 협조했다는 게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의 8월 31일자 보도다.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두로프가 경찰에 스마트폰을 건네고,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는 등 조사에 협조했으며, 크게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는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프랑스 내무부와 핫라인을 개설하고, 이메일을 통한 공식 소통 채널을 열었다"며 "프랑스와의 정보 교환으로 여러 건의 테러 공격을 예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 채널을 통해 테러와 관계없는 요청을 보내기 시작했고, 텔레그램은 그 요청을 무시했다고 두로프는 진술했다. 그 요청이 바로 '두로프 체포를 위한 비밀 작전용' 아동 성범죄 혐의자의 개인정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또 프랑스 내무부 요원이 두바이에서 자신을 찾아욌디고 주장했으나,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방문 목적등 구체적인 내용의 공개를 거부했다.
두로프의 체포 당시, 관심을 끈 것은 그와 동행한 묘령의 여인, 율리아 바빌로바다. 러시아 언론에서는 그의 여자친구, 혹은 개인 비서로 보고 있다. SNS를 즐겨하는 바빌로바가 6일 프랑스에서 찍은 사진들을 자신의 인스타 그램에 올렸다.
두로프와 파리 시내를 산책하는 바빌로바/텔레그램 캡처
바빌로바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에펠탑/사진출처:인스타그램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석방된 두로프와 함께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산책하는 모습이 목격된 바빌로바는 스스로 에펠탑과 노트르담 성당, 알렉산드르 3세 다리 등 파리의 주요 관광지 사진을 올렸다. 파리를 관광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녀는 "많은 거짓 정보가 퍼지고 있지만, 지금은 모든 것이 괜찮다"고 썼다. 그녀는 체포된 지 사흘만이자 두로프가 석방되기 하루 전인 8월 27일, 그의 경호원과 함께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