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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행전 3장 1절.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의 특징2-기도하는 삶
여러분들이 사복음서를 살펴보시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는 말씀은 여러 차례 발견하시겠지만 제자들이 기도했다는 말씀은 찾아보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기도하셨고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재와 가르치심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를 거부하셨고, 제자들은 어차피 예수님께서 다 해결해주실 것이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승천하여 가시고 자신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기 전부터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기도의 응답으로 그들 모두는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도 생활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대부분 기도는 마음의 절박성과 비례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부자들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왠만한 일은 돈으로 해결하고, 그가 사귀고 있는 인간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은 자기가 사귀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왠만하면 다 해결해주니까 기도를 할 필요를 못느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친구가 더 필요하고 가깝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난한 사람들이 기도를 많이 하고, 모든 부자가 다 기도를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이 마음을 인도하시게 되면 부자건 가난하건 상과없이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에 대한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루 동안에 얼마나 기도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보내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은 반드시 기도하게 된다는 사실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기도의 절대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절대적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복이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다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일꾼들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역사는 이를 증명합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3장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이 말씀을 보면 “제 구시 기도 시간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이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는 수시로 할 수도 있고, 또한 시간을 정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두 가지 기도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수시로 기도하는 것에 대하여는 에베소서 6장 18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여기서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라는 말씀은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는데 그런데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기도가 어떤 기도입니까?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입니다.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의 대부분이 성령과 상관없이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성령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시니까 영적인 흥분 상태에 들어가서 기도하라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하려면 무조건 방언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방언으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방언으로 기도한다고 해서 그 기도가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감정적인 흥분 상태에 들어가서 기도하면 그것이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령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성령이 이끄시는 진리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기도는 앞에서 가르치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은 상태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입어야 할 전신갑주가 어떤 것입니까?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으로 예비된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사람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그렇게 기도할 수 있기를 구하는 기도를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은 정한 시간에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들은 미문이라고 부르는 성전의 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미문은 성전 동쪽에 있는 문을 말합니다. 그 문으로 함께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기도를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도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기도를 혼자 수시로 할 수도 있고 시간을 정해 놓고서 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 함께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함께 하는 기도에 매우 익숙합니다. 새벽기도나, 금요철야기도 시간에 되면 기도하기 위해 모이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어떤 교회는 새벽기도만도 몇 만명이 모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 곳에 모여서 때로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기도하기도 하고, 또 각자가 소원하는 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구약 시대도 역시 그런 기도를 했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사무엘선지자를 통해 미스바로 함께 모여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 나라가 함께 모여서 기도하기를 원할 때는 함께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마음 속에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은 혼자 기도를 하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도 역시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혼자 하나님을 만날 시간도 갖지만 함께 연합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큰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쪽에 편중되기 쉽습니다. 기도를 혼자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여럿이 모여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또한 함께 모여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혼자 기도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을 정죄하기도 쉽습니다. 인간의 죄성은 자기가 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반면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정죄하기 쉽습니다. 특히나 자기들과 함께 있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다르게 행동할 때 그 상대를 정죄하는 것도 쉽습니다.
한 번은 제자들이 진지하게 예수님께 나아와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행동하지 않으면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기에 우리가 금하였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눅 9:5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마가복음 9장 39절은 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고 너희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결국 그것은 너희를 위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을 의탁하여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즉시로 예수님을 비방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로 볼 때 기도도 혼자 조용히 기도하는 것만을 하는 사람이나 모여서 기도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한쪽으로 치우져 있는 것은 맞지만 그들의 행동이 예수님의 이름을 반대하지도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비방하지도 않는다면 그들에 대하여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를 해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열심을 가지고 자기들이 하고 싶어 하는 방식의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거나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도 역시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예수님과 사도들이 행했던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때로는 병을 고치거나 귀신을 내쫓는 일이 일어날지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공개화시켜서 막으려고 하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도 예수님께 나올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그룹 속에 빠져들어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을 보고 예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는 왠지 관용에 대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은 것같습니다. 물론 잘못된 사람들을 따라가는 것을 우려해서 그렇겠지만 너무 그들을 막는데 신경쓰다보면 세상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그냥 두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혼자 기도를 하는 것도 원하시고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도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하시기는 했지만 교회는 여러 사람이 예수님의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몸을 이룬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것은 예수님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혼자 기도하고, 또 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이 두 가지 유형의 기도를 다 중요시 여기시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은 혼자서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에 다니엘의 이름만을 올려 놓아서 그렇지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그 기도를 매우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작정하고 오래가지 못해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어떻게 기도를 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완고한 재판장과 끈질긴 과부의 이야기를 말씀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 7-8절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러분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사람들이 왜 기도를 하게 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기도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신다는 것을 믿고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시편 40편 1절을 보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하면서 자신이 기도했을 때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여러분들이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의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는 표현이며, 한편으로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다윗왕의 기도에 기를 기울이셨습니다. 다윗이 기도를 할 때는 자신의 정욕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적어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기도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설사 대적들로 인해 곤경에 처해서 기도할 때도 역시 단순히 자신이 거기서 벗어나거나 대적들을 처벌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해주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이 드러나고 영광을 받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사람들이 구하는 기도, 다시 말해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기도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도 역시 그런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둘이 함께 성전에 가서 기도하려고 갔던 것입니다. 그런 기도의 사람이며 또한 성령의 사람인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시고 역사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거기에서 구걸하던 한 사람, 나면서부터 전혀 걸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고쳐주시기로 작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제 구시 기도시간을 택하셔서 그 일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의 구시는 우리 나라의 시간으로 계산하면 오후 3시입니다.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러 가는 그 길에서 나면서부터 하반신 장애를 가져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성전 문 앞으로 나올 수도 없었던 장애인을 고쳐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메어다가 거기에 둔 것입니다. 거기서 그는 혼자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자기 앞을 지나갈 때도 그 사람의 눈에는 구걸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였지 자기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줄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도 그저 구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자기 앞에 서더니 “우리를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사람은 혹시 자기에게 돈을 주려고 그러나 하고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자기의 오른 손을 내밀었고 베드로는 그 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으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의 사람, 진리의 사람, 기도의 사람을 통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전혀 기도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수님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받게 될 것이며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는 교회는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고,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통해 놀라운 부흥을 이루셨습니다. 부흥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은 이 기도하는 두 사도를 통해 또 다른 일을 계획하셨는데 바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해 사람들이 성전 문앞에 메어다 놓으면 거기서 구걸하면서 사는 거지를 통해 새 일을 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일들을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새 일에 쓰임받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물론 이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면 두 사도와 나면서부터 전혀 걷지도 못했던 이 거지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우선 그 사람이 고침을 받아서 걷게 되기도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성전으로 뛰어 들어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신 일을 말하면서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도들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붙들려 공회로 잡혀가서 심문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새롭게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들이 5,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을 보면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을 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일들은 참으로 놀라운 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사도들 뿐 아니라 그 이후로 지금까지 온 세상에 일어난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보면 하나님은 그렇게 은혜와 진리로 충만했던 사람들의 기도를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셨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를 하찮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기도를 매우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자신의 자녀가 믿음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드십시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아 가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시간을 통해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고 또한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시는 세상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자 하십니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그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면서 여러분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꿈을 주시며, 그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고치시며 치료하시고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구하시는 여러분들을 만나주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다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고 기도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빌립보서 4장 6-7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마음을 지키시며 현명하고 지혜롭게 처신하며, 주님이 하시는 일을 알고 행하시도록 이끄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기도의 시간을 정하십시오. 여러분의 집에서 혼자 드리는 기도와 교회에 나오셔서 혼자 기도하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그리고 교회에서 주일 오후예배와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때 함께 드리는 기도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 시간을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귀를 기울이시고 들으셨다가 하나님께서 가정 적절하게 생각하시는 그 시간에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여러분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응답이 더디다고 할지라도 기도의 줄을 놓지 마십시오, 더욱 마음과 손을 움켜 잡고 하나님을 구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구하십시오. 영광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임하셔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진리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 복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