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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을 사람
창 32: 24-29
야곱은 평생토록 파란만장한 굴곡의 생애, 변화무쌍한 인생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아마 어쩌면 이 야곱의 생애는 우리의 한 생애의 모델과도 같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인간은 나면서부터 주어진 한 생애를 살 동안에 출생한 그 자리가 여러분 평생에 살고 있는 터전이 아닐 것입니다. 이곳 저곳 세월 따라 환경 따라 여건 따라 그리고 직업 따라 직장 따라서 도시를 혹은 지역을 이동하면서 우리 인생은 기나긴 먼 여정의 인생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야곱은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의 아버지 이삭을 떠나 많은 어려운 시련 속에서 이곳 저곳 이동하면서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너무나 축복을 사모한 나머지 아버지와 형 에서를 속인 일로 인해서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밧단아람에서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떳떳하게 사는 생활도 피곤한데 무슨 사건이 있어서 숨어서 산다면 그 생애가 얼마나 지치고 피곤하겠습니까? 그는 이러한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얍복강 나루에서 인생의 단판의 순간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얍복강 나루에서 그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순간은 일평생 그의 생애에 하나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이 한 세상 살아가는데 결코 우리에게 안전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웃을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통곡할 일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어디에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보다 얍복강 나루의 야곱의 결단의 한 순간이 주어져야 될 줄 믿습니다.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을 사람은
첫째,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이루는 사람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24절) 야곱의 이름의 뜻은 '속이는 자, 빼앗는 자,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홀로 남았다는 것은 그의 인간의 방법을 포기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는 20년 동안 고난의 세월을 보내면서 이런 저런 인간의 수단 방법을 다 사용해보았습니다. 홀로 남은 그 순간이전까지도 형 에서를 향해서 1진, 2진으로 나누어 사람을 세웠던 그였습니다. 이제는 야곱이 이러한 사람을 의지하는 방법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과의 결단의 순간을 각오한 것입니다.
이사야 2:22에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은 숨을 쉬지 않는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끝납니다. 인간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이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유일의 생명으로 준 것이 호흡입니다. 그 연약한 인생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또한 야곱이 홀로 남았다는 것은 하나님만 의지하겠다고 하는 비장한 각오를 그 마음속에 지니고 있게 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17:7에 보면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의지한다'는 말은 헬라어에 보면 '고정시킨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생애의 정착을 하나님께 고정을 시킬 때만이 안전과 보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물과 부귀 영화, 명예, 건강도 다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은 변치 않는 하나님께 내 인생을 고정시키고 모든 것을 신뢰하고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정착시켜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만남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인생은 마치 부모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지금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돕는 자시요, 당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자이십니다. 하나님만이 당신의 모든 것을 보장해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사람은 마음은 간절해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습니다. 결단은 했지만 역부족입니다. 그리고 각오는 했지만 낙심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받았습니다.
열왕기하 18:5에 보면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히스기야왕은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유다의 여러 왕 중에 전무후무한 최대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려움이 있어도 선지자 이사야에게 찾아가서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생명까지도 15년간이나 더 연장을 받았고, 엄청난 복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사하며 삽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삽니다.
시편 115:9에 보면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 도움이시요, 너희 방패시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게 되고,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도와주시고 막아주시면 얼마나 안전합니까? 피곤하고 고달플 때, 답답하고 어려울 때, 병들고 연약할 때, 실패하고 좌절될 때, 버림을 받고 소외당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곁에서 떠나시지 않습니다. 친구나 부모, 이웃은 떠나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생명을 내댄 기도를 드리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24,25절) 야곱이 천사와 밤새도록 씨름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데 날이 새려고 하니까 천사가 떠나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그를 절대 놓지 않았습니다. 강하게 붙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생명을 내댄 기도였습니다. 그는 생사를 걸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야곱이 이렇게 그의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밤이 맟도록 생명을 내댄 기도를 드렸을 때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1년 365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많고 많은 날 중에 하루 밤도 성전에서 기도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어느 날인가 마음먹고 성전에 가서 하루 밤 기도해보세요. 기도하기 이전과 전혀 다른 생각과 지혜, 그리고 환경과 여건이 하나님께로부터 반드시 이를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해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 대화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할수록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임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과 대화하다보면 오해도 하고 엉뚱하게 판단하여 좋은 말을 했지만 나쁜 영향이 올 수도 있고, 좋은 말을 했지만 오해를 해서 오히려 원수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대화할 때는 후회가 없습니다. 대화할수록 기뻐지고 감사가 나오며 영광과 축복이 넘치고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와 기적이 일어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세상의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역사를 일으킵니다. 기도는 인간의 마음, 생각, 심리, 정서까지 변화시켜줍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육신의 혈기가 영성으로 부드러워지고, 사랑과 온유가 넘치게 되며,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찾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만나주십니다.
야곱은 굽이쳐 흐르는 저 강물을 앞에 두고 밤을 새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결단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매튜핸리는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신앙의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육신은 호흡하는 순간만 존재할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생명이 약동하는 순간은 기도가 연속되는 순간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숨을 안 쉬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를 안하면 신앙을 자살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약점, 단점, 허물, 부족한 것, 어려움이 있어도 기도가 살아있을 때 이러한 것들이 다 새롭게 변화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에스더는 구국일념으로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라는 이런 결심을 가진 자였습니다. 아비하일의 딸로 조실부모하고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양육을 받던 중에 와스디가 폐위를 당한 후 전국에 왕후를 뽑는데 처녀들 중에 에스더가 왕후로 뽑혔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총리였던 하만이 유대 사람들이 미워서 어떻게 하면 유대인을 학살할까 하고 아주 악한 묘략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이 에스더가 그 사실을 알고 자기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으로 알아서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얘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에게 가면 죽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이 말은 간단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국법을 어기는 것이 됨으로 100%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왕후 에스더는 3일 동안 금식기도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수척한 것에 대해서 왕이 관심을 가지고 대화하는 중에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을 헤치려고 하는 하만이 비참한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안되는 것을 되게 합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합니다. 강퍅한 마음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의 근본은 하나님의 성령만이 뒤집어놓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영력이 나타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온전히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25절) 야곱은 자신의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고통을 겪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쳐서 복종시킨 것입니다.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을 자는 하나님 앞에 온전히 거듭난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성, 인성, 포악성, 강퍅성 가지고는 안됩니다. 이것이 죽어야 됩니다. 혈기도 죽고, 교만도 죽어야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를 나타내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3:3에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했고, 5절에 보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육으로 난 우리는 성령으로 다시 나야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우리의 성품과 언행심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취미조차도 바뀌게 해줍니다.
마음을 바꾸면 세상이 바꾸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우리 생활 속에 내가 지금 고통스러운 것 그 사건에 대해서 생각을 한 번 바꾸어서 생각하면 평안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를 갈고 통곡할 일도 마음만 한 번 살짝 바꾸어보십시오. 그 일로 인하여 오히려 좋은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불이익 같았는데 행복으로 바꾸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26절)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는 사람이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습니다. 야곱은 드디어 꿈에도 소원인 그 하나님의 축복을 하나님께 허락 받았습니다. 씨름하며 끝까지 붙잡고 있을 때 그에게 소원을 묻자 이 말씀으로 소원을 아뢴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28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황태자'라는 뜻입니다. 너는 지금까지 너의 노력과 수단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황태자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학개 2:18,19에 보면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이 약속의 말씀을 우리 모두가 성취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던 야곱은 얍복강 나루에 홀로 남아 인간의 방법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기로 결심하여 하나님 앞에 생명을 내댄 기도를 드리고, 온전히 거듭나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함으로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무기력하고 연약한 인간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 새 이스라엘의 축복을 받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로서 승리한 야곱
창세기32:24-30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26.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28.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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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체험을 하면 확신에 찬 신앙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잊을 수 없는 영적 체험을 두 번에 걸쳐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는 벧엘에서의 경험이고 또 하나는 브니엘에서의 경험입니다.
야곱은 에서와 함께 이삭의 쌍둥이 아들로서 태어났으면서도 동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복을 받지 못한 것이 서운해서 형이 배고픈 것을 틈타서 팥죽을 쑤어 장자의 명분을 사 드리고, 앞을 못 보는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의 축복까지 가로챘다가 집에서 도망하지 아니할 수 없었
던 사람이었습니다. 벧엘의 본 이름은 루쓰였는데, 형이 무서워 집을 나간 야곱은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을 향해 가다가 루쓰라는 들판에서 돌을 베개로 삼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꿈에서 하늘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에 닿았는데 그 위로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28:13-15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음성을 들으면서 그는 꿈을 깨었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하고 베개 하였던 돌을 세워 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이름하고, 중대한 서원 세 가지를 했습니다.
창세기 28:20-22을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하고 서원 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한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20여년 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외삼촌의 양을 치면서 두 아내와 두 여종의 몸에서 13남매를 낳고 종들을 거느리고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것 것입니다.
돌아오던 야곱은 요단강의 동쪽 지류인 얍복강 앞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거에 자기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 챘던 죄로 인하여 형 에서를 만나기가 몹시 두렸웠습니다. 그래서 그가 부리던 종들을 미리 보내서 정탐해 본 결과 그 형인 에서가 야곱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종 400인을 거느리고 마주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마 야곱에게 복수하려는 형의 살기 등등한 도전이 아닐수가 없는 것 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 때 야곱은 기도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얍복강 나루터에서 야곱은 생에 최대의 결사적인 기도를 하나님에게 드린 것 입니다.
야곱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기도를 어떻게 하는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1.야곱은 하나님의 뜻과 언약에 호소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32:9에 보면 “나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내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이루어 주십사고 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나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졸라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시는 뜻’을 가지신 분입니다.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고, 세상을 영화롭게 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는 뜻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길을 미리 아시고 또 그 길로 가는 과정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이라는 방법을 우리로 하여금 그 뜻에 참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언약을 이루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여러분, 성서상에 나타난 모든 기도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들이었고, 또 언약을 통해서 자신들이 그 뜻에 연결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위에서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그리고 땅의 티끌같이 번성하고, 또 천하만국을 복되게 하는 뜻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 뚯이 언약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연결이 된 것입니다. 이삭과 야곱과도 연결이 된 것입니다.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사무엘, 다윗과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모두 언약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순종하며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구한 것이 기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대로, 또 야곱에게 언약하신 대로 이루어 줍시사고 기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고난의 날을 몇시간 앞두고 기도하실 때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간구하셨던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한번은 교회 지도자들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의 도움을 신청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사회자는 문제를 설명한 후 이렇게 맺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므로 대통령께서도 우리의 편에 서실 것을 믿습니다." 이때 링컨은 이렇게 대답했다. "문제는 들었읍니다. 이것의 옳고 그름은 더 알아 보겠읍니다. 그러나 한가지 제 소신을 말씀드린다면 하나님이 내 편에 서 계시다'는 생각보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제 날마다의 기도입니다." 얼마나 멋 있는 말 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내가 하나님 편에 바르게 서 있는 것 입니다.
2.야곱은 확신의 사람으로 변하기 위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창세기 32:26이하에 보면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던 천사가 날이 새려하므로 떠나고자 할 때 축복하지 아니하면 놓지 않겠노라고 졸라댔습니다.
그 때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처럼 야곱도 환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벧엘에서 처럼 몇번이나 언약도 받았고, 체험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마음에 불안과두려움이 사라질 정도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사백명의 종을 이끌고 에서가 마주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확신의 단계에 들어서지 못하면 알면서도 약합니다.
믿으면서도 두려워합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는 하나님이 살이 계심을 믿는 목사님이었고, 성경을 잘 아는 학자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미국으로 떠나는 선교사였습니다. 그러나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힐 위험에 있을 때 그는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죽음의 두려움을 이길 만큼의 확신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그 배에 같이 타고 있던 모라비안 교도들은 그러한 풍랑 중에도 하나님을 오히려 찬양하고 구원의 확신속에 당당한 것을 보고는 새삼 깨닫게 된 것 입니다. 나는 무어냐 소위 목사 선교사 성경 학자가 아닌가 도데체 내가 왜 이러는 가?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에 모순이 있음을 발견하고 확신과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후세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체험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것 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모자라면 문제가 생길때에 두려움과 염려와 근심에 휩싸이게 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실존을 확신 하시길 축원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확신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응담을 확신 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가 왜 필요했습니까 ?
예수님이 이루어야 될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그 고통의 과정을 통과하는 동안의 두려움과 고통을 이길 만큼의 확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지식이 많아도, 교회에 다닌지 오래 되어도 확신이 없으면 여전히 불완전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해소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확신을 같기위한 기도의 노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3.야곱은 자아가 깨어지는 기도를 했습니다.
창세기 32:25 후반부에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위골되었더라> 라는 말은 야곱에게 더 이상 의지할 힘이 업어진 것입니다.
환도뼈는 엉덩이 뼈의 힘줄을 의미 합니다. 이것이 위골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의 육체적인 힘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기도의 응답만이 이제부터의 살아갈 힘이라는 것을 실제로 알게 될 만큼 자기가 파괴되는 기도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완전히 포기 할 때에 비로서 하나님의 소유가 됨다는 사실을 말 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24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언제 열립니까? 자기의 의지, 자기의 감정, 자기과시, 자만과 교만의 자아를 다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맞게 믿음으로 순종할 때 성령의 열매가 열립니다.
다시 말하여 자기의 힘을 과시하지 말라는 것 입니다.
모세는 자기의 힘으로 이스라엘 사람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미디안으로 망명해야 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다윗도 마챤가지입니다.
왕의 지위와 권세가 불가능이 없는 자신감을 가졌을 때, 우리아의 아내로 말미암아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지위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기독교인을 핍박했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것입니다.
자기가 깨어지지 아니하면 하나님에게 절대적인 순종의 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공은 무엇이고 승리는 무엇 입니까?
오직 순종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그 곳에 다윗처럼 승리도 있고, 솔로몬 처럼 성공도 있고, 요셉처럼 존귀와 영광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처럼 부활도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얍복강가에서의 완전히 자기 파괴의 기도를 했기 때문에 그의 형 에서 앞에서 일곱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할 수 있었습니다. 형을 골탕먹이고, 아버지를 속이면서 장자의 축복을 가로채던 그 옛날의 당돌했던 모습이 다 죽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로 변화가 된 것입니다.
에서는 자기 앞에 일곱번이나 절하는 야곱을 발견했을 때 그만 복수심에 불탔던 그의 마음도 녹아지고 만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바라기 전에, 세상이 달라지기를 기대하기 전에 먼저 우리들 각자가 완전한 자기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은혜를 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1.받을 준비가 되 있어야 한다.
2.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라.
3.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라.
4.성령 안에서 성경을 상고하라.
5.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라.
6.그의 지시에 따라 행하라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의 얍복강가의 기도는 이런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언약대로 이루어지면 된다는 믿음의 기도,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완전히 내어 쫓는 확신을 추구한 기도,
그리고 자아를 완전히 죽이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는 순종괴 신뢰의 기도였습니다. 이런 기도를 본받고 신앙생활에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