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가 젊었을 때부터 도굴을 전문적으로 담당했다기보다는, **군벌로 성장하여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도굴을 시행했다**는 것이 역사적 정설에 가깝습니다.
조조의 도굴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 1. 역사적 기록의 배경
조조의 도굴 전력은 정사 『삼국지』 본문보다는, 조조와 적대 관계였던 원소가 조조를 비난하기 위해 작성한 **격문(토조조격문)**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원소의 책사 진림이 쓴 이 격문에는 "조조는 '발구중랑장(發丘中郞將)'과 '모금교위(摸金校尉)'라는 직책을 만들어 무덤을 파헤치고 보물을 챙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 2. 조조가 도굴을 했던 이유
* **군자금 조달:** 당시 조조는 초기 군벌로서 재정 상황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막대한 군량과 병기 제작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도굴은 가장 효율적인 '비자금 확보 수단'이었습니다.
* **조직적 운영:** 그는 단순히 우발적으로 도굴을 한 것이 아니라, '모금교위'라는 전담 부대를 두어 전문적으로 고분을 탐색하고 도굴했습니다. 이들은 풍수지리와 지형을 분석해 보물이 묻힌 무덤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전해집니다.
### 3. 사실 여부에 대한 평가
* **문학적 과장 vs 실재:** 일부 학자들은 원소 측의 격문이 조조를 깎아내리기 위한 정치적 선전물(프로파간다)이므로 과장이 심할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조가 실제로 전쟁 중 고분을 파헤쳐 군자금을 충당했다는 것은 당시 시대상과 기록들로 미루어 볼 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평가받습니다.
* **본인의 무덤에 대한 공포:** 조조가 죽기 전 "자신의 무덤에 금은보화를 넣지 말라(박장)"고 유언하거나, "72개의 가묘(거짓 무덤)를 만들라"는 전설이 생긴 배경도 역설적으로 본인이 평생 도굴을 주도했기 때문에 자신의 무덤 또한 똑같은 운명을 맞을까 봐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 4. 도굴의 왕, 역설적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희대의 도굴꾼' 조조의 무덤 또한 그가 생전에 했던 짓과 똑같이 수많은 도굴꾼들에 의해 훼손되었습니다. 2000년대 후반에 조조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되었을 때, 내부가 이미 심하게 파헤쳐져 있어 진위 논란과 함께 고고학적 아쉬움을 샀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조조는 젊은 시절의 취미가 아니라, **군벌로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전쟁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도굴이라는 파격적이고 비도덕적인 선택을 했던 인물**입니다. 이런 기록들 덕분에 조조는 후대 소설과 민담에서 더욱 간웅(奸雄)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