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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기 8과 교과토의 핵심통찰 by CT Park.
제목: 믿음 가지기(Having Faith)
기억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Faith shows the reality of what we hope for; it is the evidence of things we cannot see” (Hebrews 11:1, NLT).
(서론) 2026년 2기 전체 주제는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함(Growing in a Relationship With God)”입니다. 이번 기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체된 것이 아니라 '성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맥짚기> 하나님과의 모든 인격적인 관계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촉매제가 바로 '믿음(Faith)'입니다. 본 8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성숙시키는 영적 원동력으로서의 믿음을 다루며, 이번기 대주제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적 및 신학적 문맥> 이번 주 교과는 바리새인들이 요구한 ‘표적’(마가복음 8장)과 이방인 여인(가나안 여인) 및 백부장이 보여준 ‘온전한 신뢰’(마태복음 15장, 누가복음 7장)를 극적으로 대조합니다. 신학적으로 믿음은 눈에 보이는 증거(표적)에 의존하는 감정적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품성을 있는 그대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선진들의 역사와 요한계시록 14:12의 '예수 믿음'을 연결하며 마지막 시대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믿음의 본질을 조명합니다.
<도입스토리>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졌으나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한 왕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행복을 찾기 위해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왕이 낙심하고 우울한 채로 숲속을 걷고 있을 때 한 남자의 노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노래는 왕의 마음에 큰 기쁨을 채워주었습니다. 왕은 그 노래가 자신을 기쁨으로 채웠다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마음 역시 기쁨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왕은 조용히 노래 부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보이지 않는 수풀 뒤에 숨어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과연 그 남자는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왕은 그의 행복에 호기심이 생겼고, 무엇이 그를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왕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가졌소?"
남자는 깜짝 놀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가졌냐고요?"
"그렇소, 당신은 무엇을 가졌소?" 왕이 되물었습니다. "당신을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대체 무엇이오?"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이 셔츠 한 장이 제가 가진 전부입니다."
왕은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그 셔츠를 내게 주시오. 그 대가로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소."
남자는 동의했습니다. 그는 금화 주머니를 받는 대가로 왕에게 셔츠를 주고 떠났습니다. 왕은 그 셔츠를 입고 몇 걸음을 걸으며, 새 셔츠를 계속해서 만져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행복이 우리가 가진 것이나 우리 내면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기반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백성들의 증언과 마지막 시대(계 14:12)의 기록을 통해 배우게 되듯이, 믿음 역시 우리 내면에 있는 그 어떤 것에도 기반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우리 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Q믿음의 과정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믿음에 관한 세 가지 근본적인 본문을 살펴볼 것입니다.
1. 첫 번째 본문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명시된 '믿음'의 정의를 제공합니다(히 11:1), 이 정의는 구약의 족장들과 믿음의 영웅들을 통해 확증됩니다(히 11:4-40).
2. 두 번째 본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증언을 통해 믿음의 메커니즘을 설명합니다(창 15:6).
3. 세 번째 본문은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성도들이 보여주는 믿음의 증언입니다(계 14:12).
(질문) 이번주 교과를 공부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가장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 1>> 믿음의 정의 (히 11:1)
히브리서 11:1은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성경의 유일한 본문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인 바울에게 믿음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 첫 번째 요소, "바라는 것들의 실상" (히 11:1): 이는 인류 역사의 마지막 사건인 '재림(Advent)', 즉 종말에 임할 하나님 나라를 가리킵니다. 이는 또한 구약의 ‘노독들'이 "받지 못하였던" 바로 그 '약속'입니다(히 11:39). (Substance :sub(under)+stance(stand):기초. 재림은 모든 믿음의 기초요 기반입니다.
* 두 번째 요소,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히 11:1): 이 측면은 인류 역사의 첫 번째 사건인 '세상의 창조'를 가리킵니다. 히브리서 11:1의 "보이는 것(seen, blepomenon)"이라는 단어는 세상의 창조를 언급하는 히브리서 11:3의 "보이는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 믿음의 기초는 전적으로 거룩한 통제 아래 있는 두 가지 사건, 즉 '하나님의 천지창조'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눈에 보이지 않는 창조의 과정을 믿게 하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아직 임하지 않은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사건을 소망하게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패턴이 성경의 정경 구조 자체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는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성경은 창조(창 1:1-2:1)로 시작하여 주님의 오심(계 22:20)으로 끝납니다. 구약 성경 역시 이와 동일한 구조를 증명하는데, 창조로 시작하여 여호와의 날이 임하는 것(말 4:5)이나 안식년에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소망(역대하 36:21-23)으로 끝을 맺습니다.
👉🏾 성경 전반에 나타나는 이 구조적 패턴의 예시들:
① 창세기: 창조로 시작하여 약속의 땅에 대한 전망(perspective),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때 자신의 유골을 애굽에서 메어 가라는 요셉의 요청이 암시하는 '부활의 소망'으로 끝납니다(창 50:24-26).
② 모세오경: 창조로 시작하여 약속의 땅에 대한 동일한 전망과 부활의 소망으로 끝납니다(신 34:4-6).
③ 이사야서: 자신의 백성을 향한 슬픔의 증인이 되도록 하늘과 땅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으로 시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 및 구원받은 인류가 안식일마다 주님을 영원히 예배하는 전망으로 끝납니다(사 66:22, 23).
④ 전도서: 창조(전 1:1-11)로 시작하여 종말론적 심판(전 12:14)으로 끝납니다.
⑤ 다니엘서: 창조 때 주어진 채식 원칙을 암시하는 음식 시험(단 1:12, 창 1:29 비교)으로 시작하여, 재림과 "끝 날"에 있을 부활의 날(단 12:13)로 끝납니다.
⑥요한복음: 창조(요 1:1-10)로 시작하여 재림의 약속(요 21:22, 23)으로 끝납니다.
<<2>> 표적에 대한 이해
(1)문맥 이해: 정의(Definition) 이전의 믿음논증.
히브리서 저자는 11장 1절에 도달하기 전, 이미 앞선 10장에서부터 믿음에 대한 논증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습니다.
* 히 10:35 —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확신)을 버리지 말라"
* 히 10:36 —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 히 10:37 —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히 10:38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의 직접 인용)
*핵심 포인트: 히브리서 11장은 새로운 주제를 도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이어가며 지지하는 장입니다.
(2) 믿음이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히브리서 11:1에서 '실상'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휘포스타시스(hypostasis)'입니다. 이 단어가 가진 믿음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본질 / 물질 (Substance :sub(under)+stance(stand):기초.기본
* 근본적 실제 (Underlying reality)
* 보증 / 담보 (Guarantee)
* 소유권 증서 / 소유의 증거 (Title deed)
믿음은 또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 즉 내적 확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상상이나 비현실이 아니라,
* 현재 우리의 손에 닿지 않는 것
* 일시적으로 접근할 수 없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믿음은 맹목적 환상이 아닙니다.
믿음은 상황이 우리의 현실적 사고와 맞아떨어지기 전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3)믿음과 겨자씨 (마태복음 17:20).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 겨자씨가 엄청나게 큰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가요?
* 아니면 아주 작은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뜻인가요? (하지만 자라날 믿음)
정답은 둘 다입니다. 겨자씨는 자기 신뢰가 전혀 없으며, 오직 창조주께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주 작은 분량의 믿음이라도 내밀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4) 표적을 구하는 마음.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믿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 "하나님이 내게 표적(싸인) 하나만 보여주시면 좋을 텐데."
성경은 이러한 인간의 갈망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합니다.
1) 표적을 구하는 것이 위험해질 때 (마태복음 12:38-39)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매우 엄숙하고 경고로 가득 찬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표적을 주신 순간들도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이 주신 표적들
* 창세 9:13 — 하나님이 언약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두심
* 사사기 6장 — 기드온이 표적을 구하자, 성경은 "그대로 된지라"라고 기록함
* 누가 1장 —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통해 표적을 받음
* 누가 2:12 — 목자들에게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고 말씀하심.
결론: 따라서 표적을 구하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5)그렇다면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가?
핵심 차이는 바로 '동기(Motive)'에 있습니다.
1) 표적은 사람을 회개(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표적이 믿음을 창조하지 못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다른 본문에서 주님은 '죽은 자가 살아날지라도 믿지 않을 자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표적은 이미 있는 믿음을 강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믿음 자체를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2) 그리스도의 시험 (마태복음 4장)
광야에서 사탄은 예수님을 이렇게 시험했습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한 요청이 아니라, 예수님의 신분과 권세를 증명해 보라는 '표적의 요구'였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돌을 떡으로 바꾸셨다 하더라도 사탄은 회개하거나 변화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요구의 뿌리는 신뢰가 아니라 '의심'이었기 때문입니다.
(6)표적의 올바른 자리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를 철저히 구별해야 합니다.
* 올바른 태도: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확증해 달라고 겸손히 구하는 표적요청
* 잘못된 태도: 믿어주는 조건으로 하나님께 증거를 대라고 요구(협박)하는 표적요청
겸손함으로 구하는 표적은 믿음의 격려를 주지만, 불신으로 요구하는 표적은 마음을 더욱 완고하게 만듭니다.
(7)소결론
* 믿음은 표적 위에 서지 않습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성품' 위에 세워집니다.
* 표적은 믿음을 굳건하게 할 수는 있지만, 믿음의 기초를 놓을 수는 없습니다.
*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표적은 그 후,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따라 따라오는 것입니다.
<<3>> 아브람의 믿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적 계시는 아브람에게 미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신성한 약속의 시각적 예증으로 본 아브람은 믿었습니다. 히브리어 동사 '헤에민(he’emin)'("믿었다")은 영어의 "believe"가 표현하는 감정적이거나 지적인 과정 그 이상을 묘사합니다. 또한 이는 단순히 신조나 종교적 "신념"에 찬성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믿는다는 것"은 역사적이고 관계적입니다. 이는 "견고한", "신뢰할 수 있는"을 의미하는 어근 '아만(’aman)'에서 유래했으며, 특히 목적어 앞에 전치사 '베(be)'("~안에", "~위에")를 함께 사용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아브람은 자신에게 자손이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종류의 믿음을 "의(righteousness)"로 "여기셨습니다(accounted)."
인간의 노력과 행위는 의를 생산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창세기 15:6은 아브람 당시에 만연했던 고대 이집트의 신앙적 배경과 대조할 때 그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두 시스템 모두에서 "계산하는 것"과 "의"는 법정적 언어에 속하며, 의를 평가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두 관점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 고대 이집트: 인간 의의 무게는 신성한 의인 '마아트(Maat)'의 무게에 맞추어 인간의 '행위'를 계산함으로써 평가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에서 신성한 의는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이었으며, 그것의 소유 여부가 그들에게 유리하게 혹은 불리하게 계산되었습니다.
* 성경적 관점 (아브람): 아브람의 의는 그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기반으로 평가됩니다. 성경에서 "의(tsedaqah)"는 특정한 신성한 성품이며(사 45:24, 단 9:7), 따라서 의는 오직 인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일 뿐입니다(신 6:25, 신 24:13, 사 45:24, 시 24:5). 아브람을 의롭게 만든 것은 그의 행위의 총합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를 기꺼이 신뢰하고자 한 그의 태도였습니다(롬 4:2-4).
*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의라는 뜻입니다.
<< 4>> 예수님은 믿음을 어떻게 보시고 강화하시는가?
[인간의 관점 vs 하나님의 관점]
* 우리의 인식: 교회에 열심히 잘 나오면 "믿음이 좋다"고 생각함.
* 하나님의 인식 (삼상 16:7):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하나님의 인식은 내면을 향하십니다. 따라서 믿음은 겉으로 항상 쉽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례 1] 바다의 폭풍을 잔잔케 하심 (마가복음 4:40)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교훈 #1: 믿음은 외적인 행동으로 증명됩니다.
* 외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으로는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스스로 주님을 따르는 자라고 자처했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폭풍 속에서 그들의 내면은 주님을 신뢰하지 않았고 거듭나지 못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사례 2] 가나안 여인의 믿음 (마태복음 15:21-28)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한 가나안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소리치며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 교훈 #2: 믿음은 수많은 장벽을 뚫고 '근원(예수님)'께 도달합니다.
* 종교적 장벽: 이방 종교 vs 유대교
* 문화적/민족적 장벽: 가나안 인들과 유대인들은 서로를 혐오함
* 성별(Gender) 장벽: 구약 시대(미리암, 드보라, 아비가일 등)와 달리,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는 헬라주의 영향으로 여성의 지위가 극도로 추락해 있었습니다.
*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여성을 피하려 길을 돌아갔고, 경건한 유대 남성들은 매일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습니다. 여성은 법정 증언권도 없었고 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랍비 문헌: "딸에게 토라를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예수님의 무반응과 시험 (23-25절):
*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고, 제자들은 "돌려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방인을 대하는 전형적인 유대인처럼 행동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행동은 제자들의 편협함을 향한 암묵적인 책망이었습니다. 여인은 도리어 주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 교훈 #3: 믿음은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보다 오래 버티는 것입니다.
* 믿음은 반대와 낙심 앞에서도 끝까지 견딥니다. 성경 속 믿음의 거인들은 모두 오래 버텼습니다.
* 야곱: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 아브라함: 수십 년의 기다림 속에서도 불신으로 흔들리지 않음.
* 요셉: 주님이 구원하실 때까지 침묵과 고통을 견딤.
* 한나: 아이에 대한 약속이 당장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다시는 근심 빛을 띠지 않음.
* 욥: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신뢰하리라."
* 다니엘의 세 친구: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리이다."
* 바울: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않음.
* 예수님: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심.
* 예수님의 치유와 칭찬 (26-28절):
* 예수님이 "자녀의 떡을 취해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고 하셨을 때, 여인은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답했습니다.
* 예수님의 소통 방식: 주님의 모든 대화는 '구원론적'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내시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성장시키십니다.
* 대조점: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셔야 했지만, 이 이방 땅의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너무나 확신했기에 그 어떤 거절의 언어로도 그녀의 열정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 교훈 #4: 믿음은 정제(Refined)되고 보상(Rewarded)받습니다.
* 정제(정련): 여인은 믿음으로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이 저렇게 많다면, 나를 위한 부스러기 은혜도 있지 않겠는가?)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더 순수하게 정제하셨습니다.
* 보상: 그녀의 딸은 즉시 치유되었습니다.
[사례 3] 귀신 들린 아이 아버지의 부르짖음 (마가복음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 배경: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은 어릴 적부터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의 외침 (22절):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 아버지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확신이 없었고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고, 아버지는 눈물로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 교훈 #5: 믿음이든, 믿음의 부족(의심)이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표현되어야 합니다.
* 질문이나 의심을 속으로 억누르지 말고 주님 앞에 쏟아내십시오. 하나님은 대화를 청하십니다.
* 사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 도마 (요 20장): 의심을 표현했을 때 예수님은 꾸짖지 않으시고 직접 나타나 상처를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 욥: 하나님과 격렬하게 논쟁하며 대화했습니다.
* 베드로 (마 14장): 물에 빠져 가라앉을 때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습니다.
* 교훈 #6: 믿음은 '더 많은 믿음'을 구합니다.
* 이 아버지는 예수님께 나아와 요청할 만큼의 믿음은 있었지만, 더 큰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가지고 있는 그 작은 분량의 믿음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더 큰 믿음을 달라고 구하십시오.
[ 요약 및 소 결론]
예수님은 폭풍 속에서도, 장벽 앞에서도, 그리고 의심의 안개 속에서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그것을 더 강하게 하십니다.
1. 믿음은 외적인 종교 행동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중심이 중요함)
2. 믿음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뚫고 전진한다.
3. 믿음은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보다 끝까지 오래 버티는 것이다.
4. 믿음은 시험을 통해 정련되고, 결국 하나님의 보상을 받는다.
5.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이 생길 때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솔직히 표현하라.
6. 가진 존재 그대로의 작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더 큰 믿음'을 달라고 구하라.
<<5>>마지막 시대 성도들의 믿음
구약과 신약의 정경적 연합을 가장 직접적으로 적용한 것은 바로 "율법과 복음"의 결합입니다. 엘렌 G. 화잇은 이것이 우리의 "독특한" 이름의 기초라고 설명합니다(가려 뽑은 기별 2권, 385). 또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법적으로 조직될 때도 이 결합에 기초하여 이름이 채택되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이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지키기로 언약하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라는 이름을 취하여 교회로서 함께 연합한다." (The Advent Review and Sabbath Herald, 1861년 10월 8일)
이 믿음의 고백은 요한계시록의 묵시록적 본문에서도 발견되며, 마지막 시대에 성경적 진리를 수호할 증인들에 대한 예언적 언급으로 해석됩니다(계 14:12). 이 구절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로 식별됩니다.
율법과 "예수의 믿음"은 단순히 순종이라는 구체적인 행위와, 추상적이고 영적인 믿음의 결합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 문장의 구문은 사실 두 행위가 동일한 진리에 속해 있음을 시사합니다. 즉, 율법에 순종하는 것이 곧 예수의 믿음(예수님께서 가지셨던 그 믿음)이라는 뉘앙스입니다. 성경적 사상에서 믿음은 곧 ‘의’이기 때문입니다(창 15:6 참조).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믿음 사이의 이러한 조화는 종말론적 엘리야 메시지의 특징이며(말 4:4-6), 구약과 신약의 증거를 대표하는 두 증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계 11:3-6).
<<6 >> “감정에 따라 살지 마라.”(Don’t go by feeling)
믿음은 감정이 아닙니다.그러나
감정에도 좋은 면이 있습니다. 감정의 역할: 감정은 인간성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로봇은 감정이 없지만,
감정은 우리 삶에 색채와 풍미를 더해줍니다. 관계, 즐거움, 만족감, 성취감의 일부로서 참으로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감정은 일종의 '제6감'과 같아서 "뭔가 느낌이 안 좋은데?"라며 위험을 경고하거나, 결정을 내릴 때 소중한 직관을 제공합니다.
생리학적으로 우리는 감정을 느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도 감정을 가지고 계시며 그것을 표현하십니다.
그러나 감정은 강력하여서 때로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정은 경계가 필요합니다. 감정을 위한 가이드가 필요합니다.
감정은 극도로 강력해질 수 있고, 부풀려질 수 있으며,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고 우리를 조종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 감정은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닙니다.
* 감정은 순종과 올바른 행동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기준인가? 믿음입니다!
믿음은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은 나쁘지는 않지만, 믿음이 감정을 인도해야 합니다.
* 믿음과 감정적 분위기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웅장한 음악이 흐를 때,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을 볼 때 우리는 믿음이 충만하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진짜 믿음이 필요한 때는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 있을 때, 소망이 없고 우울할 때,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입니다. 바로 그때 지성을 사용하여 믿음을 행사하고 여전히 믿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 좋은 날에도, 실패한 날에도 믿음은 하나님과의 연결을 유지합니다.
* 믿음은 강해야 하며, 강해지려면 훈련해야 합니다.
* 믿음에게 지휘권을 맡기십시오: 믿음이 감정보다 강해지려면 믿음이 주도권을 잡게 해야 합니다. 물론 믿음이 감정의 고삐를 늦추고 감정의 희열을 즐기게 거리를 내어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믿음이 고삐를 꽉 쥐고 감정을 억제하며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네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알겠어. 하지만 나는 이 길(말씀의 길)로 갈 거야." 믿음이 강해지려면 반드시 이렇게 훈련되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은 감정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살아가고 안식하는 데는 영적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그렇게 '믿기(Faith it)' 때문입니다.
<<7>>흔들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6가지 실천 방안
하나님과 살아있는 강력한 관계를 맺으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믿음을 강화할 수 있을까요?
(1)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라도 충분합니다 (마 17:20): 하나님과 관계를 시작하는 데는 아주 작은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일하고자 노력할 때 주님은 자라게 하십니다.
(2)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옵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매일 성경 연구와 기도에 헌신하십시오.
(3)하나님께 직접 믿음을 더해달라고 구하십시오 (눅 17:5; 막 9:2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던 아버지처럼 솔직하게 구하십시오.
(4)믿음과 의심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의심이나 질문이 생긴다고 해서 하나님을 떠나지 마십시오. 의심이 있어도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며(빌 2:12), 남에게 빌려온 믿음이 아닌 '나의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마 25:8 미련한 다섯 처녀 비유 참조).
(5)성령의 음성에 반응(응답)하십시오: 당신의 삶에 성령의 충만하심을 지속적으로 구하십시오.
(6)믿음을 끊임없이 활용(훈련)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믿기로 선택하는 결정'입니다. 어두움 속에서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 고후 4:18)
“사람이 자신의 무력함을 느끼고 구주의 공로에 완전히 의지하는 것보다 더욱 속절없이 보이는 것이 없지마는 실상은 그보다 더 강력한 것은 없다.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와 그분께서 함께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가장 약한 사람도 살아 계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살 수 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을 붙드셔서 그들이 결코 떠나가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치료봉사 182.1, MH 182.1)
<기도는 믿음이 자라는 통로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경험이 자라나기를 원할진대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됨을 의미하는 것이니 그리하여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와서 우리의 생명으로 들어오고 다시 순결과 거룩함이 우리의 생명에서 하나님께로 흘러 돌아가는 것이다. (정로의 계단 97.2, SC 97.2)
<의심이 아닌, 믿음과 용기를 말하십시오>
"우리는 결코 자신을 바라보거나 우리의 죄를 슬퍼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사랑을 기뻐하십시오. 믿음을 말하고, 소망을 말하고, 용기를 말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은 강하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게 자라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하라. 그들이 기도로써 하나님을 쳐다보게 하라. 시험에 정복당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실패 때문에 굴욕감을 느끼고 그들이 하나님께로 접근하는 것이 소용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생각은 원수의 암시에 속한 것이다. 그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기도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바로 그 때가 기도할 때라는 것을 그들에게 말해 주라. 그들은 부끄럽게 생각하고 진정으로 자신을 낮출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자복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해 주고 그들을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이다.“ (치료봉사 181, MH 181)
<감정에 속지 말고 약속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믿음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어야 하며, 감정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내 침울한 감정은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약속의 무지개가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것을 느끼거나 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실 것을 믿고 일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8>> 요일별 교과 Key Points:
① 믿음은 풍부한 증거에 기초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안식일, 일요일, 화요일)
② 믿음은 오직 실천(행함)될 때만 강해집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③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목요일)
“이번 주에는 믿음이라는 주제를 살펴 봅니다. 의심과 불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예수께서 말씀하신 강한 믿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의 믿음”을 가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봅니다” - — 교과, 안식일, 세 번째 문단
① 믿음은 풍부한 증거에 기초한 절대적인 신뢰이다 (안식일, 일요일, 화요일)
(Faith is absolute trust based on abundant evidence.)
*믿음은 이성적(합리적)입니다 (히 11:1).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믿음의 기초가 될 만한 충분한 증거도 주시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요구하시지 않는다. 그의 존재, 그의 품성, 그의 말씀의 진실성들은 모두 우리 이성(理性)에 호소하는 증거로 말미암아 실증되나니 그 증거는 많이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의혹될만한 점을 없이하여 버리시지 않으셨다. 우리의 믿음은 증거((Evidence) 위에 세울 것이요 실증(Demonstration) 위에 세울 것이 아니다.” (정로의 계단 105.2, SC 105.2)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히 11:6; 롬 12:3).
“우리는 먼저 믿음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믿음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일어나는 인간의 반응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운 시여자이시며 우리가 그분의 역사를 받아들일 때 성령을 통해 우리를 당신에게로 이끄신다(렘 31:3). .” (교과, 화요일, 두 번째 문단)
*믿음은 표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증거가 이미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믿을 수 있는 충분한 증거를 가졌음에도 표적을 요구하는 자들에게 깊이 탄식하시며 비위를 맞추기 위한 표적 행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막 8:11, 12 참조).
““유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표적이 아니었다. 단순한 외적 증거는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도 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 깨달음이 아니요 영적 혁신이었다”(시대의 소망, 406)/ 교과, 일요일, 다섯 번째 문단)
*미래의 믿음을 위한 가장 위대한 증거는 과거에 인도하신 주님의 손길입니다 (신 4:7-10; 신 8:2, 3; 출 20:1, 2).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우리는 신앙의 밑거름이 될(요 20:30, 31 참조) 6,000년에 걸친 성경 역사가 있다.
모든 세대는 표적을 원하며 우리 세대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표적은 우리 주변 곳곳에 가득하다. 마태복음 24장을 읽으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성취되었고 얼마나 많은 일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교과, 일요일, 두 번째, 세 번째 문단)
과거의 인도하심이 미래 믿음의 가장 큰 증거입니다.
② 믿음은 오직 실천(행함)될 때만 강해집니다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Faith is only ad strong as it is practiced.)
(1)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으로 입증되는 신뢰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행사할 특권이자 의무인 믿음을 활용하지 아니하고 믿음만이 가져다 줄 수 있는 느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감정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나, 유쾌한 감정과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초기문집, 72 / 교과, 화요일, 네 번째 문단) . 믿음을 행사하는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 사람은 자신이 가진 믿음만큼만 행동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을 따라 실행에 옮길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93)
* “감정이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주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졌다고 느끼는 그때가 바로 (마가복음 9:24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믿음을 발휘하고 그분을 찾아야 할 때이다..” (교과, 화요일, 여섯 번째 문단)
*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2)성장의 원리 : 실천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심으시고 증거로 물을 주시지만, 믿음의 성장은 우리의 실천(훈련)을 요구합니다.
*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모든 모본의 믿음은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 이러한 형태의 믿음을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 친구들의 행동(막 2:1-5)과 하인의 병을 고치러 온 백부장의 모습(눅 7:1-10)에서 “보셨습니다.”
* 믿음은 실천을 통해 성장한합니다.
* 믿음은 행동하는 신앙(Active Belief)입니다.
* 믿음 + 행동 = 참 믿음입니다. 행동이 없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 믿음은 살아내야 성장한다 (롬 1:17, 고후 10:15).
③ 우리는 “예수님의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목요일) (We can-and must-have the “faith of Jesus”)
예수님의 전 생애가 믿음의 본보기입니다., 특히 그분의 마지막 생애의 장면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발전시키기를 원하시는 믿음의 전형적인 본보기입니다 (마 26:36-42; 계 14:12).
“예수 믿음”(the faith of Jesus) 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되었으나 이해되지는 못했다. 셋째 천사의 기별에 속한 그 무엇이 예수 믿음을 구성하는가?…우리를 충분히, 완전히, 전체적으로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예수 믿음(the faith of Jesus.)이다.” (가려뽑은 기별 3권 172.3)
* “예수님이 우리 믿음의 참된 기초이시기 때문에, 예수의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함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믿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교과, 목요일, 다섯 번째 문단).
<결론>
“하나님은 그분과의 관계의 기초가 되는 믿음의 분량을 각 사람에게 주신다. 우리 믿음의 시여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위해 믿음의 능력을 보여 주셨다. 우리의 믿음이 작을지라도, 눈물로 간구하며 온전히 맡기는 마음으로 나아올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렘 31:2-4, 9, 11, 12 참조). 그분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더 이상 넘어지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평안을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완전한 모본이시며 예수의 믿음을 가지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게 할 것이다.” — 교과, 금요일, 네 번째 문단요약-
<<9>> 핵심사항 7가지 정리
(1) 표적을 구하는 불신과 온전한 신뢰의 대조 (마가복음 8:11, 12) :
바리새인들은 이미 수많은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표적을 거절하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끊임없는 시각적 증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타난 하나님의 품성과 말씀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2) 큰 믿음의 소유자들: 이방인들의 겸손과 신뢰 (마태복음 15:21~28, 누가복음 7:1~10) :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신에 빠졌으나, 가나안 여인과 로마 백부장은 예수님의 권능과 자비를 온전히 신뢰했습니다. 백부장은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고 고백하여 예수님께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는 극찬을 받았습니다.
* 화잇 부인의 글 참조: 백부장은 예수님을 단순히 기적을 행하는 분이 아니라, 온 우주의 질병과 권세를 다스리는 거룩한 분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백부장인 이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눈이 멀어 보지 못했던 진리를 이해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식별하였다. (시대의 소망 317.3, DA 317.3)
(3) 믿음은 감정이 아닌 행동하는 의지 (히브리서 11:1) :믿음은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Feeling)이 아닙니다. 감정이 메마르고 상황이 어두울지라도 영적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순간일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기로 선택하는 '의지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진리임을 인정하고 그분께 나의 삶을 맡기기로 선택하는 '의지의 행위'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은 감정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바랐기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전진했습니다.
* 화잇 부인의 글 참조: > “믿음과 감정을 혼동하지 말라. 그것은 뚜렷하게 구별된다. 믿음은 우리가 행사해야 할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언제나 발휘해야 한다. 믿어라. 믿어라. 그대의 믿음으로 축복을 붙들어야 한다. 그것은 그대의 것이다. 그대의 감정은 이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믿음이 그대의 마음에 축복을 가져다 줌으로 그대가 그 축복을 즐거워하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 아니고 감정이다.”(교회증언 1권,167)
* “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 특별히 은밀한 기도를 너무나 게을리하는 것을 자주 보아 왔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행사할 특권이자 의무인 믿음을 활용하지 아니하고 믿음만이 가져다 줄수 있는 느낌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느낌은 믿음이 아니다. 둘은 명확하게 구별된다. 믿음은 우리가 활용하는 것이나 유쾌한 느낌과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살아있는 믿음의 통로를 통하여 영혼에 이르러 오지만 믿음은 그것을 활용하는 데 달려 있다. (초기문집 72.1, EW 72.1)
* 믿음과 감정은 동과 서가 먼 것같이 서로 구별된다. 믿음은 감정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해야지 감정으로 행해서는 안 된다. 사단은 감정의 요동을 통해 우리를 흔들려 하지만, 믿음은 굳건한 기초 위에 서 있다.
(4)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에베소서 2:8, 로마서 12:3): 성경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은혜의 분량에 반응할 때 성령께서 믿음을 선물로 선물해 주십니다.
(5) 마지막 성도들의 특징: '예수의 믿음' (요한계시록 14:12)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의 남은 무리의 특징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또는 예수님이 가지셨던 믿음)"을 지키는(keep)자 라고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교리적 지식을 넘어, 예수께서 지상 생애 동안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셨던 '그분의 믿음의 품성'을 우리도 소유해야함을 의미합니다.
(6)우리가 믿기 전, '예수님의 신실하심'이 먼저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faith in Jesus)을 갖기 전에, 예수님의 믿음(the faith of Jesus)—즉, 구약 성경이 묘사하는 '예수님의 신실하심(faithfulness)'이 먼저 존재했습니다.
* 예레미야의 예 (예레미야애가 3장 배경): 선지자 예레미야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 국가가 점령당하고 파멸해 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약속의 땅 이스라엘의 밭을 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최고의 신뢰였습니다.
*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심 (로마서 3장 & 창세기 3장 배경):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먼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먼저 찾아오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왜일까요? 사탄에게 속아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인류가 '진리'를 보게 되면 반드시 마음을 돌이킬 것이라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신뢰)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은 대적의 영토 한복판에서 우리의 영혼이라는 '땅'을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인간에게 분량에 맞는 믿음을 선물로 주셨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믿음'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계시록 14:12은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Keep)' 한다고 강력하게 선언합니다.
* 얻으려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 우리가 마귀와 육신과 세상에 맞서 싸우는 엄청난 영적 전쟁은, 우리를 교묘히 비껴가는 구원을 어떻게든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중 한 사람으로서', '우리를 위해' 이미 성취해 놓으신 완벽한 구원을 '지키기 위한' 싸움입니다.
(7)재림교회 역사와 '예수님의 믿음'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역사를 연구해 보면, 1888년 미니애폴리스 총회 이후 1890년대에 이르러 '예수님의 믿음'과 '셋째 천사의 기별'에 대한 이해가 교회 안에서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전까지 교회는 율법을 강조하는 데 치우쳐 있었기에, 복음적 강조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포되어 왔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같은 중요성을 가진 것으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교인들에 의하여 선포되어 오지 못했다. 율법과 복음은 함께 나아간다. 나는 이 주제를 완전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다.“ (가려뽑은 기별 3 172.2, 3SM 172.2)
<<10>>삶의 교훈요약 및 적용
(1)표적보다 말씀을 앞세우십시오: 눈에 보이는 특별한 응답이나 기적적인 표적에 신앙의 기반을 두지 말고, 변함없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 위에 믿음의 닻을 내려야 합니다.
(2)감정에 속지 마십시오: 기도를 마친 후 마음의 평안이나 뜨거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셨음을 의지적으로 확신하고 신뢰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3)겸손함이 큰 믿음을 낳습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주님의 부스러기 은혜라도 구하는 겸손한 심령에 하나님의 크신 치유와 기적이 임합니다.
(4)’예수의 믿음'을 구하십시오: 십자가의 극한 고통 속에서도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고백하신 예수님의 절대적 신뢰가 매일 우리의 품성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입증된 '예수님의 믿음' (마태복음 26:36-42) :
히브리서 11장에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누구의 믿음도 예수님의 믿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겟세마네의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감정'이 끊어지고 하나님께 버림받는 듯한 공포 속에서도 오직 아버지를 향한 '완전한 신뢰와 순종의 믿음'으로 십자가 잔을 마시기로 선택하셨습니다.
*남은자손이 마지막때에 환란시에 가져야 될 전적인 신뢰와 순종의 믿음이 바로 예수님의 믿음입니다.
<<11>> 묵상하기 : 믿음이란?
히브리서 11장의 영웅들의 믿음의 대비( Contrast)?
아벨은 믿음때문에 죽었다. (믿음없이 순종치 아니한 가인에 의해서.)
그러나 에녹은 믿음으로 동행하였으며 죽지 않고 살았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갈바를 알지못한채 고향을 떠나야했으나 노아는 믿음으로 떠나지않고 120년동안 방주를 지으며 한곳에 머물렀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믿음으로 아이를 가졌다. 그러나 이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바쳐야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아벨은 믿음을 가졌으나 죽임을 당했으며 에녹은 믿음을 가졌으나 살았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떠나야했고. 노아는 믿음으로 머물러야했다.
모세는 믿음으로 출애굽해야 했으나 요셉은 믿음으로 애굽에 살아야만 했다
믿음은 어디에서 살든지 죽든지. 떠나야하던지 머물러야 하던지 하나님을 신뢰하는것이다..
아이가 있든지 없든지, 자녀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던지 늘 하나님을 신뢰하라.
재물이 풍족하던지 빈곤하던지 하나님을 신뢰하라.
히브리서 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11: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히브리서 11장이 전하는 믿음이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라는것이다.
< 믿음 훈련 (마태복음 15:21–28 읽기)>
* 원칙 1: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이미 들으셨고, 응답하셨거나 응답하실 것처럼 기도하고 행동하십시오.
* 원칙 2: 여러분의 믿음의 '태도'나 현재 상황에 대해 염려하기를 멈추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전진하십시오.
* 원칙 3: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십시오. 비록 그 순종이 어려움(지위나 친구를 잃는 등)을 초래할지라도(특히 그럴 때일수록) 순종하십시오.
<<12>> 교사를 위한 질문제언
(1)[이해를 위한 질문] -바리새인들이 구한 '표적'과 백부장이 보여준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신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삶 속에서 은연중에 어떤 표적들을 요구하고 있지는 않나요?
(2)[경험을 나누는 질문] -나의 영적 감정(예: 낙심, 불안, 무감각)이 바닥을 쳤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 승리했던 경험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3) [삶에 적용하는 질문] 요한계시록 14:12에 등장하는 '예수의 믿음'을 이번 한 주간 나의 가정, 직장, 혹은 시련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4)[나눔]하나님앞에서 겸손한 믿음 이란 무엇인가? 실제적 삶에서 겸손한 믿음의 모습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5) 오늘 배운 내용 중 나의 신앙생활에 가장 큰 힘이 되었던 한 문장이나 구절을 공유하고, 그 이유를 나누며 마칩니다.
(결심/적용)- 히11:6-
“주님, 믿음이 없이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제가 지금 주님께 나아가오니, 주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주님을 간절히 찾는 자들에게 반드시 상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내 안에 주님의 믿음을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소그룹 안교반 구성원 모두가 눈에 보이는 환경을 넘어,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참된 '큰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활기차고 은혜로운 교과 토의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끝—
(오늘도 긴글 끝까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복 주실 거에요^^
-기도의 동산, 말씀의 동산, 영성회복의 동산, 재림연수원에서, 박정택(CT. Park) 드림-)
**바쁘신분들을 위하여 위의 긴 주해를 A4한장 요약본으로 해서 첨부합니다.^^
[A4 요약본] 2026년 2기 8과: 믿음 가지기 (Having Faith). By CT. Park
기억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대주제 연결: 하나님과 함께 자라가는 삶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함)
1. 개요 (문맥 및 배경)
* 대주제의 이정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정체되지 않고 '성장'하기 위해 결코 빠질 수 없는 핵심 원동력이 바로 '믿음(Faith)'입니다.
* 성경적·신학적 문맥: 본과는 눈에 보이는 증거를 구한 바리새인의 '표적 요구'(마 8장)와, 눈에 보이지 않는 권위와 품성을 신뢰한 이방인(가나안 여인, 백부장)의 '온전한 신뢰'를 극적으로 대조합니다.
* 구조적 연합: 믿음의 정의(히 11:1)는 역사의 시작인 '천지창조'와 역사의 끝인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거대한 두 축 위에 세워져 있으며, 이는 성경 전체의 정경 구조(창세기~요한계시록)와 완벽히 일치합니다.
* 핵심 전제: 도입 스토리(셔츠 한 장뿐인 행복한 남자)가 보여주듯, 믿음은 우리 내면의 본질이나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2. 핵심 통찰 및 키포인트
① 표적(Sign)과 믿음의 올바른 관계
* 표적의 한계: 표적은 이미 있는 믿음을 격려할 수는 있으나, 불신을 회개로 바꾸거나 믿음의 기초를 놓지는 못합니다(사탄의 광야 시험).
* 동기의 구별: 하나님께 증거를 대라고 협박하는 불신의 태도와,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확증하려는 신뢰의 태도를 구별해야 합니다. 믿음은 표적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 위에 세워집니다.
② 아브람의 믿음과 '의(Righteousness)'
* 관계적 신뢰: '믿었다(헤에민)'는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견고함'을 뜻하는 어근('아만')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관계적 행동입니다.
* 선물로서의 의: 인간의 행위를 계산하여 자격을 논하던 고대 이집트 신앙과 달리, 성경의 의는 자신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와 은혜를 기꺼이 신뢰하는 태도에 주어지는 신성한 선물입니다.
③ 감정(Feeling)에 속지 않는 훈련
* 감정과 믿음의 구별: 감정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웅장한 환경에서 느끼는 영적 분위기와 참된 믿음은 다릅니다.
* 의지적 선택: 참된 믿음은 깊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지성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기로 선택하는 '의지의 행위'입니다. 믿음이 감정의 고삐를 쥐고 주도권을 잡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④ 마지막 시대 성도와 '예수의 믿음'
* 율법과 복음의 융합: 요한계시록 14:12의 남은 무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킵니다. 이는 예수님을 믿는 교리적 지식을 넘어, 예수께서 지상 생애(겟세마네) 동안 아버지 하나님께 보여주셨던 그 완전한 신뢰의 품성을 우리도 소유하는 것입니다.
* 이미 이룬 구원을 지키는 싸움: 우리의 영적 전쟁은 구원을 얻어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성취해 놓으신 완벽한 구원을 끝까지 '지키기(Keep) 위한' 싸움입니다.
3. 실천을 위한 적용
* [표적이나 감정보다 말씀 우선] 눈에 보이는 기적이나 특별한 영적 응답보다 변함없는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신뢰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 [의지적 확신] 기도를 마친 후 마음에 즉각적인 평안이나 뜨거운 감정적 변화가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미 들으셨음을 믿고 일상으로 나아가십시오.
* [솔직한 쏟아냄] 믿음이 부족하거나 의심의 안개가 걷히지 않을 때 숨기지 말고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고 주님 앞에 솔직한 눈물로 의지하십시오.
* [끝까지 지키기]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살든지 죽든지, 떠나든지 머무르든지, 재물이 풍족하든지 빈곤하든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순종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4. 토의를 위한 질문
Q1. [이해] 바리새인들이 요구한 '표적'과 로마 백부장이 보여준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신뢰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은연중에 어떤 표적을 요구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나요?
Q2. [경험] 나의 영적 감정(낙심, 불안, 영적 무감각)이 바닥을 쳤을 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적으로 붙잡아 승리했던 경험이 있다면 서로 나누어 봅시다.
Q3. [적용] 겟세마네의 어둠 속에서 입증된 '예수의 믿음(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신뢰와 순종)'을 이번 한 주간 나의 가정, 직장, 혹은 시련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 수 있겠습니까?
5. 결론
믿음은 내 안의 감정이나 눈앞의 상황에 기반하지 않고, 과거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셨으며 미래를 통제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과 약속 위에 서 있습니다. 겨자씨만 한 작은 분량이라도 온전히 주님께 맡기며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순수하게 정제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영적 강건함으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겟세마네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아버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셨던 예수님의 완벽한 믿음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 거할 때, 우리는 마지막 때의 환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남은 무리로 서게 될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히브리서 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