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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5부 - 악인을 죽지도 못하게 하며 영원히 고문하신다는 오해
지옥설의 주장만큼 하나님을 억울하시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지구에 범죄한 영혼이 한 사람만 있었다 할지라도 그 영혼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을 사랑의 하나님과,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꺼지지 않는 불에 영원히 지글지글 태우는 하나님이 과연 조화되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무섭고 두렵고 잔인한 분인가?
지옥설의 유래
지옥설은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의 기초를 놓은 2세기 말의 라틴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으로부터 유래하게 되었다. 그는 서방교회에 영원한 형벌, 곧 영원지옥설을 소개한 장본인으로, 그의 저서에서 자신의 가르침이 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에 근거했음을 천명했다. (Tertullian, On the Resurrection, chap. 3, Quoted in ANF, Vol. 3, 437)
이 터툴리안의 가르침은 어거스틴에 의하여 신학적 체계를 갖추었는데, 이 두 사람은 북아프리카 출신의 교부들로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이집트와 헬라의 영혼불멸 사상에 깊이 젖어 있었던 사람이었다. 후에 이러한 터툴리안과 어거스틴의 사상이 칼빈의 영혼불멸설과 영원지옥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연옥 신앙의 문을 연 어거스틴
어거스틴(Aulelius Augustinus; 354-430)은, 플라톤의 영혼불멸설과 터툴리안의 영원지옥설을 확증하는 한편, 개개인의 영혼의 운명은 죽는 즉시 결정됨과 내세에는 정결케 하는 고통이 있음이 절대로 확실하다 는 연옥의 개념을 가르쳤다.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중간 지점의 어떤 곳(Purgatory)으로 표현된 연옥은, 비록 천국과 영생을 위해 지금 잘 준비되지 못했다 해도 내세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또 다른 생(生)이 존재한다는 안도감을 주고, 인간의 노력(기도나 중보나 헌금) 에 의해 갈 수 있는 곳으로 설명하여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신자들을 위로 또는 기만하는 이설이 되고 있다.
영혼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은 어거스틴에게 전수되고, 그것은 또 다시 중세 가톨릭교회와 칼빈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결국 영혼문제와 지옥에 관한 값비싼 종교개혁은 무효가 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억울하심 풀어 드리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무한하신 능력으로 끝없는 우주의 세계를 운행하시지만, 한 마리 작은 참새도 떨어지지 않게 붙드시며, 우리 각 개인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다정하시고, 자상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어거스틴(Aulelius Augustinus; 354-430)은, 플라톤의 영혼불멸설과 터툴리안의 영원지옥설을 확증하는 한편, 개개인의 영혼의 운명은 죽는 즉시 결정됨과 내세에는 정결케 하는 고통이 있음이 절대로 확실하다 는 연옥의 개념을 가르쳤다. 천국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중간 지점의 어떤 곳(Purgatory)으로 표현된 연옥은, 비록 천국과 영생을 위해 지금 잘 준비되지 못했다 해도 내세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또 다른 생(生)이 존재한다는 안도감을 주고, 인간의 노력(기도나 중보나 헌금) 에 의해 갈 수 있는 곳으로 설명하여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는 신자들을 위로 또는 기만하는 이설이 되고 있다.
영혼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사상은 어거스틴에게 전수되고, 그것은 또 다시 중세 가톨릭교회와 칼빈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결국 영혼문제와 지옥에 관한 값비싼 종교개혁은 무효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무한하신 능력으로 끝없는 우주의 세계를 운행하시지만, 한 마리 작은 참새도 떨어지지 않게 붙드시며, 우리 각 개인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는 다정하시고, 자상하시고, 사랑과 자비가 한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 흑암의 구름으로 자신을 감추시고 십자가 곁에서 아들 하나님과 함께 고통을 당하신 하나님, 집 나간 탕자를 기다리듯 오랜 세월 동안 죄인을 참으시고 무한히 기다리시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얼마나 좋으신 분이신가!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지옥설로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지옥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훼손시킬 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를 왜곡하게 만들며,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한 분으로 나타나게 만든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70, 80년 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이 살면서 죄를 지었다고 해서, 영원한 지옥 불에 몇 천 년을, 아니 영원토록 지글지글 태우신다니! 지옥설은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운 형벌의 하나님으로 나타내는가!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정직한 영혼이 지옥에 관한 올바른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서 그릇된 오해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충성과 사랑과 희생의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타당한 이유 없이, 끝없는 고통 중에서 영원히 타고 있어야 하는 악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하여 의심과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으며, 악인들이 받는 형벌은 하나님의 잔인한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지옥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품성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받고 계신다. 지옥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결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지옥에 관한 질문과 답
1. 지옥은 있는가, 없는가?
답: 있다. 미래에 있을 것이지만, 영원히 불타는 지옥은 없다.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때에 지구는 참혹한 폐허가 되는데, 이 때 모든 의인은 공중으로 이끌려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지만, 무덤 속에 있던 죽은 악인들은 의인들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덤 속에 있을 것이며, 재림의 광경을 살아서 지켜볼 살아있던 악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광채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황폐된 이 땅 위에는 악인들의 시체들만 뒹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을 미혹하던 사단은 폐허가 된 이 지구에 갇혀서 천 년을 지내게 될 것이다. (계 20:1~3참조)
2. 그렇다면 지옥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가?
답: 성경은 이 지구에 결박되어 있던 사단이, 천 년이 끝나면...그의 감옥에서 풀려나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가서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일으키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땅의 넓은 데로 올라가서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도성을 포위하니,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더라. (계 20:7~9절)고 말하는데, 그 때에 이 땅이 불타는 지옥이 되는 것이다. 천년기가 끝나면서 마귀가 천사의 결박으로부터 다시 풀려나는 때에, 모든 악인이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나온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5절)
이 때, 사단은 부활한 악인들을 한 곳으로 끌어 모은 다음,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 예루살렘 도성을 포위하여 최후의 반격을 가한다. 사단을 선두로 해서 모든 악인이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려고 할 때,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 리게 되는데(9절),
바로 이것이 부활한 악인들에게 죄의 대가로서 주어지는 최후의 유황불 형벌이며 이것이 지옥인 것이다. 그 때 모든 죄의 원흉인 사단 역시 유황불의 형벌 속에서 불타게 된다.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대한 오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에 나오는 꺼지지 않는 불 에 대하여 질문한다. 성경 말씀 중에서 영원한 지옥 불 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는 구절들을 찾아 연구해 보자.
1. 영원한 멸망의 형벌의 의미 -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8~9) 여기에 쓰인 표현은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의 결과가 영원토록 유지되는 것, 악인의 생명이 영원토록 없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형벌의 결과로서 영원한 멸망, 즉 영원히 멸망되어 완전하게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2. 세세토록, 영원토록의 의미 -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계 20:10) 아마 가장 쉽게 오해 할 수 있는 지옥에 관한 표현은, 세세토록 (Forever and ever) 이란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러한 표현들이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진정한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성경 전체를 조사해보면, 영원, 또는 세세토록 이란 말이 57번 나오는데, 이 말이 언제나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사야는 세세토록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 완전한 멸망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불과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는 곳에서 짐승과 새는 살고 있다고 기록하지 않았는가?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 붙는 역청이 되며 낮에나 밤에나 꺼지지 않고 그 연기가 끊임없이 떠오를 것이며 세세에 황무하여 그리로 지날 자가 영영히 없겠고 당아와 고슴도치가 그 땅을 차지하며 부엉이와 까마귀가 거기 거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혼란의 줄과 공허의 추를 에돔에 베푸실 것인즉. (사 34:9~1) 몇 가지 예를 살펴보도록 하자.
A. 영영히 섬기는 노예 -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노예 법에는, 노예가 죽기까지 평생토록 주인을 섬기도록 규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것은 송곳으로 귀를 뚫고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는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 5:6) 노예가 영원토록 주인을 섬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여기서 영영히 (Forever)란 말은 끝이 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의 생명이 마쳐질 때까지 주인을 섬기라는 뜻이다.
B. 사무엘은 영원히 살았는가? -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나는 그녀의 아들인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에 데리고 가서 거기서 영영히 있게 하였다. (삼상 1:22) 그러나 이어지는 28절에서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린다. 고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영원이란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무한정한 시간을 뜻하지만, 성경에서는, 어떤 사건이 완전히 마쳐질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할 수 있다.
C. 예루살렘 성은 현재 불타고 있는가? -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렘 17:27)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순종치 아니함으로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이 꺼지지 않을 불로 삼킴을 당할 것을 예언하였으며, 그 성이 타서 재가 될 것을 예언하였다. (대하 36:19~21)
지금 이 순간에도 예루살렘 궁전이 불에 타고 있는가? 그러므로 성경에서 꺼지지 않는다 라는 표현은, 결코 꺼지지 않고 영원토록 탄다는 뜻이 아니고, 그 불은 아무도 끌 수 없으며, 그 불이 태우는 대상들이 완전히 재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탄다는 뜻이다. 지옥 불은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이며, 한 번 불 붙으면 마귀와 악인들을 완전히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때까지 타게 될 것이다.
D. 소돔과 고모라는 아직도 영원한 불로 타고 있는가? - 유다서 7절에는 영원한 불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만일 소돔 성이 영원한 불의 형벌 을 받고 있다면, 지금도 소돔성은 불타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원한 불의 의미는 영원토록 타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소돔 성을 재가 되게 했던 그 영원한 불 은 악인들에게 마지막으로 가해질 하나의 표본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영원히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서 없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것과 똑같은 종류의 불이 악인들을 화염으로 태우게 될 것인데, 바로 그것이 영원한 불이 될 것이다.사도 베드로는 소돔과 고모라의 영원한 멸망을 재가 되었다는 말씀으로 표현하여 주셨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벧후 2:6)
지옥 이라고 잘못 번역된 원어 4가지
1. 구약성경에서 음부로 번역된 스올
구약성경에 65번 나오는 Sheol(스올) 이라는 히브리어는 보이지 않는 세계 (The unseen world)를 뜻하는 말인데, 한글 성경에는 주로 음부 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어서, 저승 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마치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처럼 느껴진다. 17세기에 번역된 흠정역 영어성경을 보면, 번역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3번은 구덩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연구를 거치는 동안, 지옥 으로 번역된 스올 이 문맥과 전체적인 의미에 맞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져 새국제역(NIV)은 지옥 대신 무덤 으로 번역함으로써 잘못된 번역을 수정하였다.
2. 신약성경에서 지옥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3가지 신약성경에는 지옥(Hell)으로 번역된 말이 23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0번은 하데스 (Hades), 12번은 게헨나 (Gehenna), 그리고 나머지 1번은 타르타루스 (Tartarus)라는 헬라어가 지옥으로 번역되었다.
A. 신약성경에서의 음부인 하데스 - 하데스는 구약성경의 스올에 해당하는 말이다. 소아시아의 무덤에 있는 묘비를 보면, 지금도 묘비 위에 기록된 ooo의 무덤 이라는 글로 하데스라는 단어가 무덤 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B. 어두운 구덩이 타르타루스 - 지옥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타르타루스의 원래의 의미는, 어두운 구덩이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루스)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매. (벧후 2:4) 이와 같은 단어가 유다서에서는 흑암 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타르타루스, A dark 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셨으며. (유다서 6절) 참고로, 범죄한 악한 천사들을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놓은 이 흑암의 구덩이는 바로 지구를 의미한다. (계 12:7~9, 20:1~3)
C. 신약성경의 지옥 게헨나 - 신약성경에서 게헨나(Gehenna)는 12번 지옥 이란 말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는 예수께서 친히 사용하셨던 특이한 표현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8) 그런데 여기 나오는 게헨나는 지옥이 아니라 지명이다.
È 게헨나는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 (Ge)와 인명인 힌놈 (Hinnom)이 합성되어 생긴 힌놈의 골짜기 란 뜻의 지명인데,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그곳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사용되는 곳이었는데, 그 골짜기에는 항상 처형당한 죄인의 시체와 죽은 동물의 시체와 쓰레기가 타고 있었기 때문에, 뿌연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타기 위해 쌓인 쓰레기 속에는 구더기들이 들끓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와 죽은 시체를 태우는 불길이 밤낮 타오르던 게헨나(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시면서, 마지막 심판 날에 악인들을 태울 불길을 영영한 불 로 표현하셨던 것이다. (마 25:41) 영영히 불타는 지옥을 만들지 않으신 사랑의 하나님은 얼마나 공의로운 분이신가! (지옥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62호를 참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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