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화가의 그림이라는데 국민학생이 그린 것 같다고 거시기했던 그림이 훗날 눈에 들어올 때, 유명 교향곡이라는데 이렇게 지루한 음악이 유명하다고? 하면서 거시기했던 곡이 훗날 귀에 들어와서 당황할 때가 있다.
그 하나는 감동이요 다른 하나는 '그때는 왜 못 느꼈지?'하는 창피함이기도 하다.
심지어 청소년 때부터 즐겨 듣던 7080노래에서 수십년만에 새로운 소리, 새로운 음악적 규칙이 들렸을 때의 그 당황함이란 흥분보다 창피함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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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 희열감은 누구한테 설명할 수도, 타인의 공감을 바랄 수도 없다.
공부 쪽에 비유하면 어려운 수학문제와 몇시간을 씨름하다가 풀었을 때 혹은 공부하다가 어떤 규칙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분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왜냐하면 예체능의 감흥은 지식의 이해와는 달리 머리(생각)가 아니라 즉각적인 몸과 마음의 반응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랑에 빠졌을 때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주체할 수 없는 심신의 변화 혹은 깨달음의 세계와 더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藝를 道와 비슷하다고 했는지 모른다.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읽었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이 느꼈던 감동을 느꼈다고 할 수 있을까?
타인이 먹어본 음식 맛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고 해서 내가 먹은 것처럼 내 혀가 그 맛을 느낄 수는 없는 것과 같다.
축구 교본을 읽거나 작전을 이해하는 것과 내가 축구를 손흥민처럼 잘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마치 서울대 갈려면 공부를 잘해야 된다는 것을 아는 것과 내가 서울대 들어가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처럼....
일제 강점기때 간송이 도자기 한 점을 보고 얼마나 흥분했으면 자기 재산을 털어 현재 시가 강남 아파트 18채 값을 지불하고 손에 넣었겠는가?
그것은 한 개인의 우리 문화재에 대한 의무감? 같은 것 이전에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과 그 아름다움에 미쳐 잠못 이루는 간송의 감성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 그 때 머리로 주판알을 튀겼을리 만무하다.
그와 반대로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의 물, 불 안가리는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사랑에 빠져보지 못한 사람은(유전자적으로 사랑에 빠지지 못하는 사람은) 그런 감정을 점잖치 못하다고, 미쳤다고 폄훼할 것이다.ㅎ
어떻게 사랑에 빠진 마음이 재처럼 차분할 수 있고, 어떻게 축구를 점잖게 할 수 있단 말인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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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창피함이란, 어떤 것이 숨겨져 있어서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다 드러나 있는데도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창피함이다.
에피소드 하나.....
고대에도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무슨 큰 거시기나 하는 양 감추거나 가오다시 하는 유전자가 있었나 보다.
부처 당시 출가한 수행자(비구)가 나름 열심히 수행을 하는데도 진척이 없자 의심이 일어 부처한테 여쭈었다.
비구: 혹시 대중한테는 알려주지 않고 부처님만 비밀리에 알고 있는 수행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열심히 수행을 해도 진척이 없습니다.
부처: 나는 안팎이 다르지 않게 남김없이 법을 설하였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너희들한테 숨김없이 다 펼쳐보였다.
나는 손에 쥐고 너희들한테 펼쳐 보이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미 세상은 내 앞에 모든 것을 펼쳐 보여주고 있으나 그것을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은 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나무아멘샬라~
첫댓글 당근이지~라. 느낌은 즉각적은 감정의 순발력이지라~우. 우리 흥민이 골 넣는 것 보면 엄청난 그 감각. 무성의 한 순간 컷도 송흥민과 동급!
우~ 씨
제목에 낚였어!
ㅋㅋㅋ... 무성스럽다.
깨달음의 순간에 느끼는 희열은 느껴본 사람만 알지.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