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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게시판 한국 임진왜란 이후 이렇게 됐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견환 추천 1 조회 325 25.01.17 21:46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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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5.01.17 22:00

    첫댓글 제가 예전에 대학교수님한테 들은 소리입니다.

    임란후 조선이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야 했다고.

    신 세력도 신 사상등도 없는데 세운들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 작성자 25.01.17 22:04

    동의합니다. 제가 본문에서 얘기한 게 그거 때문입니다. 그 분은 조선이 맘에 안 드셔서 하신 말이겠지만 바꾼다고 끝이 아니니까요.

  • 25.01.17 22:07

    @견환 왕조의 교체를 보면 그 세력을 뒷받침할 기반(고려는 패서지역 호족들.조선은 군부나 정도전같은 일부 지식인들)라든가 사상,가치관등이 필요한데(조선의 성리학등과 같은.)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 해당되는게 아무것도 없는데다 이후에도 생기지를 않았는데 무슨 신왕조 건국...

    제가 예전에 여기다 교수님한테 말듣고 역게에 글쓴게 생각나네요.

    남아있을겁니다

  • 25.01.17 22:25

    냉정히 생각해보면 외부 충격 없이는 이미 수 세기에 걸쳐왔듯 그냥 순환론적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죠. 조선이야 말할 것도 없고, 옆동네 중국도 서구와의 접촉이 아니었다면 신해혁명 대신에 그냥 또 역성혁명이나 일어나고 말았을 것이며, 일본도 새 막부만 세워지고 끝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차라리 그나마 조선이 유지가 되어 정치적으로는 안정되었으니 피해 복구에만 전념하면서 후기에 들어 자생적으로 시장경제가 형성되어가기 시작하는 현상이라도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죠.

  • 작성자 25.01.17 22:29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25.01.18 02:06

    조선의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시기는 선조의 임진왜란이 아니라 인조의 병자호란 이후 입니다. 선조- 광해군 시기의 조선은 초중기의 모습을 많이 복원을 하였고 또한 전통적이 복구에 많은 힘을 쓴 시기며 노비들을 많이 면천해 백성들의 수를 늘리고 황폐화된 경제를 많이 복원을 시킨 시기입니다. 다만 광해군의 말기 실정으로 인해 민심이반과 조정은 분란하고 당시의 유교이념이 효를 정면으로 부정했기에 인조반정이 일어난 것인데 당시의 반정공신들의 권세로 인조의 왕권은 처음부터 그다지 강하지 않았으며 주전론의 대두을 막지 못했다는 것에 있겠죠. 물론 광해군이라고 해서 조청전쟁이 없을 순 없겠죠. 다만 허무하게 청나라에게 머리를 숙이고 들어 가는 수모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이후 조선의 소중화의 사상으로 유교적 이념을 맹목화 하지도 않았을 가능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 25.01.18 02:10

    임란후 조선은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을 명나라는 민란과 청의 북경의 입성을 일본은 도요토미가와 도쿠가와가의 한판 승부인 세기하라 전투가 일어난 시기로 삼국다 자의든 타의든 정권교체나 이념의 교체가 일어나 시기입니다. 그리고 당시 15~17세긴 소빙기헤 해당 해 잦은 흉작과 전염병 창궐로 삼국이 다 고통을 받았든 시기 입니다. 조선후기의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의 모습은 호란후 현종 숙종의 두번의 대기근이 큰 목을 했다고 보면 됩니다.

  • 작성자 25.01.18 17:01

    추가 설명 감사드립니다.

    인조의 외치 실패 때문에 구관이 명관이란 인식에 따라 광해군이 나았다고 보는 분들이 계시지만, 호란 자체는 인조의 인사관리 능력 부족과 별개로 청나라의 의지에 따라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라 광해군 시절부터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광해군이 말년에 말씀대로 궁전 토목공사 및 신하들 관리 실패 때문에 인심을 잃었다는 점인데(임해군과 인목대비의 경우 본인들 행실부터 문제라서 광해군도 명분은 있음. 영창대군은 존재 자체가 광해 입장에선 위협이 됨), 아시다시피 인조의 조선이 대비를 한다고 했음에도 실전에서 그게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청의 전략에 말려들고 말았죠.

    갠적으론 광해군이 폐위되지 않았어도 조선이 청을 상대로 잘 싸울 수 있을지부터 확신이 서질 않네요. 광해군이 옥좌를 지키려면 인조반정이 능양군의 난으로 끝났거나, 일어나지 않도록 광해군이 관리했어야 하는데 거기서부터는 광해군이 반정 여부를 떠나 호란 이전에 죽었다 칠 경우 왕이 됐을 세자 이지의 능력부터 if라 예상이 안 되네요.

  • 25.01.19 17:56

    @견환 광해군을 높이 평가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이념이 수구화 되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그리고 현대 조선시대의 인식은 헌종-숙종 이후의 모습입니다. 조선후기를 가르는 사건은 임진왜란이 아니라. 병자호란이고 이로 인한 이념적 보수화가 만들어낸 것이죠. 전 그것을 지적 하고 싶었지 광해군의 if 놀이를 하고 싶진 않습니다.

  • 작성자 25.01.19 23:03

    @大明宮 동의합니다. 호란 패배 이후에 조선이 이념적으로 경직된 게 구한말까지 이어졌으니 말씀대로 그 부분이 중요합니다. 제가 놓친 걸 지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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