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사건]
1954년 9월 26일
일본 여객선 토야마루호, 쓰가루해협에서 침몰… 1172명 사망
토야마루호는 일본에서 운행하던 기차 수송 연락선이었다. 홋카이도에 있는 토야코라는 호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2차 대전 중 혼슈와 홋카이도를 연결하는 연락선이 모두 미군의 폭격으로 침몰되거나 항행 불능이 되어 여러 척의 연락선을 건조했는데, 토야마루도 그 중 한 척이었다. 4천톤급 선박으로 1947년에 만들어져 아오모리에서 홋카이도의 하코다테를 연결하는 여러 페리들 중 하나였다.
1954년 9월 26일 토야마루호는 아오모리에서 승객들과 철도차량 몇 량을 실어 쓰가루해협을 건너 하코다테에 도착했다. 그리고 혼슈로 내려갈 열차와 여러 승객들을 실어서 출항할 계획이었다.
문제는 그날 태풍이 쓰가루해협을 덮칠 예정이었다는 것. 그래서 오후 3시경 토야마루는 이날 운휴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비가 퍼붓고 파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오후 5시, 비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도 잦아들었다. 그러나 태풍의 눈 속에 하코다테가 들어가다보니 바람이 잠잠해지고 파도가 낮아진 것이었을 뿐, 태풍이 물러간 것은 아니었다. 이는 오후에 하코다테가 태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기상예보와도 딱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결국 출항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이때부터 태풍이 다시 강해져 하코다테 앞바다에 많은 비가 내렸고 바람과 파도도 강해졌다. 하지만 태풍이 물러갔다는 기상예보만 믿고 토야마루호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승객과 승무원 1,309명을 태우고 하코다테항을 떠나 아오모리로 항행을 개시한 토야마루호는 기상상태가 악화되자 하코다테 외항에 잠깐 정박해 바다의 상태를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닻을 떨어뜨렸지만 태풍으로 인해 빨라진 유속으로 인해 닻이 고정되지 않았다. 뒤이어 파도가 배를 강타했고, 갑판이 낮은 페리의 특성상 바닷물이 그대로 갑판을 넘어 엔진실까지 들어왔다. 결국 동력을 잃은 토야마루호는 3시간 넘게 하코다테항 일대를 표류했다.
22시 26분, 토야마루호는 SOS를 쳤지만 너무 늦었고, 단 17분 후인 22시 43분 침몰하고야 말았다. 타고 있던 승객과 승무원 1,309명 중 1,172명이 희생됐다. 사망자들 중에는 선거 유세를 위해 자신의 선거구로 갔던 유력 정치인을 비롯해 홋카이도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도 소수 있었다.
일본판 타이타닉의 대참사로 일본 사회는 그야말로 큰 충격을 받게되었다.
새로운 배를 건조하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대타로 세이칸 항로에 투입된 연락선은 부관연락선으로 투입되었던 게이후쿠마루였다. 게이후쿠마루는 1960년대까지 세이칸 항로에 투입되었고, 퇴역 후에는 하코다테에서 선상호텔로 재활용되다가 해체되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세이칸 터널의 굴착이 결정되었고, 1988년 터널이 완성되어 더이상 유사한 사고가 벌어질 일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오모리와 하코다테를 오가는 페리는 아직 남아있다.
[오늘의 인물]
1958년 9월 26일
최병우 기자 순직
대만의 진먼다오(金門島)는 중국 대륙으로부터 6km 밖에 떨어져 있지않은, 제주도의 10분의 1 크기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거리가 워낙 가깝다보니 중국은 1949년 중국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한 이래 늘 이 지역을 눈엣가시로 여겨왔다. 1949년에도 1만명이나 상륙시켰다가 대만군의 완강한 저항에 밀려 물러난 적이 있었다.
진먼다오가 세계적인 핫이슈로 떠오른 것은 1958년 8월 23일이었다. 이날부터 45일간 중국 본토에서 47만발의 폭탄이 날아와 이 지역을 초토화시켰기 때문이다. 미 제7함대까지 급파될 정도로 포격전이 치열한 이곳에 세계곳곳에서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9월 26일에도 일군의 기자들이 섬의 보급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상륙용 배(舟艇)를 타고 섬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배는 섬에 닿기도 전에 세찬 풍랑으로 전복됐고 배에 타고 있던 대만ㆍ일본 기자들은 바닷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실종된 것이다.
그 가운데는 최병우(崔秉宇) 한국일보 기자도 포함돼 있었다. 5년 전 조선일보 기자로 6·25 휴전협정 조인식에 참석, 한국의 운명이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순간을 기사로 아쉬워했던 이였다. 그는 언제나 현장을 중시했던 기자였다.
그 해, 오늘 무슨 일이... 총 41건
ㆍ2010년 · 2010 U-17 여자 월드컵 우승(FIFA 주관 국제대회 첫 우승)
ㆍ2009년 · 필리핀, 태풍 켓사나 피해
ㆍ2005년 · 청계천문화관 오픈
ㆍ2002년 · 세네갈 여객선 르 줄라호 침몰 사고
ㆍ2002년 · ‘개구리소년’ 유골, 대구 와룡산서 발견
ㆍ2000년 · 심권호 시드니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 획득으로 올림픽 2체급 석권
ㆍ1998년 · 제1회 방콕국제영화제서 장선우 감독의 `꽃잎`이 최고상 수상
ㆍ1997년 · 인도네시아 항공 에어버스 A300-B4기 수마트라 추락. 234명 사망
ㆍ1994년 · 선불카드 첫 선
ㆍ1993년 · 인공위성 `우리별 2호` 발사
ㆍ1990년 ·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사망
ㆍ1984년 · 영국-중공, 홍콩반환협정 가조인
ㆍ1982년 · 스즈키 젠코 일본 수상, 북경 방문
ㆍ1981년 · 등소평, 3차 국공합작 제의
ㆍ1978년 · 국산 유도탄 '백곰' 시험발사 성공
ㆍ1974년 ·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발족
ㆍ1962년 · 알제리아의회, 아메드 벤 벨라를 초대수상으로 선출
ㆍ1960년 · 전남매일신문 창간
ㆍ1960년 · 케네디ㆍ닉슨, TV토론
ㆍ1959년 · 보사부, 성병보균 조사결과 발표
ㆍ1958년 · 최병우 기자 순직
ㆍ1958년 · 버마, 쿠데타로 네윈장군 집권
ㆍ1953년 · 서독 재군비 선언
ㆍ1952년 · 미국의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 사망
ㆍ1950년 · 국군, 서울 탈환
ㆍ1949년 · 법원조직법 공포
ㆍ1949년 · 동서독, 1억5천만달러의 통상협정 체결
ㆍ1947년 · 소련, 한국에서의 미국-소련군 동시철수 제안
ㆍ1940년 · 발터 벤야민, 망명 실패로 자살
ㆍ1936년 ·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금본위제 폐기
ㆍ1930년 · 아르헨티나 우리부루 쿠데타
ㆍ1910년 · 친일단체 일진회 해체
ㆍ1908년 · 소설가 김정한 출생
ㆍ1907년 · 뉴질랜드, 독립해 영국자치령을 선언
ㆍ1901년 · 김재준 목사 출생
ㆍ1889년 ·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 출생
ㆍ1888년 · 모더니즘 운동을 주도한 영국의 시인 T.S.엘리엇 출생
ㆍ1877년 · 독일의 수학자 그라스만 사망 - 벡터 미적분학 발전
ㆍ1849년 · 조건반사 개념을 발전시킨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 출생
ㆍ1815년 · 신성동맹 체결(러시아ㆍ오스트리아ㆍ프로이센)
ㆍ1419년 · 조선, 정종 사망
[출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