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 해가 밝으면..
나른한 오후,
무등산 자락 밤실골에 아내를 내려주고 기다렸다.
파란 멍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침에 보았던 모습과 달랐다.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맑고 깊었다.
살랑이는 갈바람이 가로수 잎을 흔들 때 따가운 햇살이 쏟아졌다.
짙푸른 산 아래 하얀 아파트가 눈부시게 빛났다.
햇빛이 골목 구석구석을 환하게 비추었다.
빨래가 잘 마를 날씨였다.
고추잠자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았다.
참새들이 날갯짓할 때마다 은행이 떨어져 발길에 밟혔다.
골목에 독한 냄새가 퍼졌다.
노점서 해남 고구마, 서귀포 감귤, 거창 사과를 각각 만 원씩 팔았다.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머물렀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풍경이었다.
어제 선의 목소리 듣고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았다.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 축하금을 건네지도,
한정식을 대접하지도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멀리 있다는 핑계?
나이 들어 열정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일까?
기도하면 마음에 걸려 때늦은 글을 쓴다.
선아! 미안하다.
우리의 첫 만남은 삼십 년 전 무등산 풍암정 계곡이었다.
여섯 살! 머리숱이 많아 양쪽으로 곱게 땋은 머리가 복스럽고 예뻤다.
말도 잘하고 붙임성도 좋았다.
건강하고 힘이 넘쳐 가끔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졸업 앞두고 학교를 너보다 더 찾아갔던 일은 오래된 추억이 되었다.
그런 선이 결혼 6년 만에 귀한 딸을 품었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기다리고 기다리며 헬스로 몸을 만들고,
시험관 아기 시술까지 생각했었지.
뜻밖의 임신 소식!
기도의 응답으로 여겼지만 신묘막측한 일이었다.
‘목사님, 딸이래요! 먼저 알려드리는 거예요.’
‘난 딸이길 바랐어.
살림 밑천으로 엄마 친구처럼 지낼 것 같아 좋았어.
네 어린 시절처럼 예쁘겠다.
공주님! 기대가 커서 빨리 보고 싶다.’
‘목사님! 아들 같았는데 딸이라 너무 신기해요.
어쩐지 신 것이 맛있더라고요.’
임신 4개월!
이제 아기의 이목구비가 또렷해지고,
모든 조직과 세포와 신경 계통이 온전히 형성되도록 기도해야겠구나.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을 생각하면 얼마나 신비로울까?
초음파 영상에 꼬물꼬물 움직이는 아이, 볼수록 사랑스럽더라.
너도 그렇지!
엄마의 심장 소리 들으며 피와 영양을 공급받고,
은혜 가운데 자라 가는 아기!
생명을 지으신 하나님의 손길이 경이로울 뿐이지?
태아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량없는 은혜를 입고 있는 거야.
엄마 품 안에서 보호받으며 생명의 시간을 채우는 거겠지.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또 얼마나 벅차고 애틋할까?
금쪽같은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자.
하나님께서 품으시고 건강하게 지켜주시길 기도드리자.
엄마와 아기의 모든 순간을 주님 손에 맡기고 기쁨으로 걷자.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자라 세상에 태어나는 날까지~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도할게.
생명 샘 글을 읽고 눈물 흘렸다는 말!
선의 마음속에 순전함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마음 놓치지 않길 바란다.
속히 믿음의 가정 회복하여 명문 가문을 세우길 간구할게.
‘남편이랑 한바탕했어요! ’
그 문자에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에 있는 것과 세상 사람이 전부가 아니다.
사업을 일구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호의호식하며 살아도,
믿음이 없다면 마음 한구석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강산이개 본성난개(江山易改 本性難改)!
강산은 쉽게 변해도 사람의 본성은 고치기 어렵다는 말이다.
본성이 잇몸처럼 부드러워야지,
송곳처럼 뾰족해져서는 안 된다.
살아서 오백 년,
죽어서도 오백 년을 견딘 소나무처럼 하나님 향한 사랑을 이어가렴.
소나무 잎은 두 겹씩 붙어 홀로 떨어지지 않는다.
결혼 때 준 커플 성경 함께 읽으며 믿음의 힘을 길러라.
하나님을 사모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 가정의 약속으로 삼아라.
인생은 사랑하기에도 모자란 짧은 세월이다.
남편 이기려 하지 마라.
부부는 같은 편이기에 이겨도 별 의미가 없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져주고 기쁘게 여기면 된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
지적보다 칭찬하고, 날카로운 말보다 부드러운 말을 건네라.
한 걸음 늦추어 바라보고, 믿음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눠라.
남편은 아내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며 세워가라.
말씀 안에서 순종과 희생을 배우면 부부 사랑은 흐를수록 깊어진다.
멀리서 볼 때 좋아 보이던 사람도 함께 살면 허물이 많다.
싸움에서 이기려 하지 말고, 사랑에서 이겨라.
태중의 아기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찬양, 요게벳의 노래!
찾아 듣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생명은 인간의 계획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기다림도 은혜였고, 뜻밖의 임신도 은혜였다.
태중에서 꼬물꼬물 자라는 이 순간도 은혜 아닌 것이 없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사랑이 흐르고,
기도가 이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간다.
선아! 네가 품은 아기가 태어난 날까지 주님께서 지켜주시길 기도할게.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말이다.
첫 울음소리 듣는 날에 남편 바라보며,
‘생명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첫 찬양으로 감격의 눈물 드리길 바란다.
아무쪼록 다시 믿음의 샘물이 맑게 흐르길 구한다.
아내가 돌아와 조수석에 앉아 요플레와 박카스를 내밀었다.
말없이 마시고 집에 와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하늘이 열려 환한 빛이 내리는 날,
하늘처럼 넓은 마음으로 꿈과 소망도 활짝 피어나길 소원한다.
아내와 결혼식 다녀왔다.
주례 목사님께서 아내를 안해(안의 해)로 권면하여 새로웠다.
안의 해가 밝음은 남편 얼굴도 밝아지고,
아이와 이웃까지 따듯해 지리라.
그 빛 가운데 믿음이 오래오래 이어지길 구할게.
2026. 10. 3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