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이라 함은 우리말로 굴인데 영어를 쓰면 약간 유식해 보여서 그런지
대부분 터널로 쓰고 있다.
원래는 산이나 바다, 강 따위의 밑을 파서 만든 철도나 도로 따위의 통로를 말한다.
한강이나 부산 수영강 밑을 파서 지하철이 다니고 천성산 밑을 뚫어 KTX가 다닌다.
도료농 서식지를 파괴한답시고 모 스님이 데모를 주동하여 공시기간이 상당히 지연되기도 했다.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지금은 도로가 많이 건설되어 산악지대에는 터널이 많다.
터널공사도 기계화가 되어 상당히 빠른 시간에 완공된다.
부산에서도 구덕산 밑을 관통하는 구덕 터널이나 백양산 밑을 관통하는 백양터널,황령산 밑의 황령터널은 제법 길다.
이들 터널을 통과하려면 예전에는 동전 투입구에 동전을 던져 넣았으나 지금은 무료로 바뀌었다.
산악지역이 많은 노르웨이도 터널이 많고 터널을 파는 기계도 노르웨이제가 유명하다.
프랑스와 스위스에 걸쳐있는 알프스를 관통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 있기 전엔 노르웨이 터널이 가장 길었다.
내가 터널을 직접 걸어서 통과해 보기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입학식 전날 저녁이었다.
외갓집에 갔다가 이십리를 걸어 나와야 기차를 탈 수 있었는데 당시에는 시계가 없어 하늘의 해를 보고 대충
몇시쯤 됐을 것이라고 가늠하여 출발을 했는데 역에 도착하기 전에 아뿔사! 막차가 시커먼 연기를 퐁퐁 토해내며
출발해 버리는 게 아닌가. 이십리 길을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차는 떨어지고 날은 어두워지니 낭패였다.
내일이 바로 중학교 입학식이니 밤을 새우더라도 마산까지 가야 한다고 믿었다.
길을 모르므로 철길을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철길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얼마가지 않아 해는 서산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사방은 어스름이 서서히 몰려 오고 있었다. 철로를 따라 산골짜기를 올라갔더니 갑자기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아 섰다.
길도 없는 높은 산을 넘어려고 하니 엄두도 나지 않았다. 진퇴양난이었다.
죽어도 앞으로 가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호랑이 아가리처럼 시커멓게 벌리고 있는 터널을 향하여 한 발자욱 한 발자욱을
조심조심 떼어놓았다. 터널 밖에서는 주위가 어렴풋이 보였으나 터널 안으로 들어서니 캄캄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감으로 철로 침목 위로 발을 떼어놓는 수밖에 없었다. 천정에서는 차디찬 물방울이 목덜이 속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발자욱 소리가 터널 벽에 반사되어 귀전을 때렸다. 가차를 타고 지나면 금세 지나는 굴이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저 멀리 앞에 보이는 동전 크기만한 출구만 보고 무작정 걸었다. 침목에 발이 받쳐 넘어지기도 수십번, 결국은 출구를 빠져 나왔다.
다행인 것은 반대편에서 오는 기차가 없었던 것이었다.
지난 1997년 IMF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식솔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나갔다가 IMF사태를 맞아
월급이 반토막이 되면서 거지 같은 생활을 하면서 버텼다. 나 혼자였으면 당장 보따리를 싸고 말았을 것을
아이들 학교문제도 있고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귀국하기 전 아이들의 여름방학을 맞아 테트를 빌려 유럽으로 떠났다.
웨일즈의 카디프에서 출발하여 벨지움,프랑스,독일,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 나폴리 밑 폼페이와 소렌토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나폴리에서 모나코까지 고속도로를 가는 동안 아이들 보고 터널 갯수를 세어보라고 했더니 128개니
되는 것 같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전세계가 곤욕을 치루고 있다.
오죽 급했으면 자존심 센 트럼프가 문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의료장비 좀 지원해 줄 수 없냐고 했겠나.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을 통해서 전파가 되므로 퇴치하려면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 수밖에 없다.
증시가 폭락하자 각국에서는 경기부양책으로 막대한 자금을 풀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나다닐 수가 없으니
소비가 없고 기업들도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어 경제가 얼어붙었다. 코로나도 아직 기세가 꺾이지 않으니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참고 견디면 분명 출구는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