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보닛. 아무렇게나 턱 붙여놓은 커다란 라이트와 안개등. 번쩍거리는 대형 크롬 휠. 급격하게 치솟다 흘러내리는 조종석과 삼선슬리퍼같은 후미등. 이 차는 애초부터 몸단장과 꾸밈을 기대하지 않는다.
두껍고 육중한 문을 열고 차 내부에 자리잡아본다. 우뚝 치솟은 보닛이 더 멀게 느껴지고 시야를 방해한다. 후사경으로 비치는 공간도 비좁다. 꾸밈없는 내부 공간에는 그저 거대한 변속기만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드넓은 유리 천장이 푸른 하늘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당신이 어느 왁자지껄한 연극의 방청객으로 입장한다면 자리에 앉자마자 무엇을 할 것인가? 몸을 잔뜩 뒤로 뺀 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낄 것인가. 혹은 허리띠를 풀고 눈을 반짝이며 웃을 준비를 할 것인가. 그 어느쪽이든 나는 당신이 한번쯤 머스탱을 타보기를 바란다.
만약 당신이 전자라면, 머스탱은 확실히 못난 차다. 솜씨좋은 장인이 완성도 있게 가다듬은 곡선도 없고 뜨악할만한 가격표가 붙어있지도 않으며 첨단으로 무장한 실내와는 거리가 멀다. 안경을 고쳐쓰고 마력과 토크와 연비를 따져봐도 영 아니올시다. 그런 당신에게 이 마당쇠 돌쇠같은 차는 안중에도 없을리밖에. 주머니 사정이 얇으면 아쉬운대로 국산 다수결차를 타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독일산 디젤 세단을 고를테니까.
하지만 말이다, 나는 당신에게 권해주고 싶다. 가끔은 계산기를 던져두고 살아보는건 어떠냐고 말이다. 골치아픈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스로틀을 완전히 열어 자신이 가진 차량의 한계속도로 질주해본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가 떠올려보길 바란다. 그러고 나면 "그대는 이따금 그대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을 탐식" 해 보라던 소설의 한 구절을 금방 이해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후자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더 쉬워진다. 일단 반수동 시트에 앉아 뭉툭한 자동차키를 쑤셔넣고 시동을 걸어보라. 으르르릉. 낮고 묵직한 배기음과 그릉거리는 엔진음이 여과없이 실내로 유입된다. 아이들링은 이내 조용해지고 이 미국산 야생마는 호흡을 가다듬어 달릴 준비를 마친다. 음악을 틀어놓고 싶다. 이왕이면 빠르고 강력한 노래로, 그래, 린킨 파크나 레이디 가가 쯤이면 딱 좋겠다.
사물을 대할 때 긍정의 모습부터 찾는 당신은 머스탱에서 훨씬 더 많은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있다. 저속에서 풀 악셀을 밟으면 야생마는 으르렁거리며 달려나간다. 순식간에 시속 백킬로미터를 넘기고도 단숨에 제한속도에 도달한다. 그리고 이내 수긍하게 될 것이다, 왜 이 차량에 머스탱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종마나 경주마 혹은 준마 따위의 덜 오글거리는 이름도 아니고 하필 '야생마' 인지를. 녀석은 고속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당신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이놈의 일체형 후륜의 추종성은 정말이지 딱 '병맛'이며 제동력은 한없이 부족하다. 노면이 조금이라도 열악하고 커브가 연이어진다면 머스탱의 핸들을 처음 쥔 오늘이 바로 내 제삿날인가?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닐게다. 아 내가 미리 경고하지 않았던가, 이 녀석은 고삐풀린 망아지라고.
하지만 괜찮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조금 지나면 그 불안감이 점점 짜릿한 스릴로 바뀌며, 언제부터인가 저속에서 그릉거리며 튀어나가는 순간을 즐기고 기다리는 당신의 모습을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달리는 것처럼 달리기! 강력한 가속감과 사잇길 따윈 모르는 호쾌한 주행. 이게 바로 미국식 스포츠카다. 부모덕 좀 본 젊은 포르쉐 차주가 비웃으며 빠른 속도로 커브를 빠져나가면 어떤가. 나는 살아있는 것 같은 이 순간의 느낌이 좋고 너는 차 가격에서 오는 우월감이 좋은걸. 나는 애초부터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태어난 사람인걸.
오감을 모두 열어놓고도 모자라 육감에까지 의존하는 운전이 익숙해질 즈음이면, 이제 당신은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북적이는 차들로 아우성인 도심으로 돌아와서 바닥까지 떨어진 연료를 보충해주고 할인카드 영수증을 받는다. 밀린 자동차세와 지독하게 비싼 보험료 독촉전화를 받고 나면 육두문자가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젠장, 최고속도 180km/h 제한인 자동차에 대체 왜 스포츠카 보험료가 적용되냐고!
이상에서의 모든 단점들이 안중에도 없으면 당신은 머스탱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던가, 괜찮다. 신성일씨도 240만원짜리 집에 살면서 640만원짜리 머스탱을 타고다니지 않았는가! 따지고보면 카푸어의 역사는 꽤 유서깊은 것이다.
끝으로 이 땅의 모든 머스탱 유저들분께 고하며 쓸데없는 잡설을 마쳐야겠다. 남들이 당신 차의 백밀러가 접히지 않는다고, 후륜이 용달차에나 쓰이는 일체형 서스펜션이라고, 쓸데없이 기름만 퍼먹는 돼지라고 비웃으며 칼치기로 옆을 지나가도 기죽지 마라. 산은 산이요 머스탱은 머스탱이라던가, 어쨌든 오늘도 군자는 대로행이다. 아니지. "어흠! 마님, 지 돌쇠는 그저 곧은길로만 다니구만유!"
첫댓글 심심해서 포드 머스탱에 대한 잡글을 써보았습니다.
5.5세대 기준으로 쓰여진 글이오니 6세대분들께는 개인적으로 깊은 부러움과 존경을 표하는 바이옵니다 크흑
재미집니다~~ㅎ
후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흐흐
쇠주한잔한실래요? 멋찐글..
영광입니다 언제든 환영! ㅋㅋ
저는 전라도 광주입니다!
@망고(최윤규) 광주시군요 ㅎ
햐~~ 어찌 저의 마음을 저렇게 멋지게 쓰셧나요? 소설 작가 이신감요?
소설작가는 아니고 시정잡배입니다 ㅋ
요즘 정환씨 맘을 딱맟추신듯...돗자리 펴드려야 겠어요...ㅎ
이젠 좀 추억의 글이되어가는군요..ㅎㅎ
머슬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져 갈 뿐!
실내 단차까지 맘에듦+_+...깔끔하면 그게 독일차지 머슬카냐 하고
워 진짜 남자!
?아..
감동받았습니다........
아ㅠㅠ 감사합니다
ㅋㅋㅋ 소설이 이루어 지내요
ㅋㅋㅋ 소설 아니에요 잡설이래두요
요즘 이런 장문의글을(독서를 하지않는 저의기준) 내가읽고 내려가고 있다는걸 새삼 놀라지 않을수 없게 만드시다니...ㅎㅎ
ㅎㅎ 어렵거나 재미없을까봐 걱정했는데 한시름 놓였습니다
경지에 오르셨군요
6세대라고 그 혈통이 어디로 가겠읍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더욱 다듬어지고 담금질된 최신형 감성 자동차겠죠?
읽어 내려가면서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 지네요~
즐겁게 봐주셔서 무척 감사합니다 :)
와.감동이네요.^^
만쉐이!
우와
wow!
와우.... 울 MCK CAFE 역사상 최고의글 임. Mustang 에대한 정의 완결판.TV로치면, Ultra High Definition !!!!! 빡쑤 보냅니다!
강려칸 찬사 감사합니다 유후~!
머스탱의 사랑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 파이팅~!
흐흐 단점이 너무 많아서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머쉰입니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게 되지
참 편리한 동물....
그런데,
그나마 그거라도 기억되어 추억이 쌓이는 거겠지
오늘은 또 어떤 기억들이 내 곁을 드나들려나....
지금,
기억을 흐트러뜨린 머스탱 오마아쥬!
단, 하나도 놓치면 안될 것 같은 단편 시나리오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머스탱이여,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영원하라!
저도 머스탱이 좋아서 카푸어됐어요ㅎㅎ
후 남자의 으으리!! 남자라면 영원히 머스탱만을 사랑하으리!! 신형백마 부러우으리!!
와 글을 장말 맛갈나게 적으셨네요 직업이 소설가 래도 믿겠어요
ㅋㅋ 감사합니다. 직업은 카푸어 되겠습니다
정말 마음 깊은 곳까지 시원하게 해 주는 아주 흡족한 글이었습니다.
너무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