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시절 공동체*
강우근
바위였지만 시간이 지나 마모된
해변의 작은 모래알과 이야기 나누고 싶다
공룡의 뼈를 두고
한평생 말을 거는 고고학자가 사는 세계에서
같은 반 아이에게 별명을 지어주는 어린 시절처럼
우연히 생겨나는 담소는 어디에나 있지
지붕 위 고양이의 세계든
연주를 앞둔 음악가의 세계든
말하고 나면 나아지는 것
하늘 위에 떠다니는 구름 모양을 다르게 비유해보고
함께 비를 맞아보는 우리
낯선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 침대에는
늘 침묵을 깨는 사람이 있어
“간식 좀 드실래요?”
가방에서 초콜릿과 빵을 주섬주섬 꺼내 들고
하나둘씩 원탁에 둘러싸인 사람들의 아름다운 등
우리는 해안가를, 성벽을, 평원을 따라
누군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말을 걸고
(그가 설령 죽은 사람이더라도)
놀라는 순간이 언제까지나 이어진다
얼마나 많은 존재가
한 사람 안에 머물고 있는지
우리의 다양한 형체는
어떻게 각기 다른 음을 내는 악기로
기억되고 연주될 수 있는지
서로를 끌어당기는 암흑 물질이 있는 우주 속에서
자기 안의 악기를 꺼내며 대화를 나누는
밤의 공원
나무와 의자와 영혼들이 있어
* 최현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떠돌이 한 시절 공동체」 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