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석 보호소-02
A등급의 개체는 이른바 개념실장석으로 불리우며 이곳 보호소에서 가정으로 재분양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녀석들이다.
데스 데스웅~
철웅이 능숙하게 실장석 한마리를 들어 올렸다. 녀석은 불안한 눈빛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나 A등급 답게 인간을 향해 아첨을 하거나 위협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빵콘하여 분위기를 불쾌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철웅은 오갈곳 없는 손으로 낡은 목걸이를 만지작 거리는 실장석을 반바퀴 회전 시켜 뒤통수가 보이도록 앉혔다. 목걸이를 착용한 모습이나 교육 상태를 보아하니 사육실장 출신임에 틀림없었다. 이경우 혹시 주인이 실종신고를 한 개체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데..데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불안함에 실장석이 낮게 우는 소리를 내었다. 그것과 별게로 철웅은 PC에 연결된 바코드 리더기를 들었다. 그리고 실장석의 뒷머리를 들어 맨살이 보이게 한다.
데뎃!
뿌부부부북-
머리카락을 빼앗긴다고 생각한 것일까. 과연 이런 부분에선 A등급이고 폐기등급고 가릴 것 없이 결국 빵콘해버리고 만다. 다만, 이미 협력업체에서 사전 처리를 마친 후라 요란한 방귀 소리만 울릴뿐 나오는 것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바코드를 찾아낸 철웅은 삑-하는 소리와 함께 정보를 읽어 들였다. 화면에 점멸되는 것은 사육실장으로 등록되었던 과거의 정보들이다. 녀석은 이름과 나이, 분양샵과 등록증 따위가 느릿하게 화면에 나타난다.
'신고상태....실종인가...'
이름은 그린, 나이는 2살 된 성체 실장은 주인이 일주일전에 실종신고를 마친 개체였다. 어쩌다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는 꾀 드물기에 철웅은 수첩을 꺼내 그린의 기록을 옮겨 적었다.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실장석의 기록은 그의 작은 취미였다.
그는 기록을 마치고 작업장 뒤의 캐비넷에서 보라색의 실장석 이동용 케이지를 꺼내었다. 한쪽면에 실장석 얼굴 크기만한 아크릴판이 창문 처럼 붙어 있어 내부의 실장석을 살피거나 실장석이 외부를 구경할 수 있는 구조였다.
"여기서 기다리면 주인에게 보내주마."
케이지를 열고 녀석을 집어 넣는다. 약간의 간식과 물이 넣어진 케이지에서 연식 뎃데로게 뎃데로게 하는 기쁨의 노래소리가 들린다.
그린의 뒤로 2마리의 사육실장을 더 찾아내었지만 두 녀석 모두 이미 주인들이 찾는 것을 포기하며 분양증 일체를 말소시킨 상태였다. 각각 모찌와 쑥떡이라는 이름의 실장석들이었는데 교육상태도 괜찮았고 위생이나 태도도 나무랄 곳 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주인이 찾지 않겠다고 한다면 보호소는 준비된 메뉴얼로 움직일 뿐이었다.
데..데히?
모찌의 뒤통수에 바코드 리더기와 비슷하지만 금속으로 이루어진 기계를 들이민다. 등록증을 겸하는 바코드는 등록증 말소와 함께 쓸모없어지게 되므로 없애야 한다. 정보에 혼선을 주기때문이다. 하여 뒤통수에 찍힌 바코드 자국을 없애기 위한 기계를 사용하여 제거한다.
위이이잉-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악!
바코드 삭제기를 밀착하고 작동시키자 무정한 칼날이 좌우로 빠르게 움직여 바코드가 새겨진 살점을 얇게 포 뜬다. 면도칼만큼이나 얇은 칼날이 빠르게 좌우로 움직이자 실장석이 발광한다. 생명에 위협을 느낀 녀석이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지만 단단한 철웅의 팔뚝은 미동도 없다.
데..데겍...데겍...
작업을 마친 모찌를 테이블 한 켠에 밀어두고 쑥떡을 잡아든다. 적록의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도리질 치지만 철웅의 억샌 손과 보호소의 메뉴얼은 피할 수 없다.
데갸기기기긱!데기기긱!
고통에 몸부림치는 실장석. 왜 이런 방법을 쓰는 것인가? 라고 해봐야 결국 예산과 효율의 문제일뿐이다. 어찌되었건 재생하는 실장석의 살점 몇 그램 떼어내는게 약품이니 레이저니 하는 장비를 쓰는 것 보다 더 싸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머지 3마리는 오히려 운이 좋았다 할 수 있었다. 바코드를 지울 일이 없으니 작업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A등급은 전원 살처분 없이 통과된 것이다. 이제 C등급 개체를 처리 할 차례가 되었다.
첫댓글 이런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