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용에 이어집니다.
마지막으로 박식이라는 말은 그렇게 현묘하고 오묘한 마음의 세계를 언어로 풀어놓은 재주를 말한다. 이것은 어지간한 박학과 다식이 없으면 절대로 엄두를 못낸다. 마음은 그 어떤 모양도 특색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기가 막히게 분석하고 연구하여 낱낱이 파헤치고 해설한다. 마음이라는 세계를 완전히 알지 못하면 이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마음을 글이나 말로써 풀어낼 재주가 없다면 이 또한 가능치 못하다. 하지만 기신론은 이미 그런 재주를 다 가지고 있기에 대승기신론이라는 대명사를 갖고 세상에 출현한 것이다.
정리하자면 지혜와 현묘는 실상을 설명한 논서가 갖는 성격들을 말한다. 즉 중관론과 십이문론 같은 논서의 요지를 기신론은 모두 다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어짊과 박식은 연기를 설명한 논서들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 기신론은 유가론과 섭대승론의 핵심도 이미 다 압축하고 있다는 말이다. 즉 아비달마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논사들, 용수보살과 미륵보살에 이어 무착보살의 사상 전체를 이 기신론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아우르고 있다고 성사는 보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마는 중관론과 십이문론은 외골수 가르침이다. 그 가르침은 본질로 시작하여 본질인 공으로 끝난다. 그 어떤 것도 거기에 용납하지 않는다. 유가론과 섭대승론 역시 외통수 해설서이다. 현상으로 시작하여 현상인 연기로 끝난다. 그 속에 공이라는 논리가 개입되면 그 이론들은 공중에 뜬 허튼소리밖에 되지 못한다. 둘 다 자기쪽을 대표하는 대단한 논서들이자만 문제는 반대쪽의 논리를 결코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신론은 바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논서이다. 실상인 공으로 시작해 멋지게 공사상을 펴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연기설로 끝을 맺어 버린다. 연기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상을 연기로 시작해 하나하나 분별로 전개하다가 마지막에는 전혀 다른 각도인 공으로 결론지어 버린다. 그러다보니 기신론은 위에 언급한 두 가지 논서가 가지고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맹점을 기가 막히게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교묘하게 실상과 연기의 핵심자체를 모두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만법을 수렴하면 일심으로 돌아가고, 일심을 확산하면 만법으로 펼쳐진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