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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현하 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하시고 하루는 종이에 태극 형상의 선을 그리시며 “이것이 삼팔선이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씨름판대는 조선의 삼팔선에 두고 세계 상씨름판을 붙이리라. 만국 재판소를 조선에 두노니 씨름판에 소가 나가면 판을 걷게 되리라.” 하시니라. (道典 5편 7장1∼4절) 여러분, 상제님 도의 핵심 주제는 개벽과 선경입니다. 이 개벽이야말로 ‘열려있는 비밀(open secret)’입니다. 이제까지는 누구도
이를 알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모든 이가 개벽 세계를
알게 됩니다. 개벽은 문자 뜻 그대로 연다, 열린다는 것입니다. 능동과 수동의 두
가지 의미가 있죠. 모든 것은 열립니다. 이 하늘 아래에 비밀은 없습니다. 머지않아 상제님 도법을 통해서 모든 이가 우주 궁극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개벽은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그 근본은 인류 문화의
근원적 대혁신, 질적 대비약을 뜻합니다. 인류 문화가 성숙의 단계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우주 역사의 방향이고 우주 역사의 목적입니다. 이 도도한 대변혁의 물결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거세게 몰려오는 대개벽의 실상을 이해함으로써 그 대세를 알 수 있습니다. 상씨름은 남북한 대결 구도만을 의미하는가 개벽의 주제는 상씨름과 태을주입니다. 오늘의 인류 문제는 상씨름과 태을주로써 다 끝납니다. 상씨름을 이해하고 태을주 수행을 체험하는 것이, 상제님 개벽공사의 최종 결론이죠. 우리는 지금 지구촌 동방 문화권의 중심지, 한반도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따뜻한 남쪽 나라에 살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는 세계 그 어느 민족보다 훨씬 더 심각한 근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도대체 상씨름이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상제님은 9년 동안의 개벽공사에서 인류 역사를
최종 마무리짓는 역사 변혁의 원리, 대통합의 원리로 상씨름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개벽공사의 한 결론으로 상씨름을 선언하셨습니다. 『도전』을 여러 번 읽으면서 상제님의 도를 깊이 들여다 보면, 상씨름에 대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될 것입니다. 상씨름이란 무엇일까요? 상씨름은 글자 그대로 씨름입니다. 그런데 씨름 앞에 윗 상上 자가
붙었습니다. 씨름은 둘이 붙어서 승부를 가리는 것이죠. 넘어가는 놈이 패하고,
넘기는 놈이 이기는 겁니다. 상씨름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이 상씨름은 바로 이 땅에서 전개되는 남북의 대결 구도를 가리킵니다. 그 대결이 시작할 때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전 과정의 역사 변혁의 형국을 포괄적으로,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상제님은 “현하 대세가 씨름판과 같으니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道典 5:7:1)”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세계 정세와 지구촌의 운명이 씨름판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씨름판의 생리를 아주 잘 알고 있죠. 씨름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 고유의 놀이문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둘이 서로 샅바를 잡고 상대방을 넘어뜨림으로써 승부를 겨루는 겁니다. 씨름은 마지막 한 판이 넘어가는 최후의 순간이 가장 극적이죠.
둘 중 한 사람은 ‘와자자자 꽈당’ 하고 넘어갑니다. 승패가 결정되는 그 순간, 삼현육각이 울리고 소[牛]가 나갑니다. 이긴 자는 꽃가루 세례를 받으면서 가마를 타고 돕니다. 이렇게 판이 끝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긴장과 대결의 분위기에서 잔치 분위기로 들어갑니다. 평화의 잔치죠. 사람들은 온통
들떠 환호하며 천하장사의 영광을 노래합니다. 그 단계를 후천개벽을 넘어선 선경 세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야 할 ‘두 하늘’ 오늘의 세계 운명이 씨름판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친다는 말씀입니다. 이 상제님 말씀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골자가 ‘판’입니다. ‘판을 마친다’ 상제님 개벽 사업의 핵은 간단하고 명쾌한 이 ‘판’이란 글자에 다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운은 물론 도운의 판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상제님 일꾼들을 길러내고 그 사람들을 쓰고 그 조직을 키우는
것도, 상제님 일을 크게 이루는 것도 판을 잘 볼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상제님이 공사 보시던 신축(道紀31, 1901)년, 20세기 첫 해부터 세계
질서가 새롭게 시작되었죠. 그런데 바로 이 때부터 애기판과 총각판이 지난 뒤에 상씨름으로 판을 마친다는 말씀입니다. 세 판으로 이
세계의 선천 시간대를 끝낸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면, 이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이 세계의 변혁이 어떻게 귀결되는지, 어디로 가는지, 21세기의 청사진이 이것으로 다 그려집니다. 그럼, 이 ‘판’이 뭘까요? 우리가 일을 벌이는 것을 판을 벌인다고 하죠. 판을 짠다, 판을 연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고, 조직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상제님께서는 판에 대해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 『도전』 6편 70장을 볼까요? 천지를 뒤집기가 어렵구나. 판 짜기가 어렵구나. (道典 6:70:4) 호연이에게 하신 말씀이죠. 여러분, 천지를 뒤집는다는 게 무슨 말씀일까요? 이 우주에는 인간이 살아야 할 ‘두 개의 하늘’이 있습니다. 창조
원리로 볼 때,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는 하늘이 있고, 뭇 생명이 성숙하여 영원의 생명으로 열매 맺는 하늘이 있습니다. 하나는 ‘선천先天 하늘’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후천後天 하늘’이라고
합니다. 상제님은 이 우주를 개벽하여 선천 하늘을 후천 하늘로 뒤집어
놓으신 분입니다. 선천 하늘은 지난날의 묵은 하늘이며, 후천 하늘은 새 하늘입니다. 상제님은 이 선천 하늘에서 후천 하늘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후천개벽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후천개벽이란 실제 상황으로는 우주 질서가 바뀌는 것입니다. 우주의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는 것이죠. 일 년의 역수가 365와 4분의 1일에서 360일로 바뀝니다. 원리적으로는 이렇듯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현실에서는 엄청난 변혁의 과정을 동반하게 됩니다. 선천개벽 이래 인간을 죽여 온 하늘 이 개벽 과정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있습니다. 영적인
차원에 들어가서 보면, 이 우주엔 수억조 신명들의 사연이 있습니다. 숱한 인간들의 삶과 눈물과 한이 엉클어져 있습니다. 이 원한의
골이 너무도 깊습니다. 바로 이것이 개벽 때 총체적으로 터져 나와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때문에, 상제님 도법 세계에서 생각하는 인간의 고통, 인간의 구원
문제, 대우주의 실상에 대한 인식은 선천 종교나 자연과학 세계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또, 상제님은 기독교의 이원론적인 하나님과는 다른 분입니다. 상제님은 창조주 하나님(the Creator)이 아닌 개벽장 하나님(Renewing
God)입니다. 상제님 도법에서는 예수, 부처 같은 옛 성자들의 깨달음, 그들의 기국, 도법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판밖의 방식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상제님 도법에서는 인류를 건지기 위해, 먼저 하늘과 땅을 새롭게
인식할 것을 요구합니다. 다음 성구의 첫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하루는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묵은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도다. 이 뒤에 생활용품이 모두 핍절乏絶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않을 수 없노라.” 하시니라. (道典
5:314:1∼2) 지금까지 인류는 ‘하늘’을 생명의 근원, 믿음과 진리, 권위의 상징으로 삼아 왔습니다. 그 하늘이 오늘날 묵은 하늘로 전락했으며,
이 묵은 하늘이 인간을 죽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이 ‘하늘’에 대한 무서운 고정 관념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서로 싸우고 죽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기본 질서가 바뀌는
가을개벽의 이치를 시원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묵은하늘이 사람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도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오늘의 인류가 안고 있는 고통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즉 ‘묵은하늘’, 이 넉 자는 상제님의 깨달음, 새로운
도통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 ‘묵은하늘’ 네 글자를 화두로 삼아 그 경계를, 그 바른 뜻을 깨쳐 보세요. 하늘이 묵었다는 이 말씀에서 유불선 기독교 등 동서의
기성 종교에서 내세운 인간의 고통과 구원에 대한 가르침의 한계가
백일하에 폭로됩니다. 선천에 유불선 기독교 등 수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선천에 살다
간 수억만의 신명들은 원한이 너무 깊이 맺혀서 풀 길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대우주 통치자 상제님께 그들의 한을 풀어 달라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래서 상제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것입니다.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시어, ‘어떻게 이 지구촌의 수많은 민족, 수많은 인간들을 조화시켜, 최선의 차원에서 가장 이상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가시느냐!’,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바로 그 원한의 다양성 때문에 상제님이 “판 짜기가 어렵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 상제님은, “여자의 원을 끌러 주지 않으면, 성신聖神과 문무文武의 덕을 함께 갖춘 위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이 세상을 영원히 구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보편적, 총체적인 구원을 위해서는 반드시 여자의 한을 끌러 줘야 한다는 말씀이죠. 상제님 도법에서는 이렇게 인간의 모든 문제를 새롭게 근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존의 모든 동서양의 가르침도 상제님 도법에서 봐야 제대로 해석되고 풀립니다. 이 상제님의 심정을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상제님 일꾼이 상씨름꾼 상제님은 이 세계의 운명을 씨름판에 비유하셨습니다.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여러분, 이 말씀에서 ‘판’의 의미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판이란건 총체적인 것을 말합니다. ‘지구촌의 무슨 판을 본다, 일판을 볼 줄 안다, 우리집 판이 어떻다,
내가 벌이는 사업의 판이 어떻다, 내가 포교하는 판이 어떻다.’ 이렇게 일판을 말할 때, ‘판’은 일의 기틀, 무대와 같은 뜻입니다.
그것은 삶의 중심 무대를 말합니다. 그것은 내 삶의 성패가 달려있는 현장이죠.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정황, 물리적인 공간을
포함해서 내 모든 정력, 에너지를 투자하는 삶의 무대, 그것이 ‘판’입니다. 하지만, 상제님이 말씀하시는 ‘판’은 이 지구, 나아가서는 천지
신명계까지를 포괄합니다. 상씨름판에는 일꾼들이 하늘에서 천명을 받고 나와, 인연 따라 도장에서 다 만나게 됩니다. 세운에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판이 있듯이,
도운에도 애기판, 총각판, 상씨름판이 있습니다. 상제님은 도운에서의 상씨름판(해방 이후 태동되어 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제 3의 증산도 르네상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일은 상씨름판에서 주인이 결정되나니 상上씨름꾼은 술 고기 많이 먹고 콩밭에서 잠을 자며 끝판을 넘어다보고 있느니라. (道典 6:65:2) 끝판에 ○씨 있는 줄 몰랐지. 판 안 끗수 소용 있나.
끝판에 ○씨가 나오니 그만이로구나.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道典 6:66:6∼7) 상제님은 ‘판 안’,‘판밖’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판밖에 남모르는 법으로 일을 꾸미는 것이 완전하니라. (道典 4:9:4)”고 하셨죠. 이 때의 ‘판’은 또 무엇일까요? 그 동안 이 세상 인간들이 알고 행한 모든 것이 판 안의 법입니다. 예수의 사랑, 십자가의 도, 자기 희생 같은 가르침이나, 석가의 자비,
마음을 닦아 영생하는 것, 그것이 다 판 안의 가르침입니다. 반면에 상제님이 꾸미는 일은 ‘판밖의 남 모르는 법’입니다. 상제님이 여시는 새로운 인류 문화는, 기존의 가르침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도법입니다. 상제님은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음 대학교 교육 때, 인류 문화사의 최종 결론인 『도전道典』 발간의 역사성에 대한 상제님의 도수 내용을 강의하면서 자세히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한걸음 더 나아가, 이 세계 문제를 놓고 ‘판’을 생각해 봅시다. 상제님께서 앞으로 일꾼, 즉 대두목 일꾼이 판몰이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판몰이란, 노름판에서 한 사람이 다 거두어들이는 걸 말합니다. 여기서는 일꾼들을 양육하여 증산도 도세道勢를 만회하는 걸
말씀하시는 거죠. 상제님은 이 판몰이 하는 상제님의 큰일꾼, 지도자를 상씨름꾼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지도자의 기운을 받는 모든 생명력 있는 도장의 일꾼들도 상씨름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진정한 상제님 일꾼들은 상씨름꾼입니다. 공부를 하거나,
연구를 하거나, 어떤 사업을 하거나, 상제님 도법에 대해 깨어있는
자, 후천 개벽 문화에 눈 뜬 자들은 다 상씨름꾼입니다. ‘상씨름꾼이 되자’, 앞으로 국내외의 모든 상제님 일꾼들이 이 말을 생활화
해서 썼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상씨름꾼이 됩시다! 상씨름판은 개벽판 상제님은 신축(道紀31, 1901)년 이후 천지공사로 인류 역사의 새 판을 짜 놓으셨습니다. 이 지구촌 운명을 당나라 요임금(B.C. 2357∼B.C. 2258)의 아들인 단주 해원 도수로, 다섯 신선이 바둑 두는 형국[五仙圍碁]으로 끌고 나가십니다. 그 구체적인 과정이 1막, 2막, 3막으로 끝나죠. 이 금세기 현대사가 끝나는 것을 상제님은 ‘판을 마친다’, 또는 ‘판을 거둔다’고 하신 것입니다. “상씨름으로 판을 마치리라.” 여러분, 이 ‘판을 마친다’는 말씀의 경계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못 보면 이 성구를 백 번, 천 번, 만 번을 봐도 제대로 못 본
것입니다. 상제님의 뜻을 얻지 못한 겁니다. ‘판을 마친다’고 할 때 ‘판’은 ‘상’ 자와 연결되어 있죠. ‘판’의 내용이 상씨름의 ‘상’입니다. 인간 역사의 일체 상황이 상씨름으로 판을 마칩니다. 따라서 이 판은 보통 판이 아닙니다. 개벽판이죠. 그러면, 상제님은 어떤 경계에서 이 상씨름이란 말씀을 쓰셨을까요?
상씨름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나며, 그 상황이 인류의 미래, 새로운
인류 역사를 어떻게 끌고 나가는 것일까요? 상제님 공사 내용을 통해 간단히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상씨름판은 황극신皇極神이 자리잡는 과정 다 함께 『도전』 5편 236장을 봅시다. 상제님이 공사를 마치시기
전 해인, 도기 38(1908)년 무신년이었습니다. 이 달에 고부 와룡리에 이르시어 대공사를 행하시니라.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하시고 친히 곡조를 붙이시어 시천주주侍天主呪를 읽어 주시고 성도들로 하여금 밤마다 읽게
하시니라.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외치시더니 이 때에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로써 세계일가 통일정권 공사世界一家統一政權公事를 행하시니 성도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니라. 이에 하늘을 보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의 모양을 이루어 허공에 벌여져
있다가 이윽고 사라지니라. (道典 5:236) 이 공사는 지구촌의 선천 제왕 문화의 기운을 거두시는 공사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선천의 제왕 기운을 거둔다’고, 이렇게만 알아 듣는다면, 그것은 아주 짧은 안목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또 이 공사에서 황극신의 뜻은 뭘까요? 만국 제왕 기운을 거둔다는 건 ‘황극신을 옮겨 온다, 황극신을 불러 온다’는 말씀으로 볼 때, 단순히 거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이면의 뜻은, 선천 제왕 문화의 성격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천 제왕 문화를 문닫고, 이 세계를 새로운 역사로 개벽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천 왕정 문화 시대를 끝맺고 인류 문화의 신기원新紀元을 여는 지구촌 대개벽 공사죠. 상제님께서 지구촌 통일 질서를
열기 위해 새로운 후천 왕정 문화를 여시는, 대단히 중요한 천지공사 내용입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열쇠가 바로 황극신에 있습니다. ‘황극신皇極神’은 ‘황극皇極’에 ‘신神’을 붙인 복합어입니다. 이 황극에 대해서는 『서경』 <홍범洪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범>은 천하를 다스리는 대법大法을 말하는데, 그 내용을 아홉 가지로 나누어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범주範疇(category)라는 말이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만, 그 아홉 가지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다섯 번째 내용이 황극입니다. 그런데 이 황극을 우주 운동 차원으로 새롭게 정의 내리신 분이 『정역』을 완성한 김일부 선생이죠. 우주의 변화 원리로 말할 때 황극은 우주 운동의 본체입니다. 우주가 왜 영원히 쉬지 않고 움직입니까? 황극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시간상 차후로 미루겠습니다만, 왜 인간이 태어나서 이렇게 살아 움직일까요? 그것도 황극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 생명 활동의 본체, 만물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게 하는
운동의 본체, 근원적 힘이 되는 본체, 그 자리가 황극입니다. 여러분 몸에 바로 이 황극이 있습니다. 이 황극 자리를 유가에서는 임금님, 지존의 보좌로 말합니다. 만인을 다스리며, 만백성의 어버이이며, 역사 질서를 주재하는 그 자리입니다. 지존의 제왕 자리, 또는 제왕의 힘(power)을 말합니다.
(황극은 ‘대중大中’의 정신을 뜻함) 그러니까, ‘황극’ 하면 하늘을 대행한 신의 아들입니다. 곧 천자죠. 그러므로 ‘황극신’이란 역사를 움직이는 하늘의 통치신, 황제신을 뜻합니다. 하지만, 황극신이란 이렇게 문자적으로, 인격신의 의미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 우주 천지조화 속에, 황극신이 성령의 거대한 신적 기운으로 실재實在하고 있습니다. 모든 우주 변화에는 항상 황극신이 함께 합니다. 이 경계를 체험하려면, 도안道眼이 크게 열려야 합니다. 상제님이 천지공사를 보시는 당시, 이 황극신이 청국 광서제에게 내려와 응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황극신이 무엇일까요? 중국 역사를 보면, 청나라 태종이 스스로 황태극皇太極이라고 했습니다. 누루하치가 중국 천하 통일을 못하고 병들어 죽자, 훗날 그 아들 청태종이 통일을 하고 황태극이라고 한 거죠. 여기서 ‘皇’은
‘크다’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황극신의 ‘황극’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인류의 새 문화 시대를 열어 주시는 황극신은 이렇게 생전에 한 나라를 통치하다 죽은 보통의 제왕신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황극신은 가을 개벽기에, 이 세계 통일의 대운을 열어 주는 우주의
조화신을 말합니다. 세계를 통치하는 기운이 갈머있는 신이죠. 그것은 천지 속에 성령으로 존재합니다. 이걸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황극신의 천지 조화기운을 조선으로 옮겨오심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이 신神이니, 풀잎 하나라도 신이 떠나면 마르고 흙 바른 벽이라도 신이 떠나면 무너지고, 손톱 밑에 가시 하나 드는 것도 신이 들어서
되느니라. 모든 일에 마음을 바로 하여 정리正理대로 행하여야
큰일을 이루나니 만일 사곡邪曲한 마음을 가지면 사신邪神이 들어 일을 망치고 믿음이 없이 일에 처하면
농신弄神이 들어 일을 번롱飜弄케 하며 탐심을 두는
자는 적신賊神이 들어 일을 더럽히느니라. (道典
2:87:4∼8) 이 말씀의 핵심을 봅시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은 신도神道에서 선행하며, 인간은 그 신도세계의 기운을 받아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노래를 잘 하는 사람에게는 노래를 하는 신이 붙습니다. 삿된 거짓말을 자꾸 하면, 거짓말 하는 신이 붙어 떠나지 않습니다. 춤추기를
좋아하면 무용신이 붙습니다. 또, 용감하고 정의로운, 영웅적 심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의리있고 기개있는 영웅의 신이 응하기 쉽습니다. 음란한 짓에 빠지면 음행을 부추기는 신이 몸에 붙어, 음기淫氣를 일으켜 괴롭힙니다. 이렇게 여러 부류의 무수한 신명들이 하늘 저편에서 그런 기운을 사람에게 보내기도 하고, 사람 옆에 와서 몸에 붙어 다니기도 합니다.
또 사람 몸 속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은 이렇게 세 가지 방식으로 인간에게 감응합니다. 이것이 인사人事로 이화되어, 현실에서 크고 작은 사건들로 전개되는 거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주에 이 세계를 통치하는 데 감응하는 천지의
조화기령造化氣靈이 있습니다. 바로 그 조화신을 상제님께서 황극신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상제님은 그 황극신 기운, 황극신 성령이 중국의 광서제에게 감응해
있는 걸 보셨습니다. 이것은 천지의 조화옹, 천지의 주재자이신 증산 상제님만이 보실 수 있는 거죠. 이런 문제 인식이 이 공사 내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상제님께서 새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그 기운을 조선으로 옮겨 와야 한다.” 하시고, 황극신 기운을 조선으로 옮기는 공사를 보셨습니다. 이것은 원시반본의 개벽 이치로, 동방 역사의 기강과 정의를 바로잡으신 공사입니다. 왜냐하면, 본래는 조선이 천자국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상제님은 몸소 시천주 주문을 읽어 주시고, 밤마다 성도들에게 시천주주를 읽게 하셨습니다. 상제님은 그 주문 소리가 상여 나가는 소리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임금이 붕어崩御하여 대여大輿가 나갈 때, 대여꾼들이 “어이, 어이….” 합니다. 임금 어御 자에 옮길 이移 자, 말 맞춤이죠. ‘어이’는 바로 ‘제왕신이 옮겨 온다’, ‘황극신 기운이 옮겨 온다’는
말입니다. 상제님이 황극신의 조화 기운을 조선으로 불러 오신 바로 그 순간,
청나라 광서제가 죽습니다. 신도神道의 통치자이신 상제님이 어명御命으로 광서제에게 응해 있던 신을 거두자, 그의 명줄이 한순간에
끝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공사의 처결 과정을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너무도 신비롭지 않습니까? 중국 역사의 기록을 보면, 광서제의 사인死因이 불명不明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역사의 수수께끼죠. 이런 예 하나만 보더라도, 상제님의 공사가 현실 역사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걸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상제님은 ‘황극신을 이 땅으로 옮겨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우리나라를 도와 준 명나라 신종神宗과 의종毅宗 황제를 모신 사당입니다. 우암 송시열의 유교遺敎에 따라 그의
제자 권상하가 청주 화양동에 지은 것이죠. 이 말씀을 보면, 황극신의 양면적 성격을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상제님이 천지가 무너지도록 그런데, 이 때 중요한 건, 상제님이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천지가 무너지도록 소리치신 것입니다. 황극신을 불러올 때, 왜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하셨을까요? 황극신이 조선으로 넘어오는 것과, 상씨름이
넘어가는 것과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상제님은 이 공사를 처결하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상씨름을 제기하고 계십니다. 상씨름에 대한 구체적이고 결정적인 상황을 이 공사에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여러분, ‘넘어간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남북 문제가 상씨름인데, 상씨름으로 ‘판’을 마칩니다. 그런데,
‘넘어갔다’는 과거형이 아니고, ‘넘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미래형도 아닙니다. ‘넘어간다’, 급박한 현재형입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상제님의 이 벽력 같은 목소리가 여러분의
심령 속에 크게 들려와야 합니다. 상제님 도통 경계에서는 모든 문제가 현재 의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삼천 년 전에 석가모니가 영산설법을 했다?’,
‘이천 년 전에 예수가 산상설법을 했다?’, 이런 것이 상제님이 보시기에는 현재 의식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것이 도통의 세계입니다. ‘상씨름이 넘어간다’ 이 구절을 영어로 번역할 때 시제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영어판 성구 번역서인 『증산도의 가르침 Teachings
of JeungSanDo』5편 34장 9절을 보면, 황극신 공사에서 ‘상씨름’이란 술어가 없으니까 ‘The Final Match’, ‘넘어간다’는 것을
‘이제 막 결정되려 한다’고 번역했죠. ‘The Final Match is about to be determined.’ 이것은 ‘상씨름이 이제 곧 결판난다’는 뜻입니다. 단순한 현재
시제가 아니죠. 이 표현은 이제 막 어떤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려 하는 역사의 순간을 묘사하는, 재미있는 영어적 표현 방식입니다. 씨름판이 끝나는 걸 ‘결정된다’, ‘결판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챔피온이 결정되는, 승자가 결정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상씨름판에서 남북 관계는, 지금 승자가 결판이 난 겁니까? 안 난 겁니까? 또, 과연 이 상씨름에서 승자는 있는 걸까요? 지금으로서는 그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죠. 수수께끼입니다. 물론, 이미 대세는 다 끝났습니다. 두 주일 전에 KBS에서 북한의 기아 참상을 심층 취재해서 보도했습니다. 그것을 보면, 상씨름이 어떤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지, 온몸에
소름 끼칠 정도로 절절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 프로에서 가장 인상깊고 충격적인 것이 있죠. 그날 밤 우리를 잠
못 이루게 한 게 뭡니까? 한 여선생이 흐느껴 울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의 인민들 80%가 전부 죽고 싶다고 한다고. 살 마음을 다 잃었다고. 그게 보통 얘기가 아닙니다. 결정적인 말입니다. 그들 80%가 이미
살 의욕을 잃었다는 걸 보면, 대세가 완전히 판가름 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 화면에서, 어떤 사람이 죽은 사람을 황량한 땅에 묻고서, 무표정하게 말뚝 꽂고 앉아 있던 모습을 여러분도 아마 기억하실 겁니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에 오면 거의 다 잔다고, 한 어린이가 증언을 했어요. 소리 질러서 깨워 놓으면 또 잔다고. 그리고 반 정도는 양식으로 먹을 풀 뜯으러 다니느라고 학교에도 못 온다고. 그런데, 그나마 풀도 다 메말랐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백두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다가, 중국에 팔아 먹기도 한답니다. 공장에 있는 철골을 다 빼다가 식량과 바꿔 먹고. 완전히 절망적인 모습입니다. 참 심각합니다. 국민 80%가 “나는 이 세상을 살고 싶지 않다. 죽고만 싶다.” 이런 정도라면, 북한에 희망이 있는 겁니까? 하지만, 상씨름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원래 상제님이 이 지구촌 운명을 심판하는 과정이 오선위기, 곧 다섯 신선이
바둑 두는 형국입니다. 바둑판이 주인입니다. 그리고 사대 강국(네
신선)이 판을 대합니다. 그 판 즉 인류사의 변혁의 구심점이 바로 조선, 한반도입니다. 지금 아시아의 IMF 사태도, 자본주의의 새 질서를 열어가는 개벽 과정이라는 안목에서 봐야 합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상씨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겁니까? 이것은, 1, 2차 세계 대전의 애기판, 총각판의 상황과는 달리, 주인인
남북한이 대결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상씨름 과정에서 미·소가 훈수를 둡니다. 그런데 그 판이 깨졌습니다. 미·소의 판이 기울어져서 이미 훈수판은 승부가 난 거죠.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소련이 상제님의 원시반본의 통치 원리에 의해 붕괴되어 다 쪼개졌습니다. 완전한 훈수꾼은 미국 하나 남았습니다. 지금 독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끼리 붙는데, 그것도 대세가 이미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씨름은 둘이 붙어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이죠. 그런데 주인끼리 장장 50년 동안 붙들고 낑낑대더니, 작열하는 여름 하늘 아래에서 혓바닥 길게 내놓고 허덕거리는 개처럼, 한 쪽의 기운이 다 빠진 것입니다. 지금 그런 개판이 되었습니다. 이 상씨름판에서 시종일관 전쟁의 가능성이 마지막 카드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국제 정세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상씨름에는 극단적인 방법인 이 전쟁이 최후의 수단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초반전에 한 번 붙은 적이 있습니다. 남북전쟁을 삼 년 동안
치뤘죠. 수백만 명이 죽고, 전국이 초토화 되었습니다. 그 희생 위에서 이제 상씨름을 마무리짓는 또 한 번의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그 시간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최근 망명한 황장엽이 한 말의 결론이 뭡니까? 북한의 무력통일 노선은 절대 불변이라는 겁니다. 북한은 오직 전쟁을 위해 정권을 유지해 오고 있다는 거죠. 이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이 아니라, 전쟁과 자유의 대결, 전쟁과 평화의 대결이라는 것입니다. 그 표현이 대단히 강렬하고 현실적입니다. 대세가 넘어가는 상씨름판 그런데, 왜 황극신이 이 땅으로 들어오는 그 상황, 황극신의 천지기운이 조선으로 응감하는 그 상황이 상씨름이 넘어가는 것일까요? 또, 왜 상제님께서 “상씨름이 넘어온다.”고 하지 않으시고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하셨을까요? 상씨름판이 결정되는 것 곧 남북의 운명이 귀결되는, 이 ‘넘어간다’는 게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여러분 궁금하시죠? 여러분, 우리가 씨름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 봅시다. 둘이 서로 샅바를 잡고 있는데 넘어갑니다. 넘어간다는 건 우선 판이 기우는 것
아닙니까? 남북 대결의 판이 지금 그렇게 기울고 있습니다. 대세는 이미 기울었습니다. 지금도 그 성격을 달리하면서 계속 기울고 있습니다. 지금은 과거처럼 맞수로 대결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북한에는 이미 그럴 힘이 없어요. 백성들이 아무리 굶주린다 해도 저렇게 굶을 수가 있습니까?
남북의 대결 구도, 대결의 양상이 계속 기울고 있습니다. 지금도 북한은 생태계 파괴로 인한 가뭄과 홍수 때문에 계속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지나면 걷잡지를 못하게 됩니다. 상제님 공사 말씀
그대로 그냥 ‘꽈당’ 하고 넘어가는 것만 남았죠.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각도까지 거의 기울고 있습니다. 이 상씨름이 넘어간다는 건, 인류사의 총체적 위기 상황 구조인 최대 기울기에서 ‘꽈당’ 하는 순간을, 상제님께서 보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바로 이 점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상제님은 이 공사에서, 상씨름을 끝매듭짓는 역사적 상황을 다 보고
계십니다. 앞으로 닥쳐 올 남북의 총체적 위기 상황, 그 절대절명의
순간을 환히 들여다보시면서, 남북 상씨름판을 최종 심판하고 계시는 겁니다. 결국 상제님께서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선언하심에 따라, 남북
대결 구조의 역사 질서가 실제 지구촌 대변혁의 상황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상제님의 이 선언이 바로 인류 역사에 내리시는 천명이기
때문입니다. 상제님께서 우주의 주재자로서, 남북 상씨름의 마지막
귀결점이 그렇게 되도록 명령을 내리시는 것이죠. 멋모르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강증산의 예언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상제님 도의 경계를 전혀 못 보는 까막눈입니다. 상제님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인류 역사를 준엄하게
심판하시는 천명입니다. 인류 역사는 이 상제님의 천명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새롭게 전개되어 나갑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황극신이 넘어온다’는 말씀은 한반도
남북 대결의 상황이 앞으로 지구촌 대변혁의 질서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상제님께서 선언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황극신에 대해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황극신이 잘
이해되지 않아 명쾌하게 깨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황극신이 넘어온다’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류의 생사 문제가 상씨름판에 달려있다 지난날 어떤 제왕이나 천자를 지낸 인물이라 할지라도 황극신이 되지는 못합니다. 황극신은 이 세계 질서를 통일하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상씨름이 넘어가는 순간, 황극신이 조선으로 넘어옵니다. 그리하여
조선이 세계 대변혁의 심장부, 세계의 중심이 되기 시작합니다. 조선이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인류사의 장이 바뀌는 에포크
메이킹(epoch making)의 순간, 즉 인류사에 한 획을 긋는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죠. 그것은 곧 우주 대개벽의 순간입니다. 그러니까, 상씨름이 넘어간다는 건, 북한 주민들이 굶주려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든, 북한 내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든 안 나든, 김정일이 실각을 하든 안 하든, 남북 대결 상황이 지속되다가 판이 완전히 기울어져서 남북이 동시에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남북의
절박한 동시적 상황 문제를 심각하게 봐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상제님 말씀을 가지고 한 시간 정도는 더 설명해야 하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남북 상씨름이 넘어가는 상황이 단순히 기아 문제라든지, 남북의 내부적인 정권 변혁이나 내적 분열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주의
문제, 개벽의 천시天時로 오버 랩(over-lap)되어 상씨름이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이 상씨름이란 말 자체를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상제님은 모든 개벽공사를 이 낱말에 담아 말씀하고 계십니다. 언어 속에 뜻을 담아서. 그래서 모든 상제님 말씀은 도언道言이죠. 씨름은 씨름인데 상씨름입니다. 이 상上 자를 깊이 깨야 합니다. 상
자는 쉽게 말해서 윗 상 자죠. 더 없이 가장 높은 걸 뜻합니다. 수프림(supreme), 최상의 가장 강력한 것, 최상급의 표현으로 상 자를
붙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 남북한의 상씨름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식해야 할까요? 그것은 단지 남북 대결 구조의 무게를 최상급으로 표현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적어도 상제님이 공사 보신 이래로, 애기판 1차 세계대전, 총각판 2차 세계대전보다, 상씨름판이 역사 질서의 힘, 변혁의 강도가 훨씬 더 깊고 강렬하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1, 2차 세계대전보다, 남북한 대결이 훨씬 더 중대하다는 뜻입니다. 상제님은 1차 세계대전을 애기판이라고 하셨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총각판입니다. 둘 다 몇 년 만에 끝났습니다. 그러나, 상씨름은 비록 동방의 조그만 나라 조선,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것이지만, 해방 이후 장장 50년 이상을 끌고 있습니다. 이 상씨름의 역사적 의의는 1, 2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중차대합니다. 어떤 의미이길래, 그렇게 중요할까요?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개벽과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북한 전쟁을 하는 군인, 정치인들, 단순히 거기에 관여되어 있는 사람들 간의 세력 경쟁에 국한된 게 아닙니다. 작게는 한반도에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크게는 전 인류의 죽고 사는 문제가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 ‘상씨름판을 거둔다, 남북 상씨름으로 판을 마친다’는 구절을
잘 봐야 합니다. 상씨름으로 판을, 지구의 선천 인간 역사판을 마칩니다. 상씨름으로 지구의 운명, 선천 우주의 운명을 모두 끝막습니다. 이제 선천 상극의 운명의 시간이 완전히 끝납니다. 그리고 우주는 새 질서로 들어섭니다. 그러니까 남북 상씨름이란, 한반도 내의 남북 문제만이 아닙니다.
동서 인류의 모든 문제가 폭발하는 동서의 상씨름판입니다. 남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생사만이 아니라, 일본 사람, 저 멀리 지구 반대편에 있는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사람들의 죽고 사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북한 백성들이 굶어 죽는 건, 앞으로 그런 운명의 시간대를 손짓하는 통곡의 몸짓이요, 피눈물입니다. 이 북한의 상황은, 남북 상씨름의 최종 운명을 끌고 들어가는 사건인 동시에, 종국적으로는 전 인류의 생사를 판단하는, 개벽의 비극적 사건들을 불러오는 전주곡입니다. 이것이 ‘상씨름으로 판을 마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게 머리 속에 탁 들어와 깨져야 합니다. 그리고, ‘판을 거둔다’는 건, 우리에게 더 적극적이고 더 강렬한
영감을 줍니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정치판이라든지 동서양의 경제
성장, 동서경쟁, 핵무기, 환경파괴, 지구촌 세계화 등 이런 모든 주제를 일시에 거둔다는 뜻입니다. 선천의 시간대가 종결되므로, 새로운
우주 질서를 열기 위해서죠. 그것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우주 천지 안에는, 핵폭탄보다 더 무서운 불기운이 가득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누적되어 온 원과 한의 기운이죠. 이 선천 인류의 죄업이 불덩이가 되어, 이번 특정 시간대에 한꺼번에 폭발합니다. 바로 거기서 인류 구원의 문제, 내 생명과 가족, 조상들의 생사 심판과 구원 문제에 대한 해답이 막 깨집니다. 또 진정한 내 삶의 의미,
내 생명의 소중함, 나의 삶의 목적, 내 사명 같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상제님 도법을 참되게 보는 눈을 갖게 되죠. 여러분, 우리가 증산 상제님의 도를 어떤 차원에서 받아 들여야 되는지, 절할 때, 청수 올리고 기도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의 상씨름 문제에 대해 알고 나면, 아주 절박한 심정에 젖어들지 않을 수가 없어요. 한민족의 상씨름이 곧 전 인류의 상씨름이기
때문이죠. 인류의 꿈과 이상은 상씨름판에서 결정된다 상씨름에 대해, 몇 가지만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것만 감을 잘 잡아도 상씨름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상제님께서 “내 일은 상씨름판에서 주인이 결정된다.”고 하셨죠.
여러분 이 ‘주인’이란 말을 보세요. 이 말은 상제님 도판의 대두목大頭目(큰 지도자)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또 앞으로 인류의 새날을 여는 주인공들, 일꾼들의 문제와도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자, 다음 말씀을 봅시다. 나의 일은 판밖에 있단 말이다. 붉은 닭 소리치고 판밖 소식 들어와야 도통판을 알게 되고 도통판이 들어와야 나의 일이 될 것이다. (道典 6:66:7) 상씨름의 모든 문제를 실제로 매듭짓고 해결하는 것은 바로 대두목의 도통판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도통판이란 뭘까요? 도통판은, 진법도운眞法道運에서 나옵니다. 그 분기점이 바로 『도전道典』 출간이죠. 오늘도 난도 난법자들은 이 도통판을 환상적인 것으로 왜곡 날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통판은 그렇게 환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도통판은 일꾼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입니다. 지난 백 년 도사의 총체적 혁신의 최종 결론으로, 도통판은 일꾼들이 상제님의 도법을 철저히 깨닫고 체험함으로써 열리는 것입니다. 도통판은 인류에게 새 생명의 질서를 열어 주는 제 3변 도운의 성숙 과정, 숙구지宿狗地 도수의 도장 문화 탄생을 말합니다. 도통판은 성숙된 도장의 수행 문화 정착 과정에서 열리게 됩니다. 도통판은 우주의 여름과 가을이 바뀌는 3년 후천개벽의 과정에서 모든 죽음의 질서를 극복하게 합니다. 지진, 홍수, 대병겁 등 모든 죽음의 질서를 넘어서, 인류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는 의통 집행을 하게 됩니다. 이 도통판이란, 상제님의 상생의 대도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지혜, 뱃심, 역량 이 모든 걸 하나의 상징어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성숙한 도장 문화는 제 3변 도운의 전 과정의 끊임없는 혁신 과정에서 나옵니다. 오늘의 상제님 일꾼판에서 일하는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죠. 여러분이 대우주 통치자이신 증산 상제님의 도를 체험하는 그 도통판의 창조자들입니다. 상제님은 도통판이 들어와야 상제님 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상씨름 넘어가는 것이 개벽이 되는 것이며, 상제님의 후천선경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씨름 넘어가는 것 자체만으로
상제님 일이 되는 게 아닙니다. 상황 조성만 될 뿐이죠. 그 상씨름판의 외적 상황(세운 도수)에 대응하여 상씨름의 내적 질서(도운 도수)로 인간이 후천개벽을 실현해야 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인류사에 도통판이 들어와야 하는 겁니다. 상제님 일꾼들, 여러분이 아주 끝내주게 깨지고 체험하고, 수도하고, 포교하고, 성숙된 안목으로 자리 매김할 때, 지금의 도장 문화가
도통판으로 거듭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과연 남북통일은 오는가 여기서 다시 우리 한민족의 통일 문제로 돌아가 봅시다. 우리 민족의 남북 통일이 갖는 의미가 뭘까요? 상씨름판이 개벽과 연관되어 있다면, 우리가 날마다 떠들어대고 있는 남북 통일은 어찌 되는 걸까요? 이것이 상제님의 도수度數(programing) 세계에서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과연 남북 통일은 오는 걸까요? 또, 상제님께서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하셨는데, 그 때의 통일적 상황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요? 인류를 근원적으로 구원하는 상제님의 개벽사업이 ‘상씨름판에 달려 있다’는 말씀에서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철저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여러분, 상씨름이 넘어간다는 건, 단순히 남북 문제를 매듭짓고, 우리 민족이 통일된 단일민족으로 21세기 지구촌의 중심 국가로 들어간다는 게 아닙니다. 이런 건 고전적이고 상투적인 해석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며 청사진일 뿐이죠. 통일이 지금 당장 된다면, 오히려 어려운 게 더 많습니다. “나의 일은 상씨름판에서 결정된다.” “나의 일은 상씨름판에서 이루어진다.” 이 말씀을 수백 번, 수천 번 마음으로 힘차게 외쳐 보십시오. 상제님의 숨결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을 때까지. 상제님의 이 말씀은 남북 상씨름에 담겨있는 역사의 숨은 뜻, 엄청난 우주사적 비밀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상씨름판이 곧 개벽이고, 개벽이 곧 상씨름판이란 뜻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상씨름의 최종 마무리 과정으로 닥쳐올
모든 개벽 상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여기서 예측하고 있는 통일의 상황은 전문가들이 말하는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국내외 정치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남북 협력이나, 남북 교류 확대로 결정적인 돌파구가 열리는 그런
통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남북 통일이 곧 개벽 상황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우리 민족의 삶의 길입니다. 개벽의 길이죠. 통일 문제를
비롯한 한민족의 모든 문제는 오직 개벽 차원에서만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한민족이 진정으로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가을개벽의 시간대에서 가장 먼저 죽어야 하며, 죽고 또 죽고, 그렇게 죽음의 과정에서 통일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얼 말하는 겁니까? 지구촌에 3년 병겁이 들어오는 개벽의 상황을 말하는 거죠. “하늘과 땅의 질서가 바뀌는 개벽 상황에서 남북의 문제를 보라!” 이것이 인류사의 프로그램을 짜 놓으신 상제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남북의 문제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틀에 박힌 그런
통일 방식이 아니라, 개벽에 의해서 해결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개벽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묵은 기운, 묵은 관념, 타성을 총체적으로 개벽해야 합니다. 상제님이 짜 놓으신 도수 세계에는 통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의 역사 구조를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결론입니다. 동·서양 싸움을 붙여 기울어진 판을 바로잡으려 하였으나 워낙 짝이 틀려 겨루기 어려우므로 병病으로써 판을 고르게 되느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난은 병란病亂이 크니라. 동서양의 전쟁은 병으로 판을 고르리라. 병겁이 일어나면
두더지가 땅을 뒤지지 못하고 제비가 하늘을 날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道典 7:25) 벌써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은 모 방송국 기자로 일하고 있는
한 신도가 내게 찾아왔습니다. 그는 당시 서울 명문대 대학원생으로, 교수로부터 그 재능을 인정받은 유능한 법학도였습니다. 그는
한때 우리 민족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분야에 미쳐서 집중적으로 연구를 했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많은 자료들을 찾아
봤지만, 모두가 판에 박힌 정보들이어서 몹시 답답해하던 중, 우연히 서점에서 『이것이 개벽이다』를 읽고 증산도를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는 상제님 도법에서 통일에 대한 의문이 확 풀렸다고 기뻐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내게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는 상제님 도법이 너무도 명쾌하다며, 몹시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상제님 개벽 소식에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받고 들떠 있던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쟁쟁합니다. 우리 남북의 문제는 오직 개벽에 의해서만 해결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 한민족의 통일이 독일처럼 단순한 통일이 아니고,
우주 질서를 전환시키는 인류의 총체적 통일(Total Unification), 개벽 통일(Renewing Unification), 신통일(Neo Unification)일까요? 왜
그런 역사성이 갈마있는 지구촌의 대 통일(The Grand Unification
of global village)일까요? 여기에 우리 한민족 역사 정신의 심오함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조선 민족의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한민족 역사의 모든 부정적 측면이, 세계 질서를 바꾸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엄청난 희생, 험난한
고난이 뒤따를 거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한반도, 즉 대우주 변혁의 온갖 기운이 폭발하는 카오스의
구심점에 살고 있습니다. 문명의 새 질서를 잉태하고 있는 카오스의
심장부에서 숨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곳 한반도에서, 이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을 마시며, 우주가
새 생명을 낳고 새로운 역사를 탄생시키는 온갖 신비스러움, 개벽의
도道를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이곳에서 출현한
증산 상제님의 도를 통해, 개벽세계를 여는 도통을 체험할 수 있죠. 증산 상제님이 내려 주시는 도통은 새로운 인간시대를 여는 ‘중통인의中通人義’의 도통입니다. 마음 닦고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선천 문화의 도통 수준이 아닙니다. 선천 성자의 도통, 도력의 경계를
무너뜨린 개벽 도통입니다. 상씨름이 선천 상극의 인류사를 끝낸다 여러분, 머지않아 상씨름이 넘어갑니다. 상제님은 상씨름 딸 사람은 잠자고 있다가, “상씨름이 나온다.”고
야단칠 때, 그 때 들어온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란 2변 도운, 즉 증산도 제 2 부흥시대(1945∼1954)로부터 20년의 재충전의 휴게기(1954∼1974)를 거쳐서 제 3 부흥시대로 들어서는 도운 개척 과정을 말합니다. 이제 그런 상황에 들어서면서, 상제님 일꾼들도 도장에서 깨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자∼ 상씨름 구경가자. 끝내기 여기 있다. (道典 6:64:3)”는 상제님 말씀이 있죠. 이 말씀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이 말씀에서 ‘상씨름’은 어떤 상황이며, ‘끝내기 여기 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세요. 결국 남북 상씨름이 최종적으로는 선천 상극의 인류사를 끝내 줍니다. 도운道運에서도 수부도수, 태모님을 부정하고 종통을 날조해 온
난법자들이 모두 정리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패륜적 행위로 이어져 온 어두운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하루는 태인의 하마정 거리에서 마루 위에 단정히 앉아 계시는데 잠시 후에 한 사람이 베망건을 쓰고 바지를 걷어 올린 채 한 손에 채찍을 들고 들어와서 채찍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마당을 왔다갔다하며 큰
소리로 외치기를 “천하의 도적놈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하고 같은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외쳐대니라. 공우가 생각하되 지존至尊하신 분의 앞에서 그 행동이 무례한 것 같아 꾸짖으려 하는데 상제님께서 눈에
위엄을 띠시고 엄히 경계하시니라. 공우가 비로소 무슨 까닭이 있음을 깨달아 삼가 명을
기다리더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말씀하시기를 “공우야, 네가 가진 돈을 저 자에게 주어라.” 하시니라. 공우가 명하신 대로 가진 돈을 그에게 주니 그 사람이 단지 받기만 하고 아무 말도 없이 상제님께 묵묵히 절하고 물러가니라. 성도들이 여쭈기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북녘 하늘의 먼 곳에서 천하사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니라.” 하시니라. 다시 여쭈기를 “그 사람이 천하의 도적들을 다 잡사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하의 도적들을 다 잡느니라.” 하시니라. (道典 6:27) 이제 개벽을 앞두고, 종교 정치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이 공사가 발동되고 있습니다. 난법자, 천하의 도적들을 다 잡아들여 세상을 맑히는 이 공사는 앞으로 더욱 강력하게 전개되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은 대개벽의 운세로 몰고 들어가는 지구촌 대혁신의 결정적인
전환기입니다. 이러한 대변혁의 과정을 학자들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새로운 분기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상씨름의 매듭 과정에서 상제님은 인류 개개인의 크고 작은 문제, 지구촌 민족의 문제 등 인간의 모든 문제를 마무리합니다. 남북 상씨름은 선천 상극의 우주와 더불어 생명의 총, 진리의 총을
갈기는 우주의 터미네이터입니다. 이 상씨름이 넘어갈 때, 오늘의
세계 질서를 개벽 질서로 인도하는 일꾼들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하게 됩니다. 상씨름꾼 들어오라. 벽력같이 고래장 치니 어느 누가
적수로 당할 것이냐? 허허∼ 허참봉이로구나. 소[牛] 딸 놈은 거기 있었구나. 밤새도록 헛춤만 추었구나. 육각六角 소리 높이 뜨니 상씨름이 끝이 났다.
(道典 6:64:4∼6) 상씨름 판몰이의 주인공, 상씨름꾼 이제 대세가 판몰이로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판몰이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지난 백 년 역사의 도세道勢를 만회합니다. 판몰이를 하려면, 여러분 마음이 크게 열려야 합니다. 즐겁고 신명이 나야 합니다. 증산 상제님의 도에 모든 게 들어 있습니다. 좀
어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고생을 복으로 알고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길이 열립니다. 신도神道의 기운을 받아, 앞으로 더 많은 창생들이 지구의 대격변으로 희생되어 나갈 겁니다. 새로운 희망의 질서, 새 생명의 질서를 열기 위해, 천지에서 그런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추살도수秋殺度數에 의해 그렇게 됩니다. 상제님이 말씀하신 판몰이는 대두목 진주眞主가 합니다. 그 위대한
사역은 개벽 현장의 진짜 주인인 여러분, 참일꾼들이 해냅니다. “판 안 사람 판 안 공부 할 수 없어 허리끈 졸라 매고 뒷문 열고 내다보니 판밖 소식 이르리라. (道典 6:65)”는 상제님 말씀을 기억하죠? 여기서 ‘판밖 소식’이란, 온 인류에게는 증산 상제님의 개벽 소식입니다. 천하 창생들에게 판밖 소식인 상제님의 진리를 명쾌하게 깨쳐 주어야 합니다. 상제님 진리의 교과서, 생명의 교과서가 『도전道典』입니다. 이 『도전』의 대개벽 소식을 인류 역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참되게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앞으로 잠자는 일꾼들도 적극적으로 만나 다듬어 주고 이끌어 주십시오. 그들을 먼저 판 안으로 인도하세요. 지금 여러분 정신이 너무 나태해져 있습니다. 지구촌을 거세게 흔들고 있는 개벽의 대운을 절박하게 못 느끼고 있습니다. 심오하게 봐야 합니다. 앞으로 대세가 넘어가는 걸 보면, 잠이 싹 달아나 버립니다. ‘상씨름으로 판을 마친다. 판을 거둔다. 끝판이다.’ 하는 이런 말씀을 명심하고, 참된 그 판의 주인공, 상씨름꾼이 돼야 합니다. 꾸준히 의식, 무의식적으로 태을주를 읽으십시오. 꿈 속에서도 태을주, 운장주를 읽으려고 해야 합니다. 태을주만 읽어도, 어떤 상황에서든 삽니다. 고베에 지진이 터졌을
때, 그 지진의 중심지에 고베도장이 있었는데, 건물이 다 박살나고
그 동네가 다 불탔어도, 신도들이 안 다쳤습니다. 한 사람도 희생되지 않았습니다. 태을주의 신권과 도력 때문이죠. 내가 고베에 갔을
때, 그 당시의 상황을 상세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 정신 갖고 깨져 있으면,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의통을 전수 받아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강렬한 희망을 갖고, 여러분 모두 태을주 조화 세계를 깊이 체험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상제님 말씀에 귀가 열리고, 상제님의 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일당 백, 일당 천, 일당 만의
생명력 있는 진지한 구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을우주에게 보내는 멜(seo443@hanmail.net)
“상씨름이 넘어간다.”고 소리치신 까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