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 하나] 이 세상 최고의 선물 / 현재봉 신부
발행일2019-02-03
[제3131호, 3면]
두 달 전 본당에서는 성탄구유 콘테스트가 있었다. “우리 구역에 예수님 오셨네!”라는 주제로 각 구역별로 구유를 만들게 되었는데 가능하면 재활용품을 사용하길 권했고, 가로×세로×높이 60㎝ 규격을 정해, 대림 제3주일까지 내라고 했다. 과연 몇 개 구역이 참가할까 반신반의하는 사이 모두 19개 구역과 청년회 등, 총 20개 팀의 구유가 탄생했다.
구유에는 모두 제각각 사연이 있었다. 구역 식구들 한 사람 한 사람 얼굴과 신부, 수녀 얼굴 모두를 다 쓴 화장지 롤에 새겨 넣은 구유부터, 청년들의 재기 발랄한 스마트폰 앱에 등장하는 구유, 38도선 상에 누워 있는 예수님과 남북정상이 서로 손을 잡고 남북의 아이들이 손을 맞잡은 채 통일을 기원하는 구유, 그리고 본당설정 25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구유 등이 그것들이다.
구유 경연이 끝나고 제대 중앙과 성전 입구, 그리고 성모동산 주위에 온통 구유를 전시해 놓아 교우들의 성탄의 기쁨은 성탄시기 내내 이어졌다.
교회 내 구유의 시작은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성인의 투박하고 가난한 구유에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가장 낮은 곳에, 가장 가난한 곳에 오신 예수님을 가장 큰 선물로 생각하고 구유를 보고 묵상하고 기도했던 것이다.
추운 겨울, 성탄전야 뒤 예수와 마리아, 요셉, 목동들로 분장한 채 산동네로 성탄송을 했던 고등부 때 기억이 새롭다. 늦은 시간까지 자지 않고 우리 일행을 맞이하고 따뜻한 차와 봉헌금을 내주신 가정에 마음도 따뜻해졌다. 여기에 학생들의 모금을 더해 경로시설을 방문해 성금을 전달하며 뿌듯해했던 기억도 새롭다.
작은 정성과 봉헌이 모아져 더 큰 선물이 되는 것,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싶다. 사실 크리스마스(Christ+Mass) 즉 미사는 일 년 내내 주어지는 예수님의 선물이다. 예수님이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세상에 선물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번 구유의 재료는 버려진 것들로 재활용된 것이다. 우리 자신도 사실 알고 보면 세상에서는 버려진 존재거나 알아주지 않는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처투성이의 갈기갈기 찢겨진 채로 존재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미사 때 봉헌 제물로 드렸을 때 가장 아름답게 나만의 색깔과 빛과 멋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이제 연중시기에 접어들었다. 일 년 내내 누군가에게‘최고의 선물이 되어 주는 삶’,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나의 시간과 재능 등을 봉헌하는 보람된 삶을 살면 좋지 않을까?
현재봉 신부 (제2대리구 목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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