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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어깨수술 후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원당훈련장에서 재활 중인 정민태.(사진 김병준) |
“정민태 선배님처럼 되고 싶습니다.” 8월 16일 프로야구 2007년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현대로부터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천안 북일고 장효훈(19)은 자신의 꿈을 그렇게 말했다. 숨소리만큼이나 흔한 답변이었다. 어차피 그 나이 때 고교투수들은 자신의 사물함에 붙여놨던 존경하는 대투수를 꿈의 모델로 삼는 법이니까. 하지만 어째서 정민태인가. 벌써 2년째 부상으로 그라운드에서 사라진 투수를. “한국 최고의 오른손 투수니까요.” 장효훈은 짧지만 단호하게 대답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현대의 원당훈련장. 그곳에서 재활 중인 정민태를 만났을 때 그는 쓸쓸하지만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최고의 오른손 투수, 그러나 슬픈 전설
정민태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오른손 투수 중 한명이다. 프로 12년 동안 124승89패 평균자책점 3.35를 기록 중인 현역 최고의 투수다. 1999년 20승7패로 다승왕에 올라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로 기억되고 있는 정민태. 2003년에는 21연승으로 로저 클레멘스(휴스턴 애스트로스)가 보유하고 있던 선발투수 세계연승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통산 투구이닝 10위(현역 4위)는 그의 꾸준함을 상징하며 통산 1,8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 가운데 최저 사사구(477개)를 기록하고 있는 점은 그가 얼마나 컨트롤이 좋은 선수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탈삼진 역시 1,268개로 현역 6위.
그러나 무엇보다 정민태는 선동열 이후 소속팀을 네 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시킨 유일한 투수다. 한국시리즈에서만은 선동열을 능가하는 ‘10월의 사나이’였다. 한국시리즈 통산 최다연승(6회)과 통산 최다 투구횟수(73⅔)기록은 단연 역대 최고다. 통산 최다 승리(6승)는 7승의 김정수(전 해태)에 이어 2위.
“아마 때부터 제2의 선동열이라 불리던 투수다. 데뷔 때 부상만 없고, 일본 진출만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첫 200승은 송진우가 아니라 정민태의 몫이었을지도 모른다.” SBS스포츠 박노준 해설위원의 생각이다.
그러나 정민태는 이렇듯 훌륭한 성적과 전설로 남을 기록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선수이기도 하다. 오히려 아주 특이한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야 마는 이기적인 선수로 취급받고 있다.
“싫어할 이유가 너무 많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태평양 돌핀스 시절 정민태의 등번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던 이성학(30) 씨는 이제 정민태의 대표적인 안티팬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이유란 도대체 무엇인가. 진실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씨는 ‘현대의 연고지 이전’을 제외하곤 별다른 답을 하지 못했다. “내게 있어 마운드 위에서 가장 두려운 타자는 오해와 편견이다.” 정민태의 담담한 고백이다.
실제로 팬들은 그의 고액연봉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지만 그가 프로선수 중에서 골퍼 최경주 다음으로 많은 자선과 선행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연고지 팬을 잃어버린 불행한 프로선수다.
1월 1일부터 연습을 시작해 12월 31일에는 더 나은 선수가 되는 것을 꿈으로 여겼던 정민태. 하지만 뒤를 돌아봤을 때 그와 꿈을 함께 할 팬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프로선수에게 가장 큰 축복은 팬이라는 사실을.” 작년 9월 미국 버밍햄의 앨라배마 스포츠클리닉에서 어깨수술을 받은 후 줄곧 재활에 매달리고 있는 정민태는 빠르면 9월 말 무렵에는 1군에 등장할 예정이다.
(정민태, "인천이 그립다" 인터뷰 기사에 계속)
SPORTS2.0 제 16호(발행일 9월 11일) 기사
박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