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니??
도시속의 큰 소음속에서 혼자만 조용히 외로워지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야,,,
언젠가 혼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니??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어,,,
하지만 봐,,, 넌 아마 벽에 기대고 있을껄,,,
네 뒤에는 벽이 있어,,,
네 주위에는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가 널 알아간다는 것은
마치 눈을 굴리듯 시간이 걸리고 힘든 일이겠지만 말야,,,
난 너라는 눈사람을 만들 수 있을거야
그리고 너로 인해서 내가 숨쉬는 공기가 더욱 달콤하게 느껴질거야
넌 나에게 하나의 의미인걸,,,
지금은 서로의 그림자가 다른 곳을 향해 뻗어있어도
언젠간 태양이 물들면 우리 그림자가 만날 수 있을거야
너란 사람을 알게되겠지...
그건 아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만남이 될거야...
그래서 오늘도 난 눈을 굴리고 있지,,,
널위한, 그리고 날위한 눈을,,,
길들여짐의 소중함
아침 8시, 학교로 가는 지하철 안... 오늘도 나는 길들여지지 않은 몇 십 명의 얼굴을 마주 본채 앉아있다. 나는 그들에게 길들여지지 않았고 그들 또한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혹 내가 옆에 앉아있는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오늘 날씨 좋죠?” 혹은 “어디 가는 길이세요?”라고 물어본다면 나에게 길들여지지 않은 그는 아마도 나를 이상한 사람 보듯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인가도 궁금해지기도 한다.
50년 전만해도 모든 사람들이 이웃처럼 느껴지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현대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편리한 , 수동적인 , 기계적인, 사무적인 일상에 안주하고 있고 길들여져 있다. 따뜻하다기 보다 차가운 일상에 익숙해져있는 것일 게다. 마치 기계처럼. 우리가 길들여져 있는 이러한 관계는 인간을 대하는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대의 인간관계는 한마디로 얕고 넓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진정 내 마음으로 길들인 사람 즉, 마음으로 대하는 친구, 사랑하는 사람은 몇 되지 못하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따뜻하고 소중한 것을 간과하고 있다. 순수, 이상들을 잃어버린 채 소유와 정복에 더 길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길들여짐은 의미있는 아름다운 길들임이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물론이고 내가 지금 마주하는 사람들, 길거리에 지나쳐가는 사람들 역시 남을 길들인다는 것, 남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에 서툴다. ‘나한테만 친하고 나에게만 잘해주는 길들임’에 더 익숙해져있다. 우리는 서로 구조적이고 경직된 상황에 처해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건 아마도 문명이 발달하면서 우리가 눈을 돌린 것이 기계나 과학이지 인간자체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가 산업화, 공업화, 기술화, 정보화되어 가면서 더 많은 넓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지만 오히려 그들 개개인에 길들여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명의 발달로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사회에 길들여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 물질주의 즉, 존재하는 것을 보려고 하였지 실체를 보려 하지 않았다. 보지 못했다. 마치 어린 왕자의 동화에 나오는 ‘나’란 인물 주변 사람들이 보아 구렁이 안의 코끼리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내’가 어린왕자에게 그려준 상자 안에 서 어린왕자가 양을 보듯, 마음으로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고 행복한 일이지만 그만큼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계를 맺는 데에 대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고 책임을 질 수 있어야하기 때문에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 혼자의 개인만 노력해서는 그것이 사랑이 되기는 힘들다. 최소한 2명이상이 상호작용을 하여야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다. 혼자 그 사람에게 길들여진다는 것, 그것은 자칫 잘못 집착으로 불리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즉, 개인 혼자로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말이다. 잘못된 길들여짐은 자칫 나를 틀 안에 가둬버리고 그 생각의 자유로움에까지 무심하게 ‘ 더 이상 나갈 수 없음’의 표지판을 세워 못질을 해 버릴 수도 있다. 항상 되풀이되는 무언가에 익숙하게 되었을 때, 사람은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며 내가 익숙해진 그것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는 심한 거부감을 보이게 된다. 즉 개인적 차윈의 노력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문명의 이기에 눈이 팔려 진정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어린왕자에서도 보았듯이 어린왕자가 별을 떠나 거쳐 온 별들의 사람들은 모두가 혼자다. 그들은 사랑할 대상을 찾지 못한 채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고독에서 벗어날 진정한 방식을 외면한 채 지배, 소유, 추상적 지식, 현실도피, 타인에 의한 자기 확인 등과 같은 그 모든 헛된 욕구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의 공터를 은폐하려 애쓴다. 왕은 신하를 허영심 많은 사람은 찬양자를 지리학자는 탐험가를 상인은 소유의 대상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그들은 왜곡된 형태로 상대방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 개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을 길들이기 위한 참을성, 성실성,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외로움이 아닌 하나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서로에게 무의미한 관계가 아닌 의미있는 사람으로 다가서기 위해서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기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진정 사랑해 보아야 한다. 그런 사랑을 통해서 아무런 일상에 의미가 없었던 개인에게 큰 의미로, 아름다운 몸짓으로 다가와 개인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 줄 것이다. 그러한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시 한 편 써 본다.
꽃 씨
최 계 락
꽃씨 속에는
파아란 잎이 하늘거린다.
꽃씨 속에는 빠알가니 꽃도 피어 있고
꽃씨 속에는
노오란 나비 떼도 숨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시 한 편 더 써본다.
꽃
김 춘 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우리는 누군가와 헤어질 수도 만날 수도 있다
어느것이건 간에 나에게 큰 의미가 될거다,,,
우리는 그 의미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첫댓글 은폐하기 힘들죠? 그냥 보여주는 것은 어떨까요.. 잠시간의 시간이라도..(19)
주로 한 곳에서 자료를 가져 왔네요.... 근데, 직접 이런 방식의 도발을 하는 것도 좋을 듯 한데요[18]
그림만 따왔구요 말들은 제가 다 지은거예용 몇 구절구절 인용한거랑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