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단장으로 있는 앙상블의 공연을 돕기 위해 운전기사를 자청하여 10여 넌 간 함께 하였었습니다. 그때 들었던 곡들, 새로 알게 된 곡들은 아직도 한 번씩 다시 듣곤 합니다. 합주단에서는 연주 시작 전 오보에가 부는 기준음(A음)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조율합니다. 오케스트라가 오보에에 맞춰 조율을 하는 이유는 이 악기가 한음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고, 소리가 안정적이고 멀리 가기 때문입니다. A음을 기준음으로 조율하는 이유는 A음이 가장 안정적이고 편안한 소리로, 사람이 구분하기 쉬운 명확한 음이기 때문이랍니다.
조율(調律)을 사전에서는 ‘1.악기의 음을 표준음에 맞추어 고름. 2.문제를 어떤 대상에 알맞거나 마땅하도록 조절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나 합주단에서는 오보에가 기준음을 잡고 거기에 맞춰 타 악기들이 조율을 하는데, 요즘 우리 사는 세상에는 기준음을 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조율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정치, 경제, 교육 모두가 그렇습니다. 오래전 이건희 회장이 했던 말이 새삼 떠오릅니다.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라던 그의 말, 충격으로 다가왔었지요. 30년 가까이 지난 현시점에서 보면 정치는 4류에서 끝없는 지하로 계속 내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여러 성질이 다른 악기가 기준음을 함께 조율하고 환상적인 음악을 쏟아내는 연주회를 보며, 우리 정치판에도 이런 기준음이, 조율사가, 울림을 주는 소리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간절히 가져봅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이청준의 소설‘조율사’중 지금까지 각인된 내용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처음에는 공연을 위해 조율을 하고 연습을 하지만, 잊히기 시작하고 관심에서 멀어지면 연습을 게을리 하게 되고, 조율은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스스로를 돌아보았을 때, 청중 앞에서의 공연 때문이 아니라, 나태해진 스스로를 갈고 닦기 위해 조율을 하고 연습을 하게 됩니다. 조율은 표준에 맞추어 음을 고르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문제를 잘 조절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초긍정’의 삶을 살아왔던 제게 ‘긍정’의 마음이 옅어지고 있는 것 같은 요즘, 저부터 마음을 고르고, 조절하고, 갈고 닦아야겠다 마음먹습니다. 조율은 나 스스로, 내면으로부터... 내 삶을 평생 조율해야 하는 건 굴레일까요? 멍에일까요? 어떻게 마음먹느냐, 행동하느냐의 문제겠지요...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함께 할 때는 자연스럽게 거기에 동화, 자연적으로 조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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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천사 은행나무 앞에서 겸손을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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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가 이미 지기 시작하는 걸 보면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경천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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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주단 따라 다니며 들은 연주곡 중 오보에가 돋보이는 곡으로는 두 곡이 아직도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과 가브리엘의 오보에, 언제 들어도 감동입니다.
영화 미션에서의 가브리엘의 오보에와 조수미의 노래가 어우러진 동영상입니다.
https://youtu.be/ZQyWc3hzudo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2번(함께 했던 합주단의 연주에서는 오보에가 이끌었는데, 아래 연주에서는 바순이 앞장서고 있네요)
https://youtu.be/_2Y1hCgDvNE
굴레와 멍에(모셔 온 글)==========
제가 아는 사람 가운데 7대 독자가 한 명 있습니다. 얼마 전에 태어난 그 사람 아들은 8대 독자죠. 누군가, 그 사람의 아들은 8대 독자라는 멍에를 쓰고 태어났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요즘은 독자가 많다지만, 그래도 8대 독자는... 모셔야할 조상만 해도... 제사가 몇 건이며, 벌초해야 할 봉은 몇 개 인지... 제가 생각해도 좀 짠하네요. 오늘은 그 8대 독자를 생각하면서 글을 쓰겠습니다.
굴레가 뭔지 아시죠? 소에 코뚜레를 꿰어 머리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동여맨 것을 말합니다. 그 코뚜레로 힘센 소를 힘 약한 사람이 부릴 수 있는 거죠. 그 코뚜레는 소가 어느 정도 크면 채워서 소가 죽을 때까지 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멍에는 다릅니다. 멍에는, 달구지나 쟁기를 끌 때 마소의 목에 가로 얹는 구부정한 나무를 말합니다. 이 멍에는 소의 힘을 빌려 일을 할 때만 소의 목에 겁니다. 소가 태어나서부터 평생 쓰고 있는 것은 아니죠. 굴레와 멍에는 둘 다 소를 속박하는 것이긴 하지만, 굴레는 죽을 때까지 쓰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멍에는 일을 할 때만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람에게 적용해보면, 노비의 자식, 살인범의 아들...처럼 내 의지로 평생 벗을 수 없는 게 ‘굴레’고, 남편의 속박, 가난, 친구와 불화...처럼 내 노력에 따라 벗을 수 있는 게 ‘멍에’입니다. “가난이라는 멍에는 노력하면 벗을 수 있다. 굴레처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면 안 된다”처럼 쓸 수 있죠.
그럼, 8대 독자는 멍에일까요, 굴레일까요? 제 생각에 그건 부모에게 달렸습니다. 부모가 아들을 하나 더 낳으면 8대 독자에서 벗어나므로(벗어날 수 있으므로) ‘멍에’고, 부모가 애를 낳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평생 8대 독자가 되니, 그것은 ‘굴레’고...
ㅋㅋㅋ
그나저나, 현재까지 8대 독자인 그 녀석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빕니다.
여러분도 그 아기를 위해 기도해 주실 거죠? ^^*
-----박병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