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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앞에 침묵하라
스바냐 1:1-7
2024년5월26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 교회 진천
선지자 스바냐는 유다 사회에서 상당한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가 가문의 사람이었습니다.
이 예언서는 저자의 조상을 진술함으로 시작합니다(1:1).
히브리 선지 전통에서 드문 경우입니다(niv study bible,zondervan, 2002,1418).
스바냐는, 주전 715-686년 다스린 유명한 왕, 히스기야의 4대 손입니다.
이 진술 외에 스바냐의 배경을 알 수 없습니다.
선지자 미가는 유다 보통 사람들 문제를 주의 깊게, 동정적으로 다루었습니다.
반면에 스바냐는 궁정 사회와 당대 정치 문제를 더 친숙하게 언급했습니다.
스바냐는 이사야와 아모스 같은 주전 8세기 선지자들 기록을 익숙하게 접했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젊은 예레미야의 사역을 인지했을 수 있습니다.
그들 선지자들 발언을 자기 저술에 반영했을 것입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418).
스바냐 연대를 살피고자 합니다.
1:1에 의하면, 스바냐는 요시야 왕 통치기(주전 640-609)에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나훔, 하박국(아마도)과 당대에 활동했습니다.
그의 예언은 요시야 통치 초기에 있었습니다.
스바냐는 요시야 왕이 개혁을 시작하기 전 활동했습니다.
므낫세와 아몬 통치기 받았던 영향력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주전 627년 앗수르 왕 앗수르바니팔이 죽기 전 스가랴가 활동했습니다.
앗수르는 여전히 강력한 나라였으나 다른 신흥 세력, 즉 바벨론 등에 의해 위협받고 있었습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419).
스바냐 배경을 살피고자 합니다.
예레미야, 나훔 선지자가 스바냐 당대 활동한 것으로 봅니다.
나훔서 배경을 참조하면, 수도 니느웨로 대표 되는 아시리아(나훔 1:1)는 나훔 활동기에 사마리아를 이미 멸망시킨 때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405)
왕족, 귀족, 유력자들이 우선적으로 잡혀 갔습니다.
이것은 남유다에 현실적 위협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인들은 굉장히 잔혹했습니다.
앗수르 역대 왕들은 피정복민들에 대해서 가해지는 가학적 징벌들에 흡족해했습니다.
그들(역대왕들)은 충격적 흉포함으로 전쟁을 수행했습니다.
정복지 인구를 뿌리채 옮기는 국가 정책으로, 그들 제국 내 다른 지역들로 피정복민들을 이주시켰습니다.
정복 당한 도시들의 지도자들은 고문당하고 처참하게 사지와 신체가 훼손되어 죽어야 했습니다.
앗시리아는 이웃 나라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404).
주전 약 700년, 산헤립 왕은 니느웨를 앗시리아 제국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주전 612년 멸망당할 때까지 니느웨는 앗시리아 제국 수도였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멸망을 예언했습니다(요나 3:4).
그러나 왕과 백성이 요나 선포를 듣고 회개하니, 야웨께서 일시적으로 그 멸망을 멈추었습니다(요나 3:10).
그러나 그 후로 극도의 악을 저지르고 잔혹함과 교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광포함이, 앗수르 제국 마지막 통치자 잇수르바니팔(주전 669-627) 통치기, 극에 달했습니다.
앗수르바니팔이 죽고 앗시리아 영향력과 권력이 주전 612까지 급속히 기울어서 니느웨는 멸망당했습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405).
정치적으로 앗수르의 세계 권력이 바빌론으로 넘어가는 시기였습니다.
니느웨가 유다를 장악하는 힘이 약해졌고, 약 50년 동안 유다는 독립적인 주권을 행사했습니다.
요시야 왕이 애굽과 니느웨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애굽왕 네고에 맞섰다가 죽임당했습니다.
요시야 왕이 30대에 죽임당한 것은 안타깝고 그가 추진하던 종교 개혁도 좌절되었습니다.
균형 외교 혹은 등거리 외교를 통해 중립을 지키고, 전쟁에 나서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필자 생각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상황도 균형 외교, 등거리 외교가 더 나은 방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외교와 정치는 경제와 맞물리기 때문에 무엇이 정답인지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히스기야 아들 므낫세(주전 695-642)의 통치는 광장히 오랫동안 악한 것이었고 배교의 길로 갔습니다.
히스기야 손자 아몬도 2년 동안 배교의 길로 갔습니다(주전 642-640; 왕하 21; 역대하 33).
요시야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서 통치 초기는 므낫세와 아몬의 배교와 우상 숭배 영향이 그대로 전이된 상황이었습니다.
요시야는 약 8세에 왕이 되었으니 아직 개혁을 시작하기 어려운 나이였습니다.
이십대 후반에 성전 수리 과정에서 발견된 율법책이 종교 개혁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30대에 전투에 나기서 애굽 왕 네고에 맞서다가 죽게 되니, 종교 개혁은 멈추고 말았습니다.
므낫세와 아몬의 배교와 우상숭배 영향으로 결국 유다와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멸망당하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칠십년을 바벨론에 끌려가 살아야 했습니다.
(참고: 스바냐 1장과 도입부 참조, Mac Arthur study bible, crossway, 2010).
바벨론 칠십년 포로 생활은 유대인들에게 배교와 우상 숭배를 철저히 반성하고, 야웨 하나님께 대한 믿음 생활과 율법서를 재정비하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스바냐서 1:1 KOERV(쉬운성경)
[1] 이것은 아몬의 아들인 유다 왕 요시아때 스바냐가 받은 예언의 말씀이다. 스바냐의 아버지는 구시, 구시의 아버지는 그달리야, 그달리야의
아버지는 아마랴, 아마랴의 아버지는 히스기야이다.
야웨의 말씀이 구쉬 아들 스바냐에게 임했습니다.
"야웨 말씀"은 선지서들의 도입 관용구입니다(예레미야 1:2; 호세아 1:1).
"스바냐"는 "야웨께서 숨기신다" 혹은 "야웨께서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악명높은 므낫세 통치 기간, 아기 스바냐를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길 원하는 부모 기도가 담겼습니다.
저자 스바냐 족보로 판단하건대, 20대 초반 예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4대 손입니다.
스바냐는 왕족, 지배계급 출신, 즉 금수저 출신입니다.
선지자 이사야 역시 궁정 사회에 출입했지만, 이사야는 상류층 즉 귀족 출신이었을 것입니다(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 1420).
스바냐서 1:2-3 KOERV
[2] “내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틀림없이 쓸어 없애겠다.
[3] 사람과 짐승들을 쓸어 없애고 공중의 새들과 바다의 물고기도 쓸어 없애겠다. 사악한 자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도 쓸어 없애겠다.
땅 위에서 사람을 깨끗이 없애 버리겠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스바냐는 다가오는 재앙을 노아 홍수시대 하나님의 말씀의 어투로 말했습니다(창 6:7).
이것은 우주적 심판 선언입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우주적 멸망 선언으로 이 책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땅 위에서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사라지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인간이 우상을 섬기고 짐승보다 못하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구별이 없이 땅에서 없앤다는 선언입니다.
현재 2024년 5월, 짐승보다 못한 사람들, 짐승만도 못한 짓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하늘의 새와 바다와 물속 고기를 다 멸하시겠다 합니다.
짐승, 새, 물고기는 인간의 삶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배교의 길로 가면, 인간과 함께 땅과 하늘과 바다와 물의 생명첼 즉 동물을 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시대 홍수 심판과 유사합니다.
창 세 기 6:5-7 KOERV에
[5] 주께서 세상 사람들이 매우 악한 것을 보셨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언제나 악한 일만 생각하고 있는 것도 보셨다.
[6] 주께서는 땅 위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슬퍼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
[7] 그래서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땅 위에 만든 사람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겠다. 땅 위에 사는 것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길짐승이나, 공중의 새나 가릴 것 없이 모조리 쓸어버려야겠다. 내가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스럽구나!”
그러나 스바냐가 경고한 재앙은, 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는 진노의 불로 이루어집니다(18; 3:8).
악인들을 돌무더기 같은 장애물이 가로막고 결국 그들은 완전히 멸망당하게 됩니다.
에스겔서 14:3-4 KOERV(쉬운성경)에
[3] “사람의 아들아, 이 사람들은 마음속에 우상을 세우고, 자기들을 죄에 빠뜨리는 올가미를 코앞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내게 와서 묻는 것을 허락해야 한단 말이냐?
[4] 그러니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집안 가운데 어느 누구라도 마음속에 우상을 세워
놓거나, 자기를 죄에 빠뜨리는 올가미를 코앞에 둔 채, 예언자를 찾아와 물으면 내가 직접 그에게 대답할 것이다.
인간이 섬기는 우상은 결국 그것을 섬기는 자, 본인에게 올가미가 되고 걸림돌이 되는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언약 백성으로서, 구별된 삶을 살지 못했으니, 우선적으로 우주적 심판의 본보기로 삼아 바벨론 나라에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참고 Charles L. Feinberg, The Minor Prophets, Chicago:Moody press,
1990, 222).
1:4-6절은 스바냐 주된 사역이 주전 621년 전에 일어났음을 암시합니다.
주전 621년은 요시야 왕 즉위 18년(주전 621년), 요시야 나이 26세 때였습니다.
요시야 종교 개혁이 일어난 때였습니다.
요시야는 8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31년 치세했습니다.
주전 621년 성전 수리 과정에서 율법서를 발견했습니다.
그 율법책을 왕 요시야 앞에서 읽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요시야 왕은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
곧 회개와 결단을 했습니다.
그것이 종교 개혁 계기가 되었습니다.
부흥은 말씀을 듣거나 읽고, 회개하고 결단함으로 시작됩니다.
스바냐가 1:4-6에 지적한 악습은 요시야 종교 개혁 때 폐지되었습니다(왕하 23:4-16).
스바냐가 지적한 1:4-6의 악습은 요시야 종교 개혁 이전 일입니다.
스바냐의 메시지는 요시야 왕 종교 개혁의 동기가 되었을 것입니다(역대하 34:1-7; 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 1420).
스바냐서 1:4 KOERV에
[4] “내 팔을 펼쳐 유다를 치고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자들을 치겠다. 그곳에서 계속 바알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없애버리고 이스라엘
제사장들과 함께 가나안 제사장들을 일컫는 그마림이란 말을 모두 없애버리겠다.
왕족 출신 스바냐는 예루살렘에 거주했을 것입니다.
스바냐는 유다가 바알 숭배에 참여하고 회개하지 않음을 책망하고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그마림"은 남유다에 혼합 종교가 들어온 결과로 생긴 직업입니다.
야웨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이나 다른 우상도 섬기는데 필요한 소위 "제사장"이었습니다.
혼합 종교를 끌어들인 사람은 솔로몬 왕이었습니다.
'그마림'은 바알 선지자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산당 즉 높은곳이나 야웨 우상 숭배를 위해 세운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야웨 하나님도 섬기고 우상도 섬기는 이상한 제사장이었습니다.
이들을 세운 자들이 바로 유다 왕들이었습니다(왕하 23:5; C. F. Keil, Minor prophets, Grand
Rapids:William B. Eerdmans, 1982, 128).
열왕기하 23:5 KOERV
[5] 그는 또 유다의 왕들이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 둘레에 있는 산당에서 분향하려고 뽑아 세운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을 내쫓았다. 그들은
바알, 해와 달, 하늘의 별자리들과 별들에게 분향하는 자들이었다.
"그" 즉 요사야 왕이 종교 개혁을 통해 "우상 섬기는 제사장들"을 내쫓았습니다
그 우상 섬기는 제사장들을 "그마림"이라 했습니다.
바알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가나안 족속, 페니키아 족속이 섬긴 신이었습니다.
다곤의 아들, 엘의 아들 등으로 다양하게 알려졌습니다.
아람 즉 시리아에서 하닷, 바벨론에서 아닷이라 했습니다.
바알이 여인이나 짐승 자궁에 다산을 부여해 주고, 땅에 비를 내려 생명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생사화복의 주인은 야웨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바알을 황소 상으로 표현했고, 다산과 힘의 인기있는 상징이 되었습니다(왕상 12:28; 참고 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 332).
열왕기상 12:28-30 KOERV
[28] 그리하여 여로보암 왕은 신하들의 의견을 들은 다음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까지 올라가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오, 이스라엘아. 너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신 너희의 신이 여기에 계신다.”
[29] 그는 금송아지 하나는 베델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
[30] 그러나 이것이 죄가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베델과 단에 가서 그곳에 있는 금송아지들을 예배하였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 광야에서 만든 우상도 금송아지였습니다.
폭풍 구름은 바알의 수레, 천둥은 그의 목소리, 번개는 그의 창과 화살로 믿었습니다.
바알 숭배는 신전 음행과 어린 아이 인신 제사가 행해지기도 했습니다(예레미야 19:5; 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333).
폭풍, 천둥, 번개는 하나님 주권아래 있지만, 바알 숭배자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예레미야서 19:5 KOERV
[5] 그들은 바알을 위해 산당들을 세우고 그곳에서 자식들을 불에 태워 바알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런 짓은 내가 시키지도 않았고, 입 밖에
낸 적도 없고,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다.”
유다왕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렇게 타락했습니다(렘 19:3).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와 구약 선지자들은 바알 숭배를 배격하고 저항했습니다(시편 29:3-9; 68:1-4; 예레미야 10:12-16; 호
2:8; 16-17; 아모스 5:8; 참고 Judges 2:3, 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 333).
스바냐서 1:5 KOERV(쉬운성경)
[5] 지붕에 올라가 하늘의 별들에게 절하며 숭배하는 자들과 주님께 맹세하고 엎드려 절하면서 밀감에게도 맹세를 하는 자들을 없애버리겠다.
스바냐서 1:6 KOERV
[6] 주님을 따르지 않고 등돌린 자들 주님께 간구하지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는 자들을 없애버리겠다.”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 중에 "지붕에 올라가 하늘의 별들을 숭배하고 절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왕하 23:12; 예레미야 19:13).
열왕기하 23:12 KOERV
[12] 그는 유다 왕들이 아하스의 다락방 지붕 위에 만들어 놓은 제단들과 므낫세가 주의 성전에 있는 두 뜰에 세워 놓은 제단들을 모두
허물었다. 그는 그것들을 그곳에서 끌어내어 산산조각 낸 다음 그 조각들을 기드론 골짜기에 던져 버렸다.
이것은 요시야 왕 종교 개혁 모습입니다.
요시야 왕 이전의 왕들이 지붕 위에서 하늘의 별들을 섬겼
습니다.
예레미야서 19:13 KOERV
[13] ‘예루살렘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도 이 곳 도벳처럼 더럽혀질 것이다. 그들이 지붕에 올라가 별들에게 향을 바치고 숭배하며, 다른
신들에게 술을 부어 바치던 모든 집들이 다 그렇게 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을 섬기는 것이 유다에 흔한 일이었습니다.
도벳은 유다왕 요시야 종교 개혁 때 이교 제사를 지내지 못하도록 더럽힌 곳이었습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상을 섬긴 자들을 없애버리겠다고 심판을 선언했습니다.
스바냐서 1:7 KOERV
[7] 내 주이신 주님 앞에서 입을 다물어라. 주님의 날이 가까웠다. 주께서는 희생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다. 주께서는 초대할 사람들을 불러
따로 거룩하게 구별해 놓으셨다.
야웨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물라, 침묵하라 말합니다.
침묵이 때로는 더 큰 힘을 갖습니다.
하박국서 2:20 KOERV에
[20]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성전 안에 살아 계신다. 온 땅아 그분 앞에서 잠잠하여라.”
야웨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성전 안에 살아 계십니다.
"거룩한 성전"은 하늘 보좌를 말합니다(하박국 2:20; niv study bible, zondervan, 2002,1383).
"주님의 날" 즉 심판의 날이 임박했으니 인간은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수도원 수도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일이 말하지 않는 것, 침묵입니다.
하나님 심판 앞에 겸손하게 조용히 순복하라는 것입니다(C. F. Keil, Minor prophets,129).
야웨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을 준비해 놓으셨다 합니다.
이 희생 제물은 배교와 우상 숭배에 빠진 유다와 예루살렘입니다.
초대자들을 불러 따로 거룩하게 구별하셨다 합니다.
이들은 바로 이방나라 바벨론입니다.
이방 나라 바벨론을 유다와 예루살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같은책, 130).
오늘 대한민국 교회안에, 신자들 중에 주일 예배도 드리고 점쟁이 집에도 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혼합종교에 빠진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기면 혼합주의에 빠진 것입니다.
돈, 재미, 쾌락, 명예, 권력, 지식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거나 우선 순위에 둔 무엇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이 위험한 유혹과 배교의 세상을 이기는 힘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며 성부, 성자, 성령의 은혜와 인도를 받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과 자손들 삶이 되길, 주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