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사랑이야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순간 뜨겁게 불타던 연정, 사랑의 불길이 꺼지고 나면 매몰차게 모든 것을 뿌리치고 떠나려는 남정네, 그리고 식어버린 남자의 옷자락을 부여잡고 눈물로서 매달리는 순정의 여인들..............
이 신파극 같은 사랑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지금이야 강릉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두세 시간이면 당도하지만, 그 멀고먼 옛날 강릉에서 한양 땅으로 가노라면 누구든 마평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다리쉼을 하며 하루를 묵어간다. 강릉에서 이른 아침을 먹고 서둘러 출발하면 대관령을 힘겹게 넘어 어둠이 내릴 무렵, 지친 몸으로 당도하는 곳이 바로 마평리란다.
조선 태종 때인 1418년 가을 어느 날, 마평리에 강릉 부사 박양수 일행이 당도한다. 그는 강릉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조정의 내직으로 영전돼 한양 땅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그런 그를 강릉에서부터 따라온 기생이 있었으니, 바로 청심이었다. 부사와 사랑의 언약을 맺었던 청심은 “나도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지만 부사는 냉혹하기만 하다. 마다하는 사내를 따라 면박을 받으며 대관령을 넘어 거기까지 따라온 것만으로도 청심은 얼마나 구차했을까. 냉정하게 돌아서는 부사의 모습에 낙담한 청심은 결국 오대천변의 수십 길 벼랑에서 몸을 던진다.
매정한 부사의 기억 속에서 청심은 곧 잊어졌을 터이지만, 마평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마평리 마을 사람들은 청심의 시신을 거두고 해마다 청심의 넋을 위로하는 제를 올렸고, 청심이 몸을 던진 절벽에 청심대란 이름의 정자와 사당을 세운다.
기생과 벼슬아치 사이에 이리 냉담한 사랑만 있었을까. 조선 선조 때 함북 경성지방의 북도평사였던 최경창과 기생 홍랑의 사랑은 그야말로 불꽃같았다. 국상 중에 기생을 데려다 첩을 삼았다는 이유로 파직당한 최경창이 변방을 떠돌다 객사하자, 홍랑은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하고, 숯 덩어리를 삼켜 스스로 말문을 막고 경기 파주에 있는 그의 무덤 앞에서 시묘 살이를 한다.
안동에서 만나는 퇴계와 기생 두향의 사랑 또한 빼놓을 수 없을 터, 단양군수 시절 기생 두향과 만나 사랑을 나누던 퇴계는 9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부임돼 떠났고 이후 두 사람은 생전에 한 번도 다시 만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퇴계는 두향이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를 애지중지하며 보살폈고, 두향은 퇴계가 떠난 뒤 남한강가에 움막을 치고 평생 퇴계를 그리며 살았다.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두향은 나흘을 걸어 안동을 찾아 21년 만에 퇴계의 무덤 앞에 선 뒤에 단양으로 돌아와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신분의 차이 앞에서 좌절한 홍랑과 두향의 사랑도 애달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청심의 사연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그의 죽음이 가공할 만한 희생이나 초인적인 사랑으로 치장되지 않고, 상처받고 버림받은 여자의 맨 얼굴을 보여 주기 때문일 것이다. 마평리 마을 사람들이 6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청심의 죽음을 기리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런 안쓰러움 때문이 아닐까.
첫댓글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 아름답기 그지 없다!!
헌이의 청심은 어찌 마음을 달래고 살아가고 있을꼬???
나는 청심이 같은 연인 없다. 혹시 내가 청심이라카마 몰래도!
오늘낮에 차이가 카는데 니는 선수라드라~~~뭔 선수로???
나도 모린다. 차이한테 한번 물어 보지 뭐!
ㅋㅋ 선수는 절대로 선수라 안칸다 ..
봐라~~~니 선수 맞네 뭐!!!
하여간, 무슨 선수인지는 모르겠는데 선수라카이 기분은 괜찮구마. 혹시 짝사랑의 선수인가!
할타도사???
이사람아! 할타도사는 중수이한테 물어보고 갔다 붙이라.
내가 생각하기에는 어느 조개지 몰라고 청심이 같이 죽어 주길을 바라는 같은디..........................냉혹한 생각이여...................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