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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인생의 황혼을 즐기는 법] 아름답게 늙으려면 ‘세븐 업(seven up)’을 하라
ysoo 추천 0 조회 132 18.11.22 11: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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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황혼을 즐기는 법]

아름답게 늙으려면 ‘세븐 업(seven up)’을 하라


아무리 찬란한 황혼도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늙는다는 걸 두려워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

아름답게 늙어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스스로 찾아야 한다.


朴健三

⊙ 1943년 경북 김천 출생.

⊙ 경북高, 한국외국어大 정외과, 同 대학원 卒業.

⊙ KBS 라디오 및 TV 예능프로듀서, MBC 라디오 기획특집부장, SBS 라디오국장 역임.

⊙ 現 국악FM방송 <행복한 문학> 연출, 한국시인협회 회원.

⊙ 시집 <지천명에도 사랑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만이 아니다> , 저서 <왜 PD인가?> 등.



2008년 12월 초,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地空(지공)대학원’ 편입통지서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 만 65세가 되면 공식적으로 노인으로 인정해 주는, 이른바 경로우대증인 ‘서울특별시 시니어 패스’를 발급받으라는 통보였다(‘지공’은 지하철 공짜’를 줄인것이다).


교통카드는 제법 세련된 디자인으로 ‘시니어 패스’라고 적힌 글자 밑에 친절하게도 ‘어르신 교통카드’라는 글자까지 예쁘게 박아 두었다. 어이하여 벌써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세월이 이리 빨리 흘러 이제 졸지에 古稀(고희)를 향해 줄달음치는 나이가 되었다.


작년 4월 25일 나는 知人(지인) 세 명과 함께 ‘카미노’(스페인의 성지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는 성지순례-편집자 주) 800km 트레킹에 나서 33일 만에 네 명 모두 무사히 여정을 마치고 6월 초 귀국했다. 네 명의 평균 연령은 64세였다. 사실 주위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했지만 이를 악물고 하루 20~30km씩 꾸준히 걸어 기어이 800km를 완주해냈다.


길 떠나기 전 예순을 훌쩍 넘은 나이에 이 천리 길을 배낭 메고 걷는다고 하니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들 했다. 그러나 한 번 맘속으로 결정한 이상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작정했다.


‘카미노’는 내가 살아오면서 결정한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한 선택이었다. 무슨 부귀공명을 얻으러 나선 것도 아니고 돈 들여 가며 고생하러 나서는 나를 두고 우선 집에서 반대였다. 하지만 ‘가야 할 이유’를 가장 간단명료하게 설명한 이후부터 집에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내 의지로는 술을 끊을 수는 없다. 술을 끊고(사실 아직도 나는 술을 끊지 못하고 사랑하고 있다) 이 뱃살을 빼고 건강하게 새 사람으로 돌아올 것이다.’


작년 초, 그러니까 1월부터 나는 ‘카미노 800km’ 순례에 나설 때까지 100여 일 동안 350km를 걸었다. 퇴근길엔 아예 여의도에서 신림동 집까지 10여km를 걸어서 갔고, 토요일이면 여의도역에서 잠실운동장까지 걷고 다시 아시아 선수촌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지하철을 타고 신림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면 무려 20km가 훌쩍 넘었다. 일요일엔 반드시 3시간 정도의 산행을 했다. 마치 걷기 위해서 사는 사람처럼 매일 걸었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건 한두 달쯤 하고 나니 걷는 게 재미있고, 걷는 순간순간이 행복했다. 카미노를 다녀와서 나는 떠나기 전 100여 일 동안과 33일간 카미노를 걸은 때가 내 생애 가장 우직하게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66세에 카미노 800km에 도전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어느 누구도 죽음의 덫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화, 늙는다는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해가 뜨면 지게 마련이듯 인생 또한 태어나면 사라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한 번은 젊고 누구든지 한 번은 늙는다. 이 공평한 흐름을 시기하는 것은 분명 탐욕이다. 황혼은 아름답다. 그러나 황혼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시간은 너무나 짧다. 이 짧은 시간을 어떻게 아름답고 행복하게 보내느냐가 중요하다. 우선 건강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건 좋은 말벗이 되어 줄 친구와 약간의 돈이다.


지난해 봄, 정확히 말하자면 2008년 4월 27일 새벽 6시 반. 나는 프랑스 남쪽 조그마한 마을 생장 피에포르(Saint-Jean Piet-Port)를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북부 ‘산티아고’에 이르는 800km 순례 길을 한 달여 동안 걸었다.


‘66세에 카미노 800km 도전’, 이런 거창한 타이틀을 제멋대로 달고 겁 없이 도전했다. 처음 걸을 땐 수염도 깎고 얼굴에 최소한의 치장(?)도 했지만 한 일주일 걷다 보니 수염 깎는 게 여간 귀찮지 않았다. 처음 일주일은 걷고 나서 샤워한 뒤엔 만사가 귀찮아 아무 것도 하기 싫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대충 눈 비비고 화장실부터 챙기고 바나나 하나, 요구르트 한 병,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배낭 메고 신발 끈 졸라매고 나서면 그 길로 20~30km씩 걷는 게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그런 와중에 면도를 한다는 게 여간 사치가 아니어서 거의 한 달쯤 길렀더니 초라하고 옹색한 山賊(산적) 비슷한 몰골이 되었다.


순례를 마치고 ‘피스테레’라는 곳에서 비로소 관광객의 신분으로 돌아온 나는 거의 한 달 만에 처음으로 면도를 했다. 면도칼이 나가질 않아 고군분투(?)한 끝에 겨우 면도를 하고 얼굴에 뭔가를 바르고 거울을 보니 50대 초반의 약간 마른 인상의 사내가 서 있었다. 텁수룩한 수염을 말끔히 깎은 것밖에 아무 치장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쑥하고 핸섬할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귀국할 때까지 깨끗하게 면도하고 리스보아와 마드리드를 활보하고 다녔다.


나이가 들수록 깨끗해야 한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몸을 청결하게 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감지도 않은 희끗희끗 반백의 머리, 게다가 수염을 깎지 않은 텁수룩한 얼굴은 궁색하고 초라해 보인다.

왜 자신의 그런 모습을 남에게 보일 것인가? 그런 모습을 수수하다거나 검소하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군가가 아름답게 늙어 가려면 일곱 가지를 향상시키는 일, 즉 ‘세븐 업(Seven Up)’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반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 내용을 나름대로 요약해 보았다.



일곱 가지 ‘업(up)’


1. 클린 업(Clean Up): 깨끗하고 청결하게 자신의 몸을 가꾸라.


손자 녀석이 아무리 귀여워도 냄새나는 할아버지 품에 안기지는 않을 것이다. 

“난 할아버지 냄새가 싫단 말이야.”

이런 얘기가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면 우선 며느리 볼 낯도 없다. 깨끗하고 청결하게 자신의 몸을 가꿀 필요가 있다.


2. 드레스 업(Dress Up): 멋 부리는 노인이 아닌, 멋을 아는 노인이 되라.


철마다 계절에 맞는 고급 옷, 유행에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는 게 아니라 깨끗이 입으라는 것이다.

블루진을 입어도 잘 어울리는 노인이 있긴 하지만 자기 개성에 맞는 옷, 가급적 계절에 맞는 옷으로 깨끗하고 깔끔하게 나서는 노인이 한결 품위 있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옳은 얘기다.

우선 깨끗한 용모, 말끔한 첫인상은 그 사람의 품격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멋 부리는 노인이 되라는 게 아니라 멋을 아는 노인이 되라는 것이다.


3. 셧 업(Shut Up): 나이 들수록 말을 아끼고 경청하라.


동창회 모임이나 각종 모임에 나가 보면 유독 혼자서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꼭 있게 마련이다. 아는 것도 많으니 하고 싶은 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失言(실언)할 수 있다.

이런 작지만 잦은 실수, 실언들이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말을 많이 하는 대신 상대방의 얘길 경청해 주고 되도록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게 바로 셧업(Shut Up)이다.


4. 쇼 업(Show Up): 주위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서로 확인하라.


가급적 동창회 모임, 과거 직장의 소모임, 경조사에 되도록 참석해 흘러간 지인들을 자주 만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 독불장군은 없다. 나이 들수록 늙어 가는 자신의 얼굴도 보여주고 주위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소일하며 늙어 가는지, 얼마나 아름답게 늙어 가는지를 서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게 바로 쇼업(Show Up)이다.


5. 치어 업(Cheer Up): 긍정적인 사고로 밝고 건전하게 생각하라.


항상 웃고 기뻐하고 매사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어찌 항상 웃을 수 있겠는가. 달리 말하자면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밝고 건전하게 생각하면 기쁘고 웃을 일이 많아질 것이다.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치어 업(Cheer Up)하라!


노후를 위한 돈을 준비하라


6. 페이 업(Pay Up): 지갑을 열어라.


주위에 당당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에게도 돈이 있어야 한다. 사진은 지하철 택배 일을 하는 노인들


나이가 들수록 약간의 돈은 필요하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매월 최소 50만원 안팎의 경비가 필요하다. 우선 경조사비용과 일주일에 친구 서너 명이 어울릴 소주 값 정도의 인격유지비가 든다.

물론 추렴해서 돈을 낼 때도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쯤은 친구끼리 번갈아 가며 대포 값을 지불하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지갑을 열고 페이 업(Pay Up)하라!


그러기 위해선 퇴직 전에 老後(노후)를 위해 별도의 저축이 필요하다. 얼마나 저축할 것이냐는 각자의 능력이나 개인 사정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노후 자금은 꼭 필요하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국민연금은 80만원 안팎이다. 이 돈이면 손자 녀석 과자 값과 인격유지비 정도는 된다.

그러나 노후의 생활비로선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일을 하고 있다. 낮에는 여의도 후배가 마련해 준 사무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책 포장 작업을 한다. 저녁엔 프리랜서로 다시 상암동으로 가서 방송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 “인생에는 오르막 고개와 내리막 고개, 그리고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가 있는데, 바로 이 뜻밖의 고개라는 인생의 덤과 같은 행운은 어느 날 우연히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예기치 않은 모습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이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는 누구에게라도 뜻밖에 찾아올 수 있다.


바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우선 건강이 담보되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인생의 덤과 같은 행운을 잡았으니 즐겁고 행복하다. 나는 건강이 준비돼 있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보고 매일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반드시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라는 덤과 같은 행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리라고 확신한다.


나는 ‘설마 하는 뜻밖의 고개’에서 덤으로 받은 행운의 몫에서 일정액을 떼어 2년 만기 적금을 불입하고 있다. 용도는 2년 후 해외여행을 떠날 나만의 비자금이다. 새벽에 일어나 정신없이 깃발 따라다니느라 무얼 보았는지 저녁엔 초주검이 되고 새벽에 눈비비고 허둥지둥 헤매는 그런 관광이 아니라 배낭 메고 걷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낯선 땅, 낯선 도시, 낯선 동네를 혼자서 걸으며 고독에 강한 그런 인간의 여행을 하고 싶다.


노인들 스스로 당당하라


7. 기브 업(Give Up): 양보하라.


마지막으로 기브 업(Give Up)하라는 것이다. 이는 체념하고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양보하라는 것이다. 해마다 수백억이 넘는 적자에 허덕이면서도 노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베푸는 서울시가 고맙기는 하지만, 그 누적 적자가 시민들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돌아가니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


나도 그 시혜를 누리는 한 사람이지만 요즘 지하철을 타면 가끔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가 있다. 물론 가뭄에 콩 나듯 하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친절이 고맙기는 하지만 내심 썩 유쾌한 기분이 들지는 않다.

아직은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라는 친절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게 다행이다. ‘할아버지’ 이런 얘기가 나오면 나는 정말 지하철을 안 탈 것 같다.


물론 10년, 20년 후면 속절없이 70대 후반에서 80대 후반일 텐데…. 참으로 끔찍하다. 내가 그때까지 이 세상에 버티고 있을려고? 여하튼 그때 일이야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고 지금은 노인 대접 받는 게 솔직히 싫다.


누군가 그랬다. ‘모두가 친절히 대해 주면 늙음을 자각하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가 노후에 받아야 하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인간적인 대우다.


인간적인 대우를 강요할 수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이 과연 얼마나 노인에게 인간적인 대우를 해줄까? 기대해서도 안 되지만 노인들 스스로가 당당하게 늙음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자리를 양보하면 차라리 “너희들은 온종일 공부하느라 피곤할 테니 앉아서 읽던 책 마저 읽어라” 하고 서서 가는 게 낫다. 노인 티를 내지 않고 오히려 젊은이에게 양보하는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게 옳다.


나는 머리 염색을 하고 다닌다. 젊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초라하게 보이는 게 싫어서다. 스스로 뒷전으로 물러서는 조그마한 양보가 ‘어른다움의 미학’이다.


요즘 지하철을 무료로 승차할 수 있는 시니어 패스가 나오니 천안을 넘어 온양까지 무임승차로 다녀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전에는 천안에 가서 병천 순대를 맛보고 두어 시간 소일하다 귀경하던 사람들의 나들이 코스가 연장돼 온양까지 가서 온천욕도 즐기고 오후 느지막에 돌아오는 노인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탑골공원 뒷골목 이야기


탑골공원 앞에서 소일하는 노인들.


물론 탑골공원 주변에서 떼를 지어 잡담이나 하고 무료 급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지내는 노인들보다는 삶의 질(?)이 다소 높아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소일하는 것도 한 달에 한두 번이지 어떻게 매일 할 수가 있겠는가?


언젠가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탑골공원 뒷골목 72시간을 방영했는데, 참으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다행히 이 프로그램은 노숙자 수준의 노인들의 구차한 삶의 모습이 아니라 예전에 그래도 한가락(?)했던 멋쟁이 노인들의 모습이었다. 나보다는 10년 이상 연배의 노인 분들의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는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경제의 기틀을 확고하게 만든 바로 그분들의 삶을 비춰줬는데도 왠지 척박하고 애잔함에 숙연해졌다.


물론 유쾌하고 즐거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의 밝은 웃음 뒤에 가려진 그늘만은 감출 수 없었다. 10년 후 나도 저 선배들처럼 후배들에게 처연하게 비칠까 라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골목에는 진짜 맛있는 음식점들이 많다. ‘Y식당’의 빈대떡과 냉면을 먹으러 요즘도 나는 그 골목을 자주 드나든다. 만약 그 집 아들이 대를 이어 10여 년 후에도 빈대떡 맛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나는 탑골공원 뒷골목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음식의 값과 맛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그 골목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전통의 냄새와 아직은 맛과 멋이 살아있는 골목이기에 비록 누추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골목을 사랑한다.


왜 노후에 돈이 필요한가? 단지 깨끗하게 옷을 입고 냄새나지 않는 청결한 노인으로서 곱게 늙어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른다움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인으로서의 인격을 유지하기 위해서 적당한 돈은 필요하다.

그 필요한 돈을 자식이나 며느리에게 받아 쓰는 게 아니라 비록 늙은 마누라한테 타 쓰더라도 노후에 쓸 비자금은 쌈지에 있든, 은행에 있든 반드시 자신의 이름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버스로 넘은 안데스 산맥


1960년대 초 <김찬삼의 세계여행>은 고등학생인 나를 흥분시켰다. 그때 또래의 친구 셋이서 세계지도를 펴 놓고 나름대로 세계여행 계획을 세웠지만 세 녀석 모조리 대학 시험에 낙방하는 바람에 그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던 그해 여름 나는 남미 취재 출장을 떠났다. 아르헨티나의 멘도사 지방에서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로 넘어가던 날, 나는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일부러 버스로 안데스 산맥을 넘기로 했다. 고생은 각오했지만 안데스 산맥 비포장 길을 버스로 7시간 반이나 걸려 넘어갔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를 마다하고 일부러 비포장 버스길을 택한 건 바로 <김찬삼의 세계여행> 덕분이었다.


뚜닥거리다가 또 한 시간쯤 기어가다 또 한 30여 분쯤 뭔가를 열심히 고치고 그러다 해질 무렵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털털거리는 고물 이층 버스를 타고 간 그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건 아마 고생과 함께한 그 넉넉한 여유가 아니었을까.


賞心樂事(상심낙사)란 말이 있다. ‘상심’은 경치를 즐기는 것이요, ‘낙사’는 일에 재미를 붙인다는 뜻이니 결국 즐겁고 기쁘게 세상일을 즐긴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는 선현 가운데 茶山 丁若鏞(다산 정약용)을 빼놓을 수 없다. 다산은 큰형과 같이 유람도 즐겼지만 특히 작은형 若銓(약전)에 대한 그리움은 남달리 사무쳤다고 한다. 작은형의 생존 당시 다산은 유배지 강진과 약전의 흑산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형님을 그리워하면서 자주 편지를 쓰곤 했지만 약전은 유배지 흑산도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유배생활을 오래 한 다산이지만 그는 생전에 여행도 많이 한 분이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유한한 삶과 삶의 일회성을 잘 알고 있었고 여행을 ‘상심낙사’로 파악했던 분이다.

<천우기행권>은 그의 첫 번째 춘천여행 시집이다. 그 마지막 시 ‘협곡을 나오며(出峽)’는 바로 상심낙사의 여행을 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과 情誼(정의), 그리고 의연한 결의가 번뜩이고 있다.


<출협건곤대(出峽乾坤大) 협곡을 나오자 하늘 땅 웅대하고

유주초목정(維舟草木停) 배를 매는 곳에 초목이 멈춰 있다

원봉송점흑(遠峯松點黑) 먼 산봉우리 솔방울은 검고

정저로사청(睛渚鷺絲靑) 맑은 물가에는 인동초 잎 푸르구나

수상래환거(水上來還去) 물 위로 왔다가 다시 돌아가나니

인간취불성(人間醉不醒) 인간 세상에 취해 깨지를 못하다니

상시경하보(傷時竟何補) 시절을 슬퍼한들 무슨 보탬이 되랴

두백차궁경(頭白且窮經) 머리 희도록 경전이나 파련다>


고려대 沈慶昊(심경호) 교수는 “머리가 희도록 경전을 파겠다는 말은 ‘나른함이나 어정거림’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연구가 세상 구원에 무슨 의미가 있을지 단언하기 어렵지만 자신의 연구를 통해 경세의 뜻을 더욱 가다듬겠다는 결심을 내비친 것”이라고 했다. 심 교수는 이 시야말로 “상심낙사의 여행을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생명의 의지를 담고 있다”고 극찬했다.


다산은 당대 실학파의 거두요 유학자다. 박학다식할 정도를 넘어 뛰어난 경세가이기도 했다. 우리 같은 보통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의 상심낙사의 여행이야기를 꺼낸단 말인가?


여행을 떠나라


노인에게도 일상에서의 탈출이 필요하다.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도로를 질주하는 노인.


여행은 일상에서의 탈출이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정년퇴직 후의 보통 노인들의 일상이란 따분하게 마련이다. 우선 소일거리가 없다. 젊은이들도 ‘이태백’이니 ‘삼초땡’이니 하는 판에 마땅히 노인들에게 돌아갈 일자리란 게 지극히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아파트 경비라거나 간혹 지하철을 이용한 택배요원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테마관광이 유행이다. 나도 두어 차례 이용한 적이 있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고 상품 홍보관에서 소비하는 시간이 다소 아깝기는 했지만 하루 소일로서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이런 관광상품들은 주말이면 일간지에 무차별적으로 홍보되는데 경쟁이 치열하지만 대부분의 상품이 거의 동일하다는 것이다.


관광회사들이 다투어 개발한 이런 몰개성적인 상품은 세끼 밥 먹여 주고 당일치기에 가격은 1만5000원 안팎의 싸구려 상품이니, 그들이 지정하는 상품 홍보관에서 물건 구매를 은근히 강요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이런 여행은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는 여행을 해 보기를 권한다.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플로베르) “이 세상은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한 페이지만을 계속 보는 것과 같다”(성 아우구스티누스) 등등 많은 사람들이 여행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러나 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에 그 묘미가 있다. 일상에서의 탈출은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니다. 일상의 구속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즐거움이다.

구속에서의 해방 그 기쁨이다.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도전이자 투자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도전(Challenge Up)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런 얘기를 했다.


“여행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거나 완고하거나 속이 좁은 사람들에게는 독한 약이 된다.

그 때문에라도 인간은 여행을 해야 한다. 20년이 지난 후에는 당신이 했던 것보다 하지 못했던 일들 때문에 더 많은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러니 당장 밧줄을 벗어 던져라.

안전한 항구에서 멀리 벗어나라. 무역풍을 받으며 항해하라. 탐험하라. 꿈꾸라. 그리고 만족하라.”


가끔 고독에 강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 훌쩍 자기만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다. 그것은 어쩌면 노인만의 특권이자 생의 새로운 도전이기 때문이다.


나이듦을 두려워 말라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분명 즐겁고 유쾌한 일이 아니다. 가는 세월 오는 백발을 누가 무슨 힘으로 막을 재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른스럽게 좀 더 당당하게 아름답게 늙어 가는 건 바로 노인들에게 주어진 몫이다.


어느 날 우연히 경로석에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진 은발의 할아버지 한 분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無價紙(무가지)를 보거나, 아니면 흔들리는 전철에 조는 듯 몸을 기댄 채 세월 속으로 흘러가고 있었지만 유독 이 노인만은 뭔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그 책 내용이야 알 길이 없었지만 그분이 읽고 있는 책은 일본의 문고판 소설인 것 같았다.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차라리 아름다운 한 폭의 포근한 정물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노인들, 아니 나이를 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소노 아야코(曾野綾子)의 <계로록(桂老錄)>을 한 번쯤 읽기를 권한다. 1931년생이니까 여든에 가까운 할머니다. 이 책은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출간된 이래 오늘날까지 최장기 베스트셀러인데 우리나라에서도 2004년 여름에 출간된 이후 작년 12월 하순까지 무려 12쇄가 발행되었으니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빨리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당부 드리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고 번역되어 나왔다.


나이 들수록 책 읽기를 권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평소 평온함에 대한 십계명을 정해 놓고 실행에 힘썼다고 한다. 그 다섯 번째 계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오늘만이라도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의 10분 동안을 독서에 바칠 것이다. 육신의 삶에 음식이 필요하듯이 영혼의 삶에도 좋은 독서가 필요하다.’


교황의 하루 스케줄이 얼마나 빡빡하고 촘촘하겠는가. 자신을 위한 시간이라고는 단 1분도 쓰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루 10분을 할애해서 책을 읽는다는 건 굉장한 투자였을 것이다.


나이 들어 특별한 수입원이 없는 노인들이 책을 읽고 여행을 한다면 돈이 들 텐데 얼마나 돈이 필요한가?

그러나 굳이 비행기 타고 떠나는 해외 관광여행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경비가 들지 않는다. 조용히 그리고 찬찬히 찾아보면 국내에서도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얼마든지 있다.


숨 떨어지면 그리움은 끝


몇 년 전 나는 지인과 더불어 금요일 저녁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하여 이튿날 한라산 등정을 끝내고 회 한 접시에 소주를 곁들여 마시고는 다시 배를 타고 일요일 아침 서울로 돌아온 적이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주말 한라산 등반을 이렇게 낭만적으로 즐긴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배 안엔 그런대로 편의시설도 갖춰져 있었고 2박3일 비용은 9만9000원으로 아침에 맞춰 주는 도시락으로 한라산 정상에서 정말 맛있게 먹은 즐거운 추억이었다.


여행이란 단순히 돈으로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결정하는 것이기에 능력에 맞지 않게 필요 이상으로 욕심만 부리지 않는다면 ‘人生到處有靑山(인생도처 유청산)’이다.


누구에게나 숨 떨어지면 그리움은 끝이다. 그리움은 동경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의 총체다. 그게 갖고 싶은 것이든 먹고 싶은 것이든 보고 싶은 것이든 여행이든 나는 모든 동경의 대상이 되는 것의 총화로서 그리움은 인간이 죽을 때까지 떨칠 수 없는 것이라고 본다.


사랑도 본질적으로 그리움이다. 늙어 간다는 것,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그리움과의 별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같은 추억’ ‘희미한 그리움’, 이런 모든 것과의 이별을 아름답게 맞이하는 방법이 따로 있을 리야 없지만, 적어도 노년을 아름답게 맞이하려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아무리 찬란한 황혼도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늙는다는 걸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아름답게 늙어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다만 노인 스스로가 찾아야 한다. 자신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법정 스님은 최근에 펴낸 책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마무리는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미련없이 떨치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노인들이여!

지금까지의 낡은 생각 낡은 습관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거듭 나십시오.

이제 준비가 되셨으면 지금 이 순간부터 당장 황혼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숨 떨어지면 이 세상 모든 그리움은 끝입니다.⊙



/ 월간조선

03 2009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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