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 뜻을 정해야 합니다!
* 상황이나 환경에 굴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에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단1:3,4)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사람은 무엇에 절대로 굴복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자신을 에워싼 환경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소원은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두신 것이니, 자신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크기이므로, 절대로 환경 따위에 구애 받거나 상황 따위에 제한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누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까? 소원의 사람, 곧 소원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본문에도 누가 등장합니까?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유다 자손 곧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더니.”(단1:6)
당시 그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있었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면, 최악 중에 최악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전란(戰亂)으로 나라가 망해서 국운(國運)이 기울어졌고, “유다 왕 여호야김이 다스린 지 삼 년이 되는 해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을 에워쌌더니.”(단1:1)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 땅으로 사로잡혀갔기 때문입니다. “왕이 환관장 아스부나스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 곧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에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설 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단1:4 상)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로 한정해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역만리(異域萬里) 낯선 땅으로 끌려온 것도 서러운데, 바벨론의 학문을 배워야 했고, 언어도 바벨론의 말만을 배우고 사용해야 했으며, 음식도 지정한 것만을 먹어야 했으며,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게 하였고 또 왕이 지정하여 그들에게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에서 날마다 쓸 것을 주어 삼 년을 기르게 하였으니...”(4,5절) / “환관장이 그들의 이름을 고쳐 다니엘은 벨드사살이라 하고 하나냐는 사드락이라 하고 미사엘은 매삭이라 하고 이사랴는 아벳느고라 하였더라.”(7절)
이름도 전부 바벨론식으로 개명(改名)해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온통 우상이나 우상숭배에 관련된 것으로 다 말입니다. 즉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이름 대신에 ‘벨이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소서’라는 벨드사살으로, 하나냐는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는 이름 대신에 ‘태양의 영감’이라는 사드락으로, 미사엘은 ‘하나님과 같으신 분이 누구인가?’라는 메삭으로, 아사랴는 ‘하나님께서 도우신다’라는 이름 대신에 ‘느고의 종’이라는 아벳느고로 강제 개명당한 것입니다.
바벨론은 그들에게 왜 이렇게까지 한 것입니까? 그들을 완전히 바벨론 사람으로 바꿔놓기 위함입니다. 일본제국주의가 일제 치하의 조선 사람들에게 일본 말만 쓰게 하고 일본 이름으로 창씨개명(創氏改名)하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말이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평소에 어떤 언어를 즐겨 사용하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바벨론 말만 계속 쓰다보면 결국 바벨론 사람이 될 수밖에 없듯이, 불신앙적인 말들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결국 불신자가 되고, 부정적인 말들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며, 비관적인 만들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결국 비관적인 인생이 되며, 저속하고 더러운 말들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결국 삼류 싸구려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학교에서, 또한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언어들을 배우고 쓰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평소에 어떤 언어를 즐겨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인생이 되느냐가 결정된다는 점을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어찌 해야 합니까? 누추한 말, 수치스럽고 상스러운 말, 음담패설이나 야비한 말들 대신에 덕이 되고 아름다운 말만 하며,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 대신에 감사하는 말, 믿음의 언어들만 사용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5:4)
이름의 경우는 또 어떻습니까? 이름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이요, 어찌 보면 그 사람의 전부입니다. “...이는 내 이름을 위함이라 내 이름을 그 이방인의 눈 앞에서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행하였음이라.”(겔20:9 하) /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다.”(겔20:14)
그런데 이 이름이 달라지면 어떻게 됩니까? 물론 반드시 이름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군다나 불신앙적인 이름이나 우상에 관련된 이름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채팅이나 게임 상에서 어떤 아이디나 닉네임을 사용 중입니까? 혹 반(反)기독교적이며 반(反)신앙적인 것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혹 심한 욕설이나 불건전한 내용이 포함된 이름들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장 바꿀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니 바꿔야만 합니다. 왜 그리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소원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즉 소원을 가진 이들이기에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황에 절대로 굴복하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