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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 대신 땅의 별
막상 별자리 여행을 떠나긴 했지만, 길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휴가를 맞아 어디론가 떠나는 차들이 길을 메우고 있었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지만, 영월에 도착한 것은 오후. 길이 막히는 것이야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들으면 되지만, 구름으로 하늘이 막히면 별을 볼 수 없으니 시선이 자꾸 하늘을 향한다. 비구름은 없지만, 날씨가 수상쩍다. 소나기재 넘어 선돌과 단종의 유배지와 능이었던 청령포와 장릉(‘주변 볼거리’ 참조)을 둘러보니 해는 서산에 걸려 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곧바로 별마로 천문대를 향한다. ‘별마로’란 ‘별을 보는 고요한 꼭대기’라는 뜻이다. 봉래산 정상(799.8m)에 올라 맞는 바람은 팔뚝과 이마에 맺힌 땀은 물론 머릿속 생각의 찌꺼기까지 깨끗이 씻어 준다. 천문대 마당에는 계절별 별자리와 별자리마다 얽힌 이야기들을 철판에 새겨 놓았다. 천문대 안으로 들어가니 기다란 철끈에 매인 추가 방문객을 맞는다. 움베르트 에코의 소설로도 유명한 ‘푸코의 진자’다. 동에서 서로 스스로 도는 지구의 운동 때문에 추는 시계방향으로 서서히 돌고 있다. 천문대는 그저 좋은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곳이 아니다. 지하 1층 천체투영실에서 25분 정도 자료 사진을 보면서 별자리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2층의 시청각실에서 우주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단체가 희망하면 천문학에 관련된 여러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그런 후에 4층의 보조관측실에 올라가면 15대의 굴절 및 반사망원경이 있다. 망원경에 대한 상식을 늘리고 나면 지붕이 열리며 별이 머리 위로 나타난다. 그 옆 주관측실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망원경 중 가장 큰 망원경이 있다. 이 망원경은 천문대에서 특정한 별에 초점을 맞추면 별의 움직임에 따라 스스로 움직인다. 마치 커다란 망원경으로 별을 본 것처럼 말은 했지만, 사실은 별을 보지 못했다. 보조관측실에 올라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천문대에서 별을 관찰할 수 있는 날수는 평균 100일 정도 된다. 별마로 천문대는 약 180일이지만 불행히도 취재진이 찾은 날은 나머지 반에 해당하는 날이었다. 사실 1년 중 별을 가장 보기 좋은 것은 가을과 겨울철이다. 봄에는 황사도 있거니와 흐린 날이 많고 여름에는 수증기가 많아 별을 볼 확률이 낮은 편. 대신 가을과 겨울에는 날씨도 맑고 수증기가 있어도 날이 추우면 응결되거나 얼어서 떨어지기 때문에 하늘은 맑아진다. 천문대에 올라오면서 직녀성을 보고 싶었다. 베가(Vega)라고도 부르는 직녀성은 여름철의 별자리 중 가장 밝게 빛나는 별로 자정 무렵 머리를 쳐들고 가장 밝은 별을 찾으면 그것이 직녀성이다. 이 별이 쏟아내는 연한 청옥색의 아름다운 빛은 26만 년 전의 것이다. 직접 볼 수 없음이 아쉽지만 날씨가 그런 것을 어찌할 것인가. 천문대를 찾기 전에 공부를 하고 가면 훨씬 많은 것을 알 수 있지만, 최소한 이 세 가지는 알고 가자. 첫째, 천체망원경은 별을 크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밝게 보여준다는 것, 둘째, 별자리는 특정한 별 몇 개 가지고 모양을 꾸며낸 것이 아니라 밤하늘을 88개로 나눈 것이라는 점. 마지막은 굴절망원경과 반사망원경. 가늘고 긴 것이 굴절망원경이고 굵고 짧은 것이 반사망원경이다.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 바람이라도 더 맞으려 3층 전망대를 찾았다. 주관측실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저 멀리 영월을 밝히고 있는 노란 수은등이 그리 정겨워 보일 수가 없다.
숲의 향기로 온몸이 흠뻑
천문대 오르는 길은 좁고 경사와 굽이가 심하다.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면 길옆으로 삼림욕장 표지판이 보인다. 봉래산 삼림욕장이다. 생각 같아서는 한나절 동안 머물면서 산책도 하고 가만히 쉬기도 했다가 책도 보고 출출하면 도시락도 먹고, 졸리면 낮잠도 한숨 자고 싶지만 일정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 게다가 가는 빗줄기도 흩뿌리니 시쳇말로 ‘시츄에이션이 좋지 않다.’ 삼림욕장 안내도를 보니 길 오른편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죽 오르면 산 정상의 별마로 천문대에 오를 수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허나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근처의 산책로와 나무 숲 속을 오가며 산책을 즐긴다. 그러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면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 불어 목덜미를 스친다. 바늘잎나무들이 빼곡한 곳에서 천천히 하지만 끝까지 숨을 들이쉬면 공기가 얼마나 상쾌할 수 있는지 느낄 수 있다. 이 상쾌함의 정체는 피톤치드와 테르펜 그리고 음이온이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미생물에 저항하기 위해 내뿜는 여러 가지 항균물질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자동차 방향제에도 피톤치드향이 있지만, 숲의 그 향과는 다르다. 반대로 테르펜은 식물 자신을 위한 물질. 물론 사람에게도 좋아 피부를 자극하고 피를 잘 돌게 만든다. 피를 맑게 하는 것은 음이온, 계곡이 가깝다면 더욱 좋다. 숲 속에서 마시는 음이온은 요즘 유행하는 스포츠링에 댈 것이 아니다.
‘나무는 자신의 위대함을 모른다’는 한 줄 짜리 시가 있다. 한 자리에서 수십, 수백 년을 버틴 꼿꼿함은 둘째치고 숲이 주는 미덕만 생각해도 충분히 공감이 간다. 시멘트가 뿜어내는 독한 공기를 맑게 하고 짧은 시간에 퍼붓는 비는 머금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숲에 관련된 기사를 보니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숲 643만ha가 제공하는 공익 기능은 돈으로 따지면 연간 50조 원이라고 한다. 자연의 은혜를 돈으로 따지는 유치함보다는 나무의 미덕이 놀랍다. 대개 삼림욕은 최소한 3시간 이상 할 것은 권한다. 약간 땀이 나고 기분 좋은 피로감이 들어야 제 맛인데, 이도 못 채우고 나가려니 아쉽다. 언젠가 도시락과 책을 챙겨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며, 그리고 목적지가 서울이 아니고 동강인 것에 감사하며 삼림욕장을 떠났다. 무엇이든 넘치면 부족하니만 못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생겼겠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숲이 뿜어내는 이 맑은 공기는 폐가 터질 듯 들이마셔도 늘 부족한 느낌이다.
문득 돌아보면 동강이 흐른다
동강은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내린천, 한탄강과 더불어 래프팅 명소로 꼽히는 동강. 하지만 이번에는 강을 끼고 걷고 싶었다. 마음만 먹으면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에서 강이 흐르는 모습을 지켜보며 물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강은 동강이어야 했다. 영월에는 1천m가 넘는 산이 12개나 있다. 산이 깊으니 물도 깊어 정선에서 흘러 들어온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쳐져 동강이 되고 주천강과 평창강은 서강으로 흐르다가 합수머리에서 남한강이 된다. 그 중 동강은 몇 해 전 영월댐 문제로 시끌벅적하다가 요새는 래프팅과 트래킹 명소로 인기다. 동강을 즐기는 방법은 대략 3가지. 안에서 즐기려면 래프팅이 좋겠지만, 동강의 속살인 어라연을 한눈에 보려면 잣봉에 올라야 한다. 마지막 방법은 래프팅의 역동적인 맛도 없고 비경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조망도 없지만, 강을 따라 걷는 트레킹이다. 대신 트레킹에는 강변산책이라는 운치가 있다. 거운교 옆에 차를 세워 두고 오른쪽 고갯길로 들어섰다. 동강보존본부에서 주민이 아닌 외지인의 차는 출입을 금하고 있기도 하지만, 길이 험하기도 하다. 이 길을 따라 20여 분 가다 보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은 잣봉으로 오르는 길, 오른쪽은 동강으로 내려가는 길. 아무런 고민 없이 오른쪽을 택했다. 길 양옆이 나무로 막힌 길은 어느 새 급경사로 내리막을 이루고 있었고, 그 끝에 동강은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전 비가 많이 와 물빛이 썩 아름답지는 않다. 그래도 오전과 달리 해가 떠서 다행이다. 왼편 어라연상회에는 래프팅을 하다가 쉬어 가는 곳이 있다. 래프팅을 즐기던 이들이 출출함을 달래고 있다. 길을 물으니 강변을 따라 10여 분 가면 어라연이 보인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가보니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다. 어라연(漁羅淵)은 동강 물줄기 한 가운데 자리잡은 작은 섬이다. 예전에 고기들이 워낙 많이 잡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뜻으로 ‘어라연’이라 불렀다고 한다. 작은 섬이라지만 거북이 등처럼 물위로 툭 튀어나온 돌섬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상선·중선·하선암이라는 봉우리가 있고 그 위에 등이 굽은 노송이 있어 보는 맛이 제법 좋다. 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래프팅 보트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강물이 평화롭게 흐르는 듯 하지만 물살 센 곳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라연 위쪽 황새여울을 거쳐 어라연을 지나면 된꼬까리 여울을 만난다. 예전에 뗏목꾼들이 많았을 때는 사람도 많이 죽었다. 그래서 이곳에는 ‘황새여울 된꼬까리야 떼 내려간다/만지 전산옥이야 술반 채려놓게/오복수 들가방에 돈이 쏟아진다’는 뗏목아리랑이 전해 온다. 동강변은 수박통 만한 돌들이 너덜지대를 이루고 있다. 강을 오른쪽으로 두고 돌길을 걷다 보면 왼쪽의 산에서 동강으로 가느다란 물줄기가 흘러 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땀을 씻으려 손을 담그니 숲의 서늘함을 그대로 담은 듯 차다. 동강은 이번 여행의 마지막 여정이었다. 이번에는 어라연을 보았으니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저 위 마하리의 백운산에 올라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을 보고 싶다. 백운산은 동강의 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명산으로 꼽히는 산이다. 어라연을 뒤로하고 돌아나오는 길. 언제 다시 오마는 기약을 할 수 없어 문득 돌아보니 동강은 변함 없이 계속 흐르고 있다. 글│서승범 기자 사진│민성필 기자, 별마로 천문대 취재 협조·문의│별마로 천문대 (033)374-7460 www.yao.or.kr
알고가면 더 재미난 천문대 나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와∼! 별 많다!” 밖에 할 말이 없다면, 하지만 별자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 호기심이 있다면 별 관련 책을 뒤져보자. 전문용어들로 가득한 책은 전문가들용으로 두고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것으로 고른다. <어린 왕자의 별자리 여행>은 아빠와 아이의 대화를 통해 별자리를 소개한다. 별자리도 계절별, 밝기별로 정리되어 있어 별에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몇 억 광년 떨어진 별과 더불어 우리 태양계 안의 소식들이 궁금하다면 을 권한다. 태양부터 명왕성까지 차근차근 여행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전문가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흥미위주도 아니고 딱딱하지도 않아 좋다. 게다가 1천여 장에 이르는 사진들과 CD-ROM 안의 자료 덕에 눈이 지루하지 않다.
살림욕 어떻게 할까, 바람이 없는 날을 골라라
삼림욕은 햇볕이 강하고 바람이 없는 날이 좋다. 피톤치드 등의 물질이 온도가 올라갈 때 활발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도 10∼12시 사이가 좋다. 바람이 없어야 하는 이유는 피톤치드가 휘발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또 침엽수가 활엽수보다 이러한 항균물질과 음이온을 2배 이상 발산하기 때문에 침엽수가 많은 숲을 고르는 것이 좋다. 장소는 숲 속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산 가장자리에서 최소한 100m 들어간 중턱이 좋다. 몸에 끼는 옷은 피하고 피부를 많이 드러내는 것이 좋다. 화장품이나 향수 냄새가 강하면 날벌레들의 표적이 되기 쉬우니 맨 얼굴로 삼림욕을 즐겨보자. 무리하게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그저 여유롭게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가끔 심호흡을 하면서 거닐면 된다. 어른은 10km, 아이는 4km 정도, 시간으로는 3시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한다. 그러니 삼림욕장을 찾을 때는 최소한 반나절 정도 시간을 잡아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되도록 하자.
주변 볼거리
영월은 비운의 임금 단종이 유배되었던 곳이자 그의 능이 있는 곳이다. 유배지인 청령포에서는 구중궁궐에서 강원도 산골에 유배된 어린 임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고 장릉에서는 사육신과 생육신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의 한 켠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역사를 들먹이지 않아도 영월을 찾았다면 장릉과 청령포를 들러야 한다. 장릉은 능에 오르는 소나무 언덕길이 일품이며 물 흐르는 정원의 아름드리 나무도 이에 못지 않다. 1∼2시간 정도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는 것이 좋다. 단종이 무력으로 왕위를 빼앗겼기 때문에 능 앞에는 무인석이 없고 문인석만 있다는 것도 알고 가면 재미있다. 청령포는 장릉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배를 타고 평창강을 건너면 자갈길 건너 무성한 소나무숲이 보인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 쌓여 있고 나머지 한 쪽은 험한 절벽으로 되어 있어 단종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다. 청평포 서쪽에는 단종이 한양쪽을 바라보던 노산대가 있다(단종은 왕위에서 쫓겨난 뒤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다). 소나무 숲 한가운데에는 수령 600여 년의 관음송이 있다. 단종의 유배생활을 보고[觀] 한맺힌 울음소리를 들었다[音]하여 관음송이라 한다. 이밖에 31번(혹은 59번) 국도를 타고 영월 들어오는 길에 소나기재를 넘으면 선돌이 있다. 전망대에 서면 물길을 돌리는 평창강을 배경으로 곧추선 거대한 돌을 볼 수 있다.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저녁에 들르는 것이 좋다. 서쪽으로 흘러나가는 평창강과 그 위 첩첩이 쌓인 산 능선 너머로 지는 노을이 아름답다.
먹을 곳과 잘 곳
영월은 ‘영월만의 먹을 거리’가 없다. 하지만 영월에 들렀다면, 더구나 장릉에 들렀다면 장릉 옆 보리밥집에는 꼭 들러야 한다. 널찍한 평상이나 옛날씩 쪽방에 둘러앉아 된장국에 보리밥을 먹는 맛은 먹기 전엔 모른다. 날이 좀 덥다거나 배가 좀 많이 고프다면 묵채를 하나 더 시킨다(2∼3명당 하나). 부드러운 도토리묵을 채썰고 거기에 온갖 야채 넣고 깨를 뿌려 입맛을 자극한다. 장릉 보리밥집 (033)374-3986 잠잘 곳은 많다. 동강이 래프팅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근처에 민박집이나 펜션이 많은 편. 시내에서 잘 계획이라면 여관을 잡아야 한다. 기타 자세한 교통과 먹을 거리, 잘 곳에 대한 정보는 영월군청 홈페이지(www.yw.go.kr) 화면 오른쪽의 ‘영월관광 바로가기’를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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