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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강단에 서는 때
마24:15 막13:14 26년 동산 수련회 넷째 시간 말씀지
은혜 찬송 [여호와 나의 목자되시어서] 가사에 가증한 종들이 강단에 선 것을 나타내어 주셨습니다. 또 한날을 주셔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살게 하여 주신 것을 깨달은 자들은 너무나 감사하여 새벽을 깨울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모든 일에 감사보다는 투정 부리고 부모의 속을 상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에 마리아처럼 다른 모든 일을 접어두고 말씀에만 집중하여 받습니까? 사람의 말로 듣고 귀만 커지면 영적 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아가서 4장에 신부 단장에 귀가 없는 것을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영의 양식으로 받으라고 주시는 것이니 다시 주실 때에 받지 않으면 성전 건물이 무너지는 것만 보게 될 뿐입니다. 성령 시대가 끝나면 첫 삼 년 반 환난을 통해서 우리의 몸 된 성전이 더 이상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잡혀가고 끌려가서 기어코 죽임을 당하여 무너지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성전 건물만 보는 사람은 예배당만 크게 짓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듯이 열매가 하나도 없습니다. 눅21:6-
나는 무너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십시오. 내가 한 것은 다 무너집니다. ‘내가’나오지 않으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때를 살고 있는지 바로 보아야 하고 24장을 언제 어디서 주셨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마태로는 23장에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 화 받을 것을 말씀하시고 주신 24장입니다. 23장에 7번 화(火)는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없으니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외식), 세상 복을 받고 천국에 가려고 열심만 하게 되고 열심한 사람은 높아져 왕처럼 군림하는 자들이 멸망의 가증한 것들입니다. 마가로는 12:38절에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자들이 받을 판결받을 것을 말씀 하신 후 연보궤를 대하여 앉으사 가난한 과부가 가장 많이 넣었다고 하신 후 성전에서 나가사 13장을 주신 것인데 누가복음과 같습니다.
새벽마다 겸손히 나와서 성령으로 내 속에서 역사하게 하셔서 이제까지 받은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양식으로 받은 말씀을 되새기게 하시고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그 영광 길을 가게 해주십니다.
마 23:1-2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모세는 하나님께서 단련시켜서 애굽에서 백성들을 인도했는데 바리새인들은 모세가 애굽에서 학술을 배우고 누구보다 열심해서 이런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모든 계명을 지켜 순종했으니 잘한 것이며 그러니 우리가 지도자의 자리에 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23;2-
목사 위의 목사가 되려 하고 자기 말 한마디에 하나님이 축복한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으로 모세를 추앙하고 있으니 이들은 가증한 자들이요 영적 소경들입니다. 요9:28-
하나님께서 모세를 지으시고 보내실 때부터 그를 쓰고자 계획하신 것을 보지 못하는 자들이 영적 소경인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에 모세는 태어날 때부터 위험한 환경에 보내셨습니다. 남자아이는 다 죽이라 할때에 물에서 건져 살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은혜이고 앞으로 어떻게 쓰실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기까지 40년 동안 처갓집에서 낮추어 주셨습니다.‘나는 아무 것도 못하겠다‘라고 생각할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사 쓰셨습니다. 출4:10-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겪었던 많은 어려운 상황들이 나를 들어서 쓰시기 위한 연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사 쓰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내가 하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23:1절에 무리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요 바리새인들이 없는 곳에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로 이 말씀을 받고 바리새인과 같이 되지 말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입니다. 박목사는 그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책망을 하는데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자들까지 돌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되새기고 말씀지를 쓰면서 묵상하게 하고 자주 나오는 말씀은 자동적으로 마음에 새겨지면 기억나게 하십니다. 내 속에 말씀이 있어야 그 말씀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책망을 달게 받으면 그 말씀이 내 속에서 늘 역사하여서 성령의 역사로 달라지게 하십니다. 성경은 좋은 말이 실려있는 것이 아니라 책망과 교훈으로 가득합니다. 딤후3:16-
마7:6절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거룩한 것은 영의 양식입니다. 개를 왜 지으셨습니까? 개는 물고 뜯고 토한 것을 다시 먹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개가 누굽니까? 빌3:2-
진리의 양식을 받지 못하고 비판하고 훼방하고 떠들고 돌아다니는 자들입니다. 오늘도 강단에 선 자가 양식을 나눕니까? 멸망의 가증한 많은 거짓 선지자들처럼 말씀은 없이 축복한다고 하고 사랑한다고 말합니까?
강단 자체가 거룩한 곳이 아니라 말씀이 거룩하니 그 말씀을 나누는 자리가 구별된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말을 한다면 강사가 연설하는 연단이니 거룩히 구별된 자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말씀 자체가 거룩하니 말씀이 내 안에 있으면 나도 갈수록 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17:19-
진리(眞理)는 성령께서 한말씀 한말씀을 참으로 깨닫게 하사 양식이 되게 하셔서 1.기쁨을 얻게 하시고 2,힘이 생기게 하시고 3.강해지게 하십니다. 말씀의 확신이 있는 자는 영광길을 갈때에 한걸음 한걸음 힘이 있게 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한걸음 한걸음을 가게 하시지 한번에 고층에 올라가게 하지 않습니다. 양식을 나누는 목사는 바울처럼 언제라도 욕을 먹고 쫓겨날 것을 죽을 것을 각오한 자들입니다. 행21:13-
15절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 저) 그러므로 앞의 말씀을 받았어야 그러므로 하시는 말씀을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게 됩니다.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셨는데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왜 달라집니까? 단12:11절에는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을 지낼 것이요] 다니엘로는 멸망의 미운 물건을 세운다 하셨는데 그 물건은 우상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니 마리아 우상을 세우고 심지어 예수님을 동상으로 세웠고 갈수록 더 크게 성전이라 하는 건물들을 세워 나갑니다. 지금은 목사라는 사람이 우상되어 교인들을 맹신하게 만듭니다.
매일 드리는 제사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제사로 구약에서 소제입니다. 민28:8-
매일 등의 기름을 채우는 것이 제사장이 할 일입니다. 오늘날은 새벽예배입니다. 우리나라는 길선주 목사님께서 새벽예배를 강조하셨는데 성경을 많이 읽다 보니 시력이 안 좋으셨는데 다른 사람이 한 글자라도 틀리게 읽으면 그것을 고쳐 읽게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은 새벽예배를 하지 않는 자들이 많고 하면서도 잘못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곳에는 육의 것만 추구하는 목사들이 강단권을 쥐고 자기만 설교하며 아무나 말씀을 나누지 못하게 합니다.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다니엘서에서 멸망케 할 미운 물건들은 무엇입니까? 물건이면 눈에 보이는 것이니 우상입니다. 그런데 막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멸망의 가증한 것도 사람이며 거룩한 곳에 선 것도 사람을 나타냅니다. 자라난 자들은 성경 여러 곳을 살펴서 바로 나타내어 주어야 받는 자들이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가증한 자들이‘서지 못할 곳’은 강단입니다. 가증(可憎)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보다 높아지는 것인데 제일 하나님이 제일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잠8:13-
예루살렘 성전에는 율법인 두 돌판이 있었습니다. 강단에서는 복음과 진리 곧 거룩한 말씀이 증거되야 하는데 복음도 알지 못한 자들이 서서 많은 지식으로 자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없는 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함부로 제멋대로 말하는 것이 가증한 것입니다. 유18,19-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이 양식이요, 진리로 나타내셨습니다. 요14:6 절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17:17절에는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말씀과 함께 역사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바로 증거되는 곳에 진리의 성령이 역사하시는데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하는 에베소 교회 같은 자들이 많습니다. 행19:3-
복음이 믿어지는 것도 진리의 양식을 받게 되는 것도 오직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제 성령 시대가 끝나면 성령의 역사는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들을 순교케 하는 자리에 담대히 나가게 하십니다. 영광의 복음 첫 삼 년 반 환난 전에 있을 징조와 환난 때에 일어날 일을 받을만한 자에게 다 증거된 후에야 그 수가 채워지니 끝이 오는 것입니다. 마24:13-
그런 후에야 계13장의 짐승과 같은 가증한 자가 나타나고 세계를 장악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가 가까올수록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나타내십니다. 강단에 어떤 자가 섰는가? 목사가 되지 못할 자 곧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처럼 육신의 정욕, 세상의 명예를 좋아하는 이들은 배워서 할 뿐이니 이것을 듣는 이들은 이것을 따라가니 멸망될 뿐입니다. 잠28:9-
동산에도 아무나 서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게 하신 자를 세우시니 채워진 대로 자기 자랑없이 겸손히 나눌 뿐입니다. 솔로몬이 교만에 떨어져 각 나라 공주들을 아내로 삼아 그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곳곳에 세웠는데 요아스 왕이 다 부숴 뜨렸습니다. 왕하23:13-
그 우상을 세운 곳마다 멸망산이라 하였는데 주전 586년에 솔로몬의 성전이 무너지게 하시니 제사하지 못하는 것이 멸망입니다. 주신 것을 다 잃고 포로로 끌려가니 멸망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그 어느 것 하나라도 잃게 되면 어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멸망(滅亡)은 지옥(地獄)에 가는 것이 아니라 요3:16절에 영이 살아나는 영생이 없으니 육신대로만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고통 중에 끝나는 것입니다. 요3:36-
영이 살아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깨닫게 하시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되니 즐거운 것입니다. 복음이 믿어지지 않으면 생수의 기쁨이 없고 낙이 없이 사는데 그것이 사망, 멸망입니다. 그런데 이런 멸망을 받고 있는 자가 강단에 서서 설교하고 있으니 그것을 듣는 자도 멸망입니다. 많은 거짓된 목사들은 교인들이 잘못하고 있는데도 축복, 은혜를 말하는 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입니다.
누구라도 강단에 세웠다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영으로 살지 못하는 교인들을 날마다 책망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을 통해서 롬8:6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하셨습니다. 사망은 열매가 없는 것 곧 감사와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것은 날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깨달아지니 기쁘고 또 기쁜 것입니다. 롬14:17-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 내가 할 것이 없고 하나님이 다 해주시니 평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열매를 맺는 생명으로 자라게 하시고 나아가 환난을 통해서 영광에 들어가는 영광된 생명도 보아야 합니다.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다니엘12:11절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정작 다니엘서에는 바로 앞절 12:10절에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하셨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성경을 많이 읽으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신앙인 것입니다. 다니엘서가 정답입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야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 어떤 자세로 하십니까? 누워서, 혹은 녹음만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면서 목사라는 사람의 소리로 듣고 책의 글로만 읽고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게 하시는 음성으로 받아야 하며, 구약에서 율법을 낭독을 했듯이 우리도 소리를 내서 읽으면 더욱 좋습니다. 출24:7, 수8:34, 느8:8,18-
사28:10,13절에 자기 마음에 드는 데로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읽는 것이 아니라 차례대로 읽고 양식으로 나누는 분들을 통해서 받아야 합니다. 눅24:32-
성경은 차례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모세오경, 시가서, 역사서, 예언서 식으로 묶었기 때문에 앞선 자의 지도를 받고 시대를 알고 읽는 게 더욱 좋습니다.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여러 번 읽은 자에게는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읽었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는데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자칫 읽기만 하면 글자로만 알기 쉬우니 양식으로 나누는 자를 통해 양식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읽지도 않고 내 생각만 고집하는 자에게는 성경 말씀이 전혀 샛별같이 떠오르지 않게 하십니다.
벧후1:19-
하늘에서 아들로 택해주셨고 아담과 함께 가죽옷 구원을 예수 십자가 구원하신 것이 믿어지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나에게 주시는 양식으로 받게 됩니다. 어떤 말씀을 주시든지 양식 받는 자리에 나와 앉는 자에게 [깨달을찐저] 라고 하신 것이지 한 번만 읽었다고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 번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빠르게 왕래하라고 하셨습니다.
단12:4-
부모는 자녀들을 낳아 교육하듯이 앞선 자는 잉태와 자라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집을 나갈 때에 아버지는 잡지 않았는데 고집을 부리는 둘째 아들에게 나갔다고 오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나가서 탕진한 후에 영은 살았으니 병들기 전에 아버지 집에 일용양식을 받기 위해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건한 자가 더 강건하게 됩니다. 눅15:27-
계 22:10-11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첫 삼 년 반 환난의 때가 가깝기 때문에 계시록의 말씀을 자주 받아야 합니다. 내 안에 믿어진 것을 되새기고 받을만한 자를 붙이시면 자주 증거해 주어야 합니다. 깨어있지 못하면 불의를 행하게 되고 더러운 귀신의 역사에 집니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멸망의 가증한 자들인 것을 깨닫게 하신 자는 유대에 있는 자요 이제 말씀을 양식으로 나누는 곳으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이 말씀이 없으니 누가복음을 좋아하는 천주교에서는 십계명 두 번째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빼고 온갖 우상을 세워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