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규빈의 방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키지 않고 우두커니 않아있으니 큰길의 차들이 다니는 소리가 아늑히 들리고 집안에서는 시계 소리만 들렸다. 술을 먹지 않았는데도, 가만히 앉아 있어도 소주 2병은 먹은 것처럼 어지러워지고 있다. 앉은 채로 몸을 좌우로 살살 흔들면서 알 수 없는 알지도 못하는 멜로디를 코로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생각 없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면서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무릎에 뭔가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눈물이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규빈의 어머니 조난희 였다. 나이는 56세. 남편 없이 아들과 둘이 산지가 20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마저 자기 곁을 떠났다. 죽어버린 건지 없어진 건지, 규빈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남편은 밤늦은 귀갓길에 뺑소니 교통사고로 숨졌다. 남편은 포장지 제조 공장에 다녔었고 난희는 집에서 규빈을 돌보며 팔찌, 머리핀, 귀걸이 등의 여성용 액세서리를 만드는 소일거리를 했었다. 넉넉지 않은 남편의 벌이 였지만, 난희도 조금씩 보태면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을 사고로 잃은 후부터는 여자 혼자 벌어서 아들을 키워야 했으므로 생활은 항상 궁핍했었다. 규빈의 학교친구들은 거의 대학에 진학했지만, 규빈이는 자신의 형편이 대학등록금을 감당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란 걸 일찍이 알고 있었다. 설사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해도, 생활비를 해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규빈이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지원해서 바로 군대에 갔었다. 대학생이 되었다면, 입학 후에 1,2년 후에 군대를 가도 되겠지만, 규빈은 어차피 갈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해서 빨리 군역을 끝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
부지런하고 음식솜씨가 좋은 규빈의 어머니는 일하고 있는 기사식당의 주방에서 없어서는 안 될 종업원이 되었다. 조리기술 없이 서빙으로만 하는 것보다는 요리사로 일하는 게 월급이 더 많았다. 초등학교 이후로 아빠 없이 자란 아들이 별다른 사고 없이 건강히 커줘서 항상 고마울 따름이었다. 규빈과 가까운 친구들은 대학을 진학했지만 본인 아들만 대학에 가질 못하고 바로 군에 입대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입대한지 2년이 지나고 무사히 전역을 하고 당장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형편이기 때문에 규빈은 바로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가 일하는 식당 사장님의 소개로 목공소일을 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하기가 어려운 상황인데, 규빈은 군대도 일찍 다녀왔고 성실한 어머니 덕분에 일자리도 바로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들이 목공소에서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8년이 지났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었지만, 꾹 참고 했다. 친구들과 만나면 회사에서 사무일, 영업일하는 것이 오히려 더 스트레스라고 하는 말도 많이 들었다. 다른 곳으로 일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곳에서 목공 일을 하다 보니, 처음 일을 할 때에는 목공이 뭐 별거냐 했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다양한 품목으로 제작하는 것에는 많은 경험과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8년 차가 되서는 목공에 대한 노하우가 많이 쌓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규빈이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5일이 지났다. 아들 핸드폰은 전원이 꺼져 있었다. 어머니는 고등학생 때부터 규빈과 가깝게 지내던, 병민과 유재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행적을 알 수 없었고 자주 가던 동네의 슈퍼, 세탁소, 과일가게 이웃들에게 수소문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남편도 없이 아들 하나 의지해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 왔지만, 아들의 행방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규빈의 방에 혹시 어떤 흔적이 있을까 하고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옷장에 잠바, 바지, 속옷, 양말, 운동복이 사라진걸 확인했다. 현관의 신발장을 보니 아들의 운동화 몇 개와 슬리퍼가 없어진 것도 확인했다. 그렇다면, 누군가에 의해 밖에서 갑자기 납치를 당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미리 계획을 짜고 스스로 어디론가 간 것이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들과 다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집안 문제로 나간 것도 아니고, 애인은 없었기 때문에 혹시 직장 아니면 친구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었나 하고 생각했다. 아들의 방 구석구석을 보고 있었다. 책장에 있는 책들, 책상위에 있는 물건들이 전과 같이 그대로였다. 책상 서랍 안을 열어 보았다. 충전기, 볼펜, 메모지, 스카치테이프, 그리고 감자종자 봉투가 하나 있었다. 집안에 화분 몇 개는 있지만 텃밭이 없어서 감자종자는 필요 없었다. 청소년기리서 방황하며 집을 나간 것도 아니고 군대도 갔다 온 장성한 아들이 갑자기 집을 나가다니 …….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