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여행 4박 5일
어느새 큰딸 회갑이라니 정말 만감이 교차한다. 언제 그런 생활 계획을 세웠는지 아담한 제주도 아파트에 살고 있는 딸네 집을 찾은 것은 지난 4월 16일, 4박 5일 일정의 제주도 관광길에서 보고 느낀 바를 기록으로 남긴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복잡한 탑승수속이 핸드폰 하나로 일사천리, 종이 탑승권은 이제 먼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 내리자마자 배웅 나온 딸 차로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카페에서 커피를 들고 간장게장 반찬이 곁들여진 갈치조림 정식으로 점심을 드니 신선노름이 따로 없다. 밖을 내다보니 구름한 점 없는 날씨에 짓 푸른 망망대해가 반기듯 출렁이며 환영의 박수, 이제야 제주도에 왔음이 실감난다.
딸네 집은 제주 중문단지 근처 성지타운 아파트, 간단히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니 앞산이 바로 비릿내오름(성천봉)이란다. 건너다보니 불연 듯 오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어둠 컴컴한 초행길 원주 원씨 홍천공 묘역 입구를 지나 계단길로 한참을 걸었을까 정상 쉼터가 나온다. 어둠을 헤치고 하산해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오르니 들머리에서 부터 탁 트인 서귀포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10년 체증이 가시는 기분이다. 북쪽으로 천제연폭포, 남쪽에는 중문 관광단지와 서귀포 앞바다가 시원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컨벤션센터와 중문관광단지를 연결하는 천제교가 한눈에 보이고 저 멀리 산방산, 군산(군뫼), 호텔 등 그림 같은 풍광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 신비스런 산방산, 용머리해안
제주도 공항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산방산 자락에 자리한 용머리해안, 용머리해안은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 제526호로 지정되었으며 이름 그대로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곳이지만 좁은 통로를 따라 아래쪽 바닷가로 내려가면 정말 오랜 시간 동안 층층이 쌓인 사암층 암벽이 나온다. 180만 년 전 수중 폭발이 형성한 응회암층이라고한다. 이곳은 수평층리, 돌개구멍, 해식동굴, 수직절리단애, 소단층명 등이 어우러져 제주 바다와 아름다운 절경을 볼 수 있는 해식동굴로 유명하다. 해식동굴이란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동굴이다.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가 오랜 시간에 걸쳐 해안의 약한 부분을 깎아내면서 생긴 신비의 동굴이다.
용머리 해안에서 산방산을 바라보면 금빛 대현 불상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높이 395미터의 산방산은 제주 남서쪽에서 가장 높은 산이자 오래된 화산지형이다. 산방산은 볼록한 종 형태의 산인데, 점성이 높은 조면암질 용암이 쌓이면서 분화구가 없는 돔 형태로 굳었다고 한다. 산방산 전설도 흥미롭다. 옛날 옛적,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 올라 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이 하필 산신의 엉덩이에 맞았다고 한다. 이에 분노한 산신이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사냥꾼에게 던졌는데, 그 봉우리가 산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산 중턱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산방굴사가 있다. 굴 내부의 암벽에는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이 물방울에는 ‘산방석 암벽을 지키는 신이 흘리는 사랑의 눈물’이라는 전설도 전해진다. 산기슭에는 보문사, 산방사, 광명사 개인 사찰 3개가 있다. 보문사는 산방굴사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중간에 들러 약사여래대불에 인사드리고 가기 좋은 위치에 있다. 부처님의 제자를 뜻하는 오백아라한들이 늘어서 있는 풍경은 산방산의 풍경과 어우러져 마음을 잔잔하게 만든다. 산방사는 제주 최대 관세음석불이, 광명사는 대불상이 있는 절로, 산방산을 오르는 길에 만날 수 있다. 산방산 정상부와 암벽에 붙어사는 희귀 식물 구실잣밤나무, 참식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육박나무, 돈나무, 가마귀쪽나무 등 해안식물들과 지네발란, 풍란, 석곡, 섬회양목 등의 암벽 식물들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 스릴 만점 제주제트보트
다음날 안내 받은 곳은 제주제트보트, 구명조끼를 입고 승선해 망망대해로 달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숨 막힐 듯 스릴넘치는 공포심을 유발하는 제트보트, 제트기처럼 쏜살 같아 제트보트인가. 온갖 기교를 부리며 조종하는 선장의 객기어린 행동이 얄미울정도로 다재 다능, 금시 전복될 듯 말 듯 운전에 해학이 넘친다. 함께 탄 관광객들의 비명소리가 더 공포스러웠다고나 할까 이 나이에 이런 제트 보트를 타다니 역시 10년은 젊어진 기분이다.
* 신비의 곶자왈도립공원
셋째 날 찾은 곳은 제주곶자왈도립공원,. 오름과 곶자왈을 중심으로 관광객을 위한 휴양림을 조성하고 숲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사람들이 이 울창한 숲을 걸을 수 있도록 길을 낸 곳이 제주시 서부권의 제주곶자왈도립공원이다. 동부의 절물자연휴양림과 교래자연휴양림, 서귀포시 동부의 붉은오름자연휴양림과 함께 자연 생태계연구의 숲으로 유명하다. 무성해진 나무와 덩굴이 보이고 떨어져 쌓인 나뭇잎 더미가 물을 머금어 숲은 더욱 짙어져있다. 온통 돌과 바위뿐 아무리 둘러보아도 흙 한줌 보이지 않는 길. 돌 틈을 메운 온갖 식물들이 관람객을 반긴다.
* 비양도의 하루
비양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에 딸린 섬으로, 면적 0.587km2, 해안선 길이 2.5km, 63가구에 167명(2014)년의 주민이 거주하는 화산섬이다. 한림항에서 북서쪽으로 5km, 협재리에서 북쪽으로 3km 해상에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는 한반도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인문학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과 역사와 오래된 문화유산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다소 이국적인 냄새조차 풍긴다. 여객선이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지만 다시 제주도 섬 속에 있는 섬들을 간다는 것은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울릉도나 흑산도처럼 두세 시간씩 가는 것이 아니라 20분 내로 갈 수 있는 환상의 섬이다.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이런 섬을 오겠는가. 신경 써 안내한 딸의 사려깊은 배려가 고맙기 그지 없다.
비양도는 조선시대 초기에는 죽순이 많이 났으므로 죽도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시대 중국에서 한 오름이 날아와 비양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날아온 섬이라는 뜻으로 전설 또한 흥미롭다. 먼 옛날 제주의 서북방향인 중국 쪽에서 산봉우리 하나가 제주를 향해 날아오는데, 굉음과 함께 한림 앞바다까지 왔을 때 소리에 놀라 밖에 나온 한 부인이 “거기 멈추어라(혹은 산이 날아온다)”고 소리치자 봉우리는 더 이상 날아오지 못하고 지금의 위치에 떨어져 섬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부터 정확히 1001년 전 화산 폭발로 생긴 섬이라고 전해지지만, ‘날아온 섬’이라는 뜻처럼 정확한 유래는 아니다. 에메랄드 색의 바다와 환상의 조합을 이룬 아름다운 섬 풍경이 아름답다. 해안을 따라서 잘 만들어진 일주도로를 따라가면 비양도의 자연 풍광과 제주도 서쪽해안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비양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바닷물이 지하로 스며들어와 만들어진 ‘펄랑못’이다. ‘펄낭’이라는 이 호수는 길이 500m, 폭 50m의 초승달 모양의 염습지이다. 섬인데도 불구하고 좀 특이하게 생긴 연못인데, 밀물과 썰물에 따라 수위가 달라진다. 과거에 비양도 주민들은 이 펄낭못에서 개흙을 가져와 건축자재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자연 호수는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비양도를 휩쓸면서 높은 파도가 마을을 덮칠 때 생긴 것이라 한다. 현재는 수백여 종의 각종 염생 생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제법 큰 규모의 습지이다.
이곳은 2005년 배우 고현정의 복귀작이었던 SBS 드라마 ‘봄날’의 촬영지로 명장면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드라마 촬영 이후에 이 연속극은 유명해졌는데도 정작 비양도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섬의 한가운데에 있는 분화구는 ‘비양봉’, ‘비양오름’이라 불리는데 114m를 오르면 된다. 비양봉 정상에는 쌍둥이 분화구(twin volcano)인 ‘큰 암메’, ‘작은 암메’가 있다. 오름(측화산)인 비양봉은 물이 없는―분화구로의 유입이 차단된―환경에서 만들어졌다. 즉 1차적으로 현무암 대지가 만들어지면서 해수 유입이 차단된 상태에서 분화 활동이 재개되어 비양봉이 형성된 것이다.
비양도는 화산 박물관이라 할 만큼 화산성 염습지(펄랑), 호니토, 시스텍, 화산탄, 분석구(스코리아콘) 등이 발달하여 있다. 지질 구조를 보면, 용암 분출에 의해 형성된 비양봉, 조면현무암과 스코리아(송이) 분출에 의해 형성된 비양봉 분석구로 구성되어 있다. 비양도에는 제주도 기념물 제48호로 지정된 비양나무가 ‘작은 암메’ 분화구 바닥에 자생하고 있다.
비양도가 생기게 된 전설도 흥미롭다. 비양도는 고려시대 때 중국에 있는 한 오름이 어느 날 갑자기 날아와서 지금의 위치에 들어앉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 있었던 그 오름이 없어졌다고 한다. 날아 떨어진 오름이라는 비양도는 갑자기 날아왔기에 협재리 앞바다의 바닷 속에 있던 모래가 넘쳐 올라서 협재리 해안가를 덮쳤다. 해안에 있는 집들이 모래에 덮여 버린 것이다. 지금도 모래 밑을 파다보면 사람의 뼈와 그릇들이 나오고, 아주 부드러운 밭 흙이 나타난다고 한다.
다른 또 하나의 전설은 곽지리에 사는 한 아기 밴 부인이 아침에 물을 길으러 바닷가로 나가는데 섬이 곽지리 쪽으로 떠오고 있었다. 그 여인은 섬이 떠오는 것을 보자 깜짝 놀라 “큰 섬이 떠왐져!”하고 외쳤다. 이 외침소리에 곽지리로 떠내려 오던 섬이 돌아 나와서 서쪽으로 더 내려가 협재리 앞바다에 머물러 버렸다 한다.
* 전설의 천제연폭포, 정방폭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천제연로 132(중문동)에 위치한 천제연폭포, 높이 23m, 너비 8m, 깊이가 5m다. 서귀포 동쪽 해안에 있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 같다 하여 정방하포라고도 부르며, 예로부터 영주12경 가운데 제5경으로 유명하다. 중국의 진시황이 이곳에 사신을 보내어 불로초를 구하려고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천제연폭포는 옥황상제를 모시는 칠선녀가 별빛 속삭이는 한밤중이면 영롱한 자주빛 구름다리를 타고 옥피리 불며 내려와 맑은 물에 미역 감고 노닐다 올라간다고 하여 천제연, 곧 하느님의 못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지정문화제기념물 제44호인 정방폭포는 서귀포시 서귀동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폭포 절벽에는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의 사자인 서불이 한라산에 불로초를 캐러 왔다가 구하지 못하고 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새겨놓은 '서불과차'라는 글자가 있으며, 서귀포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해변을 따라 서쪽으로 300m를 가면 잘 알려지지 않은 해식동굴이 있으며 내부에는 큰 석불좌상이 있다.
* 힐링 만점 서귀포 '작가의 산책길'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엔 작가의 산책길이 탐방객들을 유혹한다. 제주 올래길 6코스로도 많은 탐방객들이 선호하는 작가의 산책길은 제주도가 자랑할 만한 문화의 거리다. 이중섭 거리등 멋진 작품들도 관람하며 가볍게 산책 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산책길에서 바라본 해안엔 새섬 문섬 섶섬(숲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초록 초록 잔디밭이 넓게 펼쳐진 ‘유토피아로 공원’ 곳 곳의 야자나무 밑 벤치에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이란 경험한 사람만이 아는 희열이자 낭만이다. 유토피아로 중앙에는 작가들의 작품(조형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이중섭 화백이 서귀포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며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바로 보이는 문섬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속에 담겨 있기도 하다. 인근 바다와 섬을 둘러볼수 있는 짧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산책길 낭만은 이번 제주여행에서 맛본 잊지 못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 다시 보는 용두암
용두암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가지면 승천할 수 있다는 것을 안 용이 한라산 신령의 옥구슬을 몰래 훔쳐 용현 계곡을 통해 무사히 몸을 숨겨 내려 왔으나 용현이 끝나는 바닷가에서 승천하려다 들키고 말았다. 승천을 하는 순간 대노한 한라산 신령의 화살을 맞고 바다에 떨어진 것이다. 용은 승천하지 못한 한과 고통으로 몸을 뒤틀며 울부짖는 모습으로 바위가 되었는데 이게 바로 십여년 전 찾았던 용두암, 내 나이 80고령 탓인지 많이 늙어 보이는 기분이다. 또 다른 전설로는 용왕의 사자가 한라산에 불로장생의 약초를 캐러 왔다가 산신이 쏜 화살에 맞아서 죽었는데 그 시체가 물에 잠기다가 머리만 물 위에 뜨게 되었다는 것, 믿거나 말거나 전설은 전설일 뿐이다.
* 강정마을의 평화바람
제주도 해안을 일주하며 멀리서 강정마을을 볼 수 있었다. 평화활동가들이 구럼비 발파를 막으려 바위에 매달려 봤지만 끝내 경찰들에게 끌려 나오고 감옥에 갇혔고, 기지 건설 공사를 막으려 애썼지만 공사는 계속됐다.
평화바람이 처음 이곳에 왔던 2008년, 강정마을은 저녁 8시만 돼도 불 하나 켜진 곳 없이 캄캄했다고 한다. 윤 씨, 강 씨, 고 씨 집성촌인데 윤씨 가문이 많았다. 명절이면 집마다 돌아다니며 같이 제사를 지내던 강정은 중문, 서귀포 등과 비교해도 개발이 덜 된 진짜 시골 마을이었다. 물이 많아서 이름도 물 강(江), 물 정(汀)인 이 마을은 제주에선 흔치 않게 벼농사를 지었다.
자연생태계 우수마을로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기지가 뿜어내는 오염수로 바다에 기댄 생업이 위협당하지 않을까, 군인들이 마을을 돌아다니면 마을 분위기가 험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해군기지를 반대하던 주민들이었다. 해군기지 유치를 찬성하는 마을 총회를 만들어낸 주민들도 있는 반면, 강정 지킴이들은 군사주의에 반대하며 해군기지 유치를 막기 위해 저항했다.
지킴이들은 매일 해군기지 앞에서 평화 백배를 하고, 미사를 드리고, 인간 띠 잇기를 이어갔다. 반군사주의 운동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 강정마을의 평화운동은 줄기차기만 했다. 어떤 해답으로 이 사태를 설명할지 아직도 평화운동은 진행 형이다.
* 아! 친구는 어디에--
제주도여행은 나에게 즐거움만을 안겨주지 않았다. 치매를 앓다 작년 10월 20일 제주도 재동목장 근처 cctv에 잠간 모습을 들어 낸 후 지금까지 종무소식인 이재선 친구, 그가 없는 제주도는 정말 허망했다. 제주도 전체가 들 석이며 그의 행방을 찾았지만 현대과학은 아직도 그의 행적을 모른다.
그저 살아 돌아오기만을 빌며 그가 부인 이민정 여사(여주 여성사 박물관장)와 거주했던 조천읍 교래리 송현당을 뒤늦게 찾은 내 가슴은 메어지는 것만 같았다. 실종 당시 내려와 함께 걱정하며 발을 굴러야 했을 내가 6개월 만에 부인을 위로한답시고 찾아갔으니- 내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필설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이재선 친구와 나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가 서등 인쇄소를 자수성가로 일구며 청소년금연운동연합 이사장에 범죄방지재단 이사에다 재경제천중고 동문회 회장, 평창향우회 회장, 인현로타리클럽 회장 등 중요 직책을 맡아 열심히 봉사했던 그의 옆에 항상 내가 있었으니 막역지우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런 그가 말년에 치매라니 어찌 이렇듯 하늘이 무심탄 말인가. 어느 날 홀연히 송현당 대문에 들어서며 부인을 찾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 자식과 함께 송현당에서 부인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려 말을 잇지 못했다. 차 한잔을 드는둥 마는 둥 ‘산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시젯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내 가슴은 온통 비통의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친구여! 그토록 사랑했던 부인을 홀로 남겨두고 어디서 헤매고 있는가, 어서 어서 훈저옵서예! 발길을 돌리며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다.
* 관광보다 소중한 가족과의 대화
4월 20일 4박 5일 제주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날, 오후 7시 5분발 비행기를 타고 귀경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생각했다. 환갑노인이 된 딸의 환대와 함께 제주여행길 곳 곳,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느낀 즐거움도 많았지만 더 값진 것은 평생을 글을 쓰면서 가족과의 대화(소통)의 중요성을 그토록 줄기차게 외쳐 왔으면서도 정작 내 가족과의 대화엔 너무 소홀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점이다. 4박5일 동안 차로 제주도 해안 길을 일주 하면서 나눈 자식과의 대화, 그 말 말 속에서 내가 깨닫고 느낀 것은 어떤 관광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에게나 애환은 있게 마련인 것이 인생길이라지만 부부간은 물론 부모 자식 간에 이렇듯 모르고 산 것이 많았던가, 왜 그때 좀 더 다독거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배려해줄 생각을 하지 못 했던가 하는 회한의 눈물이 창공을 맴돌고 있었다. 가족과의 대화 그 소통의 중요성을 거듭 거듭 깨달으며 제주여행 4박 5일은 이렇게 값진 소득을 남겼음을 이실직고 한다. 모두들 여행도 좋지만 어떤 여행이든 가족과의 대화, 그 소통보다 더 소중한 여행은 없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실천한다면 누구나 바라는 화목한 가정은 정말 ‘내손 안’에 있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 딸이 건네준 시 한수
귀경 길 제주항 창공엔 저녁 노을로 창연했다. 4박 5일 제주여행, 피로는 말끔히 가시고 환갑을 맞은 딸이 자작시라며 무심코 건네준 시 한수가 생각나 여기 옮겨 적는다.
<산책 길>
나의 산책길은 늘 행운이다. 하늘, 바다, 구름 노랑 분홍 자주 사랑스러운 것들 뿐이지만/ 방긋 방긋 생글 바시시 고개를 내밀며 나를 기다린듯 반겨주는 네 잎 크로바가 제일 사랑스럽다/ 오늘은 상처나지 않은 두개의 행운이 반겨준다/곱절의 즐거움과 행복이 심장을 쓰다듬어 세로토닌이 전신으로 흐른다/ 쉬고 싶어 조그만 돌덩이에 엉덩이를 내밀면 자리가 되어주고 쪼그리고 앉은 자리에선 쑥향이 풍긴다/노오란 유채는 한들 한들 바람과 대화하다가도 나를 만나면 늘 웃어준다./나의 산책길은 언제나 행운이다. (정순택 심리상담사)
(2022.4. 22 글쓴이 정운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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