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당일치기로 고향에 계시는 울아버지한테 다녀왔습니다.
봄이 물오르기 시작하는 요맘때 가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없네요.
아마 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울아버지 발아래 저 밑에는 홍매화 밭이 펼쳐져 있는데, 꽃이 만개했을 때는 꽤 멋있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모습은 햇병아리가 털갈이를 시작한 것처럼 듬성듬성해서 아주 이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지금은 홍매화가 져가고 하얀 매화들이 꽃을 피우는 때인 것 같습니다.
울아버지 바로 옆으로는 진달래가 꽃망울 진 것들부터 활짝 벌어진 꽃봉오리까지 연분홍색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온 산에 흐드러지게 피지 않아 더욱 이쁩니다.
봄꽃들은 대부분 잎보다 꽃이 먼저 피잖아요.
진달래, 개나리, 벚꽃 정도는 다들 잘 아시죠.
울아버지 주변에는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언뜻 멀리서 보면 이제 막 돋아나는 연두빛 새순처럼 보이는 꽃입니다.
바로 오리나무 꽃이죠. 와막나무라고도 불렀었습니다.
참, 노오란 생강나무꽃도 피었습니다.
동갑내기 사촌 형이 벌써 잘 보수해 놓은 덕분에 금방 끝냈습니다.
울엄마랑 울아버지 앞에 앉아서 멀리 병영면 쪽 산을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울아버지 젊은 나이에 가시고 울엄마의 막막했던 그 시절 얘기를 조근조근 들으며 봄날 오후를 보냈습니다.
울아들이 저한테 기대듯 저도 울아버지한테 잠시 기대보았습니다.
바싹 마른 잔디가 까슬까슬했습니다.
그렇게 또 봄이 왔습니다.
울아버지 가시고 삼십 번이 넘게 그랬던 것처럼 또 그렇게 봄은 가겠지요.
포근한 봄날 행복하세요. ~^.^~
♥엄마의 분홍 립스틱♥
언제였던가요.
오빠가 결혼을 하게 되어 시골에 계신 엄마가 서울에 오셨지요.
늘 입으셨던 푸른색 한복과 검게 그을린 얼굴, 투박한 손.
박스마다 농산물을 가득 넣어 고속버스를 타고 오셨습니다.
그 많은 짐을 어찌 가져오셨는지, 택배로 부치셨으면 될 것을 당장 자식들 먹이겠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오셨지요.
그걸 보면서 감동은커녕 왜 이리 생고생을 하시냐고 투덜거리기 일쑤였습니다.
참 못됐지요.
결혼식 당일 날, 딸들은 엄마를 꾸미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작고 초라한 우리 엄마를 상대 하객들에게 근사하게 보일까 하고, 특별한 날 아니면 얼굴에 로션조차 바르지 않으셨던 엄마께 화장을 해드린다고 부산을 떨었지만 너무 검게 그을린 엄마 얼굴은 화장이 받지 않고 따로 놀더군요.
무엇을 발라도 어울리지가 않았지요.
어색해 하시는 엄마를 예쁘다며 속에 없는 말을 했습니다.
마지막을 발라드린 립스틱.
여러가지 색깔을 총동원했지만 엄마의 검은 얼굴엔 어떤 것도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발랐다 지웠다를 수십 번, 마지막 립스틱은 분홍색이었지요.
검은 얼굴에 맞춰 그나마 어울리는 립스틱을 발라 드렸는데 다 퇴짜놓으시더니 단 하나 분홍 립스틱은 맘에 들어하셨습니다.
흰 얼굴에 어울리는 분홍 립스틱은 엄마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아 따로 노는 건 당연했지요.
이 색깔을, 이 어울리지 않는 색깔을 지워야 직성이 풀릴 거 같아 다른 색깔이 어울린다는 핑계로 결국 지우고 말았습니다.
바보처럼 바보처럼 말이지요.
엄마도 여자였고, 좋아하는 색도 옷도 생각도 모두 있었는데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내 잣대로 판단하고 행동했던 게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우리 엄마가 좀 촌스러우면 어떻고 립스틱이 안 어울리면 어떤가요?
내 엄마인데...
고생해서 이렇게 반듯하게 키워주신 우리 엄마인데 말이지요.
그때 조금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원하시는대로 했다면 이렇게 떠나신 다음에 바보처럼 가슴 아파하지 않으셨겠지요.
문득 친구에게서 받은 분홍 립스틱을 보면서 그때의 엄마 모습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곁에 계신다면 색깔별로 한 박스 선물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네요. 지금은 그럴 수가 없네요.
-해밀 우체통/해밀 조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