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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였던 2002년 2월우즈벡 타쉬켄트를 방문했을 때 김사장은 여러면에서 신사였다. 그의 집으로가자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아파트25평 정도였고,아이가 하나였고, 현지 고려인과 결혼한 아내는여간 참하고 모든부분에서우리를 편하게 잘 해주었다. 그는 한국의 모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다가 역마살이 끼었는지,외국회사를 전전하다가 우즈벡에 정착했고 아내와 결혼한 후 모든 게 잘 풀려 행복하다고 했다. 여성 프로필은 아내가 현지 여성들과 접촉해서 준비하기때문에 100프로 신원을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나는 7박8일 머무른동안그의 관심과 배려에 감사했다. 분당에서 같이 갔던 김사장과의 결혼도 잘 마무리되었다. 그는 고향이 포천이었고,교민회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서 한국에 왔을 때 교민회를 위한 물건들도 많이 준비해 간다고 했다.그런데.그가 다시 우즈벡으로 돌아간 후 한동안 연락이 안되에 궁금해 했는데 뜻밖에도 그가 이혼했다는 것이다.그의 전처인 이리나씨가 여성 프로필을 몽땅가지고 나가서 이익금의 50프로씩 나누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리는 것도 결국 돈앞에서는 별 수 없구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며칠 후 우리직원이 우즈벡 김사장이 우리회사 홈페이지를 그대로 모방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주소는 용산구 한강로 어느 빌딩이었다.나 는김사장에게 전화해서 바꾸어 달라고 말하려했지만 "김사장님이 외부에 계신다"면서 바꾸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끝내 김사장과 통화를 하지 못했고 김사장은 곧 홈페이지를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