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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정, 제자입니까?(요 13:34-35)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아주 엄숙하고도 정직한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고 말씀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나는 과연 주님이 인정하시는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남미의 위대한 영적 스승인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목사님이 쓴 《제자입니까?》라는 책에는 참으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고백이 나옵니다.
목회자로서 열정적으로 사역하던 어느 날, 성령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의 마음을 무섭게 깨뜨리시며 이렇게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는 일들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 성령의 숨결이 찾아보겠느냐?’ 나는 이 물음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진정 나는 예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인가 돌아보았다.” 오르티즈 목사님은 교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기가 원하고, 바라고, 내 삶에 당장 필요한 부분만 쏙쏙 골라 믿고 있었습니다. 오르티즈 목사님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신앙, 곧 ‘내가 복음’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성경의 온갖 구절 중 내가 듣기 좋아하는 구절만 짜깁기해서 만든 ‘제5복음서’를 끼고 산다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슬그머니 제 5복음서에서 빼버립니다. 성도 여러분, 나 중심의 이기적인 신앙, 내가 복음, 제5복음서를 이제는 십자가 앞에 다 던져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를 영접했다”고 말하지만, 사실 영접의 주체는 내가 아닙니다. 죄악과 사망의 법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에게 친히 찾아오셔서, 그 피묻은 손으로 마음 문을 두드려 주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이지, 우리의 노력이나 인본주의적인 그 무엇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고 “아, 저 사람이 진짜 예수의 제자구나!”하고 알아보겠습니까? 다시 묻습니다. 당신은 진정,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교인이 있고, 신자가 있고, 제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교인으로서가 아니라, 신자로서가 아니라,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인은 신자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자는 제자가 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제자는 헬라어로 마데테스입니다. 이 말은 '배우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배우는 사람', '지성적으로 따르고 모방하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4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예수님은 주와 선생으로서 친히 삶을 통해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가 바로 주님의 제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마땅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에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어떤 노력과 헌신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그를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 11:29-30)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온유란 잘 길들여진 온전한 능력을 의미합니다. 흔히 '온유함'이라고 하면 약하거나 유순해서 남에게 무시당하는 무력한 성격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원어의 뜻은 야생마가 주인의 손길에 잘 길들여져 능력이 조정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마 26:53) 불러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가 있으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 거대한 힘을 스스로 절제하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 그러니까 온유란 무기력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통제된 능력"입니다. 내 분노와 혈기를 스스로 제어하고, 하나님의 손길에 내 삶을 맡기는 마음이 바로 온유입니다.
그리고 겸손이란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랑입니다. 하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가장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겨주셨고, 죄인들과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겸손은 자신을 비하하는 열등감이 아닙니다. "타인을 섬기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는 거룩한 선택"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은 진정 예수님의 제자입니까?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힘써 지키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의 마음을 배우고 있습니까? 주님은 지금도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대접을 받으려면 먼저 대접하라고 하십니다. 미워하지 말고 먼저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선을 베풀만한 힘이 있거든 아끼지 말고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거짓을 말하지 말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이것을 말로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스스로 그 모든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생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된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걸어가야 할 세 가지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1.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 8:31,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여기에서 '거하면'이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그리고 말씀을 따라서 살기로 결심하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도 함께 수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오직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의 제자는 그 말씀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그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교인일 수는 있어도 제자는 아닙니다. 제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저 단순히 예수님의 말씀에 거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의 말씀이 거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할 때 나는 변화가 됩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삶을 우리는 믿음의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축복입니다. 가만히 보십시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자아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직분을 받고 헌신하지만 한번씩 무너지고 넘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 바람이 불어와도 민들레홀씨처럼 멀리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마음안에, 그가 말씀안에 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안에 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몇번이고 읽으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때 성령께서 깨우쳐주십니다. 그렇게 깨달은 말씀을 노트에 적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묵상할 때 반드시 연필을 들고 깨달은 말씀을 적으면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과 오늘의 내 삶을 연결시켜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정리되면 그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말씀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안에, 예수님안에 거하는 신실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2. 진정 예수님의 제자는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34절과 35절,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말씀을 역설하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새 계명입니다.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사랑을 하되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유다가 자기를 배신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베드로가 자기를 부인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까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니라 모든 것이 상대방을 위한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만 사랑하는 조건적인 사랑은 결코 예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그가 나를 사랑하든 하지 않든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자발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때로 인간적인 고뇌를 겪으면서도 인류를 사랑하시는 그 고난의 십자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여기서 행동하는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대가를 바라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나는 희생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사랑이 참사랑입니다.
물론 세상사람들도 사랑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서로를 사랑하고 위로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세상사람들도 화목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공동체의 화목을 위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않으면 찬 겨울의 눈보라보다 더 매섭고 차갑게 배신하는 것이 세상적인 사랑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마치 껌과 같은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껌은 단맛이 있을 때에는 입에 넣고 씹습니다. 그렇지만 단맛이 없어지고 맛이 없어지면 미련없이 내뱉어버립니다. 육신의 속한 사람은 그렇게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제자는 그렇게 사랑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쓴맛이 나도 자기를 희생하면서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는 능동적인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시기 전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자리에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채워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당시에 제자들은 후일에 누가 더 큰 사람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높은 자리에 있게 될 것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만찬을 먹기 위해 방에 들어왔는데도 아무도 발을 씻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당시에 문화에서는 가장 낮은 종이 발을 씻어주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있을 그 찰나에 예수님께서 조용히 일어나셔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줍니다. 그 때 베드로 차례가 되자 황급히 일어나서 "주여,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능동적인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그렇게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시며 우리에게 가르치셨던 것처럼 내가 먼저 사랑하고 내가 먼저 손내밀고 내가 먼저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셨습니까?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대속물로 주시는데까지 섬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며 종된 삶을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낮은 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는 결코 섬김을 받기 위해서 나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나보다 더 연약하고 부족한 성도들을 돌보고 섬기는 곳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섬김의 삶을 자원합니다. 사명으로 알고 섬김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예수를 믿었는지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잊어버려서는 안됩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먼저 사랑하고 먼저 섬김의 자리로 내려오면 그 섬김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행할 때 비로서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제자는 열매를 많이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요 15: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여기에서 열매는 두 가지로 이해됩니다. 첫째는 개인적으로는 구원받아 새 사람된 성도로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는 사명적인 차원에서 잃어버린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것을 한 가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충만하지 않고서는 내가 성령의 열매를 맺지않고서는 결코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내 삶이 변화되지 않고서 지금 이대로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리새인의 특징입니다. 자기들의 속사람은 병들어서 죽어있는데 외적인 모습은 의롭고 거룩한 것처럼 행동합니다.
누가복음 11장 52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자기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막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 예수님의 제자는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주님이 우리를 제자로 선택하신 것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회적으로 한 번 열매를 맺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열매가 있게 하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잊지말아야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모든 역사가 이루어지려면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아무리 많은 훈련을 받고 예수님과 함께 3년을 동거동락했더라도 십자가앞에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두려워서 다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모른다고 부인하며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가장 강조했던 가르침은 바로 성령님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6: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리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더 실제적입니다. (행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래서 저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충만을 체험하자 저들은 예루살렘 거리로 나아가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며 숨었던 저들이 이렇게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모이기만 하면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올바르게 하려면 전도의 열매를 맺고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려면 저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성령충만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고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다면 반드시 기도가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기도없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보다 기도생활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소개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제가 늘 말씀드린 것은 세 가지입니다. 1)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므로 깨달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개닫게 됩니다. 2)변화되는 역사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고 성품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 성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3)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영적인 능력이 주어지면서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할수 있습니다. 말의 권세가 생깁니다. 말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신앙생활의 시작과 끝까지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없이느,s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이 없이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도 없습니다. 그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보면 성령님은 우리 신앙생활하는데 절대 필요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말씀을 날마다 묵상하며 읽어야 합니다. 또한 제자의 생명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 전도의 열매, 이러한 열매가 풍성할 때 우리에게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의 힘은 내 힘이나 내 결단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충만해야 이 모든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 역사하십니다. 또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충만을 체험합니다. 오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에서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드리는 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나눔이야기-------------------------------------------------------
1.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삶에 적용하는 가운데, 최근에 내 삶과 인격에 많은
깨우침을 주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2. 주님이 보여주신 무조건적이고 능동적인 사랑처럼, 내가 이번 주에 먼저 용서하거나
낮은 자리에서 섬겨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3. 내 안에서 맺혀야 할 성품의 열매는 무엇이며, 이를 위해 성령충만을 구하는 기도
생활을 어떻게 회복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