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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충만한 사람
출 18: 19-22, 행 6: 3-6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으로 주신 은총이 성령의 강림입니다. 인격적 하나님 이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성령강림은 이미 우리 가운데 일회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성령강림이 일회적인데 반해 성령 충만은 지속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리처드 포스터는 영적 훈련과 성장에서 "고독은 내적 공허이다. 홀로 있기는 내적 충만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적 충만은 성령의 충만으로 가능합니다. 홀로 있기를 통하여 성령 의 내재와 충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든 충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든지 아니면 세상의 잡동 사니로 충만하든지 항상 충만합니다. 엘리오트(T.S. Eliot)는 "우리는 텅 빈 사람, 우리는 꽉 찬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영혼은 비어야 차고 차야 비어집니다. 내적 충만은 내적 공허로만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적 공허로 끝나기 때문에 인생의 허무 주의, 비관주의도 나타납니다.
제가 새벽기도 올 때 보면 그 시간까지 젊은이들이 돌아다닙니다. 몸을 비틀거리며 몰려 다닙니다. 사람은 생체적으로 밤에 잠을 자야 기운이 찹니다. 밤새 흔들고 마신다고 하더라 도 아침이 되면 더 허전해집니다. 밤에는 위가 비어야 건강한데 밤새 먹고 마시면 위가 라 면 충만, 술 충만이 되지요. 비어야 할 때 차고, 차야 할 때 비면 영육이 시드는 법입니다.
한국이 10대 흡연이 아시아에서 1위라고 합니다. 음주도 1위입니다. 여성 흡연도 놀라울 속도로 빨라집니다. 안 좋은 것에 1위가 상당히 많습니다. 말보로라는 담배의 카우보이 복 장을 한 오랜 모델이었던 맥러렌(Wayne McLaren)이란 배우는 51세에 폐암으로 죽었습니 다. 유럽회의에서는 반흡연법이 통과되어 담배에 '마일드' '라이트' '저타아르'등을 못 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섭게 늘어만 갑니다. 일전 뉴스 시간에는 우리나라의 20대 여성 10%가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하였습니다. 편하고, 쉽고, 재미있고, 돈도 많이 버는 일은 가리지 않습니다. 이런 우리의 속에 무엇이 차 있는 것 같습니까? 무엇으로 충만한 상태입니까? 우리 속에 담배연기가 충만하고, 술이 충만하고, 욕심이 충만하고, 음란이 충만해 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는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돌아와 보니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습니다. 이 귀신은 나가서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은 이전보다 더 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청소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것은 예수의 피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씻어야 귀신이 안 들어옵니다. 바리새인은 그 입에 악독이 가득 했습니다. 외식과 불법이 가득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 리새인들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했습니다. 회칠한 무덤 같은 그들은 죽은 사람의 뼈와 모 든 더러운 것으로 가득했습니다.
초대교회에 처음 시험을 가져왔던 아나니아에게는 "어찌하 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라고 베드로는 책망합니다. 충만하지 말 아야 할 사단이 충만하면 충만해야 할 성령을 속입니다. 충만하지 말아야 할 것이 충만하면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바울 서신 특히 옥중서신에는 충만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타납니다. 바울의 충만의 사상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 "플레로오마"는 "채우다", "성취하다" 또는 "완 성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충만 또는 완성 또는 성취를 포 함한 시간적 수적 전체를 의미를 말합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만물에 충만하신 자라고 합니다. 즉 충만은 그리스도의 성품입니 다. 특히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는 구절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는 충만 그 자체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충만이며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가능합니 다. 그리스도가 있는 사람은 성령 충만도 가능할 것입니다.
첫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지혜도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자격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만 지혜가 충 만하지 않으면 안되고, 지혜가 충만하지만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령과 지혜 는 동시적으로 충만해야 하고 동시적으로 충만해집니다. 지혜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살아가는 기술'이란 뜻이라고 켄 가이어는 '묵상하는 삶'에서 말했습니다. 지혜가 없으면 죽어 가는 기술로 가득해집니다. 진정한 삶의 기술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으며, 참 지헤는 성경에서 성령을 통하여 공급됩니다.
어리석다(absurd)란 말은 귀머거리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 수르두스(surdus)가 들어있다 고 합니다. 성령의 사람은 지혜에 귀가 밝습니다. 야고보서 3:17에는 "오직 위로부터 난 지 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 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합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거짓에는 비고, 열매에는 차는 것입 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성막을 지을 때에 브살렐과 오홀리압에게 이 일을 맡 깁니다. 출애굽기 31:3네는 하나님의 신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일하게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의 부모인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하였습니다. 성경은 세례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합니다. 로 마서 1:29에는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 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라고 합니다. 악독이 충만하면 지혜의 자리는 없습니다.
둘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자가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성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라고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것은 칭찬 듣는 조건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칭찬의 대상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면서 칭찬 듣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칭찬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고 첫 순 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칭찬의 대상이었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았고 사도들을 쫓아냈습니다. 사도행전 13:52에는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합니다. 핍박을 받았지만 성령이 충만합니다. 성령 충만은 어떤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충만하고 그리스도 때문에 칭찬 듣습니다.
안디옥의 제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면 그 결 과는 칭찬입니다. 사도행전 11:24에는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 가 주께 더하더라"고 합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며 칭찬 듣는 사람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 만한 사람입니다. 또한 디모데도 형제들에게 칭찬 받은 자라고 합니다. 사울의 눈을 뜨게 하였던 아나니아도 다메섹의 유대인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그리고 작은 일에 최선을 다 하지 못한 사람을 책망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그리고 바울 은 빌립보서 4:8에서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칭찬 받을 만 해야 합니다.
동물의 왕 사자가 중병에 걸렸습니다. 숲 속의 동물들이 모두 문병을 왔습니다. 그런데 유독 여우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평소 여우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늑대가 속으로 쾌재를 불 렀습니다. "지금이 바로 여우에게 복수할 절호의 기회다" 늑대는 사자에게 간언을 했습니 다. "숲 속의 왕이시여 여우가 문병을 오지 않은 것은 필경 대왕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엄한 벌을 내려야 합니다". 마침 그때 여우가 도착했습니다. 사자는 크게 노하여 물었습니 다. "네 이놈, 왜 이리 늦었느냐" 여우는 간언을 눈치채고 꾀를 냈습니다. "대왕님을 고칠 약을 알아보느라 이렇게 늦었습니다". "그래, 그 약이 무엇이냐". "늑대의 가죽을 벗겨 그것 을 뒤집어쓰면 금방 병이 낫는답니다". 사자는 코앞의 늑대를 잡아 가죽을 뒤집어썼습니다. 칭찬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칭찬 듣는 것은 더 좋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칭찬을 듣게 합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사람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성령과 지혜 충만하고 칭찬 듣는 것은 교회 일꾼의 자격입니다. 교회 일꾼에게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지식도 필요하고, 재물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필수조건은 아닙니다. 성령 충만은 필수 조건입니다. 없어서는 안될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 에게 이끌리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공생애의 시작에 중요한 조건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성령에게 이끌립니다. 성령 충만해서 성령에게 이끌려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성령의 인도와 마귀의 시험은 같은 맥락입니다.
초대 교회의 제자들은 다 성령 충만함 받고 성령 말하게 하심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했 습니다. 성령의 충만은 전도의 조건이며 교회 설립의 조건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 여 설교하고 전도하였습니다. 온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했습 니다. 성령이 충만한 다메섹의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를 보내 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 때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였습니다.
성경은 온통 성령의 충만을 교회의 일꾼 의 자격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일꾼의 자격은 철저하게 영성과 도덕성입니다. 성령 충만과 칭찬 듣는 깨 끗한 삶을 강조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1절에는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을 만드는 사람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이 "인생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당신은 서브를(섬김을) 잘 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인생은 서브를 잘 해야 합니다. 인생은 잘 섬겨야 합니다. 서브하는 볼 은 성령입니다. 성령으로 서브하십시오. 성령으로 섬기십시오.
결론
프랑수아 드 살르는 "큰 덕행은 설탕 같고 작은 성실은 소금 같다. 설탕은 탁월한 맛을 내지만 사용 빈도는 적다. 소금은 탁월한 맛은 아니지만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큰 덕행 은 드물게 발생하지만 작은 섬김은 날마다 있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충 만은 매일의 삶 속에서 작은 듯 나타나는 큰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탐욕과 방탕과 위선과 악독이 충만한 바리새인 시몬 집에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마리아는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았습니다. 향유 냄 새가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성령을 거스리는 것으로 충만한 세상입니다. 온갖 악독이 충만 한 세상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가면 성령의 냄새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충만하니 우리가 충만합니다. 우리가 충만하면 세상이 충만합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내 잔이 넘치나 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성령의 잔이 충만하여 넘쳐서 세상을 적실 수 있기를 바랍니 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은 성령의 내 속에와 온 세계에 충만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 기준
출 18: 19-27, 마 7: 1-5
오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환경문제, 경제문제, 가정문제 등 다양하게 대답할 것입니다. 많은 문제 속에 문제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도자의 문제입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날 때 그리고 서로 신뢰할 수 있을 때 여기서 진정한 평안히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비록 대접을 못 받아도 평등하지 못해도 인센티브가 없어도 만족하게 '저분과 함께 일하리라, 저분의 뜻을 따르리라' 하는 이런 분위기가 되어야 되겠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런 지도자를 제대로 배출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을 만나서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나의 삶의 존재를 찾고 보람을 찾게 될 때 저분과 함께 일하므로 내 생을 다 바쳐도 좋다, 하는 그런 지경에 도달하게되면 여기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좀 가난해도 괜찮습니다. 월급이 적어도 괜찮습니다. 얼굴이 못생겨도 괜찮습니다. 배운 것이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베스트셀러 중에 하나가 The Power of Great Partnership 이라고하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번역할 때 "위대한 이인자들"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데이빗 히넌과 워렌 베니스가 두 사람의 공저로 나온 책입니다. 여기서는 일인자도 중요하지만은 이인자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이인자가 없는 일인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인자들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은 이분들이 있어서 일인자가 있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합니다.
거대한 중국 땅을 통일하고 중국인민 공화국을 세운 바 소위 우리가 아는 "모택동, 마우쩌뚱"이라고 하는 사람, 이 사람 뒤에는 "저우언라이, 주은래"라고 하는 분이 항상 같이 있습니다. 무려 40년 동안 그는 비하인드 맨으로서 모택동을 도왔습니다. 모택동은 아주 거칠고 투박한 성격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은래는 잘 생긴 지성적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모택동은 독학을 한 사람입니다. 공부한 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독학으로. 책을 보니까 기차여행을 할 때마다 책을 40권씩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계속 시간만 있으면 책을 보는 공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은래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정규적으로 공부했을 뿐만 아니라 유학을 한사람입니다. 그는 지성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함께 합니다. 그런데 주은래씨를 존경하고 싶은 것은, 그가 세상 떠날 때 "나를 불태워 가지고 비행기로 전 중국에 뿌려라." 그는 묘비도 없습니다. 기념비도 없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입니까.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이미 만들어놨던 묘까지 다시 고쳐가면서 야단입니다. 영원한 이인자, 그러나 영원한 일인자가 나일까요. 닉슨 대통령이 이 사실을 이렇게 정리해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택동이 없었다면 중국혁명은 결코 불붙지 아니했을 것이지만, 주은래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타서 재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이 함께 있음으로 해서 일을 가능케 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13일에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 의원들을 선출해야 합니다. 우리국민들은 지도자에 대한 복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때 나라가 어려울 때 지도자들이 있었으나 요즘은 정말 지도자다운 자질을 갖춘 지도자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겠다고 출마의 변을 내어놓았습니다. 그 사람들의 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배우자의 선택이 개인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지도자의 선택은 국민의 행복과 관계가 됩니다. 그러므로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면 13일에 어떤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요?
오늘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에 장인 이드로가 지켜보고 있다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루종일 모세가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모세를 도와 일을 능율적으로 할 지도자를 세우도록 권면하면서 그 지도자를 뽑을 때 자격기준을 제시한 내용입니다. 대통령을 도와서 각 자치단체를 다스리고 각 자치단체장을 도우면서도 견제세력으로 의회의원들을 세우게 됩니다. 이들을 우리가 선택해야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지도자 선택의 기준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1.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버트 그린리프는 "지도자로서의 종"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전은 지도자가 사람을 이끄는데 없어선 안 될 필수적인 자질이다. 지도자가 비전의 안목을 상실하고서 일들에 끌려 다니기 시작하면 그는 명목상의 지도자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선거철에 출마자들이 내 거는 공약이 일종의 비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소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비전을 주기는 주는데 그것이 거짓말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허황된 비전을 제시하여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똑똑한 멍청이"라는 책을 보셨습니까? 회교국가에 있는 나스 쥬딘이라고 하는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집안에서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집안은 깜깜합니다. 깜깜하니까 열쇠가 어디 있는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열쇠를 어디가 찾을까? 하고 보니까 문 밖이 환한 것을 발견합니다. 열쇠는 집안에서 잃어버렸는데 환한 집 밖으로 나가 밖에서 열쇠를 찾습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내 열쇠 못 봤어요?'
우리도 이와 같이 똑똑하면서도 멍청한 짓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삶의 보람과 가치가 있는 내 행복은 어디 가서 살까? 내 사랑은 어디 가서 살까? 그런 것들은 어디 가서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자꾸 바깥 세상을 헤매면서 내 가정을 무시해요. 내 집안을 무시해요. 내 집안을 점점 더 어둡게 만들어요. 내 내면의 세계를, 내 영혼의 세계를, 내 안의 세계를, 점점 더 힘들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깜깜 해졌어요. 사실 행복이 백화점에 있습니까? 안경에 있습니까? 눈을 감고도 행복한 사람 많습니다. 헬렌 켈러의 책을 읽어보면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 분이 그렇게 많은 지체 장애를 갖고 있지만은, 내 인생을 기쁘게 산 것을 얼마나 감사한지 맨 마지막에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기자들이 달려가서 "켈러박사님, 정말, 이 땅에 제일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주 활짝 웃으면서 "시력이 있으면서 비전이 없는 사람, 시력은 있지만 꿈이 없는 젊은이가 제일 불쌍한 사람이지요" 이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입니까?
비전 없는 젊은이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비전 없는 지도자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비전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희망을 심어주는 사람, 희망을 성취할 수 있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실현가능성이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보내준 우편물을 관심 있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 내용을 면밀하게 살펴보셔야 합니다. 모두가 저마다 공약을 하고 있습니다. 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성이 있으면서도 우리에게 진정으로 꿈이 되는 것을 제시한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과 몽상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존 맥스월이라는 사람은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는 책에서 비전과 몽상가를 이렇게 분별하고 있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말은 적으며 행동은 많이 합니다. 반면에 몽상가는 말은 많으나 행동은 적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기 내면의 확신에서 힘을 얻습니다. 몽상가는 외부 환경에서 힘을 찾습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문제가 생겨도 계속 전진하지만, 몽상가는 가는 길이 힘들면 그만 둡니다.
비전 있는 지도자를 세워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은 지도자이지만 그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행복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누구의 탓이 아니라 바로 내 탓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년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일본의 오부치 총리는 새 내각 발족 직전 아오치 마치오 관방 장관을 통해 새각료들에게 입각 후의 '꿈과 포부'를 담은 리포트를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줬습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부치 총리는 인사를 할 때 "우연히 입각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며 리포트를 통해 전문지식과 각료로서의 열의를 확인키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시 새 각료들은 입각 축하인사를 피해 사무실이나 집에 틀어박혀 저마다 숙제하느라 짐땀을 뺐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지도자는 왜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가? 비전이 없으면 죽은 것과 같습니다. 살아갈 의욕이 없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의 야구팀을 이끌었던 사람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가 죽기 마지막 날에 하는 말이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는 것입니다. WHO는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45년전 보다 60%가 증가되었다고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40초마다 누군가가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특히 지도자가 바람직한 꿈과 포부를 가지고 그가 속한 집단을 이끌어 나갈 때 그 집단의 방향성은 올바르게 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모두가 방향을 잃고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개인의 욕심과 이익을 채우는데 그쳐서는 안 됩니다. 야망이나 욕망이 되어서는 지도자 자신도 결국 파멸하고 남도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결과가 주어집니다. 바람직한 지도자의 꿈은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모두에게 공정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전 있는 지도자를 많이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도 꿈을 가지고 살게 되고 함께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게 됩니다. 그럴 때에 꿈이 실현되어 행복한 삶이 됩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출생하는가, 만들어지는가? 지도자는 만들어집니다. 족장시대의 족장의 지도자들을 보세요. 아브라함도 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불러다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훈련 가운데는 고향을 떠나고 친척을 떠나는 혹독한 떠남의 훈련이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지도자를 양성해야 합니다. 양성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성경속에 나오는 지도자 중에 하나님을 제일 두려워 한 사람이 있다면 요셉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죄를 짓지 못합니다. 불의를 행할 수 없습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성도들은 정치판에만 나오면 모두가 신자이기를 포기하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신자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사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도자로 세움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도 하나
님을 믿는 사람이 낫지 않겠습니까? 더 못할 경우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예수 믿는 시장이 낫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세움을 입은 지도자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들은 온갖 불의함을 자행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결국 망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왕이 그랬습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들은 성수주일 합니다. 말씀을 순종합니다. 성도들을 의식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두려워합니다. 우리 주위에 신자로서의 지도자들을 보게 됩니다. 그래도 좋은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어 국민들을 두려워하고 진실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지도자를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3. 진실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웃지 못할 유머 한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국회의원을 실은 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절벽 아래 논두렁으로 추락했다. 때마침 폭우를 걱정하던 농부가 논을 살피러 나왔다가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농부는 땅을 파고 국회의원들을 모두 정성껏 묻어 주었습니다. 며칠 뒤… 파출소장이 지나가다 부서진 버스를 보았습니다. 국회소속의 버스임을 알고는 농부를 찾아가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파출소장에게 국회의원을 전부 묻어주었노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이 전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겁니까?" 농부 왈,"뭐 몇 사람이 살아있다고 외쳤지만 그 사람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죠"
붕어가 입을 벌리면 물이 들어가고 먹이가 들어가지만 정치인들이 입을 벌리면 거짓말이 나옵니다. 사람속 한길을 아는 것이 달나라와 화성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같이 몸을 섞고 살면서도 그 속을 다 알지 못하여 서로가 '속았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사는 세상에 선거철만 되면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는 저 많은 말들
을 우리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속은 것만 해도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말에 신뢰감이 없다면 국민들은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합니까.
우리나라가 이만큼 된 것은 그래도 우리에게 진실함으로 말씀해 주신 성경이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아우성 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니까 많은 백성들이 거기에 위로를 받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면서 이 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만큼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출마자들 중에 여러분들이 평소에 진실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거든 그 사람을 우선으로 하십시오. 그래야 우리의 세금이 도둑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후회하지 않습니다. 신뢰성이 없는 사람들을 선택하면 우리의 삶이 불행해집니다. 누가 진실한가를 잘 알아보아야 합니다. 진실한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4.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본문에서 불의를 미워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새번역에 보면 "부정직한 소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수녀와 정치인이 함께 물에 빠졌습니다. 누구를 먼저 건져내야 할까요? 정답은 정치인입니다. 이 소리 들으면 정치인들이 굉장히 좋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뻐하거나 즐거워하기에는 이릅니다. 왜냐하면 정치인들을 물 속에서 빨리 건져내야 할 이유는 그들을 서둘러 건져내지 않으면 강이 심각하게 오염되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돈을 저렇게 물쓰듯하면서 군수가 되고 시장이 되고 의회 의원이 되고 나면 본전생각이 나지 않겠습니까? 동아일보에 보니까 울릉도 군수 출마자들에 대해서 게재되었는데 출마자들의 재산이 거저 1억 5천만 원에서 5억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명이 출마했습니다. 당선은 어차피 한 사람밖에 안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선거 끝나면 굶어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당선된 사람은 그동안 쓴 돈을 어디서 어떻게 충당해야 합니까? 그러니 빙산의 일가이기는 하지만 요즘도 자치단체장들 중에는 구속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고 보석으로 풀려나서 업무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럴 때 국민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해먹더라도 적당히 해먹지. 너무 많이 해먹으려고 하니까 발각되는 것이지' 우리 국민들은 적당히 해먹는 것은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안해먹는 사람이 없으니 적게 해먹는 사람이 인정받는 현실이고 보면 참으로 비참함을 느낍니다.
깨끗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다 검으니 그 중에서 덜 검은 사람을 선택할 때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마는 우리가 선택을 잘해야 합니다. 청렴도가 높은 사람을 선출해야 합니다. 유권자들의 눈이 어두워져 있으면 끝장입니다. 어두운 눈을 가지고 선택하니 어떻게 깨끗한 것이 보이겠습니까? 선거철만 되면 우리 국민들의 폐단이 무엇이냐 하
면 관광회사가 성수기를 맞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심관광이 많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선거철을 앞두고 제발 식사대접을 받는다든지 어디 관광 가는데 비용을 뜯어낸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사람이 보고자라니까 할 수 없는지 모르지만 교회와 교계 지도자를 선택할 때도 이런 경우들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바로 보고 바른 길로 인도하도록 합시다. 여러분의 바른 선택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5. 남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선거에 이기려면 '내거티브'에 능해야 한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정직, 깨끗, 청렴, 등을 이야기하면서도 뒤로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 험담, 유언비어를 마구 퍼트려야 당선된다는 말씀입니다. 유권자들 또한 깨끗한 후보를 뽑아야 된다고 말은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막상 투표장에 가서는 여지없이 네거티브에 휘말려 선거를 하는 행태를 보인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하늘 공기는 공장굴뚝에서 나오는 연기이지만, 삶의 환경 오염은 지도자들이 내어놓는 독설에서 비롯됩니다. 선거철만 되면 대한민국의 오염도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설교말씀인 마태복음 7장은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과 비판은 다릅니다. 우리가 잘된 것은 자되었다고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비판이라고하는 것은 약점을 들추어내어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경우, 흠집을 만들어 상대방에게 불리한 일을 만들기 위한 계획적인 주장입니다.
남을 비판하고 비방하고 헐뜯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보다 앞선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자기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을 비방하거나 헐뜯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회도 성장하면 주위 교회나 교회지도자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보다 나은 사람을 보지 못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끌어내려야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 후보들이 입에서 내어놓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의 인격이 들여다 보입니다. 저런 사람들을 놓고 선택해야 하니 참으로 고민입니다. 어차피 선택하기는 해야 하니까 말입니다. 여러분!
지방자치단체 장과 의회 의원들을 선택할 때 남을 지나치게 비방하고 자신은 의인인 것처럼 교만한 사람을 선택해서 안됩니다. 자신의 허물이 더 많으면서도 상대방의 허물만 이야기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배우자를 선택할 때도, 교회 일꾼을 선택할 때도 이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 관리자를 잘 선택해야 우리 모두의 삶이 행복해 집니다. 우리가 지도자를 잘 선택할 때 가정이 행복하고 교회가 행복하고 나라의 지도자가 이 기준에 의해 선발되면 국가가 행복해 집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선택
의 기준을 잘 선용합시다. 할렐루야!
백성위에 세울 자
출 18: 21-22
세 부인이 우물가로 물을 길러 왔습니다. 거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 노인이 의자에 앉아 세 부인이 각자 자신의 아들들을 칭찬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부인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은 너무나 재능이 많아서 어떤 일이
든지 다 잘 해내요." 그러자 두 번째 부인이 말했습니다. "내 아들은 나이
팅게일처럼 아름답게 노래를 잘 불러요! 나의 아들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세 번째 부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두 부인이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당신의 아들을 자랑하
지 않나요?" 세 번째 부인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들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저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답니다. 그 애는 아무 재주
가 없어요."
부인들은 양동이에 물을 가득 채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노인은 부인들
의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마을에 거의 다 왔을 때쯤 피곤에 지
친 부인들은 양동이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양동이를 짊어진 등을
쉬기 위해 그들은 길가에 잠시 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세 명의 소년
이 부인들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은 손으로 땅을 버티
면서 공중제비를 했습니다. 부인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이 얼마나 재주
꾼인가!"
두 번째 부인의 아들은 나이팅게일처럼 훌륭하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부인
들은 정신을 집중하여 귀 기울였으며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세 번째
부인의 아들은 그저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가 양동이를 얼른 짊어지고
집으로 들고 들어갔습니다.
그때 부인들은 뒤따라오던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노인장, 노인께서는 우리들의 아들들에 대해서 무슨 하실 말씀은 없으십
니까?" 그러자 노인이 놀라 물었습니다. "당신들의 아들들이 도대체 어디
에 있습니까? 나는 오직 한 명의 아들다운 아들만을 보았을 뿐인데요!"(디
럭스바이블)
오는 6월 13일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들을 선출하는 선거가 다가오고 있습
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의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주권이란 정치적인 개념이기에 정치는 더욱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
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우리나라는 왕정에서 민주사회로 전환되어, 국민이 정
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법적 장치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올바른 선
택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정치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이며 은
총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선택을 통하여 나타날 수 있도록 이번 선거에서 "정
치적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것이며,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그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할일이 있습니다
선거운동을 바르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곳곳에 부패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학연, 혈연, 지연에 따른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되어 선거가 특수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될 가능성
이 높습니다. 그리고 지방의 토호세력의 그들의 힘을 이용하여 당선될 경
우 역시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또한 정당이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도
어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배제하지 못합니다. 만일 부정이 생기면 피해는
주로 약자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점점 천체로 확산 됩니다. 이미 부정
이 생긴 뒤에는 이것을 없애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며, 이 과정
에서 많은 피해자가 생기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선거가 공정하고 바르
게 치러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올바른 정책을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다수로서 종교적인 이유가 아닌 정의의 측면에서 정당한 요구
를 해야 합니다. 특히, 유흥업소 규제, 환경, 복지 문제에 있어서 절실하
다고 할 수 있습니다. 표를 얻기 위해 유흥업소의 자율화를 공약한다면
범죄 증가를 초래하게 되고, 지역개발을 이유로 환경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우리의 환경은 약화될 것입니다. 또한 복지와 교육에 있어서도 정당한 요
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시되고 말 것입니다.
투표에 참여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투표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성경이 가르치
는 공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적극적인 활동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곧 투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자세로 구체적인 기본요구
를 제시하고 후보자가 도덕성을 회복하고 있는지 감시하며 투표에 참여 해
서 표로 의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사회를
향한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우리를 부르신 뜻에 부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선거에 투표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야 합니
다.
하나님의 선택을 반영하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출애굽기
l8장에 나오는 모세의 선택을 상고하면서 선택의 지침을 삼을 수 있습니
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도자들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그 장인 이드로
의 충고에 따라 선택기준을 채택했는데, 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
이었습니다.
모세가 정치적 지도자들을 "온 백성 가운데서" 선택한 것같이, 우리도
각 분야에서 유능한 후보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
나님께서 그에게 정치적 달란트를 주셨는지 관찰하고, 그러한 재능을 정
상적으로 잘 개발하여 우리의 정치 지도자가 될만한 준비가 갖추어져 있는
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모세는 재덕(才德)이 겸전(兼全)한 자를 선택합니다.
'겸전(兼全)'하다고 하는 말은 '골고루 갖췄다'는 말입니다. '재(才)'라
고 하는 재치있는, 지혜로운 것을 말합니다.
'덕(德)'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서 살 수 있는 온유함을 말
합니다.
재치만 있으면 가볍기 쉽고, 덕만 있으면 지혜가 부족합니다
재덕이 겸전한 자는 요담의 비유(삿9:7-15)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
다.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그들의 왕을 삼고자 하였을 때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는 각각 그들의 왕으로 선택됨을 겸손하게 거절합니
다.
스스로 일어나, 그것도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을 충동하
여 자신을 왕으로 세우는 아비멜렉의 교만에 대하여 하나님은 질책하십니
다.
모든 불순종과 죄악이 교만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볼 때 이 겸손이야말로
재덕이 겸전한 한 요소로 진정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나무들에게는 특별하게 하나님이 주신 임무를 인식함이 재덕이 겸전한 한 요소입니다.
감람나무는 그 기름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무화과나
무는 그 달고 아름다운 실과를 맺는 것이며, 또한 포도나무는 그 새 술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나무들은 각기 자신이 감당해야
할 그 사명을 분명히 알고 있으며,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 그것을 버리려
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더욱 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은 세상
의 헛된 유혹으로부터 믿음을 지키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게 합니다.
감람나무와 포도나무, 무화과나무에게서 또한 우리에게 지켜야 할 의무를
주시고 또 그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정해 놓으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순
종이 재덕이 겸전한 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름이 적다고 불평하지 않았고 새 술을 내어야 하는 일에
짜증을 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
을 기쁘게 할 수 있음이 감사한 모습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순종,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와 섭리에 대한 순종은 그 피조물인 우리의 기
본적인 자세라 할 것입니다.
나무들은 자신의 자리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제각기 서 있지만 그러나 결
국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룸이 재덕이 겸전한 내용입니다.
어떠한 나무도 다른 나무의 영광을 빼앗으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높아지
고자 다툼하지도 않으며, 각각의 존재와 가치를 인정해 줍니다. 그들은
한 하나님에 의해 심기어졌고, 똑같은 태양 아래 자라며, 똑같은 비로 수
분을 취하는, 함께 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각각 다른 모습과 다른 임무를 지녔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한
포도원에 속한 자들이므로 서로 조화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하는 것입
니다.
재덕이 겸전한 자(안쉐 하일)는 '힘이 있는 자들' 또는 '능력이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 말은 유능한 사람, 능률적인 사람, 강력한 사람 등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능력이란 하나님의 능력이나 그가 부여하신 긍정적이며
도덕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정치적인 지도자를 선출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이란 정치적인 능력
을 의미하며, 그 능력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에 있어서 정치기적인 인격으로부터 나오는 능력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
국가는 빈 집과 같아서 누가 운영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나라가 됩니
다. 정치 지도자들의 가치관이 국가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후보의 사람
됨과 가치관이 올바른 선택의 관건입니다. 비윤리적인 정치가는 비윤리적
인 국가를 만들고, 무신론자 정치가 는 무신론적 국가를 만듭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란 창조자이며 구원자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영적 관계를 가지고 자기의 인간됨과 부족함을 알며, 그러한 질서 속에
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란 무도무치한 안하무인의 인간을 의
미합니다. 그가 필요한 때는 겸손한 체 예의를 지키는 외식을 행하지
만, 그 중심에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성과 독단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서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에 후보 중에 정치적으로 유능한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가 첫 번째 선택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적당한
그리스도인이 없을 때, 그리스도인이 아닐지라도 자기가 인간임을 깨닫고
겸손한 사람은 차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왕 제도를 허락하시면서 강조한 선택의 기준은 "겸
손"이었습니다.
사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
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
니하니이까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나이까 (삼상 9:21)라
고 겸손한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그리스도와 같이>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
다. "나 자신보다 나도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
인들에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격한 교만의
감정과 헛된 영광을 극복하고자 하는 은혜를 구하기는 하나 그리스도와 같
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게 보인다. 자기 자신을 복종
시켜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진실로 동참하여 사는 사람만이 더욱 자라나
이 겸손한 삶을 살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이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가 필요하다. 그 첫째로는, 확고한 목적을 갖고 자기 자신을 복종시킨 이
후로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과 이웃이 유일만을 구
하며 사는 것이며,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하여 또한 자신도 죄
에 대하여 죽고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것을 확고하게 믿는 신앙
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가 죄에 대하
여 죽은 것을 말하면 동시에 그리스도의 새 생명의 우리 속에서 살아나는
것을 의미한다."
진실 무망한 자
진실 무망 하며(아쉐 에메트)는 '진실한 사람들' 또는 '진리의 사람들'로
확고부동하며 신뢰할만한 진실한 사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일꾼들을
세우실 때 무엇보다 진리의 말씀을 준행하며 따르기 원하는 진실된 자들만
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만이 환경과 형편을 초월한 채 하나님
을 향한 굳센 믿음 위에서 백성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잘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는 식언치 아니하고 거짓말을 능사로 행치 않는 진실하고 바른 인
품의 소유 자여야 합니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그의 공약을 믿을 수 없습니다.
또한 진실의 사람이란 안전성과 계속성을 유지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정치적 지도자는 투철한 소신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결코 쉽사리 변
하거나 자기이익에 따라 이합집산 또는 부화뇌동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즈음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과거에 비난하던 정당에도 서슴치 않고 가입
하여 정치적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올바른 판단을 위하여 우리는 후보들의 정치적 경력을 조사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뚜렷한 정치적 소신도 없이 어떻게 해서라도 당선
만 되겠다는 야욕의 사람은 제외되어야 하며, 일구이언하며 장소마다 대상
마다 달콤한 말로 환심만 사려는 부정직한 사람도 우리의 선택에서 배제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할일을 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 날은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날이었습니다. 취직을 하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회사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어제
내린 비가 내려가지 않고 고여 있어서 회사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러던 중 한 젊은이가 수위실에서 빗
자루를 가져다가 그 고인 물을 쓸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
아 회사 앞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깨끗해졌습니다. 그 사실을 안 사장님
은 그 청년을 제일 먼저 사원으로 뽑았습니다.
자신이 다닐 회사 앞에 물이 고여 있는데, 지금은 사원이 아니니까 그냥
가지만 다음에 정식사원이 되면 깨끗이 치울 것이라고 말해봤자 아무도 믿
지 않습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대충 대충 일을 처
리하던 사람에게 중요한 일이라고 해서 신중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하는 사
람은 없습니다. 평소의 습관이라는 것이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작은 일
에도 충실하고 열심히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면 다음에 큰 일이 닥쳐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회사의 주인)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
'불의한 이'(베차)는 '약탈하다'를 뜻하는 '바차'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따
라서 그 의미는 '불의를 행함으로 얻은 이익'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에 의해 세움을 받는 지도자는 이러한 개인적인 탐욕을 버리고 물질에 대
하여 청렴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一萬惡)의 뿌리
가 되며(딤전 6:10),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기 때문이다(약 1:15).
정치권력은 경제적 이권과 연결되기 쉽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확립되어 있
지 못한 정치인들은 거의 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게 됩니다. 정치인들
이 불의한 이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 국가의 공의는 약화되고 편법
과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됩니다.
모세가 뇌물과 같은 불의한 이익을 추구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
라 뇌물을 "미워하는" 사람을 골라 선택한 점은 우리가 깊이 음미해야 합니다.
이는 생활자세가 뇌물을 포함하여 모든 불의한 것들을 증오할 정도로 청렴
결백한 인물을 정치 지도자로 선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국가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조직인데 그 지도자가 불의를 미워하지 않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습니다.
나아가 이는 모든 윤리적 능력의 척도로서, 특히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
의 사회에서는 선택의 시금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그
의 삶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사람을 선택하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이런 일이 있
었다고 합니다. 주 의회 의원에 출마한 링컨에게 소속 당으로부터 선거 운
동비로 쓰라고 200불을 보내왔습니다. 그리 큰돈은 아니었지만 지극히 가
난했던 링컨에게는 큰돈이었습니다. 그 후 선거는 끝났고 링컨은 주 의회
의원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링컨은 그가 받았던 200불의 선거 운
동비 중에서 199불 25센트를 당 본부로 되돌려 보냈습니다. 당 본부에서
는 놀랐습니다. 그러나 돈과 함께 온 링컨의 편지 내용 앞에서 모두들 숙
연해졌다는 것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선거 연설
회장 비용은 내가 갚았고 또 여러 유세장을 돌아다니는 데는 말을 탔기 때
문에 비용이 들지 않았오. 다만 유지 가운데 한 사람이 목이 마르다는 분
이 있어서 사이다를 한잔 사준 것이 75센트 들었오. 그 다음은 아무 비용
도 들지 않고 무난히 당선되었오"라는 편지였다는 것입니다.(청렴결백)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의 제자인 플라톤에게 "나는 이제 죽음을 향하
여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에스크래피아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빌리
고 갚지 못하였구나. 빚을 남기고 가니 부디 잊지 말고 갚아주기 바란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깨끗한 가치관과 사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뒤를 파보아도 떳떳하
고 옆을 파보아도 깨끗한, 그래서 링컨처럼 75센트의 명세서를 내놓을 수
있어야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게 되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모세는 온 백성 가운데서 두루 살펴보고 관찰하고 분석하여 이해한 후에
선택하였습니다. 교회도 일군들을 세울 때 그의 삶을 자세히 관찰하고 판
단하여 직분 자들을 선택하였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
은 모세의 선택을 본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하나님의 선택을 반
영하는 정치적 순종을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한국이 하나님의 나라를 반
영하도록 기도하며 바른 선택을 합시다.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
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출 18:21)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