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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도의 개요
1. 기도의 정의
가. 기도란 무엇인가
1) 기도는 울타리이다.
사람은 지켜주는 울타리가 있어야 하고, 가정도 울타리가 있어야 하며, 사업도 지켜주는 울타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울타리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 우리는 자기 스스로가 자기 몸을 지키지 못한다. 누가 병들거나 사고가 나고 싶은가? 그래서 기도의 울타리를 쳐야 한다. 날마다 기도로 나를 지켜야 한다. 기도하지 않는 심령, 기도하지 않는 가정은 사탄의 놀이터가 된다. 교회도 기도의 울타리를 쳐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부흥하고 성장할 수 있다. 기도의 울타리를 치면 시험거리가 그 울타리를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데, 설령 넘어온다고 해도 다 물리칠 수 있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신다. (신명기 28장)을 보면 ‘기도하는 자, 하나님이 지켜주는 자는 원수가 한길로 들어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가리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 왜 내게는 이렇게 시험거리가 많을까요? 하나님 왜 우리 가정은 이렇게 평안할 날이 없나요?' 성경적 대답은 당신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나의 기도를 부르짖자. '하나님 왜 나에게는 복을 주시지 않나요' 하고 투정을 하는가? 나의 노력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주시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하는 모습을 보시고, 우리의 눈물을 보시고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때도 내 사업은 잘 되고 있다고 안심하지 마라. 내가 이렇게 건강하다고 교만하지 마라. 원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자. 기도로 울타리를 치자.
2) 기도는 축복의 통로이다.
우리는 축복 받고 싶어서 안타까워하고, 하나님은 축복을 주고 싶어서 안타까워하신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기 자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잘 먹이고 더 잘해줄까 하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해줄까 하고 안타까워하시지 않겠는가? 그런데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통로가 막혔다. 그래서 기도의 통로가 열려야 한다. 하나님께 믿고 기도하면 축복이 쏟아진다.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하지. 그런 사람은 그럭저럭 끝이 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 영혼이 먼저 살아야 한다. 불을 받아서 우리의 영이 뜨거워져야 한다. 우리 육신의 삶에도 하나님의 축복의 소낙비가 내려오기를 간구하자.
3) 기도는 생명이다.
사람이 살았다는 것은 숨쉬는 것을 말한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다. 다른 것은 쉬었다가 나중에 하면 되지만 숨쉬는 것을 멈추면 안 된다. 기도는 생명이다. 성도가 기도를 안 하면 죽는다. 기도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하나님과의 기도의 줄이 끊기지 말자.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들으신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은혜와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기도할 기회가 있는 한 소망이 있다. 기회를 붙잡자.
나. 기복과 우리의 기도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샤머니즘의 모습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기도의 문제에 있어서 그렇다. 사람의 뜻을 따라 구하고 얻으려고 애를 쓴다면, 그것은 샤머니즘적인 기도와 다르지 않다. 흔히 샤머니즘을 말할 때 ‘기복’을 거론한다. 복을 빈다는 말이다. 우리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우리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은 ‘주술’이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들의 기도이다. 우상숭배는 '울거나 화내는 신을 달랜다'는 동기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도 ‘복’이 있다. 우리가 ‘복을 비는 일’을 나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구하는 복은, 그 기준이 우리에게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하나님의 뜻이 곧 우리의 복이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기도는 ‘인간적인 욕심’을 얻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간구하는 것이다.
2. 기도의 의미
가. 인간이 동물과의 차별성
인간이 동물과 다른 차별성이 있다면, 생각할 수 있다는 것과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문화와 종교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 시키는 독특성이라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생각하지 않고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는 사람답지 않은 사람, 인간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으며, 같은 의미로 어떤 사람이 기도하지 않고 산다면 ‘그는 인간다운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나. 하나님 앞에 엎드려 도우심을 구하라 – 그것이 ‘기도’이다.
당신이 불행해 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신을 추방 하라. 신을 거절하라. 그리고 기도를 거절하라. 그러나 정말 행복해 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당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복귀 시켜라.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을 배우라.
나의 연약성을 내가 안다면, 내가 죄인임을 느껴라. 하나님 앞에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깨닫는다면, 나는 그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호흡할 수도 없는 존재,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임을 느껴라.
따라서 그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고 하나님에 의해서 내가 쓰임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펼쳐가는 보람 속에서 인생을 살기를 원한다면, 기도를 배우라.
기도란 바로 나의 도움에 대해서 하나님의 공급을 체험할 뿐만 아니라, 내 인생이 하나님께 붙들림을 받아 쓰임을 받는 설레이는 모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의 의미인 것이다.
중세기 유럽의 어떤 수도원에 수도사들이 기도하는 기도방이 있었는데, 그 기도 방의 현판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네 삶이 가난해도 나를 원망치 말라.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 나를 주인 삼지 않았고, 너는 나를 진리라고 하면서 내게 배우지 않았고, 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 너는 나를 능력이라 하면서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았나니.
다. 주 기도문의 출현
어느 날 예수님의 제자들이 산 마루턱에서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기도하고 일어난 예수님을 보면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누가 11장)에 보면 주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기도이다. 이렇게 기도하라. 그러면서 주 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외식하는 기도와 중언부언하는 이방인의 기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 후 올바른 기도가 어떤 것인지 기본 틀을 제시해 주셨다. 즉 (마태 6:9-13)의 기도를 가리켜 ‘주 기도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이 주 기도문 속에 나타난 기도의 의미는 어떤 내용일까?
3. 주 기도문의 의미
가. 기도의 기본 자세
1) 기도는 하나님 중심으로 해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은 기도의 모범인 바른 순서를 보여준다. 이 기도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앞 부분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된 것이고, 뒤 부분은 우리의 필요와 관련된 사항이다.
기도의 기본 자세는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이다. 기도란 우리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수단이 아니다. 우리는 주로 우리의 요구 사항이나 우리의 가족, 이웃들, 교회 그리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러나 이런 기도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볼 때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산상수훈의 다른 부분에서 주님은 또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
2)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별화되는 것
다른 종교에서도 기도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다른 종교와 차별화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과 하나님의 일에 우선 관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원을 기도하는 것이 잘못일까? 그렇지 않다. 마땅히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소원만 기도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곧 기복적인 기도이다. 내 필요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앞서서 하나님에 대한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3)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
성경은 하나님이 시온의 회복을 약속해 놓으신 책이다. 놀라운 약속들이 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해 놓으시고 기다리신다. 뭘 기다리시는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하나님의 액션이 시작된다. 즉 하나님은 그가 약속하신 것과 계획하신 바를,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 주신다는 것이다.
나.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
1) 하나님이신 아버지를 부르는 것으로 기도가 시작
주 기도문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데 기도라는 것은 단순히 어떤 종교 의식적인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기도는 단순히 우리가 필요한 무엇을 구하여 얻기만 하는 행위이기 전에 앞서서 본질적으로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부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진지하게 부르면, 그 분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 과정 속에서 그 분은 내게 다가오시고 나를 만나주시며, 나는 그 분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기도의 본질적 경험인 것이다.
2) 하나님을 향한 호칭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한 칭호는 여호와, 야훼 라는 표현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너무 거룩하고 무서워해서 함부로 부르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면서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 예수님이 실제 그의 공생애 가운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향한 호칭 속에서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꼭 한번 '엘리 엘리, 나의 하나님' 그 표현을 쓰셨을 뿐 예수님이 주로 사용하신 표현은 ‘아버지’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느 나라 언어를 사용 하셨을까? 아람어로 추정을 하는데, 아람어에는 ‘아버지’라는 거창한 존칭이 없는 대신 우리말의 아빠와 같은 애칭인 ‘아바’로 썼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우리는 기도하겠다는 마음을 갖지만, 하나님 임재 속에 들어가지는 못한다. 왜 우리는 그 기도 속에 들어가지 못할까?
단순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있는 어린 아이들이 아빠하고 부르면 왜? 하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처럼, 성경의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고백하면, 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라고 부를 때 마다 내게 다가오신다. 즉 기도란 하나님과의 만남이고, 하나님과의 교제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인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기도의 본질이다.
다. 기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것
1) 기도를 통해 이룩할 하나님의 사역, 세 가지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의 사역을 어떻게 이룰 수가 있을까? 기도란 단순히 내 생각과 소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을 펼쳐 가신다. 즉 기도란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가 있어야 한다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 하나님의 나라를 기도로 확장시키고 넓힐 수가 있어야 한다 - ‘나라이 임하옵시며’
다) 하나님의 섭리를 펼쳐갈 수가 있어야 한다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주 기도문의 전반부는 그 초점이 ‘나’ 또는 ‘우리’에게 있지 않다. ‘우리’의 필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에 있다. 기도란 본질적으로 단순히 내 소원을 만족시키고 내 욕심을 채워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필요에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을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라.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
1) 하나님의 도움을 구할 인간의 행복의 필수 영역
주기도문의 전반부는 하나님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후반부는 우리의 필요를 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아신다. 또 그것에 대해서 도움을 구하는 것이 결코 잘못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물론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의 뜻이 펼쳐져 가고 이루어져 가는 것은 우리가 궁극적인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일상적인 필요에도 관심이 있는데, 그렇다면 어떤 영역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까?
가) 일상적 생존을 위해서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육체적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어떤 이는 ‘기도한다고 양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가’ 라고 말할 수가 있다.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한 그대로 어떤 사건이 내 눈앞에 어떤 제품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적어도 기도가 하나님이 약속한 그대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주시고 상황을 공급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성경이 가르치는 성서적 기도는 우리의 기도에서 책임 있는 노력을 그 다음에 요청한다. 즉 그것을 무시하는 것은 상식적 기도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그 기도에 합당한 노력을 - 하나님이 주시는 에너지를 갖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우리의 삶의 장에서 땀 흘리는 노력을 - 계속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속에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우리가 매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나) 관계적 평화를 위해서 -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제자들은 현실적 상황 곧 물질문제와 타인과의 관계와 악과의 투쟁과 관련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신뢰를 전제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 마음 속에 악의가 있고서는 죄 용서함을 기대할 수 없다 이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의 기도이다. 자기중심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적이고, 교회 공동체적인 기도가 되도록 지향하자.
우리의 인간관계가 왜곡되고 갈등과 미움과 분쟁과 어려움이 생길 때 우리는 얼마나 아픔을 겪는가? 그래서 주님은 관계의 평화가 중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주님이 내 죄를 용서하여 주신 것처럼’ 저에게 상처를 입혀준 사람도 내가 용서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내가 용서를 받고 또 용서를 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또 사람을 향하여 누릴 수 있는 마음의 당당한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자. 아무리 그 상처가 아파도 예리해도 그 사람을 품고 기도하자. 그를 용서할 수 있는 넉넉한 여유를 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다) 영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제자들은 모든 상황에 직면하여 그 모든 문제를 다 아시고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곧 하나님께서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가 필요하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다면, 시험 속에 빠져 있다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즉 죄의 악에서 탈출함 없이 우리는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우리로 악을 경험하게 만들고 악에 빠지게 만드는 악한자의 공격에서 나를 지키고 죄악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이 싸움에 승리의 비밀은 오직 기도 밖에 없다. 기도하지 않고 우리는 결코 악한 자와의 싸움에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다.
B. 올바른 기도의 본질
1. 세 가지의 종교적 의
2. 올바른 기도의 원리
3.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내용
4. 기도의 목적
가. 기도하는 사람들
나. 기도의 응답 – 성령님
다. 기도의 응답을 구하는 자세
라. 기도의 간절함을 유지하는 방법
마.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
B. 올바른 기도의 본질
(마태 6: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
(마태 6:7~8)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
(마태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1. 세 가지의 종교적 의 – 구제, 기도, 금식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의는 세 가지 종교적 의, 곧 '구제, 기도, 금식'을 말한다. 하나님 앞에서 의를 행할 때 대원칙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 곧 외식하는 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불며 해서는 안 된다.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행해야 한다. 그 때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신다.
2. 올바른 기도의 원리
(마태 6:5절)을 보면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고 하신다. 당시 ‘기도’도 유대교의 종교적 삶에 있어서 경건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성전과 회당에서 드리는 기도를 제외하고도 매일 세 차례씩 드리는 기도를 비롯한 다양한 개인 기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의 경건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서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였다. 특히 오후 기도 시간에는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장소에 서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도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상이 없다고 하신다. 곧 이런 외식하는 기도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신다.
가. 은밀성
은밀한 방이나 창고를 지칭하는 통속어인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교회 건물을 기도하는 집이라고 부르지만, 제자들의 참된 기도 장소는 문이 닫힌 골방이다. 골방의 원리는 아무도 알지 못할 때에 골방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사람들의 주목을 피해서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때에,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나. 간결성
중요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 반복해서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반복해서 기도하셨다. 곧 중요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반복해서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미 없는 정형화된 기도를 주술 외우듯 반복하는 것을 금한 것이다. 제자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 나의 필요를 진실 되고 솔직하게 아뢰면 되는 것이다.
3. 올바른 기도의 자세와 내용
가. 기도의 자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나라와 영광을 위한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셨다. 즉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것이다. 꼭 필요한 것을 절실히 구하는 마음과, 잃은 보화를 열심히 찾듯이 행하며, 또한 닫힌 문이 열릴 때까지 계속 인내하며 두드리는 자세로 기도하라고 했다. 또한 이 기도는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더 깊은 기도의 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참된 기도 (찬양, 감사, 회개, 간구)에는 그 진실성, 간절성, 절박성으로 인하여 통곡과 눈물의 요소가 있다.
나. 기도의 내용
인간은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한 이후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이 세상 임금인 마귀의 종 노릇을 하며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살다가 영원히 멸망케 되었다 (요1 2:15-1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이 또한 하늘과 땅이 영원히 떨어져 있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온 우주만물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셨다 (엠 1:10).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의 왕권과 천국의 복음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세상 임금인 마귀를 멸하시고 인간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와 천국 백성으로 삼으신 것이다 (히 2:14-15).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구원의 역사를 통해 아버지의 뜻과 나라와 영광을 이루시고 (요 6:38-40), 오늘 구원받은 자녀들로 하여금 복음을 통해 이런 기도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본분이요 목적이다 (마 6:33). 이 목적을 위해 우리는 필요한 일용한 양식과 죄 사함과 모든 시험과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담대히 기도할 수 있으며 또한 거기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4. 기도의 목적
가. 기도하는 사람들
1) 솔로몬은 기도로 지혜와 명성을 얻었다.
2) 야곱은 기도로 형 ‘에서의 보복’의 위기를 모면했다.
3) 선지자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능력을 나타냈다.
4) 히스기야왕은 죽을 병에서 15년 동안 생명 연장의 은혜를 받았다.
5) 한나는 서원 기도로 아들을 얻었고, 그 아들은 이스라엘의 위대한 사사 사무엘이 되었다.
나. 기도의 응답 - 성령님
성경에 나온 기도하는 사람들은 기도에 필사적이었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부르짖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목적한 것들을 다 응답 받았다. 하나님은 응답하시되 최고의 것, 최선의 것으로 응답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길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눅 11:11) 너희 중에 아비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눅 11: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눅 11: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것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구약의 성도들은 기도를 통해서 아들을 얻었고, 지혜를 얻었고, 건강을 얻었고,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더 크고 더 좋은 선물을 약속하셨다. 그것이 곧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우리에게 성령님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영국의 유명한 강해설교가인 존 라일목사,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성령이시다. 이 선물을 얻을 때 우리는 빛과 생명, 그리고 희망과 천국 등 모든 것을 얻은 것과 다름 없다. 즉 이 선물을 받음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하신 사랑과 성자의 구속적인 보혈과 그 복된 삼위 하나님과 충만한 교통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선물을 받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은혜와 평강을 소유하며 또 장차 임할 세상에서는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된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붙였다. “이 놀라운 선물은 기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수여된다.”
다. 기도의 응답을 구하는 자세 – 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간절함으로
(눅 11:9-10)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문제는 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신다면, 우리가 구하지 않더라도 주셔야지 왜 꼭 구해야만 주실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하지 않는 자에게는 주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하지 않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면 그것이 좋은 것인 줄도 모르고, 감사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좋은 선물을 받기 원한다면 반드시 구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도의 응답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가?
1) 적극적으로 기도하라,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이사야 59장)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이 아니요. 여호와의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이 아니다. 너희가 목이 터져라고 구해도 내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데..
네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네 발이 죄악보다 빠르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 또 목이 터져라고 외쳐도 내가 구원치 않는 이유는 너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기도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곧 기도란 입으로 구하고, 발로 찾아가고 손으로 두드리듯이 나의 온 몸, 나의 온 삶을 동원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라는 말이다. 내가 구하는 것이 꼭 필요하고, 꼭 얻어내야 한다는 결의의 표현이다. 구체적인 기도 제목을 적고 부르짖자. 얻을 때까지, 찾을 때까지, 열릴 때까지.
2) 지속적으로 기도하라,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처음에는 열심을 품고 달라 붙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용두사미가 된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유익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속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고비를 잘 넘겨야 된다. 육신적으로 피곤해서 쉬고 싶은 유혹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고 습관으로 자리 잡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를 중간에 쉬게 되면 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기도가 생활화되면 그 사람은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쉼과 치유와 능력을 공급받게 된다.
3) 간절함으로 기도하라,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밤중에 떡을 빌리러 온 친구의 예를 들어 설명하셨다. 밤 중에 찾아와서 부탁하는 친구의 요청이 너무 강력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는 뜻이다. 친구의 태도가 떡을 얻지 못하면 결코 물러가지 않으리라는 강한 의지가 있음을 보고 귀찮지만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간절함의 외적 표현은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소리가 커지고 눈물이 나오고 땀도 흐른다. 어렵게 얻은 것일수록 귀한 것인 것처럼, 좋은 것일 수록 더욱 간절한 부르짖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사모하라. 성령의 충만함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라. 기도의 간절함을 유지하는 방법 – 마음을 모아, 진실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
1) 마음을 모아 기도함
기도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엎드렸을 때 나도 세상도 없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하나님 앞에 기도가 간절하게 쏟아져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흘러 들어가는 것 같은 기도의 상태를 느끼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도할 때 끊임없이 마음에 오가는 쓸데없는 생각들, 어떤 때는 아주 죄악 된 생각일 수도 있고, 전혀 쓸모 없는 공상과 같은 생각들이 마음에서 계속 떠오른다. 간절해지기 위해서는 마음 그 자체가 하나로 모아져야 한다.
사단은 어떻게 하든 기도를 실패하게 하려고 마음을 흩어놓는다. 자기 마음을 다 개방해놓고 아무렇게나 살다가, 기도 시간에 와서 그 마음을 갑자기 추스르려고 하면 쉽게 추슬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는 것은 기도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삶 자체가 기도하기 위한 준비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기도하기 위해서 살고, 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2)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함
항상 형식적인 기도를 경계하고 기도하는 매 순간 진실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간절히 기도할 수 있는 은혜로운 정서가 우리 안에 불러 일으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함이 필요하다. 어린아이처럼 말을 잘 잇지 못하면서 유창한 기도를 못 한다 해도, 자신 속에 있는 진심을 토해놓고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사람들에게는 감동을 주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을 잘 잇지 못해도 영혼 속에서 토해져 나오는 신음과 같은 진심, 그런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신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름다운 표현이나 시 같은 섬세한 기도의 묘사가 아니다. 의미 없이 부르짖는 큰 함성소리, 진실함이 담기지 않은 유창한 기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진실하게 기도하려고 하면 할수록 우리의 마음은 모아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성령의 은혜를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우리들이 진실해지고, 우리로 하여금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다.
3)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함
고난 받으시기 직전에 행하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묵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간절한 기도를 유지하도록 돕는 훌륭한 방편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라고 했는데, 이날 밤 예수님께서 통곡하시며 기도하신 것이다. (히브리서 5장)에 “그는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었느니라”고 되어있다.
주님을 위해서 죽기를 결심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매 순간 그런 결심을 유지하고 일평생 사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렇게 간절히 매달려야 할 십자가가 있는가?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가지신 그분이 자기를 쏟아 부으시는 모습을 보라. 그렇게 주님을 묵상하는 것이 이런 간절함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기도의 씨름을 이기기 위해서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고, 또 그렇게 매달릴 때 기도의 아름다운 교통의 시기가 오는 것이다.
마.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
1) 기도의 사람들을 찾아 귀를 기울이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면을 두루 살피시며 당신을 간절히 찾는 자가 어디에 있는지 찾으시고, 그렇게 부르짖는 간절한 기도의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신다. 그가 죄인이면 그 죄를 사하시고, 그가 곤궁한 가운데 빠진 사람이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를 먼저 도와주신다. 갈 바를 알지 못해서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말씀으로 그 갈 바를 보이시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만들어 주셔서 불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신다.
2)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힘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시면서 자신의 온 힘을 소진하셔서 더 이상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실 수 있는 육신적인 힘이 남아있지 않을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예수님의 기도에 힘을 더하심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의 남은 기도를 성공적으로 마치도록 특별한 은혜의 힘을 주셨다.
3)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힘이 되어서, 지쳤던 우리의 영혼에 소생함을 주고 쇠약했던 우리의 육신에 강력한 힘을 공급하시는 은혜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도와주고 싶으셔도 아직 힘이 많이 남아있어 자신을 의지하는데 어떻게 도와주시겠는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숨을 쉴 기운조차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면 기도의 제목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으나 기도할 힘이 없다. 그 때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눈물밖에 안 나온다. 그래서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하며 그 말에 위로를 받으면서 엎드려서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느 순간에 하나님께서 예상을 깨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가슴을 불붙게 만든다. 순간 우리의 육체에 힘이 들어오고 우리의 영혼에 활기가 북돋아지면서 아버지 앞에 폭포수와 같은 기도를 쏟아놓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 주님은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힘을 주신다.
C. 올바른 기도의 방법
1.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가. 항상 기도하라
나.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
1) 낙망의 이유
2) 낙망의 자리에서 단 1분이라도 기도를 하자
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2. 기도의 내용과 순서
– 찬양, 감사, 회개와 고백, 간구,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함, 아멘으로 마침
C. 올바른 기도의 방법
1.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많은 분들이 기도하는 삶을 실천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기도가 실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할수록 기도의 삶이 어려워진다. 세상은 점점 고난과 환난이 있게 될 것이고,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낙망할 요인들이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기도이고 기도의 자리를 회복하여 기도의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가. 항상 기도하라
우리가 항상 호흡하는 것처럼 기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호흡이다. 성경에서 항상 기도하는 본을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40일 광야기도를 하실 때 밤낮으로 기도하셨다. 또 사역하시면서도 밤낮으로 항상 기도하셨다. 바울 또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전서 5:17)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다. 항상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은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삶에서 '항상 기도하는 삶'의 최대 장애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곧 '게으름'과 '분주함'이다.
1) 게으름을 이기고 소명감을 확인하여 기도하라
잠에 너무 취해 있으면 영적으로 승리할 수 없다. 예수님이 겟세마네동산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 번이나 가서 깨워도 제자들은 그냥 잠에 빠져 있다. 어떤 차이점인가? 바로 소명감이다.
게으름을 이기고 기도할 수 있는 길은 소명감을 확인하는 길이다. 소명이란 무엇인가? 내가 정말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소명감을 갖고 자기의 길을 가는 성도들은 보면 때로는 밤을 밝히면서 열심히 일을 한다. 내가 왜 기도해야 하는가? 내게 소명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 쓰시려고 부르셨는가? 나는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이 교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귀한 소명이 있는가? 먼저 주님의 부르심을 확인하자, 주님께서는 우리의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게으름을 이기고 기도하자.
2) 분주함을 이기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깨어 기도하라
바쁠 수록 우리가 더욱 해야 할 것이 바로 기도이다. (마가복음 1장)을 보면 예수님도 하루 종일 병자를 치유하고 전도하고 말씀을 증거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보내시다가 다음날 새벽 한적한 곳에서 기도로 하루를 여신다. 그러면서 주님은 우리를 향해 시험에 들지 않게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한다. 왜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는가? 마귀가 쉬지 않고 우는 사자같이 우리를 삼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귀는 기도하는 사람을 건들지 못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다.
그러나 항상 기도하는 것이 내 힘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할 수 잇는 것은 오직 성령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에베소서 18절)에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라고 한다. 내가 이 세상에 왜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나에게 원하시는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알고 그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은 만족이 있다. 우리 함께 깨어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되자. 새벽을 깨우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자.
나. 낙망하지 말고 기도하라.
낙망이란 무엇인가? 마음의 의욕을 상실하고 하던 일을 자포자기하는 절망의 상태이다. 믿음 생활하면서 혹시 낙망하고 있지는 않는가? 기도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주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도 낙망하지 않았다. 죽으시면서도 기도하셨다. 우리 성도들은 내일 인생의 종말이 온다 해도 오늘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기도이다.
그런데 왜 낙망하는가?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가? 실패하였는가? 고난 때문에 낙망하였는가?
1) 낙망의 이유
가) 기도의 응답이 빨리 되지 않는다고 낙망하는가?
왜 우리가 기도 생활다운 기도 생활을 갖지 못할까? 아마도 중요한 원인은 우리들의 조급함 때문일지 모른다. 그래서 기도하는 시간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컴퓨터에서 한번 클릭을 하면 내가 원했던 정보가 튀어나와야 하는 것처럼, 기도도 내가 딱 기도하면 즉각적으로 응답이 와야 하는데 기도해 보아도 바로 응답이 없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실까? 기도가 정말 필요한 것일까? 기도에 대한 이런 본질적인 회의를 갖기도 하지 않은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때에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시간, 우리의 때에 맞추어 응답해 달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지연시키는 이유는 선한 뜻이 있기 때문이다.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고 말씀한다. 이 말은 반드시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것이다. 기도하다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기도할 때 중요한 것은 인내이다. 때와 기한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 포기하지 말자.
나) 실패로 인해 낙망하는가?
우리의 삶에서 우리는 많은 실패를 하고, 그 실패가 우리를 낙망하게 한다. 사업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며, 시험에 실패하는 등 이런 저런 도전에 실패한다. 살아가면서 실패를 안 해본 사람은 없다. 그 실패 때문에 얼마나 우리는 낙심을 경험하는가?
다) 주위 환경과 고난 때문에 낙망하는가?
요즈음 심각한 경제위기는 우리를 낙망시킨다. 취업난이 심각하다. 카드 빚이나 부채로 헤어날 길이 없는 사람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2) 낙망을 극복하자 – 기도와 응답 받겠다는 열정
(시편 42:5-6)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속에서 낙망하나이다
낙망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라 마귀의 술책이다. 성도들을 향해 마귀가 가장 잘 쓰는 도구가 바로 낙심하고 낙망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낙망하면 우리의 마음은 슬퍼지고 우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우울한 감정으로 삶을 살면 삶은 희망이 없다. 그래서 심하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심지어는 하나님조차도 의심하게 된다.
우울증 증세를 가진 사람이 낙망을 이기고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여러 가지를 말한다. 우선 일반적인 해결방법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피하라고 한다. 고립 중에 더욱 낙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사귀고 햇빛을 쬐이고 자연을 가까이하라고 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가장 강조하는 것이 집에서 찬송을 많이 듣고 부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어떤 치유의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누가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 목사는 기도에 대하여 이런 말을 하였다. <기도는 아래서 줄을 당겨 하늘 위에 있는 큰 종을 하나님의 귀밑에서 울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되는 대로 힘들이지 않고 줄을 당기기 때문에 하늘에 종이 울리지 아니하고, 또 어떤 사람은 단 한번만 줄을 당겨 보고 만다. 그러나 응답을 받고야 마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그 줄을 단단히 잡고 전력을 다해 계속하여 당긴다고 했다. 신앙생활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낙망이다. 낙망은 “악에게 굴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이다. 낙망하면 진다. 낙망하면 마귀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낙망의 자리에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침묵할 지라도 단 한마디라도 주님을 외치면서 기도하자. 오래 기도했는가? 많이 기도했는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 한 마디라도, 단 1분이라도 기도하고 있다면 이미 낙망을 이겨낸 것이다.
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1) 하나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의 기도를 좋아하신다.
우리가 기도 생활할 때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인자가 세상에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다. 이것은 점점 시간이 갈수록 믿음의 사람이 줄어들 것이라는 말씀이다. 기도는 믿음과 직결이 된다.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기도할 수 있다.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의 기도를 좋아하신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기도가 응답을 받는다. 믿음이 있는 사람의 기도에서 역사가 일어난다.
2) 의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모두 맡겨라
믿음과 상극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의심이다. (야고보서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닷물결 같으니‘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자는 (야고보서 1:7)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신다. 주님은 믿음으로 구하면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라고 했다. (마 21:22) ‘너희가 기도할 때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다. 의심은 모든 관계를 파괴한다. 의심은 마귀가 사용하는 무기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의심하게 한다. 의심은 무서운 병이다. ‘네 행사를 여호와께 맡겨라’ (잠 16:3) ‘염려를 주께 맡겨라’ (벧전 5:7) ‘의심은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파도와 같다’ (약 1:5∼8)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맡기자.
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여기 믿음으로 구하는 것은 정말 주님이 응답하여 주신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 정말 믿음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가? 믿음의 기도가 무엇인가? 믿음이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한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이다.
2. 기도의 내용과 순서
가. 기도의 절차가 필요한 이유
기도하는 데는 여러 절차가 있다. 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계획성 있게 준비함으로써 효과적이고 완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표기도나 공중기도에 있어서는 순서를 마음속에 정해 놓고 메모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 기도의 순서
1) 찬양 -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앞서야 한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에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영광이 서두에 나와 있다.
2) 감사 - 감사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다. 바울은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써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고 하였다. 간구하기 전에 먼저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 감사함을 안다는 것은 우리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것이다.
3) 회개와 고백 - 하나님께 무엇을 기도하기 전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확립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지은 죄를 남김없이 회개하는 것이다. 이 회개와 고백을 통해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야만 정당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4) 간구 - 원하는 바를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간구이다. 간구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며 육체의 정욕을 위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간구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는 간구가 되어서는 안되며, 이웃과 섬기는 교회와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먼저 간구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이다.
5)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함 -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신자의 특권이며,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너무나 낮은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중보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하는 것이다.
6) 아멘으로 마침 - 아멘은 "확인하다", "확증하다", "진실로", "확실히" 등의 뜻이 있다.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언약과 기도의 응답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다는 의미에서 "아멘"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아멘"은 기도문의 총 결론으로 쓰여지는 것이다.
D. 기도 생활의 중요성과 필요성
1. 기도 생활의 중요성
가. 기도 생활의 중요성
나.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
2. 기도의 필요성
가. 기도하는 사람의 변화
나. 기도 생활을 통한 축복의 원리
다. 기도생활의 실천사항
3. 능력 있는 기도의 비결
가. 기도의 능력과 성공에 대한 분명한 약속
나. 두 가지 선행 조건
1)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것
2)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
D. 기도 생활의 중요성과 필요성
1. 기도 생활의 중요성
가. 기도 생활의 중요성
(시145:18-19)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모두들 생활이 바쁘고 쫓기고 있다. 그러나 고요한 시간, 주님과 나만의 장소, 명상과 기도와 성경 속에 파묻히는 시간이 하루에 최소한 30분도 없이 영적 생명이 유지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아무리 바쁘고 고달파도, 또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라도 각자의 제단을 쌓을 때 크리스천의 생명이 있고, 소망이 있다. 나는 기도로 말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으로 내게 말씀하지 않을 때 내 기도는 독백이요, 공상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이름이 불러지는 곳에는 주님의 영이 생명의 창조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다 못해 ‘주여, 나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하는 기도라도 해야 한다. 기도 없는 신앙생활은 참다운 신앙생활이 아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실제적인 무신론자이다. 기도는 어떤 의지의 힘이나 신념보다 더 큰 능력을 가져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이며, 하늘나라를 보게 하고 축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열쇠며 사탄의 침입을 막는 자물쇠이다. 기도하는 가정이야말로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를 잘 아는 사탄은 사람들에게서 기도를 빼앗아간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기도를 안 하는 자는 하나님을 악한 자보다 더 나쁜 하나님으로 아는 자’라고 하셨다. 무서운 말씀이다. 자식이 떡 먹고 싶다고 말할 때 돌을 주면서 먹으라고 하는 악한 부모는 없고, 생선을 먹고 싶다고 하는데 뱀을 주면서 먹으라고 하는 악한 부모는 없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니까 기도 안 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을 악한 자보다 더 악한 자로 보는 사람이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곧 기도 안 하는 것은 죄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여 축복의 통로를 열어서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은혜와 복을 받자.
나.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
1)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교류의 채널이다
(사 55:6) 우리의 길이 막막하거나 많은 길 중에 어디로 가야 할 지 선택이 곤란하거나 길을 잃어 방황하게 될 때에도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 드리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인생행로를 이끌어 주신다. 기도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유일한 채널입니다. 그런고로 기도가 없는 믿음은 믿음일 수가 없다.
2) 예수님도 기도하셨다.
(마 14:23) 예수님은 새벽 미명부터 기도하셨고 (막 1:35), 피곤하신 때에도 기도하셨다. (막 6:31, 46)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마치셨다.
☞ 하나님께 구하고자 함이다. (마 6:10)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려면 하나님께 많이 구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 구하면 주신다. (마 7:7-8, 시10:17) 일본의 어느 마을에 한 기독교인이 천 그루 정도의 과수를 가꾸고 있었다. 열매가 맺을 무렵, 이상한 벌레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약을 치고 잡아도 날마다 기승을 부렸다. 이 분은 철야기도를 했다. 가족도 다 모여 벌레가 없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수백 마리의 이상한 새떼들이 몰려오더니 한 나무에 하나씩 붙어 한 시간 만에 벌레를 전부 쪼아 먹어버려 나무들이 깨끗해 졌다고 한다.
☞ 대적 마귀가 삼킬 자를 찾는다. (벧전 5:8)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침에 두 시간을 기도하지 아니하면 그 날은 마귀에게 지는 날이다." 바울과 실라가 밤중에 기도한 것처럼 어두운 시대를 헤치고 나아가는 길은 오직 기도하는 것뿐이다. (행16:25)
3) 기도를 통해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약 1:5) 솔로몬은 기도해서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얻었다. 주님을 위하여 큰 일을 할 때 길이 막히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하면 길을 열어주시든지 난관의 터널을 뚫는 지혜와 힘을 주신다.
☞ 기도는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가져다 준다.
1890년 마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평양선교를 개척한 마펫 목사는 가정에서 매일 예배를 드렸다. 이런 경건한 정서에서 자란 다섯 형제는 모두 선교사가 되어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그의 아들 S.H. 마펫은 후에 부모의 기도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와 어머니가 우리 형제를 위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를 했는데 그 후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결단을 할 때 그 기도소리가 큰 힘과 용기가 되었다."
☞ 악한 무리에서 벗어나고, 평화를 얻기 위함이다.
(살후 3:2) 흑인 성악가 로렌드 헤이스가 독일 베토벤 홀의 무대에 섰을 때 독일인들은 야유를 보냈다. 흑인의 베토벤 홀 입장은 독일의 수치라고 하며 개막 전부터 독창회 개최를 반대하던 그들은 공연 날에도 객석을 메워 거세게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 헤이스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기어이 무대에 섰다. 헤이스는 청중의 야유를 받으며 피아노 앞에서 기도를 했다. 5분, 10분 헤이스의 기도가 계속되자 청중은 야유를 그치고 침묵했다. 그때 피아노와 함께 헤이스의 영감 있는 노래가 장내에 한 줄기 빛처럼 퍼져나갔다. "당신의 평화"라는 노래였다. 그 날 독창회는 독일인에게 잊지 못할 음악회가 되었다. 마귀의 참소를 그치게 하는 것. 그것은 기도이다.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함이다.
(벧전 4:7)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그 중 하나는 바리새인이고 또 하나는 세리이다. 바리새인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합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나이다."고 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하고 자기 가슴을 치며 기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칭찬하시고 응답해 주셨다. 멸망의 날을 맞지 아니하기 위해서 (막 13:18), 그리고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세리처럼 가슴을 치면서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또 (열왕기하 20장)에 보면 히스기야는 죽게 되자 "주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여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소서"라고 통곡했다. 이에 여호와께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3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15년을 더할 것이며" (왕하 20:5-6) 이토록 그의 병을 고치시고 생명을 연장해 주셨던 것이다. 오늘날도 이런 역사는 일어난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개인과 가정도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솔직하고 순수하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지혜와 능력을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2. 기도의 필요성
기도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행동이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게 아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육체의 생명이 유지된다. 마찬가지로 영은 기도를 해야 그 존재가 유지된다.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육체가 살아있는 듯 보이나 영은 죽어있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에게 활력과 용기, 위로를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친아버지나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나의 사소하거나 큰 일을 소상히 말씀 드리는 게 기도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선 우리를 친 자녀로 사랑하시기에 그에 대한 해답을 주신다. 또 우리와 그렇게 대화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기도는 꼭 해야 하며 기도는 우리들의 의무이다.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주기적으로 찾아가 뵙는 것은 자식의 의무이다. 효성스런 자녀들이 자기와 주변에서 이뤄지는 일을 소상히 부모에게 아뢰는 것처럼 성도는 기도를 통해서 지극히 작은 일까지, 숨겨둔 일까지 아뢰어야 한다.
어떤 성도는 작은 일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는 내 힘으로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맹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도를 단순히 기원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기도는 단순한 기원이 아니라 대화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대화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고 그 분의 뜻대로 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비결이며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는 파이프임을 잊지 말고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골 4:2)
가. 기도하는 사람의 변화
영국 회중교회 목사인 조지프 파커 박사(1830-1902)는 누구보다 기도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그는 기도가 역사와 공동체, 삶과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말한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지 안 하는지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 아는가? 그것은 얼굴이 증명해 준다. 매일 하나님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에는 영혼의 아름다움이 없다. 왜냐하면 풍기는 인상이 기도와 거리가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늘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서는 주님의 정원에 피어 있는 향기로운 꽃 향기가 난다.”
기도는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진정한 의미와 힘을 갖게 된다. 특히 성령이 함께하시는 기도의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있으며, 분명한 확신과 기쁨에 차서 살아간다. 모진 고통을 받고 결국 죽어야 했던 예수님,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그분 역시 약해지고 피로에 지친 심신을 기도로 충천시키며 승리의 길을 걸어가셨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기도는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인다. 기도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무엇보다도 기도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킨다. 기도는 축복의 원천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축복을 얻게 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도구이다.
나. 기도 생활을 통한 축복의 원리
성도의 기도생활은 능력의 생활이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가 난다. 기도생활을 통한 축복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다.
1) 기도생활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한다.
기적은 매일 일어난다.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에게 인생은 날마다 새롭다.
2) 기도생활은 진정한 봉사를 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남을 돕는 것이 봉사이다. 우리가 좋은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는 궁극적인 이유는 ‘봉사’에 있다. 봉사가 빠지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에 불과하다. 참된 봉사는 ‘기도’의 실천이다. 남들을 돌아보면서 기도하는 공동체는 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능력이 있다. 봉사에 필요한 지혜와 힘은 기도로써만 얻을 수 있다.
3)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신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기도가 없을 때는 가장 약할 때이고, 기도할 때가 가장 강할 때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다. 기도생활의 실천사항
1) 성전기도 원리 - 하나님의 전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진정한 기도는 교회에서 드린다. 기도의 사람은 교회 나가기를 기대한다. 모든 공식적인 예배에 참석한다. (시편 84:5)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다는 말은, 시온을 향한 마음이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뚫려 있다는 말이다. 주님의 전을 향하여 머리를 두는 자세가 귀하다.
2) 처음과 나중의 원리 - 식사할 때, 먼저 기도하고 먹는다. 끝나고 일어설 때도 기도한다. 처음 만났을 때 인사하듯, 헤어질 때도 인사한다. 이런 기도의 법칙을 이해하면, ‘날마다 기도’요, ‘늘 기도’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거실에 나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렇게 기도하자. ‘오늘 하루 일깨워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하루 동안의 일용할 양식을 주실 줄 믿습니다. 주여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오니,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3) 기록의 원리 - 기도를 기록한다. 성도의 진정한 기도는 반드시 응답 받는다. 다만, 문제는 언제 어떤 기도를 어떻게 드렸는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응답이 와도, 그때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인지 여부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하게 되지 않는다. 종이 위에만 기록할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도 기록할 필요가 있다. 즉, 기도제목을 나누는 것이다. 이런 기도제목을 가졌다고 ‘공개’하는 것이다. 동시에 ‘중보기도’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도를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다. 살아갈수록 믿음의 증거가 쌓이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4) 간증의 원리 - 응답 받은 기도는 ‘나눕니다’, 기도의 응답을 나누는 것을 ‘간증’이라고 한다. 간증의 원리는 너무 간단하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내 기도를 이렇게 들어 주셨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사람의 간증은 듣는 사람들에게도 큰 힘을 준다. 은혜와 사랑의 넘쳐난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다. 숨을 쉬어야 생존할 수 있듯, 기도해야 살 수 있다.
3. 능력 있는 기도의 비결
가. 기도의 능력과 성공에 대한 분명한 약속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능력 있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들의 모습은 어떤가? 영적으로 벌거벗고, 눈 멀고, 귀 먹은 노숙자와 같은 그런 모습은 아닌가? 불행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풍성한 삶, 능력 있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히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벧전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사함 받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움츠리고 굶주리고 숨어 다니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는 광명한 세상으로 나왔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풍성한 열매 맺는 삶도 보장되었다. 이제 능력 있는 성도의 삶을 회복하고 누리는 인생이 되기를 축원한다.
나. 두 가지 선행 조건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1) 너희가 내 안에 거하는 것
영국의 강해설교가, 존 라일목사는,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것은 그와 끊임없이 밀접한 교제의 습관을 유지하고, 언제나 그에게 기대며,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우리의 마음을 쏟아 놓으며, 우리의 생명과 힘의 원천, 그리고 우리의 우두머리 동료이며 최고의 친구로 그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거한다라는 말의 의미는 그리스도와의 친밀함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친밀함이란 3가지 요소를 담고 있다.
가) 신뢰
예수님 만이 내 삶에 유일한 의지가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것이 기도의 실패의 첫 번째 원인이다. 평안하고 건강할 때는 기도 생활하지 않다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르짖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런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약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부부간에도 신뢰가 떨어지면 그 때부터 의심하고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도 포도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붙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가지는 영양 공급이 잘 안 된다. 주 안에 거한다는 말은, 그 분 안에 살고, 그 분으로 말미암아 살고, 그 분을 위해 살고, 그분을 향하여 사는 것이다. 신실한 신뢰 관계가 끝까지 지속되는 생활을 주 안에 거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 성결
(벧전 1:16)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거룩할 것을 요구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명령했다. (엡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전에는 거짓말도 하고, 탐심과 음심을 품고 적당히 세상 것들 즐기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내가 어디에서 누구하고 살고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고전 3:16-17)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죄로 더럽혀진 손을 씻지도 않은 채 달라고 손을 내미는가?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 하면서도 세상의 방식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약 4:2-3)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사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이사야 선지자의 글에,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의 원인이 죄 때문이라는 사실에 대하여 증거하였다. 내 마음에 잡초가 많고, 잡가지들이 많을 때 응답되지 않는다. 마음에 욕심 탐심 시기심으로 가득 채운 상태에서 주님 안에 거할 수 없다. 깨끗게 해야 한다. 손발 씻듯이 날마다 회개해야 한다.
다) 사랑
주님과 동거하는 관계에서 사랑 없이 동거할 수 있는가?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주님과 동거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부부는 사랑이 없어도 산다. 정당한 핑계거리가 있다. “자식 때문에 산다.” “늙었으니까 산다.” 한 집에서 살고 있지만 같이 방을 쓰지 않는 부부도 있고, 기본적이 대화 외에는 거의 말 없이 사는 부부도 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성경은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신자를 신부로 비유한다. 영적인 부부관계인 것이다. 부부관계가 사랑을 근거로 하는 것처럼 주님과의 관계도 철저히 사랑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미 있는 사실은 영적 부부인 주님과의 관계에서는 사랑이 없으면서도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감정은 길어야 1년 6개월이다. 그 이후에 사랑의 관계를 지속시키려면 서로 섬겨야 한다. 나이가 들 수록 남편들이 밉상이 되는 이유는 섬기려 하지 않고 시키기만 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희생하기 보다는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위해 여러분의 몸과 시간과 물질을 많이 드려보라. 손해 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주님 앞에 인색한 사람은 결코 사랑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주님은 영원한 저주 아래 있는 나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몸을 버리셨다.
(롬 5:5)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2)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
박윤선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의 왕좌를 점령하였다는 것과 같다.” 존 라일은 말한다 “그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과 훈계들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생각하며, 그것들이 우리의 행동의 지침과 매일의 우리의 행위의 규칙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자신의 삶을 말씀이 통제하고 있지 않다면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요일 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모든 성도들이 귀에 즐겁고 재미 있는 설교 듣기를 갈망하지만,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지 못하고 귀에서만 즐겁고, 은혜 받는 것에 그친다면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말씀을 들었다 해도 자신의 감정, 자신의 경험, 자신의 지식으로 판단하고 말씀 앞에서 불순종하고 나태하다면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의 의미는 주님의 말씀이라면 손해가 되더라도, 하기 싫더라도, 몸이 아프더라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 라일은 무력한 기도생활의 원인에 대하여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 우리의 기도에 왜 이처럼 힘이 없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친교와 그의 뜻에 엄격히 순종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헛되이 기도한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도 없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대하여서도 불순종하는 가운데 있으면서 기도의 응답을 바라는 것은 마른 하늘에 비 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1) 주 안에 거하는 것이고 -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2) 주의 말씀이 내 안에 거하는 것이다. -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자세.
이런 관계가 선행되었을 때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다. 그들은 말씀 앞에 복종했다. 그랬기에 그들의 기도는 능력이 있었고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키고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이 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주님과의 친밀한 영적 관계가 없거나, 그렇다고 소리를 지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며, 금식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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